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트라트

SARTRE, JEAN PAUL

   인간을 관찰할 때엔 높은 데서 내려다보아야 한다. 나는 전등을 끄고 창가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누가 자기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의 앞뒤에 신경을 쓴다. 그러아 모두가 1미터 70의 구경꾼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누가 7층 위에서 내려다본  중절모자의 꼴에 대하여 상상이나 할 것인가. 그들은 짙은 색깔의 화려한 옷감으로 어깨며 머리를 감사기를 소홀히 하고, 인간의 대적(大敵)인 수직 관찰(垂直觀察)과 사울 줄 모른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고 웃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그처럼 자랑하는 직립자세(直立姿勢)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들은 한길에서 납작하게 기다시피하는 긴 다리가 어깨위로 뻗어나오고 있지 않은가.

 7층의 발코니――나는 여기서 일생을 보내야 마땅했을 것이다. 하려면 물질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신적 우월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무릇 정신적 우월을 유지하는데는 물질적 우월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들에 대한 나의 우월은 무엇인가? 다만 위치에 있어서 우월 뿐이다. 나는 내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위에 몸을 두고 바라본다. 그러므로 나는 노틀담의 탑과 에펠탑의 전망대와 싸크레꾀르 교회와 프랑브르가(街)의 나의 7층을 좋아하는 것이다. 모두 훌륭한 배경들이다.

  그러나 가끔 거리로 내려가지 않을 수가 없다. 예컨대 사무실에 나가는 경우말이다.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사람들과 같은 평면 위에 서면, 그들을 개미로 간주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들이 나를 스쳐가고 건드리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거리에서 송장을 본적이 있다. 송장은 땅바닥에 코를 쳐박고 있었다. 뒤집어 보았더니 피투성이었다. 눈을 부릅뜬 사나운 표정을 하고 피가 온통 묻어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페인트칠이 덜마른 것을 보았을 때처럼 어무런 느낌도 나지 않는다. 코 언저리에 붉은 페인트를 마구 칠해 놓았을 뿐이야.>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더럽고 들척지근한 기분이 감돌았다. 그것은 다리와 목덜미에 전해왔다. 나는 그만 기절해 버렸다. 사람들은 나를 약국에 끌고가서 손바닥으로 두 어깨를 때리고 입에 알콜을 들어부었다. 놈들을 죽여 버렸더라면 좋았을 걸.

 나는 놈들이 나의 적임을 알고 있었지만, 놈들은 그걸 알지 못하였다. 놈들은 서로 마음이 맞아 팔을 끼고 다녔다. 그리고 사방에서 나한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을 것이다.……놈들은 나를 같은 족속으로 생각하였거든, 그러나 놈들이 조금이라도 내 정체(正體)를 알아차렸던들 나를 때려눕혔을 것이다. 나중엔 그렇게 했지만――놈들은 나를 잡고 내가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들은 나를 호내 주고 두 시간 동안이나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경찰에 끌고 사서 뺨을 때리고, 주먹을 안기고, 팔을 비틀고, 양복 자비를 벗겨 버렸다. 나중에는 내 안경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내가 네 발 걸음으로 안경을 찾는 동안에 놈들은 껄껄 웃어대면서 내 엉덩이를 걷어차기까지 하였다. 나는 전부터 놈들이 날 때려 눕히리라고 각오하고 있기는 하였다. 나는 기운도 없고 자기를 방어할 줄도 모르니까.

 오래 전부터 나를 노려 온 패거리들이었다. 큼직한 놈들, 놈들은 내가 어떻게 하나 구경하고 웃어 댈 작정으로 거리에서 나를 때렸던 것이다. 나는 입을 다물고 영문을 모르는 척하였다. 그러나 놈들은 나의 기를 꺾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예감이었다. 그러나 내가 놈들을 미워하는데 데는 더욱 큰 까닭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내가 권총을 한 자루 산 후부터 일이 한결 잘 되어 나갔다. 누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하는 그 권총을 언제나 몸에 지니고 있으면 강한 자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마련이다. 나는 일요일마다 그 권총을 바지 호주머니 속에 넣고 대첼 큰 거리로 쏘다녔다. 권총은 바지를 게모양 잡아다니고, 넘적다리에 싸늘한 감촉을 주곤 하였으나 차츰 몸에 닿아 훈훈해졌다 나는 약간 뻣뻣한 자세로 행길을 걸어다녔다. 마치 그것이 흥분하여 발자국을 떼어 놓기가 거북한 사람처럼.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권총을 만져 보기도 하고, 공중변소에 가서 무게를 겨냥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옆에서 소변을 보는 사람이 종종 있으므로, 변소 안에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나는 검은 바둑판 무늬가 새겨진 총자루와 살며시 감긴 눈자위 같은 방아쇠를 눈여겨 보았다. 두 다리를 벌리고 바지가랑이를 늘어뜨린 나를 밖에서 누가 보면, 내가 오줌을 누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중변소에서 오줌을 누지 않는다.

 어느날 밤에 나는 별안간 사람을 소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토요일 밤이었다. 나는 레아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몽빠르나스 거리의 호텔 앞에 나와 서 있는 금발 머리 여자였다. 나는 여자와 가까이 사귄 일이 없었다. 어쩐지 그것은 도둑이라도 맞은 듯한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 쪽에서 여자를 올라타게 마련이지만, 여자들은 그 털투성이의 커다란 입으로 남자의 아랫배를 삼켜 버리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거래에서 이득을 보는 건 단연 여자 편이라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지만, 또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에게는 혐오(嫌惡)를 느끼면서도 내가 하는 짓을 견딜 수 있는 냉철하고 경건한 여자가 필요하다. 나는 달마다 첫째 토요일이면 레아와 함께 듀켄느 호텔의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옷을 벗는 동안에 그녀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다급하여 바지 속에서 제 바람에 배설해 버리기도 하였다. 또 때로는 집에 돌아가서 해 치울 여유도 생겼다.

  그날 밤에는 레아가 제 자리에 나와 서 있지 않았다. 나는 잠시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았다. 감기가 들었나 보다. 정월 초순이라 무척 추웠다. 낙심천만이었다. 나는 상상력이 강하므로 그날 밤에 기대한 쾌락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 보았던 것이다.
  하긴 오뎃사가(街)에도 밤색 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좀 나이가 들어 보였으나, 탄력이 있는 통통한 여자였다. 나는 나이 많은 여자가 싫지 않았다. 발가 벗으면 젊은 여자보다 한결 나체상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계집은 내 수법(手法)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함부로 드러내놓기가 거북하였다. 더구나 나는 낯선 여자와 처음으로 관계하는 것을 께름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계집들은 문깐 뒤에 깡패라도 세워두었다가 행패를 부릴지 모르는 것이다.이런 경우에는 일을 치른 뒤에 그 놈이 별안간 뛰어들어 돈을 빼앗고 도망치기가 일쑤다. 그리고도 주먹에 얻어 터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용기가 나서, 집에 돌아가 권총을 갖고 모험을 해 보기로 하였다. 나는 15분 가량 지나 권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여자는 무척 비참한 꼴을 하고 있었다. 내가 거처하는 맞은 편에 사는 특무상사의 마누라와 비슷하였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마누라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싶어하던 참이라 무척 반가웠다. 특무상사가 밖에 나가면 그 마누라는 창문을 열어 놓은채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그래 나는 가끔 커튼 뒤에 몰래 숨어서 엿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방 안쪽에서 몸치장을 하곤 하였다.

  스텔라 호텔엔 빈 방이라고는 5층에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둘이서 함께 올라갔다. 여자는 몸집이 육중하여 층계마다 쉬면서 숨을 돌렸다. 그러나 나는 문제 없었다. 배는 좀 나왔지만 대체로 마른 편이므로 5층 정도로는 허덕이지 않는다. 여자는 6층 중턱에서 발을 멈추고 오른 손을 가슴에 대면서 숨을 헐떡거렸다. 왼손에는 방문 열쇠를 쥐고 있었다.
 「꽤 높군요.」
  그녀는 억지로 웃어보이면서 말하였다. 나는 잠자코 열쇠를 빼앗아 문을 열었다. 그리고 왼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어서 권총을 잡아 총끝을 앞으로 향하게 하였다. 나는 스위치를 틀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떼었다.

  방은 살풍경이었다. 세면대 위에 초록빛 비누 조각이 놓여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서 씻으라는 것이다. 나는 힛쭉 웃었다. 나한테는 세면기도 비누도 필요없는 것이다. 여자는 내 뒤에서 여잔히 숨을 허떡였다. 나는 흥분하였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나에게 입술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를 떠밀고 말하였다.
 「옷이나 벗어!」
  나는 수놓은 안락의자에 편히 앉았다. 이런 경우엔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이 유감천만이다. 여자는 윗도리를 벗고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면서 잠자코 서 있었다.
 「이름은 뭐지?」
하고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면서 물었다.
 「르네에요.」
 「르네, 빨리 다 벗어, 기다리고 있잖아…….」
 「당신은 안 벗어세요?」
 「내 걱정은 말어.」
  여자는 발 밑에 떨어뜨린 즈로스를 다시 줏어서 부랴자와 함께 윗도리 위에 얌전하게 엊어 놓았다.
 「당신은 깍쟁이고 게으름뱅이군요. 나더러 다 해달라는 거예요?」
  여자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안락의자의 팔걸이에 손을 얹고, 그 육중한 몸으로 내 가랑이 사이에 걸터 앉으려고 하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럴 것 없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하고 나는 말하였다. 여자는 놀라운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어떡하란 거예요?」
 「하긴 뭘해. 걸어다니기나 해. 슬슬 걸어다니란 말야.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

   그녀는 거북한 걸음으로 왔다갔다 하였다. 여자가 벌거벗고 걷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여자는 발뒤꿈치를 평평하게 딛는 습성을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이다. 창녀는 등을 구부리고, 팔을 늘어뜨렸다. 나는 마치 천사나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안락 의자에 태연스럽게 앉아서 목까지 옷을 걸치고 장갑도 벗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내가 시키는 대로 알몸이 되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체면상 나를 향해 애교있게 웃어 보였다.
 「나 예쁘죠? 눈이 부시죠?」
 「그런 데 신경을 쓸 것 없어.」
 「대체 언제까지 날 이렇게 걸어다니게 하실 작정이에요?」
  그녀는 뽀르통하여 물었다.
 「앉아!」
  여자는 침대 위에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벽 저쪽에서 사발시계의 똑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자에게 말하였다.
 「다리를 벌려!」
  여자는 잠깐 망설이다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나는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고,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서 눈물이 날 정도로 껄껄 웃었다. 나는 여자에게 말하였다.
 「알겠어?」
  나는 또 웃었다.
  여자는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다리를 오무렸다.
 「뭐가 이런게 있어!」
  여자는 이를 갈며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더욱 크게 웃었다. 여자는 벌떡 일어나, 의자 위에서 부라쟈를 집었다.
 「여봐!」하고 나는 여자를 불렀다.
 「아직 끝나지 않앗어. 곧 50프랑 줄께, 그렇지만 돈값을 하고 가야지.」
  여자는 공이 나서 즈로스를 입었다.
 「흥 그만 둬요. 대체 영문을 모르겠군요. 날 놀리려고 이리로 끌고 왔다면…….」
  그러자 나는 권총을 꺼내 보였다. 여자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잠자코 즈로스를 벗었다.
 「걸어다니란 말이야.」
  여자는 다시 5분 동안이나 왔다갔다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여자에게 내맡겨 만지게 하였다. 이윽고 빤쯔가 축축해지자 나는 일어나 50프랑 짜리 지폐를 여자에게 쥐어 주었다. 그녀는 돈을 받아 들었다.
 「그럼 또 만나. 쉽게 돈을 벌었군 그래.」

  나는 방에서 나왔다. 한 손에 부라쟈를 들고 또 한 손에는 50프랑의 지폐를 쥔 발가벗은 여자를 방에 남겨 놓고――.
  나는 돈이 아가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자를 호되게 놀라게 해 주었으니까. 창녀는 좀처럼 놀라지 않는다.
  나는 층계를 내려오면서 생각하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놈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다.>
  나는 아이들처럼 기뻤다. 나는 초록빛 비누를 갖고 나와서 방에 돌아가자 더운 물에 잠구고 한참 마구 문질렀다. 비누는 얄팍해져서 오래 빨아먹은 박하사탕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밤중에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권총을 겨누어 들었을 때의 여자의 눈과 얼굴 그리고 한발짝 앞으로 떼어놓을 적마다 뒤룩거리던 가름진 아랫배가 눈앞에 어른겨렸다.
  나는 왜 그렇게 바보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쓰디쓴 후회를 느꼈다. 그때 총을 쏘아 주걱으로 휘젓듯이 그배를 짓이겨 놓아야 하였을 것이다. 그날 밤 이후로 사흘 밤을 연달아 나는 배꼽 부근에 여섯 개의 시뻘건 작은 구멍이 뚫린 꿈을 꾸었다.

  나는 그후로 외출할 때에는 권총을 갖기를 잊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고 그 걸음걸이에 따라서 그 놈을 쏘았을 때,  쓰러지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여섯 시쯤 해서 벨이 우리면 안내하는 여자들이 유리창을 갈구리로 밀어젖히러 나오는 것이었다. 자, 인제부터 일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감정을 지니고 꿈결에 잠긴 듯한 눈초리로 물위에 뜬 것처럼 서서히 놀란 얼굴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놈들에게는 거리가 꿈속처 보이나 보다. 그때 놈들은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놈들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건 그 다른 세계이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