섬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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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대회장  박진식

1983. 5. 22.∼23 ∼ 서울 우이동 솔밭 참석인원 129명
초대 임시회장 조 태 화 선임

 

  섬용회가 결성된 동기와 그 시작은 河校41회, 河中8회, 河高7회 중에 재학했었거나 졸업한 죽마고우 20여명의 친구들이<청운회>를 결성하여, 30여성상이 넘도록 모교의 발전에 적극적이고 끊임없이 기여함으로써 소외되었든 친구들은 물론, 모교의 은사와 선후배와 고향의 주민들까지 신뢰성 있는 향토인의 모임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인식의 확대는 김광석을 비롯한 서울지역 청운회원과 재경하중 제8회 동창들의 응집력을 고조시켰고, 하동 친구들의 기별 동기회의 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어루려져 이들의 헌신적인 협력은 전국의 모든 친구들을 찾아 초청하여 Plaza hotel 라운지에서 재경 선후배들의 축하 속에 성대한 환영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뿔뿔이 흩어져 수십 여 년을 잊었던 우정의 환희와 회한이 교차하여 눈시울 뜨거워진 고우들의 만남은 진정한 행복이었다.

 

  다음날 우의동 송림에서 정식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섬진강의 용띠들'이 주류란 뜻으로 "섬용회"라 하자는 김광석의 제안으로 회명과 회칙의 근간을 개략적으로 제창하게 되었다. 선물꾸러미를 잔뜩 짊어지고 헤어지는 마당에서 초대섬용회장에 추대된 조태화는 서울 친구들의 따뜻한 환대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동 친구들과 합심하여 가을축제를 겸한 섬용회의 "정식출범선포대회"를 고향에서 개최하기로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