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金 딱정이」
Poe, Edgar Allan
「이 가지를 타고 멀리 나가는 건 여간 어렵지 않는데요. 전부가 썩은 가지예요.」
「그래?」
르그랑은 덜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네, 아주 죽어서 꼿꼿해요. 분명히 죽었어요. 이 세상과는 이별했어요.」
「이를 어떻게 하나?」
르그랑은 애가 타는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뭘 어떻게 한단 말야.」
나는 말참견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을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집에 가서 자면 되잖아? 내 말을 들어. 이제 해도 저물었어. 그리고 나와의 약속도 있지않아!」
「쥬피터!」
그는 내말은 들은 체도 않고 소리쳤다.
「내 소리가 들려?」
「네 들립니다.」
「칼로 그 나뭇가지를 깎아서 아주 썩었나 잘 모아라.」
얼마 후에 흑인이 대답하였다.
「꽤 썩었어요. 그렇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덜 썩었어요. 저 혼자만이면 좀더 가지를 타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너 혼자만이라니 거 무슨 소리야?」
「이 딱정이 말예요. 이놈의 원체 무거워 놔서요. 이놈만 아니라면 검둘이 한 놈쯤으로 가지가 부러질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질 놈 같으니!」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저으기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놈 내게다 그런 쓸데 없는 수작은 말아. 그 딱정이를 떨어뜨려만 봐라. 당장에 네 모가지를 자를 테다. 내말이 들려?」
「네, 들립니다. 이 불쌍한 검둥이를 그렇게까지 꾸짖을 거야 뭐 있습니까.」
「그럼 내 말이나 잘들어. 네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데까지 그 나뭇가지를 타고 나가 봐. 손에서 딱정이를 놓지 말고……. 그렇게만 하면 네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내로 은화 한 딸라를 줄 테다.」
「네, 이제 분명히 나갑니다.」
검둥이는 곧 대답하였다.
「인제는 거의 끝까지 왔으요.」
「끝까지 갔어?」
르그랑은 거의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다.
「끝까지 갔던 말이냐?」
「이제 거진 다 왔어요. 나으리님. 아이구 이게 뭡니까? 이 나무 위에 있는게!」
「됐어!」
르그랑은 기버서 어쩔 줄을 모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냐?」
「해골이에요. 웬놈의 대가리를 이렇게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는지, 까마귀들이 와서 쪼아먹었군요.」
「해골! 됐다.」
「그래, 무엇으로 나뭇가지에 붙잡아매었니? 어떻게 매달려 있니?」
「네, 어디 봅시다. 아이구, 이거참 괴상하군요. 하곡바기지 속에 커다란 못이 하나있는데 그걸로 나뭇가지에 박아 놓았어요.」
「그럼 이번에는 꼭 나 하라는대로 해여 해. 내말이 들리니?」
「네 들려요.」
「정신을 차려서 해골 왼편 눈구멍을 찾아 보아라.」
「허, 이거 참! 네 그렇게 합지요. 그런데 눈구멍이라고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군요?」
「에이 바조 같은 녀석아! 네 바른손과 왼손은 분간할 줄 아니?」
「암요, 그걸 몰라요? 제가 나무를 자를 때에 쓰는 손이 왼손이지 뭐에요?」
「그래. 네 왼눈은 왼손과 같은 쪽에 있어. 그만하면 해골의 왼편 눈을 찾아내지 못하겠느냐? 왼편 눈알이 박혔던 구멍 말이다. 인제 찾았니?」
여기서 한동안 말 소리가 끊어지더니 이윽고 흑인이 물었다.
「해골 왼쪽 눈은 해골의 왼쪽 손과 같은 편에 있단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 해골에는 왼쪽손이 달려 있지 않으니 어떻게 하죠? 그렇지만, 뭐 상관 있나! 이제야 왼쪽 눈을 알았어요. 여기가 바로 왼쪽 눈이군요! 그래 이걸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 눈구멍으로 해서 딱정이를 끈이 자라는 데까지 아래로 내려뜨려! 끈을 놓지지 않도록 조심해.」
「다 내려갔어요. 서방님, 눈구멍으로 벌레를 내려보기란 떡먹기군요. 아래서나 잘 지켜보세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주피터의 몸뚱이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 그가 애를 써서 내려보내는 딱정이가 희미하게 비치는 황혼의 햇살을 받아, 찬란한 황금 구슬처럼 뻔쩍이는 것이 보였다. 벌레는 그대로 내려뜨린다면 우리 발등에 고장 떨어질 정도로, 가지 하나에도 걸리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르그랑은 재빨리 낫을 들고 벌레가 대롱거리는 바로 아래 직경이 3,4야드쯤 되는 둥근 공지를 만들고 쥬피터에게 끈을 놓고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일렀다.
르그랑은 벌레가 떨어진 자리에 말뚝을 박고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내었다. 그리하여 그 한 끝을 말뚝에서 제일 가까운 나무 줄기에 잡아매고, 줄자를 풀며 발뚝 위치까지 온 후에, 거기서부터 다시 풀어서 나무 줄기와 말뚝을 연결하는 직선의 방향으로 50피이트 거리까지 나갔다.――그 동안에 쥬피터는 낫을 들고 가시덤불을 쳐내었다. 이렇게 해서 다달은 지점에 두 번재 말뚝을 박고 이를 중심으로 직경 4피이트의 원을 대충 그렸다. 다음에 자기가 삽 한자루를 잡더니 주피터와 나한테도 각각 한 자루씩 건네면서 되도록 빨리 땅을 파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러한 장난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더구나 밤도 차츰 어두워지고, 또 이미 운동도 많이 하여 몸이 피곤해서 웬만하면 거절하고 싶었으나, 피할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거절하면 모처럼 자라앉은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웠다. 아닌게 아니라 쥬피터의 도움만 바랄수 잇다면 나는 완력을 행사해서라도 이 미치광이를 집으로 끌고 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흑인 영감의 성미를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주인과 힘을 겨루는 마당에 있어서는 도저히 나를 도와 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친구가 남부 아메리카에 무수히 떠돌고 있는 미신 중의 하나에 걸려 있다는 것을 본명히 알게 되었다. 그 미신이란 그곳에 금을 묻어 두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환상은 그가 황금딱정이를 발견했다는 사실과, 쥬피터는 그것을 순금 따정이라고 완강히 주장하는데서 아마도 자신을 얻었던 모양이다. 광기가 있는 사람은, 이러한 암시가 평소에 즐겨하는 어떤 선입관념과 일치하면 쉽사리 말려들게 마련이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그가 딱정이를 행운의 열쇠라고 말한 사실을 상기하였다. 나는 이것 저것 생각해 볼 때 마음이 산란하여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된 바에는 그의 요구에 선선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꺼이 땅을 파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헛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 주어, 몽상가를 깨우쳐 주기로 하였다.
우리는 초롱에 불을 켜고 좀더 합리적인 일에 어울릴 만한 열성을 내어 일을 시작하였다. 불빛이 몸과 연장 위를 환히 비칠 때,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같이 보였을까! 그리하여 어쩌다가 우연히 우리 근처에 오는 사람이 있았다면, 우리가 하는 것이 얼마나 괴상하고 이상하게 보였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두어 시간 구준히 당을 팠다.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개가 짖어대는 것이 골치꺼리였다. 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매우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요란스럽게 짖어대는지, 우리는 혹시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경고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 불안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르그랑의 걱정이었다. 나야 그런 사람이라도 방해를 놀아 이 미치광이를 집으로 끌고 갈 수 있으면 오줄 좋겠는가! 그러나 쥬피터의 적절한 조처는 개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쥬피터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한 얼굴을하고 굴에서 나와 개의 아가리를 끈으로 묶어놓고 껄껄대며 일터로 돌아왔다.
위에서 말한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우리는 5피이트 깊이에 도달하였지만, 보물을 찾을 징조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르그랑은 당황해 하면서도 무슨 마음에 지피는 데라도 있는 것처럼 이마의 땀을 씨고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4피이트나 되는 원 전체를 다 팠을 때 그 범위를 약간 넓혀서 2피이트쯤 더 깊이 파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 황금의 미치광이는 얼굴에 실망의 자취를 역력히 보이변서 구덩이에서 기어나왔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가엽게 생각하였다. 그는 구덩이에서 나와서 느릿느릿 발길을 옮기며, 앞서 일을 시작할 때 벗어놓은 저고리를 입으러 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쥬피터는 주인의 지시를 받고 연장을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연장을 다 거두고 개 아가리를 풀어주고 나서 말없이 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이 길에 올라 열두어 서너 걸음 갔을까 말가 했을 때, 르그랑은 갑자기 욕석을 퍼부으며 주피터의 앞 가슴을 움켜쥐었다. 검둥이는 감짝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이 휘둥그래진채 손에서 삽들을 떨어뜨리며 주저앉았다.
「이 경칠 녀석아!」
르그랑은 이를 악물고 잇빨 사이로 씩씩거리며 고함을 냅다 질렀다.
「이 빌어먹을 검둥이 녀석아! 어서 말해봐, 우물주물 말고 당장 대답해 봐! 어느게, 네 왼 눈깔이냐?」
「아유머니나, 나으리님, 사람 살리십쇼. 이게 바로 저의 왼 눈깔이 아닙니까?」
쥬피터는 공포에 질려 바른 눈 위에 손을 대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는 마치 주인이 자기 눈일을 후벼내려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한사코 눈을 곡 누르고 있었다.
「그저 그렇다니까! 내 그럴 줄 알았다. 인제 됐어!」
르그랑은 크게 소리를 지르고 흑인을 놓아 주더니 날뒤며 춤을 추고 야단이었다. 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나 이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종은 하도 어이가 없어, 말없이 내 얼굴과 주인의 얼굴을 버갈아 바라보는 것이었다.
「되돌아가야겠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르그랑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추립너무를 향해 걸어갔다.
「쥬피토, 이리 좀 와, 이리 좀 와.」
그는 우리가 나무 밑에 까지 왔을 때 이렇게 말하였다.
「그 해골이 나뭇자기 밖으로 못이박혀 있더냐? 혹은 안으로 박혀 있더냐?」
「밖으로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까마귀들이 쉽게 눈알을 쪼아 먹었지요.」
「그럼 네가 오라기를 꿰인 눈 구멍은 이 눈이냐 저눈이냐?」
하고 그는 쥬피터의 눈을 번갈아 깊으며 말하였다.
「네, 이 눈이었어요. 나으리님 말슴대로 이 눈으로 꿰었어요.」
그러나 흑인은 그의 바른 눈을 가리키고 있었다.
「됐어. 다시 한번 해 보아야겠다.」
나는 친구의 정신병 속에서 어던 일정한 방침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눈으로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딱정이가 떨어진 장소에 표시로 박아놓은 말뚝을 빼내어 서쪽으로 6인치 가량 되는 곳에 옮겨 것이었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말뚝에서 가장 가까운 마무 줄기의 점을 기점으로 하여 줄자로 50피이트 거리까지 똑바로 재어 나왔다. 그리하여 도달된 점은 전에 우리가 땅을 파기 시작하던 곳에서 몇 야드 떨어져 있었다.
그는 새로운 위치를 중심으로 하여 전의 것보다 약간 큰 원을 그렸다. 여기서 우리는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나는 피곤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변화가 왔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제는 억지로 하는 일에 별로 염증을 느끼지 않았다. 도리어 까닭없이 흥미를 느길 정도였다.――아니 흥분까지 하였다.
상식에서 벗어난 그의 거동에는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그 무엇――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신중히 고려하는 듯한 태도가 보였다. 나는 결심히 땅을 파다가도 때때로 무엇을 기대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환상의 보물을――나의 가엾은 친구로 하여금 이성의 판단을 잃게 한 그 환영을 은연중에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와 같은 허망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라고 우리가 일을 시작한지 한시간 반쯤 되었을 무렵에, 별안간 개가 먕렬이 짖어대는 바람에 우리는 사시 휘방을 받게 되었다. 전번에는 개가 그거 제멋대로 장난기분에서 짖어대었지만, 이번에는 더욱 맹렬히 그리고 진심으로 짖어대는 것이었다. 쥬피터가 다시 아가리를 붙잡아매려고 하자, 개는 사나운 기세로 반항을 하고 구덩이 속에 뒤어 들어가 발톱으로 미친 듯이 파헤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개는 몇 분후에 한 무더기의 사람의 뼈다구를 파헤쳤다. 그것은 두 개의완전한 골격을 이루고 있었다. 그 밖에 몇 개의 금속 단추와 썩은 양털 옷감 같은 것도 섞여 나왔다. 삽으로 두어 번 파헤쳤더니 스페인 장검이 나오고, 좀더 깊이 팠더니 금화 은화가 쏟아져 나왔다.
쥬피터는 이것을 보고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인의 얼굴은 크게 실망한 표정을 하고 그대로 일을 계속하자고 말하였다. 그의 입에서 이말이 떨어지자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흙 속에 반쯤 묻혀 있는 굵은 쇠사슬에 구두가 걸렸던 것이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처럼 흥분된 시간을 십분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네모난 나무 궤짝 하나를 파내었다. 그것은 완전히 보존되어 있을 뿐더러, 놀랄만큼 딷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슨 광화처리(鑛化處理)――아마도 이염화수은(二鹽化水銀)으로――를 실시했던 것 같다. 길이 3피이트 반, 넓이 3피이트, 깊이가 2피이트 반이었다. 그리고 연철(鍊鐵)로 된 테로 단단히 묶고 못을 쳐서 전체가 창살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궤짝 양쪽으로 뚜겅 가까이에 쇠고리가 세 개씩 모두 여섯 개 잘려 있어, 여섯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튼튼한 손잡이가 되었다. 우리는 곧 그 궤짝은 무거워 들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이 뚜껑에는 뺏다 끼었다 하는 두 개의 빗장이 질려 있었다. 우리는 불안에 설레이며 그것을 잡아 빼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 눈앞에 흐미하게 나타났다. 구덩이 속을 초롱불로 비쳐 들자 금은보석이 한데 뒤섞인 무더기에서 광채가 찬란히 비치면서 우리눈을 현혹시켰다.
이 관경을 바라보던 나의 심정은 감히 이 자리에서 설명하려고 들지 않는다. 놀라운 감정이 제일 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레그랑은 흥분에 지쳐 아무날도 하지 않았다. 쥬피터는 한참 동안 꼭 죽은 사람 얼굴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물론 검둥이 얼굴이라 새파랗게 질려 봤대야 그케 두드러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는 마치 벼락을 맞아 정신을 잃은 사람 같았다. 이윽고 그는 구덩이 속에서 털석 무릎을꿇고 앉아, 맨손을 발꿈치까지 보물 속에 밀어 넣고 팡을 파묻어 둔채, 마치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훈훈한 김에 취한 듯한 얼굴로 푹!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외쳤다.「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