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德

 

MAUGHAM, WILLIAM SOMERSET

 

 

  세상에 아바나 잎담배보다 더 좋은 담배는 흔치 않다. 내가 가난하던 젊은 시절에는 누가 한 대 주어야 겨우 얻어 피울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돈만 있으면 날마다 점심과 저녁식사 후에는 이 잎담배를 피우리라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처럼 젊은 시절에 내가 결심을 하여, 지금까지 계속하여 실천해 오는 것은 이것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환멸을 느끼지 않고 모를 정도로 작다든가, 혹은 피우기에 지루할 만큼 긴 담배는 비위에 맞지 않는다. 나는 쉽게 빨 수 있게끔 잘 말려 있고, 잎이 단단해서 입술에 묻어나지 않으며, 다 피운 후에도 향기가 남아 있는 담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나서 꽁초를 버리고, 담배 연기가 푸른 빛으로 변하며 허공으로 살아지는 것을 바라볼 때, 민감한 사람이라면, 그 반 시간 동안에 즐거움을 얻기 위해 소비한 모든 노고와 성의와 고초와, 거기에 따른 번거로움과 걱정, 그리고 복잡한 기구로 말미암은 상념으로 하여 마음이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이것을 위해 오랜 세월을 두고 열대지방의 태양을 쬐면서 땀을 흘려왔으며, 배들은 7대양을 찾아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맛좋은 백포도주 한 병에 굴을 실컨 먹을 때 더욱 절실해지며, 나아가서 양고기의 요리 같은 것을 먹을 때에는 거의 찾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왜야하면 이것들은 담배와는 달리 동물이며, 지구상에 몇 백년 동안 생물이 살아온 후로, 이러한 동물들이 결국은 얼음에 채운 접시 위나 은석쇠 위에서 그들의 생애가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두려움마져 느끼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둔한 사람들은 굴을 먹는 것이 그렇게 두려울 정도로 엄숙한 사실임을 미쳐 깨닫지 못할지 모른다. 또한 進化는 우리에게 굴들이 여러 세대에 결쳐서 슬기롭게 자기 자신을 보증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굴에는 거만한 인간 정신에 거슬리는 일종의 냉담성이 있으며, 인간의 허영심을 외면하는 자기 만족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눈물을 흘릴 수 없을 정도로 침통한 생각에 잠기지 않고서 어떻게 양고기 요리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여기 당신의 접시 위에 인간이 관여하고 한 종족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부드러운 고기 한 점이 놓여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운명도 매우 기묘하다. 날마다 목격하는 단순하고 평범한 여러 사람들이 은행원, 청소부, 합창단 둘째줄에 앉아 있는 중년부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등뒤에 뻗어 있는 오랜 역사와, 그들을 태초에 진흙덩어리에서 지금 현재의 이곳까지 데려온 가나긴 모험의 연속들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현재 이곳까지 데려오는데 이토록 많은 파란곡절이 필요하였다면, 그들에게는 그만한 意義가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만든 것이 창조자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당하고 있는 운명이 창조자에게는 보잘 것 없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뜻하지 않는 사고가 일어나면, 운명의 줄기는 끊어지고, 이 세상과 더불어 시작된 모든 이야기들은 갑자기 끝나며, 그것이 바로 바보가 들려 준 이야기처럼 보잘 것 없는 듯이 생각된다. 그처럼 극적인 중요성을 지닌 이 사건이, 그렇게 조그마한 원인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손쉽게 방지할 수 있는 대단치 않은 사건이,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사소한 행동이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전 생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어느날 내가 거리를 지나가지 않았던들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란 극히 환상적인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흥미있는 일을 보기 위해 유모어에 대한 특별한 쎈스를 가져야 한다.

   나는 어느 봄날 아침에 본드街를 걸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까지 별로 할 일도 없었으므로, 나는 혹시 신기한 물건이라도 경매에 붙이지 않나 해서 쇼스비 걍매장에 들려 볼 작정이었다. 거기까지 가려면 길을 하나 건너야 하였다. 내가 차들 사이로 빠져 길을 건너 맞은 편 길에 이르렀을 때, 마침 모자점에서 나오는 브르네오에서 알게 된 사람과 마주쳤다.
  「아니, 몰튼, 오래간만이오. 언제 귀국하였오?」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한 주일 전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지방 관리였다.
   주지사는 그에게 나에 대한 소개장을 써 주었으며, 나는 그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 한 주일을 보낼 계획인데 관영호텔에 묵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었다. 내가 도착하였을 때 그는 부두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으며, 나더러 자기와 함께 머물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청을 거절하였다. 내 숙박비를 그에게 부담시키고 싶지 않은데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함게 한 주일이나 보내기가 싫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있는 편이 더 자유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말하였다.

  「저에게는 방 여유가 있습니다. 게다가 호텔은 불결해요. 저는 반년 동안이나 백인과는 별로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인젠 혼자 있는 것이 지긋지긋할 지경입니다.」
  나는 그의 초대를 받아 조그마한 그의 증기선을 타고 둘이서 방가로에 도착하였다. 그는 나에게 술을 권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무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별안간 수줍어져서 조리있는 그의 유창한 말씨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의 불편을 덜어 주려고 노력하였다.(이곳이 그의 집이고 보면 내가 할 일이 못되었지만) 나는 그에게 새로 나온 레코드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축음기를 틀었다. 째즈 음악이 울려버지자 그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의 방가로는 강가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커다란 베란다가 거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실내장식은 직위에 따라서 언제든지 전근하는 관리생활의 양식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었다. 벽에는 장식품으로서는 원주민의 모자가 걸려 있으며, 그밖에 동물의 뿔과 피리와 팡이 있었다. 책꽂이에는 탐정소설과 오래된 잡지가 몇 권 꽂혀 있고, 건반이 노랗게 된 조그마한 피아노도 넣여 있었다. 방안이 말끔히 정돈되어 있지는 못하였지만 별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생김새를 잘 기억할 수 없다. 그는 젊은 청년으로(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이는 스물 여덟이었다.)언제나 얼굴에 선원티가 나는 매력적인 미소를 뜨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한 주일을 보냈다. 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산에 가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20마일쯤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농부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나누기로 하였다. 우리는 저녁마다 으레 클럽에 나갔다. 회원은 공장 지배인들과 그 조수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피차에 말도 별로 건네지 않는 처지였다. 우리가 함께 브리지 놀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몰튼이 그들에게 미리 손님 앞에서 자기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분위기는 언제나 딱딱하였다.

  우리는 클럽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레코드를 들은 연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몰튼은 할 일이 별로 없어 시간을 보내기가 주체로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력가로 원기왕성하였다. 이곳이 그의 첫 번째 부임지였으며 그는 한 사회인으로 자립하게 된 것이 무척 기뻤던 것이다. 그에게 단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맡고 있는 도로공사를 끝마치기 전에 다른 데로 근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공사는 그에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는 공사를 스스로 계획하여 자기에게 이를 맡기고 국고를 지출해 달라고 당국을 설득시켰던 것이다. 그는 직접 그곳을 답사하고 골목까지 낱낱이 조사하였으며, 여러 가지 기술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해 나갔다. 그는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기 전에, 털걱거리는 낡아빠진 포오드 자동차를 몰고 일하는 현장에 나가 얼마나 진첩되었는지 알아보곤 하였다. 그는 그 일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꿈도 공사에 대한 것을 꾸는 것이었다.

  그는 1년 후에는 공사를 끝낼 계획이었으므로 그 해까지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작품을 창조하는 화가나 조각가라 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정열을 바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열성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의 솔직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으며 그의 고독한 생활이며 승진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고향에 돌아갈 생각조차 물리치고, 일을 마치려는 그의 정열에 감동되었던 것이다. 그 도로의 길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15마일이나 20마일쯤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도로가 무엇에 긴요한지도 잊어 버렸다. 그도 그런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정열은 예술가의 그것이었고, 그의 슬리는 자연을 정복한 자의 그것이었다. 그는 일이 진첩됨에 따라서 이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는 밀림을 파혜처야만 하였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몇 주일 동안의 작업이 수포에 돌아갔으며, 지형의 갑작스러운 변동으로 적지 않은 두통거리였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잘 수습하여 원상대로 복구시켜야만 하였다.

   그에게는 자금도 넉넉하지 못하였다. 오직 그의 정열만이 그를 견디고 이겨나가게끔 해 주었다. 이 사업이 그에게는 일종의 장엄한 성격을 띈 것으로 보였으며, 일의 성패는 많은 일화를 낳으면서 전개되는 무용담이기도 하였다.

  그가 갖고 있는 유일한 불만은 낮이 너무 짧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할 일이 많았다. 그의 관할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재판관 노릇도 해야 하고, 때로는 세금도 거두어들여야 했다. 그리고 나이는 비록 스물 여덟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의 보호자 노릇까지도 해야 하였다. 그는 가끔 밖으로 여행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현장에 없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살기 위해 마지못해 일하는 인부들을 독려하며 하루 종일이라도 거기 눌러 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그를 몹시 기쁘게 한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그는 도로의 일부를 완성하기 위하여 어떤 중국인과 계약을 맺으려고 하였는데, 그 중국인은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였다. 그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는 여러차례 교섭을 하였지만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몰튼은 울화가 치밀었으며, 일이 일시 중단된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갖은 수단을 다 써 보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그가 사무실에 나갔더니, 전날 밤에 중국인 도박장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인부 한 사람이 크게 중상을 입고 가해자는 구속되었다. 그 가해자가 바로 물튼과 계약을 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몰튼은 모든 증거가 명백히 드러났으므로 그에게 18개월 동안의 중노동을 선하였다.
 「이제 그자는 무보수로 길을 닦게 되었어요.」
하고 몰튼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였다.

   어느날 아침에 우리는 그 중국인이 죄수의 옷을 걸치고 덤덤한 표정으로 일을 하는 것을 복격하였다. 그는 자기의 액운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는 그자에게 길 닦는 일이 끝나면 나머지 형기(刑期)는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했지요. 그랬더니 무척 기뻐하더군요. 그렇게 하는 건 별로 큰 문제가 아니지요.」

   나는 몰튼과 헤어지면서 그가 영국에 오게 되면 나에게 알려 줄 것을 당부하였더니, 그는 상륙하는 즉시로 편지를 띄우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였다. 나는 그때 기분으로 이렇게 초대를 하였지만, 그것은 진정한 마음에서 울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곧이듣는 사람이 있으면 좀 당황하개 된다. 인간은 누구나 고국에 있을 때에는 해외에 갔을 때와 판이하다. 고국에서는 온유하고 다정하며 자연스럽다.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많으며, 남에게 친절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기가 받은 대접에 대하여 답례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마음의 짐이 된다.

  자기의 고국에서는 명랑하던 사람도 으레 낯설은 주변에 오게 되면 무뚝뚝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주저하는 태도를 취하므로, 혹시 친구에게 소개라도 하면 그를 무척 딱딱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친구들은 저마다 예의를 지키려고 하다가도, 이 낯선 자가 가 버리고 다시 화제가 종전대로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먼 나라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적적하고 굴욕적인 경험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글지대 밖에서는 때때로 극진하게 초청이 와서 이를 반가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좀처럼 이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몰튼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젊고 또 독신이었다. 그런데 흔히 말썽이 되는 것은 부인들이었다. 여자들이 초청객의 충충하고 모양이 없는 못차림을 보고는 곧 촌티를 느끼고 본체만체하며 푸대접을 하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카아드놀이도 하고, 정구나 댄스를 즐길 수도 있다. 몰튼은 매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루 이틀 지나면 남들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왜 이리로 와서 곧 내게 알리지 않았오?」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폐가 될까봐 그랬지요.」
  그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원 별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는 본드가의 한 모퉁이에서 이렇게 잠시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낯선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그가 카키색 샤쓰나 정구복을 입은 외에는, 클럽에서 밤늦게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파자마 쟈켓에 사롱(말레이 섬의 토인들이 허리에 감는 천)을 걸친 모습 밖에는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저녁 옷차림일 것이다. 지금 입고 있는 곤색 세루 양복은 어딘가 그에게 좀 덜 어울렸으며, 흰 칼라 위에 솟은 그의 얼굴은 구리빛을 띄고 있었다.
 「도로공사는 어떻게 되었오?」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다 마쳤어요. 출발이 늦어질까봐 상당히 걱정했지요. 나중판에 가서 장애가 한두 가지 있었지만 그냥 밀고 나갔어요. 그곳을 떠나기 전날에는 포오드차로 도로 끝까지 한바퀴 돌아 왔지요.」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가 좋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런던에 와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지냈어요?」
  「옷을 몇 벌 샀지요.」
  「그래 재미가 어때요?」
  「굉장했지요. 좀 쓸쓸하기는 했지만 그런건 무관해요. 아무튼 밤마다 쑈오에 나갔어요. 아마 당신도 파머 집안 사람들을 사라와크에서 만난 적이 있으니까 아실 거예요.―― 이곳에 곧 도착할 예정이었어요. 우리는 함께 연극을 구경하기로 하였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드러눕게 되어 그들의 집안은 스코틀랜드로 가게 되었어요.」

  그는 매우 명랑하게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의 말은 내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도 똑같은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전에 출발에 앞서 여러 달을 두고 계획을 해 왔으며, 배에서 내렸을 때에는 너무 흥분하여 어쩔줄을 몰랐던 것이다. 상점과 클럽과 극장과 식당들로 가득찬 런던, 그는 이제 참으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었다. 런던은 그를 아주 삼켜 버렸다. 런던, 이상하게도 소란스럽고, 악의는 없으나 냉담한 도시, 그속에서 그는 어리둥절하였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새로 사귀는 사람들에게는 서로 상통되는 짐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정글에 있을 때보다 더욱 고독하였다. 다만 그가 우연히 동양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그장에서 마주쳐 하룻저녁을 함께 보내며 즐겁게 웃고 떠들던 때가 그에게 어느 정도의 위안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도, 나중에 휴가가 끝나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도 서운할 것이 없다고 실토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을 찾아갔다. 물론 반가웠지만 전 같지는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서먹서먹하였다. 영국 사람들의 생활은 이렇듯 지겨운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것은 기뻤으나 이제 더 눌러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강가에 있는 방가로와 그 일대를 산책한 일이며, 또 산다카니나, 쿠틴, 싱가폴 등에 가끔 들리곤 하던 즐거운 한 때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나는 몰튼이 도로공사를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휴가를 얻었을 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런던, 어떤 클럽이나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함께 연극을 즐기거나 한 잔 나눌 수 잇는 친구 한 사람도 없이 극장에 가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나는 설사 그가 런던에 와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난 주일 줄창 틈이 없었다. 바로 이날 저녁에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은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지내렵니까?」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파빌리온에 가 볼까 하지요. 그곳은 사람들이 많아 매우 혼잡하지만 그곳에 있는 친구가 표를 한 장 억어 주었어요. 당신도 가끔 좌석표 하나쯤은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두 장은 어렵더라도 말예요.」
  「저한테 와서 함께 저녁이나 나누지 않겠어요? 나는 헤이마킷으로 친구 몇 사람을 초대하기로 했어요. 식사를 마치면 즉시 극장에 갈 예정으로 있어요.」
  「그럼 가지요.」

   우리는 열한 시에 만나기로 하고,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 그와 헤어졌다.
   나는 그와 만나게 될 친구들이 그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내 친구들은 이미 중년신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초대할 만한 젊은 친구는 한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내가 사귀는 아가씨들은 아무도, 보르네오에서 온 수줍은 그 청년과 함께 춤을 추기 위해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비숍씨 내외가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아무튼 그로서는 집에 혼자 돌아와 열한 시부터 잠을 자기보다는 악대가 있고, 예쁘장한 부인들이 춤추는 것을 구경할 수 잇는 클럽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 더욱 즐거울 것이다. 그는 별로 갈 데가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의과대학 학생시절에 처음으로 찰리·비숍을 알게 되었다. 그는 키가 작달막하고 메마른 친구로, 엷은 다갈색 머리를 하고 용모는 투박한 편이었다. 반짝거리는 검은 눈이 총명해 보였지만, 안경을 쓰고 있었으므로, 얼굴은 둥글고 명랑하고 홍조를 띄고 있었다. 그는 여자를 남달리 좋아하였다.  돈도 없고 외모도 볼품없는 그에게 젊은 여자들이 언제나 따르며, 변덕스러운 그의 욕망을 채워 주는 것을 보면 그에겐 분명히 어떤 뛰어난 수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영리하고 교만 하였으며, 따지길 좋아하고 성미가 급하였다. 또 빈정대기를 잘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는 좀 불쾌한 친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지루한 느낌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제 50고개를 거의 넘어서게 되자 몸이 차츰 뚱뚱해지고 머리가 많이 벗겨졌지만, 두 눈은 금테 안경 뒤에서 유난히 버쩍이며,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남과 시비를 잘하고 과격한 편이었다. 그러나 선심을 잘 쓰고 재미있는 친구였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