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는 指導者의 어린 時節

SARTRE, JEAN PAUL

  요새는 류씨앵이 아버지와 그 일때를 산보하는 것을 보아도 직공들은 모자에 손을 대는 척만 하고, 심지어 인사하기가 싫어서 외면을 하고 길을 건너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는 류씨앵이 부우리고의 아들과 마주쳤는데 녀석은 모른척 하였다. 류씨앵은 비위가 상하였다. 바로 자기가 주인임을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그는 줄르 부우리고에게 독수리와 같은 눈초리로 쏘아보면서 뒷짐을 지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부우리고는 태연하였다. 그는 류씨앵을 멍하니 바라보고 휘파람을 불면서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나를 몰라 보는 군.>하고 류씨앵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였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였다.

  프뢰리에부인은 작은 권총을 옷장 왼쪽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1914년 9월, 남편이 일선으로 가기전에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류씨앵은 그 권총을 꺼내 한참 만져보았다. 총신(銃身)은 금빛이고, 자루에는 진주를 박은 훌륭한 권총이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시키려면 철학논문으로서는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가상(假象)을 소멸시키고 세계의 허무(虛無)를 백일하에 드러내 보여 주는 참으로 절망적인 행동 말이다. 총소리, 양탄자 위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젊은 육체, 그리고 종이 위에 갈겨 쓴 몇 마디 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살을 한다. 그리고 동포들이여, 당신네들도 역시 허무하다!>

   사람들은 조간(朝刊)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놈이 감히 그런 끔찍한 짓을 하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저마다 큰 충격을 받고 자문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상에는 그런 예가 많이있다. <베르테르(「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괴에테작)>가 출판되었을 때에도 이런 자살이 유행되었다. 류씨앵은 순교자라는 말이 희랍어로서는<증인>이라는 뜻임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공장 주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다감하였지만, 순교자가 될 소질은 충분히 있었다.

  그 후 그는 어머니의 방에 자주 드나들면서 권총을 보고는 고민하였다. 총자루를 꼭 쥐고 그빛으로 된 총신을 깨물어 보기도 하였다. 그밖의 시간에는 진정한 지도자는 저마다 자실의 유혹을 받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오히려 명랑한 기분이었다. 예컨대 나포레옹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자기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물겨운 마음으로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센트 헤레나 섬의 회상>을 흥미 있게 읽었다.

  그는 결심을 해야만 하였다. 그리하여 9월 30일을 끝으로 현재의 망설이는 상태를 청산할 심산이었다. 마지막 며칠 동안은 몸시 괴로웠다. 위기를 벗어난다는 것은 물론 이로운 일이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큰 긴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혹시 유리창처럼 깨어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여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제는 권총을 만져볼 용기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서럽을 열어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어머니의 콘비네이션을 살짝 들어올려서 오랫동안 장미빛 비단 천에 싸여 오묵하게 들어 있는 차디차고 단단한 작은 괴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기로 하였을 때, 그는 커다란 실망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 신학기의 여러 가지 걱정 때문에 머리가 꽉 차 있었다. 부모는 그를 성 루이 고등학교에 보내어 중앙학교의 입학준비를 시켰다. 그는 모표가 달린 붉은 테를 두른 희한한 모자를 쓰고 이렇게 노래 하였다.

              기계를 움직이는 중앙학교 학도여,
              수레를 움직이는 중앙학교 학도여……

   이 <중앙학교 학생>의 새로운 권위는 류씨앵을 자랑스럽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학급은 다른 학급과는 달라서 전통과 의식을 지닌 한의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언제나 프랑스어 강의가 끝나기 15분 전에 누가 <육군 사관학교 학생은 어떠냐?>하고 물으면 일제히<개자식이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농과생은 어떠냐?>하고 물으면 더 큰 소리로<개새끼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거의 장님이 되다시피 한 검은 안경을 걸친 베뚠느선생은 피로한 목소리로<여러분 제발 조용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 함참 침묵이 계속되고 학생들은 의기상통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바라본다. 그러자 누가 외친다.
 「중앙학교 학생은 어떠냐?」
  그러면 모두들 일시에 부르짖는다.
 「거물이다.」
  그럴 때마다 류씨앵은 전신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에 그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양친에게 상세히 전하고 그때 <학급전체가 떠들싹하였어요.>하거나 <전학급 메이리네스와 절교하려고 작정했어요.>하고 말할 때, 입안이 알콜을 잔뜩 물고 있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그러나 처음 몇 달 동안은 무척 괴로웠다. 그는 수학과 물리 시험에 떨어졌으며 학우들과도 다정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국비생으로 거의가 책벌레들이며 행실이 단정치 못하고 옷차림도 불결하였다.
 「친구로 삼고 싶은 녀석은 한 사람도 없어요.」하고 그는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국비생은 머리는 좋지만 훌륭한 지도자는 될 수 없단다.」
하고 아버지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그들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설 줄 모르거든.」

  류씨앵은 이 말을 듣고 불쾌한 생각을 금치 못하여, 그 후 몇 주일을 두고 다시 자살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방학때와 같은 흥분은 하지 않았다. 정월달에 들어와 베르리아크라는 신입생이 전 학급의 화제꺼리가 되었다. 그는 최근에 유행하는 녹색이 아니면 황색으로 된 통이 좁은 윗도리를 입고 있었으며, 양복점 카타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깃은 둥글고 작았다. 그리고 바지는 통이 너무 좁아 용케 발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는 수학에서 꼴지가 되었다.
 「그래도 괜찮아.」하고 외쳤다.
 「나는 문학가야. 수학을 하면 죽을 지경이야.」

   그러나 그는 한달 후에 학급 전체를 매혹시켰다. 밀수품 담배를 나눠주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자랑하며 연애편지를 보여주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를 멋쟁이라고 생각하였다. 류씨앵은 그의 맵시있는 옷차림과 태도에 반하였다. 그는 류씨앵에게 친절히 대하며 <부잣집 도령님>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류씨앵은 아무튼 가난뱅이 자식보다는 그편이 낫지.」
하고 농을 하였다.
  베르리아크는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제법 빈정댈 줄도 아는군!」
  이튿날 그는 자기가 쓴 시를 읽어 주었다.

 「카루소는 밤마다 술에 취하였다. 눈초리가 거칠어졌다. 여느때에는 낙타처럼 얌전하였만. 한 귀부인이 가족들의 눈앞에서 꽃다발을 만들어 무대 위에 던졌다. 모두들 그 장한 행동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잊지 말라. 그의 영광은 37분밖에 지속되지 않았음을. 마침 최초의 부라보로부터 오페라 극장의 커다란 조명등이 꺼지기까지.(그 후 여인은 숱한 상을 탄 남편을 꼭 붙잡아 매두어야 했다. 남편은 전쟁의 십자훈장으로 두 개의 눈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명심하게. 통조림의 인육(人肉)을 너무 먹는 자들은 괴혈병으로 죽을 테니까.」
 「근사한데.」하고 류씨앵은 말하였다.
 「새로운 수법으로 써봤지.」하고 베르리아크는 태연하게 말하였다.
 「자동필기법(自動筆記法)이라는 걸세.」

  얼마후에 류씨앵은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견딜 수 없어 베르리아크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어쩌면 좋겠나?」
하고 그는 설명을 마치고서 물었다. 베르리아크는 자세히 듣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빨며 얼굴에 난 여드름에 침을 바르는 버릇이 있어, 살갗의 여기저기가 비맞은 후의 길과 같이 번쩍거렸다.
 「마음대로 하게.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는 좀 생각해 보더니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가면서 말하였다.
 「세상에 대수로운 것이 어디 있나?」
  류씨앵은 약간 실망하였다. 그러나 다음 목요일에 그의 어머니의 티파티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그는 무척 감동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매우 상냥하였다. 얼굴에 사마귀가 몇 개 있고 오른쪽 뺨에는 죽은깨가 나 있었다.
 「알겠어요?」
하고 베르라아크 부인은 류씨앵에게 말하엿다.
 「진짜 정쟁 희생자는 우리란 말일세.」
  류씨앵도 동감이었다. 또한 그들은 다 함게 희생의 세대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도 의견을 같이 하였다.

   날이 어둡자 베르리아크는 두 손을 목덜미에 끼고 침대에 드러누었다. 그들은 영국 담배를 피우며 레코드를 틀었다. 류씨앵은 소피 턱키와 앨 존슨의 노래를 들었다. 그들은 마음이 몹시 우울해졌다. 류씨앵은 베르리아크를 가장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류씨앵에게 정신분석학을 아느냐고 물었다. 목소리가 으젓하였다. 그는 류씨앵을 지긋이 쳐다보고 나서 고백하였다.  「난 열다섯 살까지 어머니에게 욕정을 느꼈네.」
  류씨앵은 겸연쩍은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붉어질까봐 겁이 났다. 그는 베르리아크부인의 얼굴에 난 사마귀를 생각하고, 그는 여자에게 욕정을 느끼는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부인이 토스트를 갖고 들어왔을 때, 일종의 불안감에 사로잡혀, 부인의 노란 쟈켓을 통하여 가슴속을 들여다보려고 하였다. 부인이 밖으로 나가자 베르리아크는 또렸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너도 물론 어머니하고 자고 싶었을 테지?」
  그것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단언이었다.
 「물론이지.」
하고 류씨앵으 어깨를 들먹이면서 말하였다.

  이튿날 그는 불안에 사로잡혀 베르리아크가 또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까 하여 겁이 났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놓았다. <어쨋든 녀석은 나보다 부량하다.>
  그는 들의 고백이 지닌 과학적인 근거에 대하여 마음이 몹시 끌렸다. 그리하여 다음 목요일에 그는 쌩트 쥬느비에브 도서관에 가서 프로이드의<꿈의 연구>를 읽어보았다. 그것은 하나의 계시(啓示)였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하고 류씨앵은 거리를 걸으면서 되풀이 하여 줄얼거렸다.

 이어서 그는 <정신분석학 입문>과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을 사서 읽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기묘한 인상, 오랫동안 의식(意識)을 지배해온 저 공허감, 백일몽(白日夢), 어리둥절한 느낌, 언제나 안개 속에 싸여 버리는 자기 인식을 위한 그 헛된 노력……
  <그렇다. 나는 콤프렉스(인간의 심리중에서 억압된 사고나 욕구가 서로 결합된 현상)가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베르리아크에게, 자기가 어렸을 때 자기가 몽유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였으며, 사물이 전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다.
 「나한테는 우월감의 콤프렉스가 있는 모양이야.」
하고 그는 잘라서 말하였다.
「꼭 나와 같군.」
하고 베르리아크가 말하였다.
「우리는 가족 콤프렉스를 갖고 있네.」
 그들은 자기들의 꿈이나 그 밖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설명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베르리아크는 이야기할 것이 많았지만, 그 중에 더러는 일부러 꾸며대었거나 적어도 과장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뜻이 잘 맞으며, 가장 미묘한 문제도 객관적으로 다루었다. 그들은 주위의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명랑하였지만 속으로는 무척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피차에 고백하였다.

  류씨앵은 불안에서 벗어났다. 그는 정신분석학에 몰두하였다. 자기에게 적합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은 마음이 침착하여 자기자신의 혈통이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끊임없이 의식 속에 자기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징후를 찾아낼 필요가 없었다. 참된 류씨앵은 무의식 속에 깊이 파묻혔다. 그는 사라진 친구를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고 몽상하게 되었다. 그느 종일 자기 콤프렉스를 생각하고 의식의 증기 밑에서 어둡고 참혹한 강한 세계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는 베르리아크에게 이것을 말하였다.

 「알겠나. 난 겉으로는 자고 있네. 아무데도 관심이 없는 소년이야. 무뚝뚝한 놈이지. 그리고 마음속에서까지 그렇게 돼먹을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될 판이네. 그러나 다른 그 무엇이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언제나 다른 그 무엇이 있는 거야.」
하고 베르리아크는 대답 하였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듯이 서로 미소를 지었다. 류씨앵은 <안개가 개일 때>라는 시를 지었다. 베르리아크는 잘 되었다고 말하였으나 정형시로 된 것을 탓하였다. 그들은 곧 그 시를 암송하고, 자기들의 리비도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으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안개의 옷자락 아래 웅크린 커다란 게.」

 그리고 그들은 눈짓을 해 보이면서 다만<게>라고만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류씨앵은 혼자서 있을 때나, 특히 저녁때에는 그런 것에 좀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인제는 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자러 가기전에 어머니에게 키스할 때, 어떤 말 수 없는 힘이 그 키스를 망쳐놓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는 가슴 속에 화산(火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기가 발견한 호화롭고 음흉한 영혼을 충동시키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그는 지금 그 영혼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무서운 각성이 두려웠다. <나는 자기 자신이 무섭다.>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이 반년 이래에 생활에 싫증이 났고 공부에 몰리기도 하여 혼자 놀기를 그쳤으나 이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인간은 각자 자기의 성격에 쫓아야 한다. 프로이드의 책을 읽으면, 너무 갑자기 습관을 버렸기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린 불행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는 미치지나 않을까?」
하고 류씨앵은 베르리아크에게 물었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 목요일에 그들은 가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어둠이 베르리아크의 방에 조용히 찾아들면 그들은 담배에 아편을 넣어서 여러갑 피웠다. 손이 떨려왔다. 그때 둘 중의 하나가 방문 옆에 살며시 가서 스위치를 눌렀다. 노란 불이 방안에 가득찼다. 그들은 서로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로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류씨앵은 곧 베르리아크와의 우정이 오해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 더 에디프스 콤프렉스의 비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특히 거기에, 후일 다른 목적에 그힘을 빌려는 정념의 힘의 상징을 찾아내고 있었다. 한편 베르리아크는 현재의 상태를 즐기며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절망적인 인간이네. 이를 테면 낙오자란 말이야.」
하고 그는 으시대며 말하였다.「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