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루루

 

MAUGHAM, WILLIAM SOMERSET

 

   현명한 여행가는 언제나 상상 속에서 돌아다니는 법이다. 언젠가 프랑스의 한 노인(정확히 말하면 아 사람은 사보이인이었다)은 <방안에서 하는 여행>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으므로,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그 표제만으로도 나의 공상을 자극하였다. 나는 이런 공상적인 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한폭이 성화(聖畵)는, 나를 자작나무 숲이 무성하고, 둥근 지붕을 한 교회들이 서 있는 러시아로 데려가 준다. 볼가강이 유유히 흘러내리고, 군데군데 집들이 들어 들어앉은 마을 어귀에 있는 주막에서는 사나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거친  양피(羊皮) 저고리를 걸치고,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나는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바라본 조그마한 언덕 위에 올라서서 거대한 이 도시를 내려다본다. 언덕을 내려오면 내가 일반 친구들보다 친숙한 알료쟈, 보른슨키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내가 도자기를 바라볼 때, 중국의 강렬한 향기를 맡게 된다. 나는 좁다란 논두렁 길이 아니면 나무가 우거진 산모퉁이를 돌아서 가마에 실려간다. 맑게 개인 아침나절에 터벅터벅 걸어가는 가마꾼들은 즐거운 듯이 지껄여댄다. 나는 때때로 멀리서 신비롭게 들려오는 깊숙한 절간의 종소리를 듣는다. 북경(北京)의 거리는 군중들로 가득차 있고 몽고의 사막지대에서 오피와 진귀한 약재(藥材)를 싣고 줄을 지어 질서정연하게 걸어 들어오고 있는 낙타 떼에게 길을 비켜 주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영국 런던의 오후는 때때로 무거운 구름이 낫게 감돌고 주위가 쓸쓸하여 우리를 우울하게 하기가 일쑤이다. 이때 창밖을 바라보면 산호섬(珊瑚島)의 백사장 위에 군데군데 야자수가 무성한 것을 볼 수 있다. 바닷가는 은빛으로 반짝이며, 햇볕 아래서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머리 위에서는 구관조(九官鳥)가 우짖고 파도는 끊임없이 암초에 밀려 닥치고 있다.

   ――이처럼 노변(爐邊)에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여행이 최고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여행에서는 우리의 환상이 절대로 일그러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커피에 소금을 타서 먹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소금을 타서 먹으면 톡 쏘는 맛이 있어, 그것이 특별하고 희한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이치로 낭만의 후광(後光)에 에워싸인 고장을 찾아 갈 때 느끼게 되는 환멸이 특수한 정취를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어떤 풍경에 뛰어난 아름다움을 기대했을 때, 거기서 받는 인상은 실제로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줄수 있는 것보다 한결 복잡한 내용일 수가 있다. 이것은 마치 한 위대한 인물이 지닌 성격상의 약점이, 그에게 대한 존경심을 덜게 되더라도, 그것이 그 인물을 더욱 흥미있게 해주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나는 호놀루루애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유럽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꽤 긴 여행을 하여야 갈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너무나 이방적이고 매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물론 내가 예상한 이 도시의 모습을 머릿속에 정확히 그리고 있지는 못하였으나, 눈앞에 나타난 광경에 대하여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호놀루루는 마치 전형적인 유럽의 도시였다. 석조로 된 저택에 오두막집이 마주 붙어 있고, 낡아빠진 목조 건물들이 고급 유리를 까운 산뜻한 상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거리를 전차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포드뷰익, 팩하드등과 같은 자동차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상점에는 미국 문명의 여러 가지 필수품들이 가득차 있었으며, 두집 건너 은행이고, 네집 건너 선박대리점이었다.

  거리에서는 별별 종족들이 한데 몰려 붐비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이곳의 기후에는 아랑곳도 없이 삣빳한 칼러에 검정 웃저고리의 차람새에, 머리에는 밀짚모자나 소프트 햇 중절모등을 쓰고 다닌다. 곱슬머리에 살갗이 연한 갈색인 카나카족들은 다만 샤쓰에 바지바람으로 돌아다니지만, 혼혈아들은 번쩍거리는 넥타이에 검은 반장화를 신고 말숙한 차람새를 하고 있다. 교활한 웃음을 띄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매우 친저하며 깨끗한 돛폭 천으로 만든 양복을 입고, 그 한두 발짝 뒤에는 그네들의 고유의 옷차람을 한 아내들이 등에 아기를 업고 따라간다. 화려한 색깔의 아동복을 입고 면도로 머리를 빡빡 밀어 버린 일본 어린이들은 귀여운 인형처럼 보인다. 다음은 중국인들의 차례다. 뚱뚱하고 돈 많은 중국 남자들은 미국식 옷차림을 하고 있으나, 검은 머리를 잘 빗어올린 중국 여자들은 무척 매력이 있다. 그녀들의 머리는 너무나 단정하여 좀처럼 흩어지지 않을 것 같이 보였으며, 흰색이나 곤색 또는 검정색 웃저고리에 바지를 입은 모습이 무척 날신해 보인다. 이 밖에도 필리핀 사람들이 있다. 필리핀 남자들은 큼직한 밀집모자를 쓰고 다니며, 여자들은 잔뜩 부풀어오른 소매를 단 노란색 무명 옷을 걸치고 있다.
   이곳 호놀루루는 동양과 서양의 교차지대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이 아주 낡은 것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설사 우리가 이곳에서 기대하던 낭만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여러모로 매혹적인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말과 사고방식이 다른 이방인들끼리 서로 이웃이 되어 살고 있어, 각자가 서로 다른 신을 섬기며,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그것은 사랑과 시장끼에 대한 두가지의 욕구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로부터 커다란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날씨는 무척 온화하고 하늘은 짙푸르며, 군중 틈에 끼어 걸어가노라면, 맥박이 뛰는 뜨거운 정열을 느끼게 된다. 한길 모퉁이의 단(壇)위에서 흰 방망이를 들고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본토박이 순경의 모습은 주위의 분위기에 어떤 위신을 던져 주지만, 그것은 단지 표면상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표면의 아래에는 암흑과 신비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밤중에 산림 속에서 나지막하게 두드리는 북소리에 별안간 정적이 깨어지기 시작한 때의 짜릿한 흥분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곳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기대하게 된다.

   내가 이처럼 호놀루루의 부조리(不條理)에 대하여 말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 들려 줄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들려 주려는 이야기는 원시적인 미신에 대한 것이다. 이곳의 정교한 문명 속에 이러한 미신이 뚜렷이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아직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전화나 전차, 일간 신문들이 존재하는 곳에 그와 같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을 수 있으며, 적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나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는 호놀루루를 안내해 준 친구의 태도에서도 부조리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부조리를 첫눈에 호놀루루의 가장 인상적인 특질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는 원터라는 미국 사람으로, 나는 뉴욕의 어떤 친지가 써 준 소개장을 갖고 그를 찾아갔던 것이다. 나이는 4, 50세 가량 되어 보이고, 관자노리 근처에 성긴 머리칼이 허옇게 탈색하고 있는, 날카롭고 메마른 얼굴을 한 사나이었다. 그는 눈을 끔뻑거리는 버릇이 있었으며, 두툼한 안경에서 풍기는 근엄한 인상이 꽤 재미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키는 후리후리하고, 체수는 홀쭉이었다. 그는 호놀루루 태셍으로, 부친은 큰 상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 상점에서는 메리야쓰류와 기타, 테니스 라켓에서 방수복에 이르기까지 멋쟁이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팔고 있었는데, 꽤 벌이가 좋았으므로, 아들이 장사를 하는 것을 거부하고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 그의 부친이 얼마나 화를 냈겠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원터는 20년 동안 무대생활을 해 왔었다. 때로는 이역에서 공연한적도 있었지만, 소질이 별로 없어 주로 가설극장에서 새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겨로 어리석지 않아, 오하이오주의 클리브런드에서 너절한 배역을 맡고 있느니, 차라리 호놀루루에서 양말대님 장사라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대를 버리고 사업에 종사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생활난에 허덕여 왔으므로, 자신이 원했더라면 돈을 벌어 대형 자가용을 굴리며 골프장 근처에 있는 오화로운 저택에서 사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마음껏 즐겼을 것이며,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사업도 빈틈없이 운영해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술에 대한 집념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기생활을 다시 계속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의 아트리에로 나를 데리고 가서,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림은 과히 손색이 없어 보였으나 내가 그에게서 개다한 작품은 못되었다. 그의 그림은 극히 작은 정물화로 모두가 가로 세로 각각 8인치에서 고작해야 12인치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꼼꼼하게 잘 다듬은 것들이었다. 그는 세부의 묘사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의 아트리에에 결려 있는 과일 그림들은 길란다요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것들이었다.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 끈기에 놀라며, 그의 재주에 탄복할 것이다. 그가 배우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까닭은 연기를 사전에 너무 치밀하게 연구하여 대담성과 폭을 잃은데 있는 것으로 난 생각한다. 그가 나한테 호놀루루의 거리를 안내하면서 보여 준 위세있고 아이러닉한 태도가 나는 저으기 재미있었다. 그는 호놀루루만한 도시는 미국에도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였지만, 그것은 좀 과장된 줄을 자기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동차로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건물들을 보여 주고 나서, 내가 그 건축물에 꽤 탄복하면, 매우 흐뭇해 하는 것이었다. 그는 돈 많은 사람들의 저택도 보여 주었다.

 「저것은 스텁스 가문의 저택이랍니다.」하고 그는 말하였다.
 「건물을 짓는데만도 10만불이 들었어요. 스텁스씨 댁이라면 이 고장에서는 꽤 명문에 속합니다. 스텁스씨가 이곳에 선교사로 온 것은 70년도 더 되는 옛날 일입니다.」
  그는 여기서 잠간 말을 멈추고, 커다란 둥근 안경 너머로 두 눈을 껌벅이먀 나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이곳에 있는 명문들은 모두가 선교사의 가문이랍니다. 호놀루루에서 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전에 선교사업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요?」
 「성경을 읽으셨지요?」
 「네, 좀 보았어요.」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 않아요. <조상이 신 포도를 먹으면, 그 자손의 이가 시니라>. 그렇지만 호놀루루에선 그와 반대인 것 같습니다. 카나카족에게 그독교를 가르쳐준 조상의 자손들에게는 땅이 굴러 들어왔으니까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지요.」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암요.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곳 원주민들은 가난뱅이가 되었어요. 토후(土候)들은 선교사들에게 존경의 표시로 토지를 기증하고, 선교사들은 천국에 보답을 쌓는 대신에 당을 사들였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선교사업은 분명히 좋은 장사였어요. 그들 중에는 사업을 버리고(사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테지)수째 토지 매매없자가된 된 선교사도 있지만, 이것은 예외에 속한 일이었어요. 대체로 사업 방면에 손을 댄 것은 그들의 자손들이었어요. 믿음을 전하기 위해 50년 전에 이곳에 건너온 아버지를 가진 사람들은 실로 행운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팔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제기랄, 시계가 멎어 버렸군요. 지금쯤 칵테일을 한잔 할 시간이 되었 겁니다.」
  우리는 포장이 잘되고 그 가장자리에 무궁화나무가 죽 늘어선 한길을 달려서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유니온 주점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아직 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한번 가 볼까요?」

   나는 유니온 주점이라고 하면 이곳 호놀루루에서 가장 유명한 곳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꽤 호기심을 갖고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주점에 가려면 킹가에서 좁은 골목길로 빠져 들어가야만 하였다. 그리고 이 골목에는 여러 회사의 사무실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출출하여 한잔 마시러 가는 술꾼을 보아도, 그들이 유니온 주점으로 가는지 혹은 주위의 사무실에 가는지 알 수 없다.
  이 주점은 안이 넓은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출입구가 세 군데나 되고, 실내를 가로지른 커운터의 맞은편 두 귀퉁이는 열 개의 조그만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조그마한 방들은 칼라카우아왕이 백성들 몰래 술을 마시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데, 그 어느 방에서는 검둥이 군주(君主)가 술을 한잔 앞에 놓고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과 마주앉아 있었을 관경을 상상해 보니, 통쾌하기 짝이 없었다. 짙은 금빛 틀 속에 유화로 된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빅토리아 여왕의 석판화도 두어 장 걸려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18세기의 낡은 동판화들도 걸려 있었으며, 그 중의 하나는 드 와일드의 과장된 화풍(畵風)을 닮고 있었다. 이런 그림이 어떻게 여기 붙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20년전의 그라픽지(誌)와 런던 뉴우스화보(畵報)의 크리스마스  증보판(增補版)에서 오래된 유화식(油畵式)판화들이 걸려 있었다. 그 밖에도  위스키며 진, 샴페인, 맥주 등이 광고와 야구팀 지방 교향악단의 사진들도 붙어 있었다.

   이곳은 방금 지나온 밝은 네거리의 현대적인 소란한 세계에는 속해 잇지 않고, 지금은 사라져가는 어느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마치 그 옛날의 냄새 같은 것을 맡는 기분이었다. 어둠컴컴한 불빛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루어, 암거래(暗去來)의 장소로 적당하게 생각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악한들의 무용(武勇)이 단조로운 인생을 잠식하던 살벌한 전시대(前時代)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내가 들어서니 실내는 거의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몇 사람의 상인이 커운터에 둘러서서 지껄이고 있었으며, 한족 구석에는 카나카족 두사람이 술을 마시고, 점원으로 보이는 두 사나이가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나머지 손님들은 매무새로 보아 뱃사공임이 틀림이 없었다. 즉 부정기 화물선의 선장, 1등 항해사, 기관사 등으로 보였다. 카운터 뒤에서는 흰 제복을 입고 면도를 깨끗이 한, 눈이 부리부리하고 술이 많은 곱슬머리의 뚱뚱한 요리사 두 사람이 이 주점의 명물인 호놀루루 칵테일을 부지런히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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