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이아

Poe, Edgar Allan

 

        그 이면에는 의지(意志)가 있는데 그것은 결코 죽어 버리지 않는다. 누가 이 의지의 신비로움과 활기를 알 수 있겠는가? 즉, 의지란 신(神)이 스스로 모든 것에 침투 시키고 있는 바로 그것이며, 이간이 천사들이나 또는 죽음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조셉·그렌빌

 

  나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하여서 리지이아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튼 몇해 전에 있었던 일로서, 내 기억력은 병에 시달리고 고민에 싸여 상당히 못쓰게 되어 버렸다. 그것은 특히 그녀의 성격―― 그 뛰어난 학식이나 침착한 아름다움이나, 나지막하고 음악적인 목소리의 약동이나, 매력 잇는 모습 때문에 이제 와서는 그런 장소나 시간에 대하여 잊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후에 우리가 자주 얼굴을 대한 곳은 라인강 가에 있는 어느 크고 오랜 황폐한 도시였다고 기억된다. 그녀의 가족에 대해서는 그녀가 분명히 나한테 이야기를 하여 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집이 상당한 고옥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라지이아, 리지이아! 나는 연구에 너무나 몰두하고 있었기 외부 세계의 인상을 거의 잊어 버릴  정도였다. 그리하여 저 리지이아라는 아름다운 말은,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의 이미지를 나의 가슴에 소생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지만, 내 친구여,얼마 안가서 나와 약혼하여 내 연구를 도와주고, 이윽고 나의 아내가 된 그녀를, 나는 끝내 성도 알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녀가 장난삼아 나에게 준 일종의 조건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내 사랑을 시험하기위해 내가 이에 대하여 모르고 있기를 바라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혹시 그것을 내 마음이 어지러워 가장 열렬한 사랑이 표시로 내가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혹시 그것은 내 마음이 어지러워 가장 열렬한 사랑의 표시로 내가 결정한 매우 낭만적인 행위였을까?

  나로서는 그것마져도 어렴풋이 기억될 뿐, 그 유레나 그 밖의 일에 관한 사정은 이상하게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낭만적인 정신이―― 달리 말해서 이교(異敎)를 숨기는 이집트에서 짙은 안개 속에 파닥거리는 날개를 단, 얼굴이 창백한 여신 아아쉬토페트가 전해 주고 있는 바와 같이, 일찍이 불길한 결혼의 신이 되어 버렸다면, 우리의 약혼이 바로 그 보기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에 지금도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리지이아의 모습이다. 그녀는 몸집이 좀 마른 편이고 키가 후리후리하며 말년에 가서는 깡마른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에 나타나는 품위나 그 정숙한 모습이나, 또 신가할 정도로 가볍고 탄력 있는 발걸음 등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내 앞에 그림자처럼 다가왔다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녀가 내 어깨 위에 그대리석 같은 손을 얹고 음악적인 나직한 목소리로 말할 때까지는, 그녀가 문이 닫힌 나의 서재에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있기가 일쑤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던 여자도 따를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것은 아편장이의 꿈처럼 화려하고, 테로스의 무녀(巫女)들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느끼는 환상보다 더 거룩하며,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의 그 마음을 일깨워 별천지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이를테면 바듯한 모습――고전 시대의 이교도들이 그린 것을 칭찬하는 그릇된 관념을 우리에게 전해준――은 아니었다. 베이컨은 말하기를 <모든 뛰어난 아름다움에는 어딘가 기이한 면이 있게 바련이다>라고 했지만, 이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일반적인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나는 리지이아의 얼굴이 판에 박힌 고전적인 모습을 하지 않고,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그것이 기이한 느낌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녀의 얼굴이 정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점을 찾아내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그 얼굴을 기이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넓고 흰 이마의 윤곽이나 그 이마의 상아와도 같은 뽀얀 살결이나, 그 초연한 넓이와 고요함, ――그것은 너무나 완벽하므로 이렇게 말해도 그 기품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낀다.――그리고 관자놀이에 완만하게 붙어있는 살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풍부한 머리칼은 새까맣고 윤기가 흘렀으며, 자연스럽게 곱슬거려, 호머가 말한<머리칼의 장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그녀의 코는 미묘한 선을 보였지만, 그와 비슷한 코는 유태 민족이 남긴 품위 있는 기념패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코는 이 기념패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매끈하고 불록한 표면과 다소 모습이 매부리코의 경향을 띠어 활달한 성격을 나타내 보이는, 그런 균형 잡힌 콧구멍이 특색이다. 그리고 그녀의 입은, 옷입술의 짤막한 보기좋은 모습이나, 아랫입술의 그린 듯한 매끈하고 날신한 곡선이나, 또는 보조개와 입술 자체의 빛깔이나, 그녀가 잔잔하고 밝은 미소를 띨 때 눈부시게 바짝이는 이빨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 그녀의 턱에는 특색있는 희랍인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아하고 폭얿은 유연한, 품위 있는 성실성이 엿보여, 그 운곽은 마치 아폴로가 꿈속에서 아테네인의 아들 크레오메네스에게 보도록 허락한 것과 같은 똑 닮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음에 리지이아의 커다란 두 눈을 주목해 보았다.우리는 고대인들이 어떤 눈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베이컨이 지적한 아름다움의 비결은 어저면 리지이아의 눈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보통 사람의 눈보다 훨씬 컷을 것이며, 누루자핫의 골짜기에서 살고 있는 종족들 가운데서 가장 큰 눈을 가진 여자도 리지이아의 눈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와 같은 특징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매우 흥분했을 때에만 그런 큰 눈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경우에――이건 어쩌면 내가 너무나 흥분하여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그녀의 아름다움은 어쩐지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나는 그 눈으로 하여, 터어키인들이 신봉하는 종교에서 천국에 살고 있다는 미인들을 연상하였다.그래서인지 그녀의 눈은 한결 검께 빛나고, 속눈썹은 또한 무척 길고 검게 보였다. 그 속눈섭은 다소 들쑥 날쑥하기는 하였지만 역시 검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이한 아름다움은, 그 형태나 색갈이나 윤기와는 관계 없이 오직 그 표정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무의미인가.

   우리는 실로 많은 정신적인 문제에 관한 무지를 이 막연한 말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리지이아의 눈동자의 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나는 그 표정에 대하여 생각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던가. 그리고 여름밤을 지새우며 그 의미를 찾아내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그녀의 눈이 데모크리토스의 샘물보다도 더 깊은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파악하려는 정열에 이끌렸다. 그 눈,  그 빛나는 눈! 그것은 나에게는 레다의 쌍둥이인 두 별과도 같았으며, 또한 나는 그 연구에 일생을 바친 하나의 점성가(占星家)에 불과하였다.

  정신 연구에서 봉착하게 되는 여러 가지 불가결의 현상중에서,――전무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우리가 오랫동안 잊어 버리고 있던 일을 상기하려고 할 때, 조금만 주의를 집중하면 생각나겠지만, 결국 그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는 결과가 되는 것보다 흥미있는 일은 없다. 리지이아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그 의미를 완전히 알 수 있다는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도 결국은 알지 못하여, 끝내는 그 느낌까지도 사라져 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가장 신기한 일은, 내가 평범한 물체에서도 리지이아의 눈의 표정과 비슷한 것을 찾아내게 된 것이었다. 즉, 리지이아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다음부터는, 그녀의 빛나는 커다란 눈을 바라볼 때마다, 내 주위와 내 속에서 일어나는 듯싶은 어떤 쾌적한 느낌을, 외부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사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감정에 어떤 정의를 내리거나 그 감정을 분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파악하지도 못했다. 예컨대, 나는 급속히 자라나는 포도넝쿨이나, 모기와 나비, 번데기, 또는 시냇물의 흐름을 바라볼 때에도, 거기서 그러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인상을 바다나 유성(流星)에서도 느끼는 것이었다. 무척 늙은 사람의 눈초리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천체 망원경으로 한둘의 별을 관찰할 때에도 이런 느낌을 갖게 되었다. 또한 현악기에서 나오는 어떤 소리나, 가끔 내가 읽고 있는 책의 한구절 같은 것도 나로 하여금 이 감정에 젖게 하였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지만 책에는 그런 문장들이 얼마든지 있어, 특히 조셉· 그렌빌이 쓴 책에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으레 그런 인상을 받아왔다.

  그의 글이 특히 내게 그런 느낌을 갖게 한 것은 색다른 문장력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도 단정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 이면에는 의지가 있는데 그것은 결코 죽어 버리지 않는다. 누가 이 의지의 신비로움과 활기를 알 수 있겠는가. 즉 의지란 신이 스스로 모든 것에 침투시키고 있는 바로 그것이며, 인간이 천사들이나 또는 죽음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나도 이제는 이 영국의 윤리학자가 쓴 것과 라지이아의 성격의 일부를 고찰해 보고, 이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사상이나 언행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집념은 우리의 오랜 생활에서, 보다 더 직접적인 다른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이면에서 어떤 절대적인 의지의 힘이 작용한 결과나, 또는 적어도 그 징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 중에서 리지이아처럼 외모로는 침착성을 잃어면서도 내면으로는 격정의 동요에 괴로워하는 여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하면서도 불안하게 하지 않고서는 못견디겠다는 듯이 이상하게 확대되는 그녀의 눈이나, 그 나직한 목소리에서 울려오는 기적적인 가락이며 악센트, 그리고 그 분명하고 온화한 모습, 끊임없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활력이 깃들어 있는 말에 의해, 나는 그녀의 내부에서 정열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추측하는 부밖에 없었다.

   나는, 리지이아의 학식에 대하여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그처럼 광범위한 학식을 가진 여자를 본 적이 없다. 그녀는 고전시대의 모든 언어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으며, 또 내가 아는 한, 오늘날 유럽의 모든 언어에 대해서도 정통해 있었다. 그리고 모든 학문에 있어서, 아무리 난해한 문제에 대해서도, 그녀는 막히는 일이 없었다. 내 아내가 이처럼 풍부한 학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희한하고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를 나는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보다 더 박식한 여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남자들 중에서도, 정신 세계나 물리, 수학에 관해서까지 그녀처럼 정통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는 그녀의 학식이 완벽하고 광범위하여 놀라운 것임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가 결혼한 당시에 내가 전념하고 있던 형이상학적인 혼돈된 세계를 개척해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가 그녀에 대하여 아이들과 같은 전폭적인 신뢰를 갖고 그녀의 지도를 받게 된 것은, 그녀의 헤아릴 수 없는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인간으로서는 거의 회복할 수 없고, 또 인간에게는 그의 알려져있지 않은 연구를 계속해 나가면서, 나의 앞날이 가슴 벅찬 광명으로 서서히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기나긴 영광스러운 미답(未踏)의 길을 감으로써 너무나 소중히 여겨 결국 금단의 열매가 아닐 수 없는 저 궁극의 지식에 도달하는 것을 얼마나 큰 영광――다른 말로 표시하면, 환희 또는 순수한 희망을 느끼게 되었던가.

   그러므로 몇해 후에 나의 근거 있는 기대가 허물어졌을 때, 내가 얼마나 큰 비통에 사로잡혔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나는 리지이아가 없으면 어두운 밤길을 헤매는 어린이와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몰두하고 있던 신비주의적인 연구는, 그녀가 내리는 해석에 의해서만 생기와 여비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만일 그녀가 내 곁에서 눈을 반짝여 주지 않는다면 금빛을 발하던 문자는 금새 잿빛으로 변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데 그녀는 내가 책을 펴놓을 때를 제외하고는 나와 마주앉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리지이아가 별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은 너무나 빛나고 그녀의 창백한 손가락은 시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속속들이 투명하게 보였으며, 넓은 이마의 정맥은 감정이 조금난 격하여도 곧 위로 튀어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곤 하였다. 나는 그녀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절망에 사로잡히면서도 이 죽음의관념과 사워 나갔다.

   나는 아내가 생에 크게 집착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준엄한 기질로 보아 그녀에겐 죽음이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지만, 나의 이와같은 견해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녀가 죽음에 대해 악착같이 저항하는 모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고 차마 견딜 수 없어 신음소리를 내게 되었다.

   나는 되도록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의 이성에 호소해 보기도 하였지만, 삶에 대한 그녀의 강렬한 욕구는 나의 설득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겉보기에는, 그 가장 착잡한 미래에도 곧잘 견디고 끝까지 평온과 정숙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조용해지고 낮아졌다. 그처럼 조용한 말이 지닌 특수한 내용에 대하여 나는 지금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다. 나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선율로 하여, ――일찌기 인간에게 알려진 적이 없는 가정이나 욕구를 듣고 도취되어 졸도할 것만 같았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평범한 방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음을 향해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서, 나는 비로소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몇시간 동안이나 내 손을  붙잡고 정열적으로 무조건 숭배에 가가운 심정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어찌 그녀의 그러한 고백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그런 고백을 듣게 되었을 때 그녀와 헤어져야만 하는 엄청난 형벌이 무엇 때문에 나한테 내렸졌을까?

  그러나 내가 이에 대하여 더 이상 이야기한다면 이 괴로움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의 너무나 여자다운, 더구나 불행을 초래할 뿐 조금도 보잘 것 없고, 따라서 잘못 택하여졌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납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그녀로부터 급속히 떠나가고 있는 삶에 대하여, 그처럼 안타까와하는 그녀의 끈질긴 집착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내가 간신히 알아차린 것을 기록할 뿐이다. 나는 살아간다는 이와같은 광적인 갈망――그토록 삶에 강한 의욕을 보인 그녀의 태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녀가 죽던 날 밤, 그녀는 급히 나를 자기 곁으로 불러들이더니, 며칠 전에 그녀가 쓴 시를 나더러 암송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시였다.

          보라, 그는 쓸쓸한 노년에 접어들었다.
          축제를 올리는 날 밤
          베일로 가려진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고
          날개가 달린 아름다운 천사들
          그리고 극장에 앉아 있는 자들은
          연극을 보고 희망과 두려움에 엇갈리는데,
          때때로 관현악은
          천체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리라.

          하늘나라의 신을 본딴 광대는,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들은 인형처럼 모습을 가리고
          마음이 내키는대로 내왕하며
          배경을 마구 흔들고
          그 억센 날개를 퍼덕이며
          감춰진 재난을 털어 버린다.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으리,
          저 아롱진 연극을.
          그 환영(幻影)을 끊임없이 뒤쫓는 군중들은
          같은 곳을 맴돌며
          월을 그리고 돌아다니리.
          여기 광란(狂亂)과 조악이 더욱
          범람하여
          비극은 공포를 낳는다.

          그러나 보라, 이들 군중 뒤에
          어떤 자가 몰래 침입함을.
          그는 배경에 그린 황야에서
          기어나온 빨간 베일을 쓰고
          사방을 전전한다.
          광대들은 죽을 고뇌를 느끼며, 그 희생이 된다.
          천사들은 인간의 피로 물든
          이빨을 바라보고 흐느껴 운다.

          등불은 다 꺼지고
          흔들리는 모든 송장에는
          관을 뒤덮는 포장이
          회오리바람에 실려 내려오도다.
          얼굴이 창백한 천사들은
          베일을 벗고 일어나 언명한다.
          이 비극의 제목은 <인간>이며
          그 주인공인 승리자는 구더기라고.

   내가 이 시를 암송하고 나자,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온몸을 부를 떨며,「신이여!」하고 외쳤다. 「신이여, 아버지시여,――여기에도 이런 것들밖에 있을 수 없습니까?――이 승리자는 아무도 결코 넘어뜨릴 수는 없습니까?――누가 의지의 비밀과 그 힘을 알 수 있습니까? 인간이 천사나 죽음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격정에 사로잡힌 듯이, 흰 팔을 내리고 침대로 돌아갔다. 그녀가 무엇인가 중얼거리면서 마자막으로 탄식하기에, 내가 그녀의 입술에 귀를 대자, 그렌빌의 말이 다시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인간이 천사들이나 또는 죽음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드디어 숨을 거두었다. 나는 비통에 잠겨, 이 멀고 외떨어진 라인강 가에 있는 집에서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맛보았다. 나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부자유를 느끼지 않았다. 리지이아는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나에게 남겨 주었다.

  나는 몇 달 동안 무모하게 돈만 낭비하며 나날을 보내고 나서, 영국에 있는 사람(여기서 그 이름을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으로부터 가장 낯선 황폐한 구석진 곳의 어던 사원(寺院)을 사서 어지간히 수리한 후에 그곳에 숨어 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음침하고 넓고 웅장한 그 건물이 거기 딸린 땅과 함께 아주 황폐해 있을 뿐만 아니라, 땅과 건물에 얽힌 여러 가지 어두운 과거의 추억으로 하여 나도 그처럼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포자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덩굴에 뒤덮인 사원의 겉모양은 거의 보래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어린애 같은 심정과 이에 따르는 슬픔을 몰아내기 위해, 사원 내부를 왕자라도 사는 듯이 호화롭게 장식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아리석은 일을 곧잘하여, 마치 슬픔을 이기기 위해 한결 빨리 늙은 것처럼  그런 어렸을 때의 취미가 금세 되살아났던 것이다.

   나는 사원의 장식에 사용한 화려하고 진귀한 커어튼과, 이집트의 장엄한 조각이나 이상야릇한 코오니스나 가구, 금테가 달린 화려한 융단의 무늬 등에 대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실지로 미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반성하였다.

   나는 당시에 아편을 먹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상태였으며, 내가 생각한 것이나 그것에 근거하여 발송한 주문은, 아편 작용으로 꿈속에 반영되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부조리한 일들을 세밀히 이야기하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나로서는 잊을 수 없던 리지이아의 후계자로서 제 정신을 똑바로 갖고 있지 못했을 때의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로웨나·트레바니온의이야기만 전하고 싶다. 나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자 그녀를 데리고 돌아와 사원의 저주받은 방을 비워 살게 하였던 것이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