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트라트

SARTRE, JEAN PAUL

   <우연히 죄를 저질러도 이렇게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데, 철저히 자기 손으로 계획하여 저지른 법죄에서 무엇인들 바랄 수 없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 죄는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추악한 꼴을 무찔러 버릴  것이다.
  죄는 범인의 일생을 두 동강이로 잘라 놓은다. 인간은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도 종종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등 뒤에는 죄가 버티고 서서, 무슨 눈부시게 번쩍이는 광석처럼 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나는 단지 한시간 동안만 내가 저지른 범죄를 즐기고, 그 압력을 느껴보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그 한시간을 위해 모든 대책을 세울 작정이다. 나는 오뎃사 거리의 언덕 위에서 일을 해치울 심산이었다.
   놈들은 혼비백산하는 틈을 타서 도망치고, 놈들로 하여금 쓰러진 송장을 치우게 할 테다. 에드가 키네가(街)를 도망쳐서 재빨리 드랑브르가로 꾸부러져 들어가자, 그리하여 내가 살고 있는 집까지 가는데는 30초면 충분하다. 종적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내가 있는 곳을 찾으려면 한시간도 더 걸릴 것이다. 나는 집에서 놈들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자, 놈들이 내 방문을 두들기면, 나는 권총으로 내 입안을 겨누어 쏘아붙이자.

   나는 한결 유유히 살아갔다. 보뱅가(街)의 음식점 주인에게 말하여 조석으로 값진 음식을 배달해 오게 하였다.
   보이가 초인종을 울려도 나는 조급히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한참 기다리게 한 연후에야 문을 슬거머니 열어 주었다. 마룻바닥에 놓인 기다란 배달 통 속의 수북한 요리접시들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났다.

 10월 27일 오후 여섯시. 현재, 나한테는 돈이라고는 17프랑 50 상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권총과 편지 꾸러미를 들고 방을 나와 층계를 내려갔다. 방문은 일부러 닫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 방으로 재빨리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기분이 언짢았다. 손이 싸늘하고 피가 머리로 몰리고, 눈망울이 근질거렸다. 백화점과 에콜르 호텔과 내가 연필을 사는 문방구점이 보였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여기가 어딘가>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몽빠르나스가(街)에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었다. 길을 가는 자들은 나한테 마구 부딪치고 떠밀며 팔뚝과 어깨로 나를 툭툭 치기도 하였다. 나는 비척비척 걸어갔다. 놈들의 무리속에 끼어들 기운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문득 이 군중들 한 복판에 남아있는 내 자신이 무서우리만큼 고독하고 처참함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었다.

   놈들은 생각만 있다면 나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호주머니 속에 권총을 갖고 있었으므로 겁이 더럭 났다. 놈들은 내가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곧 알 것만 같았다. 놈들은 매섭게 날 바라보고 격분을 느끼면서도 잘 찾아내었다는 듯이<에이, 에이…… >하며 그 수족으로 나를 잡아뜯을 테지.

 사형(私刑)이다. 놈들은 나를 들어 머리위로 내던질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꼭두각시처럼 놈들의 발밑에 나가 떨어질 테지. 그러므로 나는 계획한 일을 내일 아침으로 미루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다. 나는 꾸우폴에 가서 16프랑 80상팀으로 식사를 하고 나서 남은 70상팀을 개울에 던져 버렸다.
  나는 사흥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방 속에 들어박혀 있었다. 덧문을 꼭 닫아주었다. 창가에 가까이 가지도 않고 불을 켜지도 않았다.

  월요일에 누가 방문 앞에서 초인종을 울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잠시후에 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발끝으로 걸어가면서 열쇠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검은 옷자락에 단추가 한 개 보일 뿐이었다. 그는 다시금 초인종을 누르고나서 얼마후에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누구였을까? 밤에 산뜻한 환영(幻影)이 떠 올랐다. 종려나무, 흐르는 냇물, 둥근 지붕 저쪽의 푸른 하늘――목은 마르지 않았다. 한 시간만큼 부엌 수도 꼭지에 가서 입을 대고 물을 마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가 고팠다.

   나는 그 밤색 머리의 창녀와 또 어울렸다. 마을에서 200리나 떨어진 검은 언덕에 선 성(城)에서였다. 여자는 벌거벗고 난와 나와 단둘이 있었다. 나는 권총으로 여자를 위협하여 무릎을 꿇게 하고 매발로 기어다니게 한 다음에, 기둥에 동여매고는, 내가 앞으로 하려는 행동을 한참 설명하고 총을 마구 쏘아대었다. 이런 상상을 해보니, 정신이 어지러워 이 계획은 곧 중지해 버렸다. 그러자 나는 머릿속이 텅 비어 어둠에 싸인 채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아침 다섯 시였다. 가구가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이 방에서 나가 버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 든지 제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리를 쏘다니고 잇는 놈들 때문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아왔다. 이제 시장기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나는 땀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속옷이 축축해 졌다. 밖에는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안에서 문을 닫아 걸고 움크리고 있다. 사흘 동안 뜬 눈으로 새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초인종이 울려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나는 곧 거리로 내려가서 사람을 써아 죽일 것이다.>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무서워졌다.

 오후 여섯 시가 되니 다시 배가 고파 왔다. 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순간 가구에 몸을 부딪쳤다. 그리고 방과 부엌과 변소에 불을 켰다. 나는 크게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다가 손을 씻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편지를 모두 우체통에 열통씩 포개어 집어 넣는데 20분이나 걸렸다. 봉투 몇 개는 꾸겨서 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나는 몽빠르나스 거리를 지나 오뎃사 거리로 나섰다. 샤쓰상점 쇼윈도의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늘 밤이야.>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오뎃사 거리의 언덕에 이르러, 가로등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로 하였다. 두 여인이 팔을 끼고 지나갔다. 그발머리가 말하였다.
 「그들은 창무마다 양탄자를 쳐 놓았더군. 시골 귀족들이 엑스트라로 나왔어.」
 「도오랑을 바르고 있었어?」
 「알당(日當)5루이의 일에 도오랑을 바를 필요가 어디있어.」
 「5루이라구?」하고 밤색머리 여자가 깜짝 놀라 묻고는 내 옆을 지나면서 말을 이었다.
 「더구나 자기 조상들의 옷을 입는 것은 기뻤을 거야.」

  여자들은 사라졌다. 날씨가 쌀쌀하였으나, 나는 땀을 뻘뻘 흘렸다. 이어사 세 사람의 사나이가 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냥 지나가도록 내 버려 두었다. 나한테는 여섯놈이 필요한 것이다. 왼쪽으로 지나가던 사나이가 나를 보고 혀를 찼다. 나는 외면하였다.
  일곱 시 5분에 두 패의 행인들이 에드가·키네 거리에서 잇달아 나타났다. 한 패는 각각 한사람에 아이들 둘이고, 그들의 뒤로 세 사람의 할머니가 걸어왔다.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여자는 화가 난 듯 사내아이를 쥐어 흔들었다. 남자가 느릿느릿 말하였다.
 「이 녀석 왜 이렇게 말썽을 일으켜!」

 나는 가슴이 하도 두근거려서 팔까지 떨려 왔다. 나는 그들 앞에 나아가 조용히 멈춰섰다. 호주머니에 속에 든 총의 방아쇠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전혀 없었다.
 「미안합니다.」사나이는 나에게 부딪치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방문을 닫고 나온 생각이 났다. 일이 거북하게 되었다. 문을 열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버려야 하니 말이다. 사람들은 멀리 사라져 갔다. 나는 홱 돌아서서 기계적으로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미 쏘고 싶은 충동은 없어졌다. 그들은 큰 거리의 군중들 속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나는 벽에 기대섰다. 시계가 여덟 시를 치고 나서 또 아홉 시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죽어 있는 이 사람들을 왜 다시 죽여야 다시 주여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한바탕 웃고 싶었다. 개 한 마리가 내 발 밑에 와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뚱뚱한 사나이가 내 옆을 지나갔을 때, 나는 갑자기 정신을 바싹 차리고 그 뒤를 따랐다. 중절 모자와 외투 깃 사이로 붉은 목덜미의 주름살이 내다보였다. 사나이는 약간 비틀거리고 있었으며, 숨소리가 거칠었다. 몸집이 건장하였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었다. 그것을 번들거리고 차디차서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나는 이 권총으로 무엇을 할 심산이었던지 생각조차 얼른 나지 않았다. 권총과 사나이의 목덜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목덜미의 주름살은 쓴웃음을 짓는 것처럼 나한테 미소를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권총을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싶었다. 사나이는 별안간 고개를 돌려 성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저……말씀 좀 묻겠어요…….」
  사나이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내 손만 바라보았다. 나는 겨우 말을 맺었다.
 「라·게테 거리가 어디죠?」
  사나이의 얼굴은 똥똥하고 일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더욱 뒤로 물러서서말하였다.
 「저어……」
  순간 나는 자기가 고함을 치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의 아랫배에 셋방을 쏘았다. 사나이는 머저리처럼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머리가 왼쪽 어깨위에 굴렀다.
 「이놈, 육실할 놈 같으니……」하고 나는 외쳤다.
  나는 도망쳤다. 기침을 쿨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등뒤에서 고함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물었다.
  「대체 웬 일이야? 싸움이 일어났나?」

  그러자 곧 <살인이야! 살인이야!>하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런 소란을 부리는 소리가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내가 일찍이 소년 시절에 들은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처럼 귀에 거슬리고 또 좀 우스꽝스러웠다. 나는힘껐 도망을 쳤다.

 그런데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오뎃사가(街)를 거슬러 올라가서 에드가 키네가로 빠져야 하는데, 몰빠르나스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런 줄 알았을 적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나는 어느새 군중들 속에 끼어 있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 짙은 화장을 한 여자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녀는 새깃을 꽂은 새파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뎃사가의 놈팽이들이<살인이야!>하고 떠들어대었다. 어떤 사람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나는 그만 정신을 잃어 버렸다. 나는 이 군중들의 발에 짓밟혀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두발을 쏘았다. 놈들은 큰 비명을 지르면서 물러섰다. 나는 어느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손님들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나를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카페를 가로질러 변소에 가서 숨었다. 권총 속에는 아직 한 방이 남아 있었다.

 신간이 한참 흘렀다. 나는 숨을 헐덕거리며 마치 놈들이 일부러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심상치 않은 침묵이었다. 나는 권총을 위로 올려 까맣고 작은 총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그 구멍에서는 총알이 너오고, 화약이 내 얼굴을 태워 버릴  것이다. 나는 다시 팔을 내리고 기다렸다. 얼마 후에 놈들은 가만가만 걸어서 다가왔다. 마룻바닥을 스쳐가는 발길 소리로 미루어 보아 한 떼는 실히 될 것 같았다. 놈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잠잠해졌다. 나는 여전히 숨을 헐덕그렸다. 간막이를 통하여 놈들이 내 숨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생각하였다. 그 때 어떤 놈이 가만히 다가와서 변소문 손잡이를 흔들었다. 내 총알을 피하기 위해해 벽에 바싹 붙어있을 것이다. 그래도 너는 소고 싶었다.―― 그러나 마지막 총알은 내 몫이다.

  <놈들은 뭘 기다리고 있을까?>나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놈들이 만일 문에 물려들어 마구부순다면 나는 자살할 틈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생으로 붙잡힐 테지.>
  그러나 놈들은 서둘지 않고 나한테 자살할 여유를 주었다. 바보 녀석들 같으니! 내가 무서웠던 게지.
  이윽고 어떤 놈이 말하였다.
 「문열어!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도말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 않아?」

   나는 아무 대구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숨이 찼다. 나는 총을 쏠 용기가 필요하여 내 자신에게 타일렀다. <놈들이 만일 나를 붙잡으면, 곧 때려 높히고 이빨을 부러뜨리고, 눈알도 빼버릴테다.>
  나는 뚱뚱보가 절말로 죽었는지 알고 싶었다. 어쩌면 단지 상처만 입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쏜 두 방의 총알은 누구에게도 맞지 않았는지 모른다.…… 놈들은 무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룻바닥에 어떤 육중한 무엇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총끝을 얼른 입에 힘껏 깨물었다. 그러나 쏠 수가 없었다. 방아쇠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다시 침묵에 싸여버렸다.
  나는 권총을 내던지고, 놈들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