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家는 왜 글을 쓰는가

SARTRE, JEAN PAUL

   감정은 빌어 온 것이다. 자유로이 서술한 이야기가 아니면, 그것은 믿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수난(受難)이다.  자유는 자진해서 수동적(受動的)인 입장에 서며, 그 희생에 의해 일종의 초월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독자는 믿기 쉬우며, 그런 상태 속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상태는 꿈결처럼 독자를 에워싸지만, 독자 자신이 자유라는 의식은 언제나 잃게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작가를 다음과 같은 이율배반(二律背反)에 몰아 넣으려고 한다. <당신의 말을 믿자니 납득이 가지 않고, 당신의 말을 믿지 않자니 우습다>고. 그러나 이와같은 의론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미적인 의식에 고유한 성질은, 속박이나, 혹은 서약에 의해 믿게 된다는 데 있고, 작자 자신과 작가에 대하여 충실하기 위해 믿는다는 점에 있으며, 또 독자 자신이 끊임없이 믿는 쪽을 택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순간에 눈뜰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며, 독서란 자유로운 꿈에 지나지 않는다. 상상에 의해 믿는 근저에는 감정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 감정은 나의 자유의 특수한 파동(波動)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결코 자유를 흡수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가 그 자신에 대하여 자기를 계시하기 위해 택한 자유의 존재 방식 자체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라스코르니코프는, 내가 그에 대하여 느끼는 반발이나 우정이 없다면, 단지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그로 하여금 생명이 있게 하는 것은, 나의 반발이나 우정이다. 그러나 상상된 대상에 고유한 성질인 반작용(反作用)에 의해, 나의 분노나 존경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아니라, 나의 분노나 존경이야말로 그의 행위에 지속성(持續性)과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자의 감정은 결코 대상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어떤 외부적인 현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 속에 있는 영원한 샘이며, 다른 말로 하면, 고매한 감정이다.――나는 자유를 원천으로 삼고, 자유를 목적으로 여기는 감정을 고매하다고 부른다.

  독서는 고매한 마음의 훈련이다. 작가가 독자로부터 요구하는 것은, 추상적인 자유의 적용이 아니라, 독자의 전인격적이 갖는 자질이며, 그 정념(情念)과 편견, 그 공감, 그 성적(性的)인 기질, 그 가치의 단계이다. 다만 그 인격은 고매한 마음을 갖고, 자유는 인격의 모든 부분에 침투하여, 그 감수성(感受性)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도 변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독자의 정신의 적극성(積極性)은 대상을 더욱 잘 만들어내기 위해 수동적이 되지만, 이 수동성은 반대로 행위가 된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그리하여 자기를 최고의 경지까지 높인다. 냉혹하기로 이름난 자들이, 상상으로 불행한 이야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은 읽는 동안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자유를 감추지 않고 살아왔던들 그들이 되어 있을 그런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와같이 독자의 자유에 대하여 글을 쓰며, 독자에게 그 작품을 존재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가 그의 부여한 신용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그들이 자기의 창조적인 자유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독자측에서도 상대적으로 반대의 호소를 하여, 작가측의 자유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독자측에서도 상대적으로 반대의 호소를 하여 작가측의 자유를 불러일으켜 줄 것을 요구하며, 그래서 독서에 관해서는 벌써 하나의 변증법적 역설(辨證法的 逆說)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독자인 우리가, 자기의 자유를 의식할수록 우리는 타인(작가)의 자유를 의식하게 된다. 또 작가가 우리에게 요구 할수록, 우리는 작가에게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풍경에 매혹을 느낄 때에,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없으면 눈 아래서 나무들이나 숲이나 대지나 풀들 사이에 이루어진 관계가 전혀 존재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색채의 균형이나 바람이 일으키는 운동이나, 형태의 조화 속에 찾아볼 수 있는 합목적적(合目的的)인 외관은,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고 내 눈 아래 있다. 요컨대 존재(存在)가 이미 있을 경우에만, 나는 그 존재를『거기 있게 할 수』있는 것이다. 다만 설사 신(神)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신의 우주적(宇宙的)인 배려와, 내가 바라고 있는 특수한 광경 사이에는, 순수한 언어상의 연결 이외의 다른 어떤 연결을 찾아볼 수는 없다. 나를 매혹하기 위해 신이 풍경을 만들었다거나, 신이 나로 하여금 그 풍경이 마음에 들도록 하였다고 말한들, 그것은 대답 대신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 푸른 빛과 초록색의 결합을 신이 원했는가?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주적인 섭리라는 관념은, 어떤 특수한 의도(意圖)의 보증도 되지 않는다. 풀이 초록빛을 띤 것은, 특히 지금과 같은 경우에, 생물학적인 법칙이나 특수한 항수(恒數)나 지리학적인 결정론(決定論)에 의해 설명될 수 있으며, 물이 푸른 빛을 띤 것은, 강의 깊이나 토지의 성질이나 흐름의 속도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색채의 배합은, 설사 그것이 신의 의지(意志)라고 하더라도, 시장에 내놓은 것이며, 두개의 인과론적 계열(因果論的 系列)이 합쳐진 결과로, 요컨대 우연의 사실이다.

   합목적성(合目的性)은 고작해야 겨우 문제로 삼을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는 모두가 가설(假設)이며, 어떤 목적도 명령의 행패로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창조자가 원한 그런 목적은 있지 않다. 자연미(自然美)가 우리의 자유에 호소하는 일은 없다. 숲이나 형태 또는 운동 속에는 어떤 질서와 같은 것이 있으며, 따라서 호소하는 일은 없다. 숲이나 형태 또는 운동 속에는 어떤 질서와 같은 것이 있으며, 따라서 호소라고 착각되는 것이 있어서, 우리의 자유를 유혹하는 듯싶지만, 그것은 눈 앞에서는 곧 사라져 버린다.
   눈이 경치의 질서를 돌아보기 시작하자마자, 호소는 사라지고, 우리들만이 남게 된다. 이 색깔을 제2의 색깔과 결합시키느냐, 제3의 색깔과 결합시키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며, 나무와 물, 혹은 나무와 하늘, 나무와 물과 하늘과의 어느 것을 결합시키느냐 하는 것도 우리의 자유이다.

   우리의 자유는 기분에 따라 움직이고, 풍경 속에 새로운 관계를 세우는 데 따라서, 처음에 우리를 유혹한 풍경의 객관성(客觀性)이라는 착각에서 멀어지게 된다. 우리는 사물에 의해 막연하게 묘사된 약간의 주제(主題)를『꿈꾼다』. 자연의 현실은 벌써 우리의 몽상(夢想)을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한순간 의식된 자연의 질서는, 누구의 손에 의하여 우리에게 제출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참된 의미의 질서는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우리 자신의 꿈을 고정시켜, 그것을 캔버스나 문장 위에 묘사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연의 풍경 속에 나타난 목적이 없는 합목적성(合目的性)과 타인의 시선 사이에, 우리 자신을 삽입한다. 우리는 목적이 없는 합목적성을 타인에게 전하는데, 이와같이 전해짐으로써 그 합목적성은 인간적인 것이된다.

   이 경우에 예술이란 선물(don)의 의례이며, 선물한 것만이 변모된다. 그것은 모권가족(母權家族)의 칭호와 권력의 이양과 비슷하다. 모권 가족에서 모친은 이름을 갖지 않지만, 숙부와 생질 사이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개자이다. 사라져 가는 이 환영을 내가 파악하고, 내가 그것을 타인에게 제출하여, 그들을 위해 그것을 해방시켜 재고(再考)하면, 그들은 그것을 신뢰하여 바라볼 수 있다. 환영은 그리하여 지향성(志向性)을 갖게 된다. 나 자신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한계 안에 멈춰 있게 되므로, 내가 사람에게 전하는 객관적인 질서를 결코 바라볼 수는 없다.

  반대로, 독자는 확실한 방법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멀리 나아갈수록 작가는 독자보다 그만큼 앞질러가게 되는 것이다. 독자가 책의 다른 부분 사이에――각각의 장(章)이나 말 사이에――맺는 관계가 무엇이건, 독자에겐 그런 관계가 분명히 의도(意圖)된 것이라는 보증이 있다. 데카르트도 말한 바와 같이, 그 사이에는 절대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는 각 부분 사이에, 마치 은밀한 질서가 있는 듯이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창작이 언제나 독자를 앞지르게 되며, 매우 아름다운 무질서는, 예술적인 효과의 하나이다. 즉 그것도 하나의 질서이다.

   독서는 연역(演繹)이요, 그 움직임의 근저는, 과학적인 연역의 근저가 신의 의지 속에 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온 것처럼, 작가의 의지 속에 있다. 유연(柔軟)한 힘이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최후의 페이지까지 지탱시켜 준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예술가의 의도는 추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독서에는 하나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추리는, 책 속에 나타나는 미(美)는 결코 우연의 결과는 아니라는 커다란 화신에 의해 지탱되어 있다. 자연 속에서 나무와 하늘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다만 우연에 의해서다.  반대로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던 탑(塔)이나 감옥 속에 갇혀 있고 어던 정원을 산책하는 것은, 서로 독립된 인과론적 계열(因果論的 系列)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다 깊은 합목적성(合目的性)의 표현이기도 하다. 공원은, 그것이 어떤 정신 상태와 조화되고, 그 정신 상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혹은 그 정신 상태를 심한 대조에 의해 부각시키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 상태 자체가 풍경과의 관계에서 상상되었다.

   거기서는 인과 관계(因果關係)가, 외형적인 것이며, <원인이 없는 인과 관계>라고나 할 성질의 것으로, 함복적성 쪽이 보다 깊은 현실이다. 그러나 독자인 내가, 원인의 질서 아래 목적의 질서가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책을 펴면서, 거기 있는 대상의 원칙이 인간적인 자유라는 신념을 갖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정념(情念)에 의하여 정념 속에서 썼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그와 같은 나의 신념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몰론 나도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정념에 의해 움직였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결의는 작가에게, 자기의 감동에서 한걸음 후퇴시키게 될 것이다. 내가 읽으면서 나의 감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작가는 작가의 감동을 자유로운 감동으로 변형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작가의 태도는 고매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란, 작자와 독자 사이에 맺어진 고매한 마음의 조약이다.

  그 각자가 타자(他者)를 신뢰하고, 타자에게 기대하며, 상대가 그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만큼 상대방에게 요구한다. 그와 같은 신뢰 자체가 고매한 마음씨이다. 무엇인가가 작가로 하여금, 독자가 자기의 자유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믿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였다고 믿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상대방을 믿는 것은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를 내왕하는 변증법(辨證法)은 그때에 성립되는 것이다. 읽을 때에 나는 요구한다. 요구가 충족되면 그때 읽고 있는 것은, 나로 하여금 작가에게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도록 촉구한다. 그것은 작가가 나에게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을, 요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작가의 요구는, 내가 나의 요구를 높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나의 자유는, 자기를 나타냄으로써 타자(작가)의 자유를 계시(啓示)하는 것이다.

  미적(美的)인 대상이『현실적』(혹은 현실적이라 부르는)예술 작품이지만,『형식적』예술 작품이냐 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예술에 있어서는 자연의 관계가 역전된다. 세잔느의 그림의 전경(前景)에 있는 나무는, 우선 인과론적 연쇄(因果論的 連鎖)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인과관계는 착각이다.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한, 인과관계의 명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합목적성(合目的性)에 의해 지탱되어 있다. 나무가 서 있다며, 그것은 화면의 그 밖의 부분이 그 형태와 색깔을 그 전경(前景)에 놓이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은, 현상적(現象的)인 인과 관계를 통하여, 그 대상의 깊은 구조(構造)로서의 합목적성(合目的性)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합목적성을 초월해서, 그 원천이며 토대인 인간적인 자유에 도달한다.

 펠메에르의 리얼리즘은, 어뜻 보면 그것이 사진이 아닌가 할 정도로 철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재(素材)의 빛이나, 벽돌로 된 작은 벽의 빌로오드 같은 장비 및 광채, 인동(忍冬) 가지의 푸르름, 작은 방안의 칠흑 같은 어둠, 성수반(聖水盤)의 돌처럼 갈고 닦은 얼굴의 오렌지빛 살결을 바라보면,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쾌감을 통하여 그 합복적성(合目的性)이, 형체나 색깔 속보다도, 오히려 소재에 의한 상상에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된다.

 거기서는 실질(實質) 자체와 파편을 주워 모은 것이 뒤섞여, 여러 가지 형체의 존재 이유가 되어 있다. 이 리얼리스트는, 아마도 우리를 절대적 창조에 보다 가까이 인도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의 무한한 자유와 만나게 되는 것은 소재(素材)의 수동성(受動性) 자체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한계는 묘사된 대상, 혹은 조각된, 또는 이야기한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 세계의 깊은 곳에서 의식되는 것처럼, 미술에 의해 표현된 대상도 세계의 깊은 곳에 나타난다. 파브리스의 모험의 배경에는, 1820년의 이탈리아가 있으며, 오스트리아가 있고, 프랑스가 있다. 그리고 하늘과 브라네스가 점치는 별과, 끝으로 대지(大地)전체가 있는 것이다. 화면은 우리들에게 들이나 화병을 보여 주지만, 그것은 전세계를 향해 열린 창문이다. 보리밭 사이를 자나가는 불그레한 길을, 우리는 반 고호가 그린 것보다도 더 멀리, 그 앞의 보리밭 사이까지, 그 빛나는 구름 아래까지, 바다에 흘러드는 개울까지도 더듬어 간다. 우리는 들판과 대지(大地)의 존재를 지탱하는 깊은 합목적성(合目的性)을, 무한을 향해 세계의 끝까지 확대한다.

  창조적인 행위는, 약간의 대상을 만들어냄으로써, 혹은 다시 만들어내는 데서, 세계의 전체적인 갱신을 목적삼는다. 각각의 그림이나 책은 존재의 전체를 재현하고, 그 전체를 관찰자의 자유에 대하여, 대표하는 것이다.
  예술의 구경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 보이도록 이세계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의 근원이 인간의 자유 속에 있는 것처럼 재현해야 한다. 그런데 작가가 창조하는 것은, 관찰자의 눈을 통해서만 객관적인 현실이 될 수 있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