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아 있는 예배당>
O.HENRY
「체스터양은 우리가 방앗간에 살던 때의 생각이 나지 않아?」
체스트양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은 멀리 무엇인가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브람 아버지는 갑자기 그녀가 심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녀는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 아뇨.」
하고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물레방아 생각은 전혀 나지 않는군요. 방앗간이라고는 평생에 본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아저씨의 기이한 교회를 보기 전까지 말예요. 제가 그 어린 따님이라면 생각날 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어전지 속이 상하는군요, 아브람 아버지!」
「나도 그래.」
하고 아브람 아버지는 그녀에게 맞장구를 치면서 말하였다.
「그러나 로우즈양, 만일 로우즈양이 대 딸이 되었던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의 딸이었다는 것은 생각날 테지. 물론 로우즈양은 아버지 어머님 생각은 나겠지?」
「네 잘 생각나요――특히 아버지 말에요. 아버지는 아저씨하고 전혀 달랐어요. 아녜요. 다만 지어낸 말이에요. 자 인제 오래 쉬었어요. 오늘 오후에는 연어가 뛰노는 것이 보인다는 그 연못을 구경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요. 저는 여태 연어를 본 적이 없어요.」
어느날 오후 저물녘에 아므람 아버지는 혼자서 옛 방앗간을 찾아갔다. 그는 자주 그리로 찾아가서 길 건너편에 있는 작은 집에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었다.
세월은 그의 커다란 슬픔을 어루만져 그는 벌써 그 무렵의 일을 괴롭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9월의 오후에, 담스가 날마다 노란 곱슬머리를 날리며 달려들어 오던 그 곳에 앉아 있을 때면, 그가 레이크랜드 사람들에게 늘 보여주던 미소도 얼굴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꾸불꾸불한 가파른 길을 서서히 더듬어 올라갔다. 나무들이 양족 길 가에 다가서서 그늘을 던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모자를 벗어 들고 걸어갔다. 다람쥐들은 바른편 울타리 위를 재미나듯이 기어다니고 밀밭에서는 매추리가 울고 있었다. 기울어진 해는 서쪽으로 열린 산골짜기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그레이아가 없어진 날도 9월 초순이었다.
칡나무에 반쯤 덮인 옛 물레방아에는 나무 사이로 새어드는 따뜻한 햇살의 반점이 찍혀 있었다. 길 건너 작은 집은 아직도 남아 있으나, 오는 겨울에 휘몰아칠 산바람에는 영락없이 넘어질 것 같았다. 나팔꽃과 야생의 박넝쿨이 그 위에 덮여 있고, 문도 거들거들하였다.
아브람 아버지는 방앗간 문을 열고 살며시 안에 들어가 이상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가 안에서 슬피 울고 있었던 것이다. 살펴보니 체스터양이 어둠컴컴한 의자에 앉아 손에 편지를 펴 든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브람 아버지는 그녀에게 가가이 다가가 자기 한쪽 손을 그녀의 손에 얹어 놓았다. 그녀는 얼굴을 쳐들고 입속으로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뭐라고 하려고 했다.
「잠깐만, 로우즈양.」
하고 방앗간 주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어. 울고 싶을 때는 조용히 우는 것이 제일 좋은 거야.」
스스로 많은 슬픔을 겪어온 이 늙은 방앗간 주인은 남의 슬픔을 제거하는 일에는 마치 마술사와 같은 수완을 갖고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체스터양의 흐느낌은 차차 가라앉았다. 그녀는 곧 가장자리에 수도 놓여 있지 않은 손수건으로, 자기 눈에서 아브람 아버지의 커다란 손등에 덜어진 한 두 방울의 눈물을 훔치고 나서,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으로 빙그레 웃어 보였다. 체스터양은, 아브람 아버지가 자기의 슬픔 속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처럼, 그녀도 자기의 눈물이 아직 머르기 전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는 두 사람이 매우 비슷하였던 것이다.
방앗간 주인은 아무말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윽고 체스터양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젊은 사람들 자신에게는 언제나 매우 중대한 일처럼 생각되지만, 그것을 듣는 어른들 편에서는 회상적인 미소를 금치 못하는 그런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그렇게 말하면 대체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것은 사랑의 문제였다. 아틀랜타에 매우 선량하고 휼륭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아틀랜타는 물론이고, 북으로는 그린랜드로부터 남으로는 판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찾아보나 체스터양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읽어 가면서 눈물을 흘린 그 편지를 아브람 아버지에게 보였다. 그것은 선량하고 훌륭한 청년이 쓴 연애 편지로 사나이답고, 정답고, 최상급의 형용사를 많이 섞은 여렬한 것이었다. 그는 체스터양과 곧 결혼하고 싶다고 써 보내었다. 그리고 그녀가 3주일 동안의 휴가야행을 떠난 후로, 그의 생활이 얼마나 쓸쓸한가를 호소하고 자기의 청혼에 대한 그녀의 답변을 요구하면서 만일 응락을 한다면 불편한 경편철도뜸은 개의치 않고 곧 레이크랜드에 뛰어가겠다는 사연도 적혀 있었다.
「그런데 무 때문에 걱정하는거지?」
방앗간 주인은 편지를 다락고 나서 이렇게 물었다.
「저는 그 사람하고 결혼할 수 없어요.」
체스터양이 말하였다.
「체스터양은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
「네.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
하고 체스터양은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로우즈양.」
방삿간 주인은 말을 이었다.
「비밀이 있으면 털어놔 봐. 나는 구태여 알려곤 하지 않지만, 나를 믿어도 무장하지 않아.」
「저는 아저시를 믿어요.」
하고 체스터양은 말을 이었다.
「제가 무엇 때문에 랠프의 청혼을 거절해야 하느니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어요. 저는 어느집 출신인지도 몰라요. 이름도 없어요. 제가 부르는 이름은 가짜 이름이에요. 그런데 랠프는 명문 출신이거든요. 저는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면서도 그에게 출가할 수는 없어요.」
「거 무슨 소리야?」
하며 아브람 아버지느 말하였다.
「체스터양은 부모를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름도 없다는 거야. 나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군 그래.」
「제가 양친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고 체스터양은 말을 이었었다.
「잘 기억하고 있어요. 저의 맨 처음의 기억은 어딘가 훨씬 남부지방에서 저희들이 살고 있었을 때의 일이에요. 저희들은 몇 번이나 다른 거리와 시골로 이사해 다녔어요. 저는 목화를 따기도 하고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별반 잘 먹자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며 지난일도 흔히 있었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때때로 저에게 잘해 주셨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저에게 심히 굴고 자주 때리기까지 하였어요. 어쩐지 부모들은 두 분 다 게ㅔ을러빠져 살림도 자리가 잡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으리가 아틀랜타에서 가가운 장가의 어느 조그마한 걸에 살고 있을 때, 부모님들은 대판 싸움을 하였어요. 두 분게서 서로 욕설을 퍼붓고 위협을 할 때였어요……아, 아브람 아버지! 그때 저는 남의 아내가 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한테는 이름도 없었어요. 그들은 저의 친 부모가 아녔어요. 저는 그날 밤에 도망을 쳤어요. 아틀랜타까지 걸어와서 일자리를 구했어요. 그리하여 로우즈 체스터라는 이름으로 오늘가지 살아 왔어요. 제가 무엇 때문에 랠프와 결혼할 수 없는지 아셨지요?……그렇지만 저는 이런 내박을 그에게 말할 수는 없어요.」
이때 아브람 아버지가 그녀의 슬픔을 하찮은 것이라고 말해 준 것이 다른 어떠한 동정이나 연민보다는 효과가 있었다.
「체스터양 그까짓 일 갖고 뭘 그래?」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게 다 무슨 상관 있는 일이야! 나는 또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나는 그 청년이 정말 남자다운 사람이라면 로우즈양의 집안 같은 것은 털끝마치도 염두에 두지 않을 거야. 로우즈양, 분명히 말하지만 그가 사랑하고 있는 것은 바로 로우즈양이야.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그에게 말해요. 그는 반드시 그것을 일소에 붙일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더욱 로우즈양을 사랑할 거야.」
「저는 도저히 그런 말을 입밖에 낼수 없어요.」
하고 체스터양은 슬픈 얼굴을 하고 말하였다.
「저는 그와 결혼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아무하고도 결혼하지 않을 거야요. 저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어요.」
그때 그들은 석양볕이 내려쪼이는 길 위에 길다란 그림자가 움직이며 가가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이어서 그와 나란히 짦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러자 두 사람이 교회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긴 그림자는 오르간 연습을 하러 온 피이브 싸미즈양의 것이고, 짧은 그림자는 열두 살 나는 토미 티거의 것이었다. 그날은 토미가 피이브양을 위해 오르간에 바람을 넣을 차례였다. 그는 맨발가락으로 의기양양하게 한길의 먼지를 차며 뛰어왔다.
피이브양은 라일락 꽃가지 무늬가 있는 무명옷을 입고 두 귀에 단정한 곱슬머리를 느러뜨리고, 아브람 아버지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나서, 체스터양을 보고 예의바르게 고개를 갸웃이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와 그 조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오르간이 놓인 다락에 이르렀다.
아브람 아버지와 체스터양은 남이 저물도록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묵묵히 각자 자기의 기억을 열심히 더듬고 있는 것 같았다. 체스터양은 팔로 턱을 고이고 앉아서 멀리 바라다보았다. 아브람 아버지는 마무 걸상에 앉아 문밖의 한길과 허물어저져 가는 오막살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20년 전의 엣날로 돌아갔다. 토미가 펌프질을 하고 피이브양이 그 속의 공기의 양을 시험해 보려고 오르간의 저음의 키를 지긋이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람 아버지의 눈앞에는 벌써 교회가 없었다. 이 조그마한 목조건물을 뒤흔드는 깊은 진동 소리는, 오르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방앗간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로 들렸다. 그로서는 저 낡은 물레방아가 여전히 돌아가고, 자기는 다시금 가루 투성이가 된 명랑한 산골 물레방아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마침 저녁때가 되었으므로 이윽고 아그리이아가 노랑 머리를 날리며 아장아장 길을 건너 그에게 저녁이 다 다었다고 알라러 올것만 같았다. 아브람 아버지는 그의 옛집의 파손된 문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머리 위의 이층에는 밀가루 부대가 길게 줄을 지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아마 그 중에서 쥐가 어느 부대를 쓸고 있었던지 아무튼 오르간의 갚은 멜로디가 이층 마룻장으로부터 밀가루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브람 아버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루로 하얗게 뒤덥혀 버렸다. 그러자 늙은 물레방아 주인은 한길가지 걸어나와 팔을 흔들며 옛날에 부르던 물레방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물레방아 돌고 돌아 곡시을 찧네.
가루 쓴 방앗간 영감은 언제나 싱글벙글
그런데 기적은 다시금 기적을 낳았다. 체이스터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빛이 밀가루처럼 희고 핏기 ㅇ벗는 얼굴에 눈을 커다랗게 드고 꿈을 꾸는 사람처럼 아브람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물레방아 노래를 할 때, 그녀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러자 꿈 속에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말하였다.
「아빠 담스를 집에 데려다 줘!」
피이브양은 오르간의 저음의 키를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일을 후륭히 마친 것이었다. 그녀가 친 멜로디는 닫힌 기억의 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아브람 아버지는 잃었던 아그리이아를 다시금 가슴에 꼭 껴안고 있었다.
독자 여러분이 만일 레이크랜드를 찾아가면 이 이야기에 대하여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중에 이 이야기의 연결이 어떻게 되었는지, 도 어느 방랑자가 그녀의 귀여움에 마음이 끌려 그 9월의 어느날 아그레이아를 유괴해간 후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독수리집 그늘진 대청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을 때까지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그 때엔 얼마든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 이야기는 피이브양이 연주한 오르간의 저음이 이작 조용히 여음을 남기고 있을 동안이 그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 이야기 속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대목이 아직도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덧붙이려고 한다. 그것은 그들 부녀가 입도 벌리지 못할 정도로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 오랫동안 황혼 속을 걸어 독수리집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던 일이다.
「아버지.」
딸이 먼저 약간 부끄러운둣이 그리고 아직도 다 믿을 수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말하였다.
「돈이 많으세요?」
「돈이 많으냐고?」
하고 물레방아 주인은 말을 이었다.
「그야 정도의 문제지. 네가 저 하늘의 달과 같은 것을 사달라고 조르지만 않으면 돈이 많다고 해도 무장할 거야.」
「아틀랜타에 전보를 치려면 돈이 많이 드나요?」
하고 지금까지 10센트짜리 돈도 언제나 찬찬히 세어 두던 아그레리아가 물었다.
「아 , 참.」
하고 아버지는 가볍게 한슴을 지으며 말하였다.
「랠프를 불러야겠군.」
아그레이아는 바버지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저, 그분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겨우 아버지를 찾았으니까요. 당분간은 아버지와 단 둘이 있고 싶어요. 그래 그래 그리더러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