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나무 숲

Maupassant

  1

  마르세이유와 툴롱 사이에 있는 피스카만(灣)에 자리잡은 작은 어촌 사람들은 바다 낚시질에서 돌아온 빌브와 신부(神父)의 조그마한 배를 보고 저마다 바닷가로 나갔다. 배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였다.
  배안에는 신부 한 사람만 타고 있었다. 그는 올해 쉰 여덟 살이지만, 노를 젓는 품이 뱃사람 못지 않았다. 근육이 불거진 팔로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신부 옷깃을 올려 무릅 사이에 끼고, 가슴에 단추를 좀 따 놓고, 모자는 벗어서 옆 걸상 위에 놓고, 그 대신 흰 천을 씌운 코르크헬멧을 쓰고 있었다. 미사를 부르기 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것이 어울린듯한 그의 모습은,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장한 교직자의 풍모였다.

  그는 때때로 배를 댈 곳을 잘 살피느라고 뒤를 돌아보고 나서 박자를 맞춰 규칙적으로 다시 노를 젓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남부지방의 서투른 뱃사람들에게 북부 사람들이 얼마나 배를 잘 젓는가를 새삼 보여 주려는 것 같았다.
  힘차게 저어오던 배는 바닷가에 다다르자 앞머리를 쳐박고 해변 끝까지 기어오를 기세로 모래 위를 미끄러지더니 갑자기 뚝 멈추었다. 신부가 돌아온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다섯 명의 사나이는 신부 앞으로 다가갔다. 저마다 상냥스럽고 호의에 찬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많이 잡으셨는교, 신부님?」
  하고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이 남부지방의 심한 사투리로 물었다.
  빌부와 신부는 노를 거두고 산각모를 쓰기 위해 헬멧을 벗었다. 그는 걷어 올린 소매를 내리고 옷 단추를 체우고 나서, 사제(司祭)로서의 기품과 위엄을 갖추고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암, 많이 잡구말구. 루우 세 마리에 뮤레엔 두 마리, 거기에 지렐도 몇 마리 잡았지.」
  다섯 명의 어부들이 배 까까이 가서 뱃전 너머로 허리를 굽히고 무슨 감정가나 되는 듯이 물고기들을 들여다 보았다. 기름진 루우, 머리가 넓직하고 바다 뱀이라고 할 수 있는 징그러운 뮤레엔, 그리고 오렌지 껌질과 같은 금빛 얼룩띠무늬가 있는 남빛깔의 지렐.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이 말하였다.
   「신부님, 제가 댁에까지 들어다 드리지요.」
   「고맙소.」

  신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나서 걷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만 그의 뒤를 따를고, 남은 사람들은 배를 끌어 올리기로 하였다.

  신부는 발걸음을 길게 떼어 놓으면서 힘차고 위엄있게 천천히 걸어갔다. 힘을 들여 배를 저은 뒤였으므로 아직도 몸이 후끈거려 올리브 숲의 가벼운 그늘 밑을 지나갈 때면, 가끔 모자를 벗고 그 반듯한 이마에 저녁 공기를 쏘였다. 아직도 훈훈하기는 하였으나 먼 바다 위에서 불어오는 은은한 미풍으로 하여 저으기 선선해진 저녁 한때였다. 빳빳하고 짧게 깎은 흰 머리로 덮인 그 이마는, 신부의 이마라기 보다는 장군에게 아울리는 이마였다. 바다를 향하여 밋밋하게 경사진 커다란 골짜기 한복판에 놓인 언덕 위에 마을이 보였다.

  7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멀리 톱날처럼 서 있는 상봉우리에 거의 닿을 듯한 눈부신 태양이 먼지 투성이가 된 희끄므레한 길 위에 신부의 그림자를 비스듬히 길게 던져 주고 있었다. 커다란 그의 삼각 모자는 한길가 올리브 숲위에 커다란 그늘을 던지며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장난아라도 하는 것처럼, 부딫치는 나무마다 재빨리 타고 올랐다가는 다시 땅으로 툭 떨어져 나무 사이를 기어가는 것이었다.
 신부의 말 밑에서 먼지가 부옇게 피어올랐다. 여름이면 푸로방스 지방의 모든 한길을 덮어 버리는 뿌연 흙 가루가 주위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라, 그의 옷자락을 차차 밝은 휘색빛으로 덮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시원해 졌으므로,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산을 잘 타는 산악지방의 사람들 모양 느리고 힘찬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마을을 바라보았다. 20년 동안이나 그가 사제의 일을 맡아온 마을이었다. 자기가 원하여 다행히 차자하게 된 이 마을에 그는 앞으로 몸을 묻을 심산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난 갈색 석탑이 남국의 아름다운 계곡에 고풍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은 성당의 종루라기 보다 차라리 요새의 보루와 비슷하였다.
 신부는 만족하였다. 루우를 세 마리, 뮤레엔을 두 마리, 그리고 지렐까지 몇 마라 잡았으니 말이다.
  그는 교구의 신도들에게 보여 줄 자랑거리가 또 하나 는 셈이다. 나이는 많지만, 마을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 보다도 건장한 몸집을 지녔다고 해서 존경을 받고 있는 그에게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천진스러운 자랑거리가 커다란 기쁨을 느끼에 하였다. 그는 권총을 쏘아서 꽃나무 가지를 꺾을 수 있으며, 가끔 전에 부대에서 검술 조교를 한 적이 있는 옆집 담뱃가게의 주인과 검술 연습도 하고, 바다에서는 누구보다도 헤엄을 잘 치는 것이었다.

  그는 한때 멋쟁이로 명성을 떨친 빌브와 남작이었는데, 사랑에 실패하고 서른 두 살에 신부가 되었다.
  그는 피카르드라는 전통있는 집안에 태어났다. 왕에게 충실하고 믿음이 깊은 집안으로, 그 아들은 대대로 군인이나 사법관, 또는 성직자가 되었다. 그도 처음에는 어머니의 권고대로 성직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아버지가 반대하는 바람에 목표를 변경하여 파리에 가서 법률을 배우고 법관이 되려고 결심하였다.
  그가 공부를 마칠 무렵에 아버지는 늪에서 사냥을 하다가 폐렴에 걸려 죽고, 어머니도 이 뜻하지 않은 불상사에 충격을 받아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갑자기 막대한 재산을 물려 받은 그는, 장차 직장을 가질 계획을 버리기로 하였다. 부유한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신앙과 전통과 계율―이것은 그의 시골 귀족다운 근육과 더불어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었다.―로 말마암아 그다지 자유로운 정신을 갖고 있지는 못하였으나, 그는 미남이고, 총명한 젊은이로 뭇사람들의 호감을 받았으며 귀족사회에서 인기가 대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젊고 절제있고 부유하고 존경 받는 청년으로 인생을 즐겼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어떤 여배우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와는 어느 친구의 집에서 몇 번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직 나이 어린 콩세르바트와르 음악학교의 학생으로, 오데옹 극장에서 처녀출연(處女出演)을 하여 격찬을 받았다.
 그는 절대적인 진리를 믿는 사람답게 모든 정열을 기울여 그 여자를 사랑하였다. 그녀가 처음 무대 위에 등장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둔 그날에, 그는 눈부신 영광에 싸인 그 소녀에게 매혹되어 마침내 사랑에 빠져 버리렸던 것이다.

 그녀는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성격은 변덕스러웠으나, 그 태도는 어린애처럼 천진하였다. 그는 이것을 천사와 같은 모습이라고 하였다. 그는 남자를 완전히 정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를 몽유병자처럼 자기한테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의 눈초리 하나 치맛자락 하나가 목숨을 저 버릴  정도로 정열의 불길에 자기 몸을 태워 버리고야 마는 황홀경으로 인도하여, 그는 정신의 광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여자를 애인으로 삼고, 무대의 연출을 그만두게 한 다음에 4년동안 정열을 기울여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는 자기의 명성이나 가문의 자랑스러운 전통도 져 버리고 그녀와 결혼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그녀가 오랫동안 자기를 속이고, 자기에게 소개를 해 준 그 친구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임신중이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해산만 하면 곧 결혼하려고 하던 참이라, 그것은 더욱 참혹한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증거품으로 서랍 속에서 발견한 몇 통의 편지를 손에 넣자 그녀를 공박하기 시작하였다.―그녀의 부정과 불의와 추행을 그의 본성인 반 야만적인 야수성을 드러내며 무섭게 꾸짖었다.
  그러나 그녀는 파리 태생으로 염치나 명예 같은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사나이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딴 사나이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으시대기 위해 성(城)위에까지 기어오르는 빈민굴의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무서움을 모르는 여자라, 그에게 마구 대어들며 비웃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사내가 주먹을 들어올리자, 그녀는 얼른 자기의 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는 별안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기가 죽었다. 자기의 핏줄이 저 더럽고 비열한 몸뚱아리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되자, 다시 그 계집에게 달려들어 둘 다 한꺼번에 밟아 죽임으로써 이중의 치욕을 때뜸 씻어 버리려고 하였다. 여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이제 죽는 줄만 알았다. 남자의 억센 주먹 아래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땅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는 그 부풀어 오른 배―벌써 생명의 씨가움직이고 있는-를 남자의 발길이 당장 짓 밟아 버리려고 하는 사실을 알게된 그녀는 그 발길을 막으려고 힘껏 두 손을 올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죽이지 말아요. 당신의 애가 아니니까요.」
 그는 주춤하고 한걸음 물러섰다. 하도 어이가 없고, 하도 놀라와, 그 분노도 발길도 한꺼번에 공중에서 멈춰 버린 듯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뭐……뭣이라고?」
  여자는 사나이의 무서운 눈초리와 겨동 속에서 뚜렷이 느낄 수 있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미칠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하여 연달아 소리를 지를는 것이었다.
   「당신의 애가 아니예요. 그이 애야요!」
  그는 이를 악물고 꺼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정말?」
   「암요.」
   「거짓말이지?」
 그는 다시금, 밟아 죽일 듯이 발길을 움직거리기 시작하였다. 무름을 꿇고 잇던 그녀는 일어나 뒷걸음을 치려고 하면서 여전히 중얼거렸다.
   「그이 애예요. 당신 애라면 벌서 전에 있었을 거 아녜요.」

  이 말은 틀림없는 진실을 깨우쳐 주는 것처럼 그의 귀를 울려왔다. 그것은 실로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순간 그는 그 계집의 뱃속에 들어 있는 가련한 생명의 애비는 결코 자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이지(理智)가 일시에 무한히 명백하고, 정확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고, 따라서 믿지 않을 수 없으며, 항의할 수도 없이 홀연히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별안간 자기 몸을 꽁꽁 묶고 있던 사슬이 불리는 듯 하면서 분노마져 가라앉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더러운 계집을 찢어 죽이려던 생각을 버렸다.
  이윽고 그는 한결 침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저리 썩 나가!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그녀는 명령대로 일어나 순순히 나가버렸다.
  그 후 그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그는 길을 떠났다.  남쪽을 향해 태양을 바라보며 무작정 내려갔다. 그리하여 지중해안의 어느 계곡에 자리잡은 마을에 이르러 발길을 멈추었다. 그는 그곳에서 18개월 동안 비탄과 절망과 깊은 고독 속에서 지내었다.  자기를 배반한 그 여자에 대한 괴로운 추억과, 체취와 교태, 그 말할 수 없는 매력에 대한 이쉬움 속에서 그녀의 미모와 애무를 원망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는 프로방스의 골짜기를 헤매었다. 추억으로 하여 병든 머리를 이끌고 올리브 나무의 거무틱틱한 잎사귀 사이로 스며나오는 햇빛을 받으며 그는 끝없이 거닐었다.
 그는 괴로운 고독과 싸우는 동안에,  어느새 옛날의 경건한 신앙심―소년시절의 그 순수한 정열은 다소 식어 버렸지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일찍이 미지의 생애 대한 피난처로 생각되던 종교가 이제는 허위와 고뇌에 충만한 인생에 대한 피난처로서 그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기도하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던 그는 슬픔 속에서 더욱 기도에 힘썼다. 저녁이면 때때로 어둠컴컴한 교회 안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교회 안에는 제단을 지키는 성스러운 램프의 불꽃이 마치 하나님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처럼 외로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고민을 하나님에게 고백하고, 자기의 모든 괴로움을 호소하는 동시에, 충고를 구하고 동정과 구원과 보호와 위로를 애원하였다. 그는 날이 갈 수록 더욱 열렬히 부르짖는 기도 속에서 번번이 커다란 감격을 느끼는 것이었다.
 한 여인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은 그의 가슴은 아물 줄 모르고 언제나 헐떡이며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였으나, 차츰 기도를 계속하며 믿음을 길러 성자와 같은 생활을 하고, 불쌍한 인간을 위로하면서 이끌어 주시는 구세주와 진심으로 경건하게 은밀한 교섭을 계속하는 동안에, 신비스러운 사랑이 마음속에 움터 지상의 사랑을 정복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렸을 때의 뜻을 받들어 순결한 생활을 할 수 없던 그는 깨어진 생이나마 교회에 바치기로 결심하였였다.

 그리하여 그는 신부가 되었다. 그는 가문과 인척들의 힘으로, 우연히 찾아온 이마을 주임 사제(司祭)로 임명되었다.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기부하고, 한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씩 도와 줄 수 있는 정도의 재산만 가지고 경건한 예배를 통하여 인류에 대해 봉사할 수 있는 조용한 생활 속으로 은거해 버린 것이다.
 그는 소견은 넓지는 못하였으나 선량한 신부요, 군인의 기질을 타고 난 이를테면 신앙의 안내자―즉 본능과 취미와 욕망으로 말마암아 길을 잃어 버리곤 하는 인생의 산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을 강제로 옳은 길로 이끌어 주는 교회의 안내자였다. 그러나 옛날의 많은 기질이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 과격한 운동과 귀족적인 스포츠와 검술을 좋아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여성을 싫어하였다. 그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어린애들이 느끼는 막연한 공포심과 비스한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