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아 있는 예배당

O.HENRY

 

   레이크랜드는 피서지의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곳은 크린치강의 작은 줄기가 흘러내리는 캄버랜드 산맥의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다. 본래 레이크랜드는 쓸쓸한 철도연변의 20호 정도의 아늑한 마을이다. 마치 철로가 솔밭 사이에서 길을 잃고, 무섭고 쓸쓸하여 이 마을에 달려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는 마을 쪽에서 길을 잃어, 기차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철로연변에 모여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레이크랜드라는 이름부터가 이상하다. 이 지방에는 호수(레이크)라고 찾아볼 수 없으며, 일대의 땅(랜드)은 너무나 황폐하여 땅이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이가.

   마을에서 반 마일쯤 덜어진 곳에 <독수리집>이라는 크고 넓은 건물이 있다. 이것은 간편하게 산 공기를 쏘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죠지아 랭킨이 경영하는 집이다. 이 집은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끌었다. 현대식 시설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모두가 고풍스럽기만 하고,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채 흩어져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들로 하여금 마치 자기 집처럼 마음 편하게 하였다. 방은 깨끗하고 음식은 풍성하겠다, 그 나머지는 손님들이 솔밭에 나가 놀면 되는 것이다. 자연은 이 고장에 약수물과 머루 넝쿨로 된 그네와 기둥마저 나무로 된 크로케 장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예술의 혜택이란 전원풍의 딴채에서 한 주일에 두 차례씩 열리는 무도회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독수리집 손님은 유흥뿐만 아니라 휴양을 하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년 내내 바퀴가 돌아갇록 하기 위해 두 주일 동안 태엽을 주어야 하는 시계와 견줄 만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도시에서 모여든 학생이나, 화가들, 그리고 근방의 옛 지층(地層)을 연구하기에 골몰한 지질학자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밖에 몇몇 가족들도 이곳에서 한 여름을 보내고, 또 이 고장에서 여선생이라고 하는 인내를 근본으로 삼는 부인종교단체의 여자들도 보였다.
   독수리집에서 4분의 1마일쯤 떨어진 곳에 하나의 구경거리가 있는데, 만일 이 독수리집에서 안내서라도 내었더라면 금새 명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은 동아가지 않지만 아주 오랜 물레방앗간이다. 죠지아 랭킨의 말에 의하면, 미국에서 물레방아가 있는 유일한 예배당이며, 또한 좌석과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세계 유일의 물레방아간이다.

   독수리집 손님들은 주일마다 이낡은 물레방아 예배당에 가서, 순결한 기독교도는, 경험과 고난의 맷돌에 갈아 유용하게 된 고급밀가루와 같은 거이라는 설교를 듣는 것이었다.
   해마다 이른 가을이 되면, 독수리집에는 아브람 스트롱이라는 사람이 머물곤 하였다. 그는 뭇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레이크랜드에서는 그를<아브람 아버지>라고 불렀다. 눈같이 흰 머리하며, 혈색이 좋은 부드러운 얼굴, 명랑한 웃음, 그리고 그의 검은 옷과 테가 넓은 모자 등등이 목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온 손님도, 그와 3·4일만 사귀면, 벌서 아브람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브람 아버지는 멀리서 이곳 레이크랜드에 찾아왔다. 그는 서북지방의 큰 번창한 도시에서 제분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회중석(會衆席)이나 오르간 같은 것은 찾아 볼수 없었다. 그것은 커다란 보기 흉한 산과 같은 제분소로, 개미 동우리에 개미 떼가 웅성거리듯이 화물열차가 진종일 그 일대를 드나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브람 아버지의 과거와, 전에 말한 교회가 된 물레방앗간의 역사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었다. 우선 그 이야기부터 하려고 한다.

  그 교회가 물레방앗간이었을 때, 아브람 스트롱씨는 그 주인이었다. 그보다 더 명랑하고, 먼지투성이고, 분주하고, 행복한 방앗간 주인은 없었다. 그는 방앗간에서 길 하나 건너 있는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일손은 더디지만 삯이 적어 이근처의 사람들은 멀고 힘든 돌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에게 곡식들을 싣고 왔던 것이다.

  그의 즐거움은 어린 딸 아그레이아에게 있었다. 그것은 노랑머리에 아장걸음의 아이치고는 좀 과한 이름이지만 시골 사람들은 우렁차고 훌륭한 이름을 좋아하였으므로, 어머니가 어느 책 속에서 찾아내어 붙인 이름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에 아그레이아는 그이름을 젖혀놓고, 자기를 담스라고 불렀다. 방앗간 주인과 그 아내는 아그레이아에게서 이 이상한 이름의 출처를 알아내려고 하였지만 허사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집 뒤에 로도덴드론 꽃밭이 있었는데, 아그레이아는 그 꽃밭을 무척 좋아하였다. 담스란 아마도 드 애가 좋아하는 꽃 이름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그레이아가 네 살 때, 그녀와 아버지 사이에는 날씨만 좋으면 빼놓지 않고 일과가 날마다 오후가 되면 반복 되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치면 어머니는 반드시 아그레이아의 머리를 빗어주고 아름다운 에프론을 입혀, 길 건너편의 방앗간에 아버지를 모시러 보냈다. 방앗간 주인은 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전신이 가루로 하얗게 되어 마주을 나온다. 그리하여 손짓을 하며, 그 지방에서 잘 알려져 있는 방앗간의 노래를 부른는 것이었다. 그 노래는 이러하였다.

                                 물레방아 돌고 동아 곡식을 찧네.
                                 가루 쓴 방앗간 영감은 언제나 싱글벙글.
                                 하루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일하며,
                                 사랑하는 자식을 생각하노라.

   그러면 아그레이아는 그를 향해 웃으며 달려가서 외치는 것이었다.
  「아빠, 담스를 집에 데려다 줘.」
   그는 아이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역시 방앗간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간곤 하였다.  저녁때가 되면 언제나 이 일이 되풀이되었다.
   아그레이아의 네 번째 돌이 지나고 한 주일쯤 되는 아느날, 그녀가 별안간 없어졌다. 그녀는 집앞 길에서 꽃을 따고 있었다. 그 후 어머니가 너무 멀리 가지 않나 싶어서 가 보았더니 온데 간데 없었다.
   몰론 아이를 찾으려고 모든 힘을 다 기울였다. 이웃 사람들이 총동원하여 숲속이나 산을 몇 마일씩 사방으로 뒤져 보았다. 그리고 물레방아 도랑이나 개울도 땜 아래 멀리까지 물속을 샅샅이 훑어 보았으나, 아이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 이틀밤 전에 유랑민의 한떼가 가가운 숲속에서 노숙하고 간 일이 있어, 혹시 그들이 훔쳐가지 않았나 해서 마차를 몰고 뒤쫓아 가서 수색을 해 보았으나, 역시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스트롱은 그 후 2년 가까이 방앗간을 경영하였는데, 아이를 칮을 가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아내와 함께 서북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몇 해 후에는 그 지방의 중요한 제분 도시에서 현대적인 제분공장의 하나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아내는 아그레이아를 잃었을 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 이사간지 3년 후에 세상을 떠나, 그는 홀로 이 슬픔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업이 번성하게 되었을 때, 그는 레이크랜드와 그 근처의 옛 물레방앗간을 찾았다. 이곳은 그에게 슬픔의 원천이 되어 있었지만, 성격이 강한 그는 언제나 명랑하고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 옛 물레방앗간을 교회로 개조하려고 생각한 것은 그때였다. 빈촌인 레이크랜드에서는 교회를 세울 엄두도 못내었다. 그리고 더욱 가난한 산골 사람들은 그것을 도울 만한 힘이 없었다. 그리하여 20마일 안쪽으로는 교회가 없었다.

    스트롱씨는 그 물레방앗간의 외모를 되도록 변경하지 않았다. 커다란 물레방아도 제자리에 두었다. 이것을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 물레방아의 연하고 차츰 썩어가는 나무위에 자기 이름자를 새기곤 하였다. 땜은 일부분이 허물어져 맑은 선골 물이 동위를 흘러내였다. 그러나 방앗간의 내부는 면목을 일신하였다.

    굴대, 맷돌, 피대, 활차(滑車)는 모두 치우고 벤치를 두줄로 놓아 간간이 길을 두고 한쪽끝에는 교단과 강대상이 놓여 있었다. 머리 위의 삼면에는 좌석이 놓인 다락이 있어 안으로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 파이프 오르간이 다락에 놓여 잇어 교인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피이브 싸마즈양이 오르간을 쳤다. 이곳 레이크랜드의 아이들이 주일예배 때마다 서로 교대로 오르간에 바람을 넣으며 신이나 하였다. 베인부리지 목사가 단에 섰다. 그는 다람쥐골에서 늙은 백마를 타고 한번도 빠짐없이 설교하러 왔다. 모든 비용은 스트롱이 부담하여 스트롱이 설교자에게 1년에 5백딸라씩 지불하고 피이부양에게는 2백딸라를 주었다.

   이리하여 아그레이아를 추모하기 위한 낡은 방아깐은, 그녀가 일찍이 살고 있던 마을에 대하여 하나의 축복이 되었다. 아그레이아의 짧은 생애는 70에 도달한 사람들의 생애보다 더 많은 은혜를 가져온 것 처럼 생각되었으나, 스트롱은 아직도 미흠하여 아이를 추모하기 위해 또 하나의 기념사업을 세웠다.  즉 서북지방에 있는 그의 제분 공장으로부터 아그레이아 도장이 찍힌 밀가루를 팔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제일 잘 여문 가장 좋은 밀로 만든 것이었다. 이 아그레이아 밀가루는 두 가지 값을 갖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곧 알게 되었다. 하나는 최고의 시장가격이오, 또 하나는 무상이었다.

    어디에 화재나 홍수, 태풍, 파업, 기근과 같은 재앙이 닥쳐 사람들을 곤궁에 몰아넣었을 때는, 이 아그레이아 밀가루를 얼마든지 보내주는 것이었다. 이 밀가루는 조심스럽게 비틈 없는 절차를 거쳐 배급되지만 조금도 아기지 않았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에게서 한푼도 값을 받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어느새 <어느 빈민굴의 거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현장에 달려오는 것은 소방서의 마차이고, 그다음은 아그레리아의 밀가루를 실은 차 그리고 그뒤에야 비로소 불자동차가 온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즉 아그레이아에 대한 스트롱의 두 번째 기념물이었다. 시인의 안목으로 보면 이것은 너무나 공리적이라 밑을 찾아보기 어려운 소재일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인정의 사자(使者)처럼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찾아 돌아다니는 깨끗하고 흰 밀가루를, 잃어 버린 소녀를 추모하는 기념으로 삼는 것은 아름답고 거룩한 일로 생각될지 모른다.

    어느해 캄브랜드 지방이 매우 어려운 고비에 처한 일이 있었다. 농사느 어디나 흉작이었만, 이 캄브랜드 지방이 매우 어려운 고비에 처한 일이 있었다. 농사는 어디나 흉장이었지만, 이 캄브랜드 지방에서는 전혀 수확을 거두어들이지 못하였다. 그리고 산악지대의 홍수는 사람들의 재물을 많이 앗아갔다. 짐승까지도 줄어들어 사냥꾼들은 자기 식구들이 연명해 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의 노획물을 갖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특히 레이크랜드 부근에서 더 심하였다. 아브람 스트롱이 이 소식을 전해 듣자, 그의 명령을 받아 경편철도는 레이크랜드에 아그레이아 밀가루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밀가루를 방앗간 예배당의 다락방에 쌓아 두었다가 예배보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각각 한 포대씩 나눠 주라고 일렀다.
   그 후 두주일 지나 아브람 스트롱은 해마다 관례대로 독수리집을 찾아 야전히 아브람 아버지가 되었다.

    이 계절에는 독수리집은 평소보다 손님이 적었다. 그 손님들 가운데 로우즈 체스터라는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아틀랜타시의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휴가를 얻어 놀러 오기는 이것이 평생 처음이었다. 백화점 지배인 부인이 전에 이 독수리 집에서 한 여름을 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로우즈양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거기 가서 3주일의 휴가를 보내라고 권하였던 것이다. 지배인 부인은 랭킨 부인 앞으로 소개장을 써 보내 주었으므로 부인은 반가히 그녀를 맞아 자기가 친히 돌봐 주기로 하였다.

    체스터양은 몸이 그다지 튼튼하지 못하였다. 나이는 스무 살 가량이었으며, 언제나 방안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얼굴빛도 창백하고 연약하게 보였다. 그러나 레이크랜드에서 한 주일을 묵자 그녀는 몰라볼 정도로 명랑하고 원기왕성하게 되었다. 바로 구월 초순이라 캄브랜드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산의 나무들은 단품이 들어 찬란하고, 공기는 샴페인처럼 향기롭고, 밥은 매우 싸늘하여 사람들은 독수리집의 따뜻한 담요 밑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어드는 것이었다.

    아브람 아버지와 체스터양은 친한 동무가 되었다. 늙은 물레방아 주인은 랭킨부인에게서 체스터양의 이야기를 듣고 용감하게 자활의 길을 걷고 있는 그 연약하고 외로운 처녀에게 곧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산골은 체스터양에게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뜨거운 평야의 도시 아틀랜타시에서 살아왔으므로 캄버랜드의 장엄하고 변화가 많은 풍경이 반가웠다. 그녀는 이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을 일각이라도 아끼며 즐기려고 하였다.  그녀는 자기의 몇푼 되지 않는 저금과 휴양중의 비용을 따져 세밀한 예산을 셍워 놓았으므로, 직장에 돌아갔을 때 돈이 얼마나 남는다는 것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체스터양이 아브람 아버지를 친구로 갖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는 레이크랜드의 지리에 훤하였다. 근방의 산이나, 길이나, 봉우리나, 낭떠러지까지도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통하여 솔밭 속의 우두운 고갯길에 대한 신성한 아름다움이라든가, 벌거숭이가 된 바위의 장엄함이라든가, 그리고 수정처럼 맑은 서늘한 아침, 또는 야릇한 슬픔에 가득찬 꿈결 같은 가을의 오후에 친숙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건강은 날로 회복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는 여자로서 상냥하고 천진한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본래가 낙천주의자이며, 남들에게 부드럽고 명랑한 얼굴을 보일 줄 알고 있었다.

   어느날 체스터양은 한 손님으로부터 아브람 아버지의 잃어 버린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곧 달려가서 샘가의 좋아하는 벤치 위에 앉아 있는 스트롱씨를 찾아내었다. 그는 이 귀여운 친구가 가지 손을 잡고 눈물이 글성하여 자기를 쳐다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브람 아버지.」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가엽어라! 전 오늘까지 그 어린애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몰랐어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만날 때가 있을 거야요. 전 하나님께 빌겠어요.」
   방아깐 주인은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빙그레 웃어 보였다.
  「고마워, 로우즈양.」
하고 그는 명랑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아그레이아를 만날 수 없을 거야. 몇 해 동안은 나도 그것이 어느 부랑자에게 잡혀가 아직 어디엔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러나 인제는 완전히 절망이야. 아마도 물에 빠져 죽었을 거야.」
   「저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속 쓰린 일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하고 체스트양은 말하였다.
   「그런데도 그렇게 유쾌한 얼굴을 하시고, 언제나 기거이 남의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하시다니……정말 어진 아브람 아버지시군요.」
   「정말 어진 로우즈양이야!」
하고 방앗간 주인은 웃으면서 로우즈양의 흉내를 내었다.
   「나보다 로우즈양 쪽이 더 남의 생각을 하지 뭐야.」
   체스터양은 좀 응석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아브람 아버지!」
하고 그녀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만일 제가 아저씨의 따님이라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그런데 아저씬 저를 따님으로 삼을 생각은 없으세요?」
   「그야 생각이 있지.」
하고 방앗간 주인은 기븐 듯이 말하였다.
   「만일 아그레이아가 살아 잇다면, 나는 그 애가 곡 체스터양 같았으면 좋겠어.」
   이어서 그는 농담삼아 이렇게 이렇게 덧붙였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