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트라트

SARTRE, JEAN PAUL

  나는 호주머니에 슬거머니 오른 손을 넣고 총자루를 힘껏 쥐었다. 그러자 총 쏘아대는 내 보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놈들을 파이프처럼 딩굴게 하여, 겹겹이 쓰러뜨린다. 살아 남은 자들은 혼비백산하여 유리문을 부수며 극장속으로 몰려 들어간다. ――이건 정말 멋진 공상이었다. 나는 드디어 손이 떨려서 기운을 차리기 위해 코냑이라도 한잔 마시려고 드레에르로 들어갔다.
  나는 계집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고작 허리나 장딴지 같은 데나 쏘아 깡충깡충 뒤는 꼴이나 구경하면 족한 것이다.

  나는 아직 아무런 결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곧 무슨 결단이라도 내린 것처럼 행동을 개시하려고 하였다. 나는 우선 자잘구례한 일부터 정리하고 나서 당페르로슈로 시장(市場)의 사격장에 가서 연습을 하였다. 종이로 된 과녁을 향해 쏜아본 사격 성적은 별로 신통치 않았지만, 사람을 쏠 경우에는 과녁이 큼직해서 좋다. 특히 가까운 데서 마주 대고 쏠 때에는 그렇다. 다음에 나는 자기 선전을 크게 벌릴 심산이었다. 나는 동료들이 모두 사무실에 모이는 날을 택하였다.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그들과 손을 잡기는 싫었지만, 친절히 매하였다. 그들은 아침 인사를 할 적마다 으레 장갑을 벗는다. 그것은 마치 자비를 벗는 것처럼 망측해 보인다. 장갑을 빼려고 손가락을 느릿느릿 미끄러뜨리면, 두툼하고 주름이 잡힌 손바닥이 벌겋게 노출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장갑을 벗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에는 별로 일이 없었다. 그날도 업무부의 타이피스트가 우리한테 영수증을 갖고 들어왔다. 르메르가 점잖게 여자를 놀려대었다. 그들은 여자가 나가자 그 방면에 권위자나 되는 듯이 여자의 매력을 요모조모로 따져보는 것이었다. 이어서 린드버그의 얘기가 나왔다. 린드버그를 무척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난 검은 영웅이 좋아.」
 「깜둥이 말이야?」맛세가 물었다.
 「아냐. 검은 마술(魔術)운운할 때의 그검은 빛 말이야. 리드버그는 흰 영웅이거든. 난 흥미 없어.」
 「대서양을 힁단하는 일이 그렇게 쉰운 줄 아나?」
  북생이 날카롭게 할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검은 영웅에 대한 내 견해를 설명하였다.
 「자네는 아나기스트군 그래.」
  르메르가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였다.
 「아나키스트도 인간을 사랑하네. 다만 그방법이 좀 다를 뿐이야.」
 「그럼 미친 사람일 거야.」
  이때 유식한 맛세가 끼어 들었다.
 「난 자네가 말하는 인간 타입을 잘 알고 있네. 그건 예로스트라트라는 놈이야. 그놈은 유명해지고 싶은 나머지, 세계의 일곱 기적(奇跡)의 하나인 에페에즈의 사원(寺院)에 불을 지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네.」
 「그 사원은 누가 세웠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그는 솔직하게 말하였다.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걸세.」
 「그래? 자넨 다만 에로스트라트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군 그래. 그럼 그 사나이는 과히 오산은 하지 않았던 거야.」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러나 다는 태연하였다.

  그들은 때때로 이 이야기를 회상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에로스트라트에 대하여 전혀 듣지 놋하였는데, 그 이야기를 알고 용기가 났다. 그 사나이가 죽은지 2000년도 더 되지만 그 행위는 검은 금강석처럼 아직도 빛나고 있다. 나는 내 운명이 짧고 비참함을 믿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차츰 익숙해졌다. 어느 의미에서는 괴로운 일이지만, 한 편 다른 면에서는 그것이 지나가는<순간>에, 커다란 힘과 아름다운을 제공한다.

  나는 거리로 내려갔다. 몸에 이상한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나는 권총을 갖고 있었다. 폭발 하면서 소리를 내는 그 무기 말이다. 그러나 내가 자신을 갖게 된 것은 그 권총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내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왔다. 이를 테면 나 자신이 권총이요, 화약이요, 탄한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참한 일생을 마치는 날, 폭박되어 마그네슘의 빛과 같이 강하고 짧은 불꽃으로 세상을 빛낼 것이다.

  나는 그 무렵에 며칠 밤을 계속 똑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아나키스트였다. 그리하여 흉기를 갖고 러시아 황제가 지나가는 길목에 숨어 있었다. 예정된 시간에 황제의 행려이 지나갔다. 목판이 터졌다. 우리들――나와 황제, 그리고 금줄이 번쩍이믄 장교 세 사람이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갔다.
  나는 여러 주일째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래의 희생자들 사이에 끼어 큰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또는 방안에 들어박혀서 계획을 세웠다. 10월 초순에 파면이 되었다. 나는 한가한 시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백 두 통의 사본을 만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유명하여 작품이 3만부나 팔립니다. 그것은 당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핏줄에는 휴머니즘이 흐르고 있어요. 운수가 좋은 거지요.
  당신은 남들과 같이 있으면, 명랑해집니다. 같은 부류의 인간을 만나면, 당신은 모르는 사이라 하더라도 곧 호감을 느낌니다. 그 육체를 좋아합니다. 그 관절이 연결된 모습이며, 뜻대로 폈다, 오그렸다 하는 그 다리를 좋아하고, 특히 그 손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눈에는 당신 손에 각각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맞서 있는 것이 신통하게 보입니다. 당신은 이웃사람이 테이블 위의 찻잔을 드는 것을 보면, 즐거워합니다. 찾잔을 드는 모습이 매우 인간적이라는 거지요.(당신은 그런 걸 더욱 지적(知的)이란 말씀이죠?

  당신은 또 인간의 육체를 자랑합니다. 걷는 연습을 하기 사작한 큰 부상자와 같은 그 태도 하며, 한 발짝 떼어놓을 적마다 절음걸이를 다시 생각해 보는 듯한 그 모습, 또는 사나운 짐승도 견디지 못하는 그 매서운 눈초리 등을 사랑한단 말입니다. 그래 당신은 독자들 에게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할 경우에 어떤 말투가 가장 적당한지 곧 알아낼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은 겸손하면서도 정열적인 말투지요.

  독자들은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굶주린 듯이 당신의 작품을 읽고는, 당신이 그들에 대하여 지닌 불행하고도 깊은 애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불행―― 예컨대 얼굴이 못생겼거니나, 성격이 비겁하거나, 마누라를 남에게 빼앗겼거나, 하는 등등의 일에 대하여 적지 않은 위로를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최근에 쓴 당신의 장편 소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놈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실 테지요. 그건 바로 나입니다. 나는 인간을 전혀 사랑하지 않으므로 앞으로 반 타쯤 죽일 작정입니다. 왜 하필 반타냐구요? 내가 갖고 있는 권총으로는 여섯 발밖에는 쏠 수 없으니까요. 言語道斷이지요? 그리고 가장 졸렬한 수법이지요? 그런데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는 이간을 전혀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잘 압니다. 나는 당신이 인간이 지닌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점이 나한테 진저리가 납니다. 나도 당신처럼, 눈을 크게 뜨고 왼손으로 경제 잡지를 뒤적거리면서 점잖게 식사를 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건 물개가 처먹는 것보다도 더 흉하게 보였습니다. 이것은 나의 편견일까요?

 인간은 흔히 자기 얼굴이 주체스러워 여러 모로 표정을 꾸며댑니다. 식사를 할 때 입을 다물로 음식을 씹으면 입끝이 오르내리므로, 마음이 편치 못하여 울상을 짓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정신의 배려(配慮)라고 생각 합니다. 나는 그걸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그 까닭은 잘 알 수 없어요.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우리들의 사이에 단지 취미의 차이밖에 없다면, 뭣 때문에 그렇게 복잡한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일이 되어 가는 걸 보니, 당신에게는 온정이 있고, 나한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미국식 새우 요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나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나는 불행한 놈이며, 하늘 아래 몸 둘 곳이 없습니다. 인간들은 인생의 의미를 독점해 버렸습니다.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의도를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33년 전부터 닫힌 문 앞에서 있었습니다. 그 문 위에는<휴머니스트가 아닌자는 들어오지 말지어다.>라고 쓰여 있었읍니다.
  나는 모든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계획을 세워 보았대야 부질없는 억지가 되어 버리거나, 조만간 이간들에게 이득이 되거나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간에 대하여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은 사상을 나 자신으로부터 부리시켜 분명히 묘명하기에는 아르지 못하였습니다. 그 사상은 나의 내부에 그냥 남아서, 육신의 일부처럼 가볍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는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까지도 모든 인간에게 속해 있음을 느꼈습니다. 예컨대 언어가 그렇습니다. 나는 자기자신의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의식속에 딩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남에게서 얻은 습관의 덕택에, 내 머릿속에 저절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위해 그런 언어를 이욜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꺼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짐막입니다.

 인간은 물론 사랑해야겠지요.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자에 대하여는 사람들은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짓이건 마구 하려는 건 아닙니다. 나는 다만 권총을 들고 거리에 가서 놈들에게 항거하여, 무슨 일을 성취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내가 만나게 될 사람이 당신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당신의 머리통을 바수고 얼마나 기뻐할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아마 만나지 못할테지요――내일 신문을 읽어 보십시오 달신은 뽈·일베르라는 자가 에드가·키네가(街)에서 미쳐 날뛰면서 행인 다섯을 쏘아 죽였다는 기사를 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대 일간 신문의 기사가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결코 미쳐 날뛰지 않았음을 당신은 이해할 테지요. 미치기는커녕 매우 냉정하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뽈·일베르

  나는 백 두 장의 봉투 속에 백 두 통의 편지를 넣고 백 두 명의 프랑스 작가의 주소 성명을 쓴 다음에, 여섯 권의 우표와 함께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 후 두 주일 동안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내 범죄에 대하여 잘 생각해 보았다. 거울에 가금 얼굴을 비쳐보고 얼굴에 변화가 생긴 것이 반가웠다.
  두 눈은 어찌나 큰지 얼굴을 다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코안경 속에서 커다란 검은 눈이 유성(流星)처럼 부드럽게 딩굴고 있었다. 그것은 예술가와 살인자의 아름다운 눈종자였다. 그러나 나는 살인을 한 후에는 더욱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였다.

  나는 안주인을 죽이고 약탈한 두사람의 아름다운 하녀들의 사진을――살인하기 전과 한 후의 것을――견주어 보았다. 살인하기 전의 얼굴은 피케(옷감의 일종) 옷깃위에서 예쁜 꽃송이처럼 흔들리고 있었으며, 건강하고 순진한 기품이 감돌았다. 둘 다 얌전히 지진 머리가 가볍게 물결치고 있었다. 그 고습머리 하며, 옷깃, 그리고 함께 사진관에 간 모습보다 더 분명히 드러나 보이는 것은, 정직한 느낌을 주는 두 자매의 닮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핏줄이 같은 가족이라는 자연의 뿌리를 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살인을 한 후의 얼굴은 불이라도 난 것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벌겋게 드러난 그 목덜미는 앞으로 잘린 운명에 있음을 알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발톱이 날카로운 짐승이 얼굴을 한바퀴 돌아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주름이 잡혀 있었다. 두려움과 증오의 사나운 그 주름살은 마치 살결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리고 깊숙히 박힌 커다란 검은 눈은 꼭 내 눈과 같았다. 그런데 두 소녀는 전혀 닮아 보이지 않았다. 함께 저지른 죄를 서로 다르게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