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MAUGHAM, WILLIAM SOMERSET

 

   그녀는 로자리아의 자극적인 시선에 미소로 대답하는 아들을 보자 분통이 치밀었다. 그녀는 전부터 이웃사람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행복하지만 자기는 비참한데다가, 그 무서운 비밀까지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모두들 한 패거리가 되어 아들을 자기에거서 빼앗아가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미칠 것 같은 환상에 더욱 그들을 미워하였다.
  그녀는 다음 일요일 오후에 자기 방에서 나와 뜰안을 가로질러 대문깐에 서 있었다. 이웃 사람들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저마다 한마디씩 하였다.
 「저 여자가 왜 저기 서 있는지 아세요? 귀하신 아드님께서 오실 텐데, 우리게게 그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예요.」
 「흥, 우리가 자기 이들을 잡아 먹나?」
  이윽고 아들이 도착하였다. 그러자 아닌게아니라 그녀는 아들을 재빨리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아들에 대하여 애인처럼 질투하는군.」
  필라가 말하였다.
  로자리아는 다시 깔깔대면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에는 짖궂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큐리토와 말이라도 한 마디 전네어 보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라 카치라가 노발대발할 것을 생각하니 로자리아는 흰 비빨이 드러나 보이도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 모자(母子)가 외출을 하려면 자기를 지나쳐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대문깐에 나가 서 있었다. 그러나 라 카치라는 로자리아를 보자 아들과 시선을 교환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아들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로자리아는 어깨를 으쓱 치켜올렸다.
 「흥, 나를 그렇게 쉽사리 물리치지는 못할걸!」
  그녀는 마음속으로 뇌까렸다.
  다음 일요일날 라 카치라가 대문깐에 나와서 기다릴 때, 로자리아는 멀찌감치 나가 그 청년이 오리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서성거렸다. 이윽고 큐리토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는 못본체하고 천천히 발길을 옮겨놓았다.
 「여봐요!」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건네었다.
 「어머, 전 도 누구시라구! 당신은 제에게 말을 통 건네지 않을 줄 알았는데……두려울 테니까요.」
 「저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는 으시대며 말하였다.
 「당신의 어머님은 빼놓고 말이죠?」
  그녀는 마치 그가 자기곁에서 떠나주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마지못해 걸어갔다. 그러나 그가 결코 자기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하고 그는 물었다.
 「큐리토, 당신이 그걸 알아서 무엇하겠어요? 빨리 어머니한테나 가 보세요. 도련님! 그렇지 않다가는 매를 맞을 테니까요. 당신은 어머니하고 함께 있을 때는 무서워 내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면서 뭘 그러세요.」
 「원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럼 안녕. 저는 볼일이 있어서 그만 가야겠어요.」
  로자리아는 점잖게 돌아가는 그를 뒤돌아보고 혼자서 깔깔 웃었다.
  청년이 어머니와 함께 외출할 때 로자리아는 전과 같이 또 뜰안에 있었다.
  청년은 수줍어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발을 멈추고서 인사를 하였다. 라 카치라는 발끈하여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큐리토, 이리와!」
  그녀는 거친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 거기서 뭘 기다리고 있는거냐?」
  그는 발길을 돌렸다. 로자리아에게 무슨 말을 건네려고 잠깐 멈칫하다가 자기를 억제하고 그냥 어둠컴컴하고 고요한 자기 방으로 되돌아갔다.

   2, 3일 후에 이곳 세빌의 수호신 성 이시드로의 축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석공과 그 밖의 몇몇 사람들이 이 휴일을 경축하기 위해 아파아트의 뜰에 초롱불을 한줄로 쭉 달아 놓았다. 그 초롱불은 맑게 개인 여름 밤을 찬란히 밝히고 있었다. 하늘은 반짝이는 별들을 반가이 맞아 주는 곳 같았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뜰 한복판의 의자에 모여앉아 있었다.
  부인네들은 어린것에 젖을 빨리고 부채질을 하면서 수다를 떨다가는 좀 나이가 찬 애가 보채기라도 하면 마구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이 저녁 한 때의 시원한 공기는 숨막힐 듯한 한낮의 더위에 비하면 매우 상쾌하였다. 투우 구경을 하고 돌아온 축들은 떠들어대면서 유명한 투우사 벨몬테의 재주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재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시각각으로 다채롭게 변해 갔다. 그들은 생생한 상상력을 더듬어 가면서 일찍이 이곳 세빌의 역사상의 흔적이 없는 매우 훌륭한 연기를 하였다고 지껄여대었다. 뜰안에는 라 카치라만 빼놓고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다. 그녀의 방에는 촛불만이 외롭게 깜박거렸다.
 「그런데 그 여자의 아들은 어디 갔어요?」
 「방에 있어요.」
  피라가 말하였다.
 「한 시간 전에 이리로 지나갔어요.」
 「아마 재미를 보고 있을테지요.」
  로자리아가 웃으며 말하였다.
 「로자리아! 라 카치라의 걱정은 작작하고 춤이나 한번 추어보지 그래.」
하고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하자,
 「그래, 그래, 아가씨께서 한번 춰보지.」
하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하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춤을 추기 좋아하지만, 남의 춤추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옛말에도 스페인 여자치고 춤추기 위해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한다. 모두들 재빨리 삥 둘러 앉았다. 석공과 전차 차장이 기타를 가지고 나왔다. 로자리아는 케스타네츠(춤출때 손에 쥐고 소리를 내는 악기의 일종)를 손에 쥐고, 자기 또래의 소냐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큐리토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자 비좁은 방안에서 귀를 기울였다.
  <춤들을 추는군.>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금새 사지가 근질근질하였다.
  그는 커어튼 사이로 초롱불이 환히 비치는 가운데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내다보았다. 두 소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로자리아는 나들이 옷을 입고 풍속대로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 꽂힌 한 송이 아름다운 카네이션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스페인에서는 사랑이 급속도로 움트고 자랐다.  그는 처음 로자리아에게 말을 걸던 날부터 줄창 그 아름다운 아가씨의 생각을 해 왔었다. 그는 창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너 거기서 뭘하고 있니?」
  어머니가 물었다.
 「춤추는 걸 구경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내가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보군요.」  「로자리아가 보고 싶어서 그러지?」
  어머니는 가로막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아들은 어머니를 밀치고 밖에 나가 춤 구경을 하였다. 어머니는 한두 발짝 따라가다가 그만두고 어둠컴컴한 곳에서 골이 잔뜩 나 애를 태우고 있었다. 로자리아는 그를 보았다.
 「저를 보고 놀라셨지요?」
  그녀는 그의 앞을 지나가면서 말하였다. 춤은 소녀의 마음을 미치게 하였으므로 라 카치라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한차례의 춤이 끝나자, 그녀의 파트너는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그녀는 서슴치 않고 큐리토에게 가서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쑥 내밀며 다가섰다.
 「당신은 물론 못 추지요?」
  그녀가 말하였다.
 「천만에, 출줄 알아요.」
 「그럼 오세요.」
  그녀는 애교있게 눈웃음을 쳐 보였으나,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어너미를 뒤돌아본 것이 어니라, 어둠 속에서 혼자 갇혀 있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던 것이다. 로자리아는 그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두려우세요?」
 「두려울게 뭐요?」
  청년은 어개를 으쓱 치켜올리며 말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빙 둘러앉은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기타를 치는 사람들의 솜씨가 서툴렀으므로 구경꾼들은 때때로<헤잇><헤잇>하고 소리를 질러 박자를 맞춰가면서 율동적으로 소벽을 쳤다. 로자리아가 큐리토에게 케스타네츠를 주었다.. 그리고 두 남녀는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귀에는 어둠 속에서 뭐가 돗가처럼<쉬!>하는 소리가 들여왔다. 그러나 이제 로자리아는 춤에 도취되어 잎뒤를 헤아리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깔깔대며 어둠 속에 희미하게 나타난 무섭도록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라 카치라는 춤추는 동작하며 좌우로 흔들어대는 몸집과 뒤얽힌 발걸음새를 잠자코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이 케스타네츠를 치며 로자리아를 껴안았을 때, 그녀가 멋있게 제스쳐를 부리며 몸을 뒤로 젖히고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글생글 웃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은 불타는 석탁처럼 이글거려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격분한 나머지 신음소리를 질렀다. 춤이 끝나자 주위의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하였다. 로자리아는 이에 응답하면서 생글생글 웃으며 큐리토에게 그가 그처럼 춤을 잘 추는 줄은 미쳐 몰랐다고 말하였다.

  라 카치라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아들이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였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럼 가보겠어요.」
하고 아들은 말하였다.
  어머니의 가슴은 괴로움으로 하여 피를 토할 지경이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자기가 갖고 있은 전부였으며, 이 세상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들이 미웠다. 그녀는 그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고 생각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그녀는 일하러 가지도 않고 로자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자이라는 어젯밤에 그 황홀한 춤으로 하여 약간 구겨진 옷차림을 하고 하고 나타났다. 라 카치라가 별안간 소녀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소녀는 질겁을 하였다.  「내 아들을 어떻게 할 심산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로자리아는 놀라운 얼굴을 하고 대답하였다.
  라 카치라는 격분한 나머지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러더니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깨물었다.
 「아, 넌 내말을 뻔히 알아들으면서도 시치미를 떼는구나. 너는 내 아들을 나한테서 빼앗아 가려는 거야?」
 「내가 당신의 아들을 원하는 줄 아세요? 제발 나한테 가까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런데 내가 가는 곳마다 뒤따라오니 어쩌면 좋아요?」
 「거짓말 말아!」
 「그럼 아들에게 물어 보세요?」
  로자리아의 목소리가 하도 앙칼져 라 카치라는 거의 참을 수 없었다.
 「저를 만나기 위해 거리에서 한 시간씩이나 기다리고 있어요. 왜 당신이 이들을 붙잡아 두지 못하세요?」
 「거짓말 말아! 네가 그러면서 뭘 그래!」
 「제가 원한다면 애인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요. 제가 왜 하필 살인범의 아들을 원하겠어요.」
  라 카치라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녀는 그만 로자리아에게 덤벼들어 머리칼을 와락 잡아 흔들었다. 소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피하려고 하였다. 마침 지나가던 웬 사람이 달려들어 그들을 떼어 놓았다.
 「큐리토에게서 손을 떼지 않으면 죽여 버릴  테다.」
  라 카치라는 외쳤다.
 「그럼 누가 겁을 낼 줄 알아요? 떼어놓을 수 있으면 떼어놓아봐요. 아들은 나를 자기 눈동자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이제 그만 이리가요.」
하고 그 남자가 말하였다.
 「로자리아, 말대꾸를 말어!」
 라 카치라는 격분한 나머지 마치 먹이를 빼앗긴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면서 거리로 뛰어나갔다.

   그날 밤의 춤은 큐리토를 미치게 하였다. 그는 로자리아와 깊숙이 사람에 빠졌던 것이다. 이튿날 그는 종일 그녀의 붉은 입술만 생각하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빛났으며, 그를 황홀케 하였다.  그는 열렬히 그녀를 요구하였다. 저녁이면 마카레나 방향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로자리아의 집앞에 가 닿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가 뜰안에 나타날 때까지 그는 어두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곤 하였다. 맞은편 끝에 있는 그의 어머니 방에서는 불길이 외롭게 비치고 있었다.
  <로자리아!>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러 보았다.
  그녀는 깝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보았다.
 「오늘은 웬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그녀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과 한시도 덜어질 수 없어.」
 「왜요?」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오늘 아침에 당신의 어머니가 나를 죽이려고 한 걸 아세요?」
  그녀는 안타루시아인 특유의 과장된 말씨로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였다. 다만 그의 어머니를 크게 격분시킨 자기의 마지막 모욕만은 빼 놓았다.
 「어머니는 악마의 성격을 갖고 있어요.」
하고 그가 말하였다. 그는 허세를 부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어머니께 말씀드리지요. 당신은 나의 애인이라고……」
 「퍽 반가워 하실테지요.」
하고 로자리아는 비꼬아 주었다.
 「내 아파트 문앞까지 와 주겠어요?」
 「글쎄요.」
  청년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말투로 보아 그렇게 나올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씨엘페스를 지나갈 때 전에 없이 신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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