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GHAM, WILLIAM SOMERSET

  잠자리에 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육지가 보일 것이다. 탁터 맥페일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갑판 난간에 기대어 밤하늘에 반짝이는 남십자성(南十字星)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선에서 1년 동안 복무한 끝에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데 예상 밖으로 시일이 오래 걸려, 앞으로 적어도 1년은 우풀루섬의 아피아에서 정양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기 한이 없었다. 하긴 지금까지의 여행만으로도 건강이 상당히 나아진 것 같았다. 선객들은 내일 아침에 튜투일라섬의 파고파고에서 내릴 사람이 몇 있었으므로, 저녁에 간단한 무도회를 개최하였다. 그의 귀에는 아직도 자동식 피아노의 거칠은 멜로디가 울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갑판 위는 조용해졌다.

  그는 자기 아내가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데이빗슨 내외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천천히 걸어가서, 그녀의 곁에 걸터앉았다. 모자를 벗은 그의 머리를 불빛 아래 바라보니, 정수리에는 대머리가 벗겨지고, 머리털은 물론 죽은깨가 섞인 피부에 난 잔털도 붉은 빛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사십세쯤 되어 보이며, 메마른 몸집에 까다롭고 좀 현학적(衒學的)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말투에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조용하였다.

  닥터 맥페일 내외와 데이빗슨 선교사 부처는 이 배에서 처음 만났지만, 서로 매우 가까워졌다. 그것은 그들의 취미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접촉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가깝게 맺어준 큰 인연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밤낮 흡연실에 모여 앉아 포오커니, 브릿지니하는 노름과 술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을 한결같이 싫어하는 점이었다.

  맥페일부인은 이배 안에서 데이빗슨 부처가 반가이 사귀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네 내외밖에 없다고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좀 수줍에하는 성미이긴 하지만 결코 어리석지는 않은 닥터 맥페일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흐뭇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가 가끔 배 안에서 남을 트집잡는 것은 다만 따지기를 좋아하는 성비 때문이었다.

  「데이빗슨부인은 우리가 없었더라면 여행이 지루해서 어떻게 견디었을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맥페일분인은 머리를 곱게 빗어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배에서 사귀고 싶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거예요.」
  「내가 뭐 대단한 인물인가. 선교사의 신분으로 그렇게 잘란 척해서는 안될텐데.」
  「뭐 잘난체해선가요. 전 그 여자의 말치를 짐작했어요. 그분들이 흡연실에 모이는 사나운 축들과 어울리기가 싫다는 거예요.」
  「그들의 교조(敎祖) 예수는 그렇게 배타적인 이물이 아닌데……」
하고 닥터 맥페일이 부웃으면서 말하였다.
  「제발 종교에 대해서는 농담 말아요. 제가 언제나 말하잖아요?」
   그의 아내는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성미 좀 고쳐요. 당신은 남의 장점은 전혀 보려고 들지 않는군요.」

  그는 푸른 논동자로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으나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마지막 말에 침묵을 지키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좋다는 것을 오랜 결혼생활을 통하여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아내보다 먼저 옷을 벗고 위층 침대에 기어올라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그가 이튿날 아침에 갑판에 나와 보니, 배는 어느새 육지에 가까이 와 있었다. 그는 탐스러운 눈으로 육지를 바라보았다. 은빛으로 가늘게 반짝이는 해변이 눈을 가로막는가 싶더니, 갑자기 나무가 무성한 언덕들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무성한 야자수는 해변 가까이 침범하고, 그 사이에 사모아인들의 초가집들이 모여 있고, 하얗게 빛나는 작은 교회가 보였다.

   데이빗슨부인은 남편의 옆에 와 나란히 섰다. 그녀는 검은 옷차림을 하고, 끝에 작은 십자가가 매달린 금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작달막한 키에 짙은 밤색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넘기고, 작은 코안경을 낀 푸른 눈이 튀어나와 있었다. 얼굴은 양처럼 길죽하였으나 아둔한 인상을 주지 않고 오히려 날카롭게 보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새처럼 동작이 민활하였다. 그녀의 특징은 역시 목소리로, 높은 쇳소리를 내고 변화가 없이 단조롭게 들렸으며, 시끄러운 찬공기(鑽孔機)의 소리처럼 신경을 자극하였다.

  「부인에겐 이곳이 고향 같겠군요.」
   닥터 맥페일은 억지로 가볍게 웃으면서 데이빗슨부인에게 말하였다.
  「우리 고향 섬들은 이 섬과는 달리 나지막해요. 산호(珊瑚)섬이니까요. 화산으로 되어 있지요. 그리로 가려면 아직도 열흘은 더 가야 해요.」
  「그만한 거리는 이 섬들 사이에서는 마치 욮 마을에 가는거나 마찬가질테지요.」
   닥터 맥페일은 익살스럽게 말하였다.
  「글쎄요. 그건 좀 지나친 말씀 같은데요. 하긴 바다에서는 거리가 조 달리 보인긴 해요. 그 점은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닥터 맥페일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 쉬었다.
  「전 우리가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하고 데이빗슨무인은 말을 이었다.
  「이곳은 일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하더군요. 기선이 들락거려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들뜨게하구요. 거기다가 해군기지까지 있으니까요. 그것은 토인들에겐 고마울 것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의 고장은 그런 훼방이 되는 것은 없어요. 하긴 거기 한두 사람의 장사치가 있긴해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처신을 잘하도록 타이르지요. 만일 이르는 말을 듣지 않으면 그곳을 자진해서 떠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게 하지요.」
  그녀는 코끝에 걸친 안경을 바로 잡으면서 푸른 섬을 날카롭게 내다보았다.
  「이곳에서는 선교사업을 한다는 건 거의 가망이 없는 일이에요. 저는 이섬을 뜨게 된 것을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몰라요.」

   데이빗슨의 전도 구역은 북부 사모아에 있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 섬들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무배로 자주 내왕해야 했다. 그런 때에는 아내가 본거지에 남아서 선교사업을 하였다. 닥터 맥페일은 그녀가 전도사업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때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토인들의 타락에 대하여 핏대를 올리면서 그럴싸하게 늘어놓았다. 그녀의 감정은 매우 섬세하였다. 그녀는 서로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닥터 맥페일에게 말하였다.
  「저희가 그 섬에 처음으로 왔을 때, 토인들의 결혼풍습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 입으로는 도저히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 없어요. 부인께 말씀드리겠어요. 아마 부인께서 선생님에게 얘기하실 거예요.」

   그 후에 그는 데이빗슨부인이 자기 아내와 갑판 의자에 나란히 앉아 두어 시간 동안이나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운동하러 그녀들의 부근을 거닐 적에, 먼 청산의 유수처럼 속삭이는 데이빗슨부인의 흥분한 목소리를 듣고, 아내의 벌린 입과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무슨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줄 알게 되었다. 밤에 선실에서 아내는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숨을 죽여 가면서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저 제가 말씀드린 게 어떠세요?」
  이튿날 아침에 데이빗슨부인은 의기양양해서 닥터 맥페일에게 물었다.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세요? 제가 직접 산생님께 말씀드릴 수 없는 까닭을 아셨죠? 선생님이 아무리 의사라도 말씀예요.」

   데이빗슨무인은 닥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끈덕지게 가지가 바라던 성과를 올렸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저희가 처음 그곳에 갔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는 말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실테지요. 어떤 미을에서도 성한 처녀는 한사람도 찬장볼 수 없었다니까요. 아마 제말을 얼른 곧이듣지 않으실 거예요.」
  그녀는 성하다는 말을 학술용어로 힘주어 강조하였다.
  「저는 주인과 그 문제에 대해 여러번 의논하고, 우선 춤부터 금하기로 했어요. 그들은 춤에 미쳐 있으니까요.」
  「저도 젊어서는 춤을 좋아했어요.」
   닥터가 말하였다.
  「저도 선생님께서 어젯밤에 부인보고 한번 추자고 하시는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전 남자가 자기 아내와 춤추는 걸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부인께서 추지 않겠다고 하시는 걸 보고 한결 마음이 놓였어요. 그런 환경에서는 자기자신을 마땅히 지켜야 하니까요.」
  「그런 환경이라니요?」
  데이빗슨부인은 코안경 너머로 그를 재빨리 쳐다보았으나 곧 대꾸는 하지 않았다.
  「백인들 사이에서는 추는 경우와는 환경이 다르지요.」
하고 그녀는 말을 계속하였다.
  「전, 주인이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을 잠자코 바라보는 남편의 심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동감이에요. 저는 결혼하고 나서 한번도 춤을 춘 적이 없어요. 그러나 토인들의 춤은 전혀 달라요. 춤 자체가 고약할뿐더러 더 고약한 행동으로 이끌어가거든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하나님의 덕분이지요. 우리구역에서는 우리가 온 후로 8년 동안 아무도 춤을 추지 않았어요. 정말예요.」

   그들은 항구입구에 들어와 있었다. 맥페일부인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배는 급히 방향을바꾸어 천천히 증기를 뿜으며 가고 있었다. 항구는 크고 육지로 들러싸여 군함과 많은 배가 넉넉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높고 험한 푸른 언덕이 솟아 있고, 항구의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정원에 둘러싸인 지사(知事)관저에는 바다에서 미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두서너 채의 깨끗한 방갈로우와 테니스 코오트를 지나 창고가 달려 있는 부두로 나왔다.

   데이빗슨부인은 옆으로 2,3백 야드 떨어진 곳에 머물러 있는 작은 돛단배를 손가락질하였다. 그들을 아피아까지 태워다 줄 배였다. 섬의 사방에서 토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극성스럽고 떠들썩하니 활기에 넘쳐있었다. 어떤 사람은 호기심에서, 어떤 사람은 시드니로 떠나는 여객들과 상품을 매매하려고 모여든 것이다.

   그들은 파인애플, 커다란 바나나다발, 타파 옷감, 조개나 상아로 만든 목걸이, 카바, 나무그릇, 전투형 통나무배의 모형 등을 갖고 왔다. 그리하여 말쑥하고 단정한 옷차람에 깨끗이 면도를 하고 정직하게 보이는 미국인 선원들은 그들 사이를 서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들 말고 공무원들도 몇 사람 눈에 띄었다. 맥페일 내외와 데이빗슨 부처는 짐을 육지에 운반하는 동안에 구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닥터 맥페일은 아이들이며 젊은 남자 할 것 없이 거의 모두가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궤양(潰瘍)같은 흉한 상처를 남긴 피부병을 바라보았다. 그의 직업적인 눈은 처음으로 상피병(象皮病)을 보고 유난히 반짝였다. 사나이들은 이 상피병으로 말마암아 크고 무거운 팔과 흉한 다리를 질질 끌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토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라바라바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저건 보기에도 민망스러운 복장이에요.」
하고 데이빗슨부인이 말하였다.
  「주인은 저걸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사람들이 허리에 붉은 무명 한조각밖에 두르지 않고 있을 때, 어찌 도덕적이기를 바랄 수 있겠어요?」
  「저 옷은 이곳 기후에 매우 적합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의사는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말하였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 상륙하였는데, 더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파고파고는 언덕에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바람은 한 점도 불어오지 않았다.
  「저의 담당 구역의 섬에서는 말예요.」
하고 데이빗슨부인은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무도 라바라바를 입지 못하도록 금했어요. 그래서 늙은이 몇 사람만 아직도 그것을 걸치고 있을 뿐이에요. 여자들은 모두 옷자락이 길고 느슨한 웃옷을 입고, 남자들은 바지와 샤쓰를 입도록했어요. 저희가 온지 며칠 안되어 주인은 보고서에 이 섬에 살고 있는 열살 이상의 소년들이 모두 바지를 입게 되기 전에는 훌륭한 신도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썼지요.」
   데이빗슨부인은 새같은 눈으로 항구의 입구 위로 두세 차례 떠오른 무거운 잿빛 구름을 쳐다보았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어서 비를 피할 데로 들어갑시다.」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양철지붕을 한 커다란 창고 속으로 들어갔다. 비는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얼마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이윽고 데이빗슨씨가 왔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에 언제나 맥페일 내외에게 공손하게 대해 왔었다. 그는 아내와는 달라 사교성은 없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보내었다. 그는 말이 적고 좀 우울한 편이었다. 그의 외모는 특이하여, 키다리인데다 깡마르고, 길다란 사지는 동체에 헐렁하게 달려 있었으며, 볼이 푹 패이고, 광대뼈가 특 튀어나와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두툼한 관능적인 입술과 너무나 대조를 이루었으며, 머리를 길게 기르고, 코고 검은 눈에는 언제나 슬픔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크고 긴 손가락을 가진 그의 손은, 그가 힘이 세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특이한 것은 누구에게나, 억눌린 정열의 소유자로 보이는 점이었다. 그것은 매우 돋보이고, 은연중에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이때 그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왔다. 이 섬에 살고 있는 토인들 사이에 사망률이 높은 무서운 홍역이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은 육지로 옮겨 검역소의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런데 아피아의 항구에서 이배는 선원 가욷데 전염된 사람은 없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질 때까지 항구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지시가 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열흘은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소.」
  「나는 아피아에 급히 가봐야 할텐데……」
   닥터 맥페일이 말하였다.
  「도리가 없어요. 만일 배에서 환자가 더 생기지 않으면 백인들만 태우고 가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나 토인과의 내왕은 석 달 동안 금한다는군요.」
  「이곳에 호텔이 있어요?」
   맥페일부인이 물었다.
  「없는데요.」
  「그럼 우리는 어떡허죠?」
  「내가 지사와 의논해 보았더니 바닷가에 방을 세놓는 상인이 있대요. 비가 그치면 곧 그리로 가서 알아보시죠. 편히 지내리라는 기대는 말구요. 침대와 비를 피할 지붕만 있으면 감지덕지해야죠.」

   비는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우비를 걸치고 다시 우산을 받쳐들고 출발하였다. 그곳에는 마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몇 채의 관청 건물과 가게가 한둘, 그리고 야자수와 바나나나무 사이에 토인들의 집이 몇 채 보일 뿐이었다.

  그들이 찾아 떠난 집은 부두에서 5분쯤 걸리는 곳에 있었다. 2층 거물로 아래 위층에 넓은 베란다가 있었으며, 지붕은 양철로 되어 있었다. 주인은 호온이라는 혼혈인으로, 갈색 살결을 한 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토인 아내와 함께 살면서 아래층에 가게를 내어 통조림과 면직물을 팔고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방에는 가구가 별로 없었다. 맥페일 내외가 든 방에는 떨어진 모기장이 달린 초라한 낡은 침대와, 삐걱거리는 의자와, 세면대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주위를 돌아보았다. 비는 여전히 쏟아져내렸다.
  「당장 필요한 짐만 풀도록해요.」
   맥페일부인이 말하였다.

 그녀가 여행용 가방을 끄르고 있을 때, 데이빗슨부인이 방에 들어왔다. 우울한 환경도 그녀에게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듯 그녀는 매우 명랑하고 행동이 민첩하였다.
  「바늘과 헝겊 조작을 꺼내어 바로 모기장을 고치도록 하셔야죠.」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잠도 주무시지 못할테니까요.」
  「모기가 그렇게 사나운가요?」
닥터 맥페일이 물었다.
  「요즈음은 한창 모기철이에요. 꽤 극성을 떨어요. 두분께서 아피아의 지사댁 파아티에 초청을 받아 가보세요. 부인들마다 손발을 싸도록 덮개를 나눠 주는 걸 보실 거예요.」
  「비가 잠시 동안이라도 멈췄으면 좋으련만.」
맥페일부인이 말하였다.
  「해가 나면 좀 기분이 달라져 니곳을 편히 꾸며 볼 생각도 날지 모르니까요.」
  「아니, 언제까지 해가 나기를 기다려요. 이 파고파고란 공장은 태평양에서 비가 많이 오기로 유명해요. 저 산들과 만(灣)이 마냥 비를 끌어들이지요. 그리고 1년 중에 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비에 흠뻑 젖을 각오를 해요.」

   그녀는 얼빠진 사람처럼 방안에 서 있는 맥페일 내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들을 인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너무나 무기력하여 짜증이 났으나, 모든 것을 챙기고 싶은 일종의 충동에서 손이 근질거릴 지경이었다.
  「바늘과 헝겊 조각을 이리좀 주세요. 댁에서 집을 푸는 동안에 제가 모기장을 고쳐 놓을게요. 식사는 한 시나 되어야 하게 될거에요. 맥페일선생님은 부두에 가서 댁의 짐짝들이 비를 맞지 않는지 돌아보고 오시는 게 좋을 거에요. 이곳 토인들을 아직 잘모르시죠. 그들은 짐짝을 비 맞는 고에 내동댕이치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요.」

  의사는 우비를 다시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호온은 문깐에서 그들이 타고 온 배의 조타사(操舵士)와 의사가 2등 선객과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주름진 알굴을 하고 몸차림이 누추한 조타사는 의사가 자나가는 것을 보고 인사를 하였다.
  「의사 선생님, 홍역 때문에 퍽 딱하게 되었습니다 그려.」
하고 그는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는 벌써 자리를 잡으셨군요.」
   닥터 맥페일은 그가 지나치게 추근추근하게 구는 것이 못마땅하였으나, 워낙 온순한 사람이라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네, 우리는 위층에 방을 얻었어요.」
  「톰슨양이 선생님들과 같은 배로 아피아로 가게 되어 제가 데리고 왔습죠.」

   조타사는 엄지 손가락으로 옆에 서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나이는 스물 일곱쯤 되어 보이고, 통통하여 좀 천해 보이기는 하였지만, 예쁘장하였다. 그녀는 흰 옷을 입고 커다란 흰모자를 쓴고 있었다. 그리고 흰 무명 스타킹을 신은 살찐 아랫도리가 번들거리는 흰 가죽 장화위로 불룩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닥터 맥페일을 보고 애교 있게 생글생글 웃었다.
  「이 사람은 저에게 ㅔ일 작은 초라한 방을 주고 하루에 1딸라50센트나 내라지 뭐예요.」뚱뚱하고 유들유들한 호온이 조용히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스원, 좋아. 자네가 정히 그렇게 말한다면 한번 생각해 봄세. 아내와 의논해서 좋도록 하지.」
  「그런 소리 말구, 지금 당장 결정을 짓도록 하세요. 하루에 1딸라 외에는 동전 한 잎 더는 못낼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하고 톰슨양이 말하였다.

  닥터 맥페일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는 톰슨양이 그렇게 뻔뻔스럽게 흥정을 하는 것을 보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는 언제나 부르는대로 값을 치르는 성미였다. 아니 그는 흥정을 허여 값을 깎느니 더 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집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스원의 얼굴을 봐서 그렇게 하지요.」
  「그야 물론 그래야지요.」톰슨양이 말하였다.
  「어서 들어와 한 잔 하세요. 스원씨, 내 가방을 갖다 주세요. 그 속에 진짜 라이주(酒)가 들어 있어요. 의사 선생님도 함께 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만 두겠어요. 지금 짐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러 가는 길입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하고 빗속으로 나왔다. 항구 입구 쪽으로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져 맞은편 바닷가는 희쁘옇게 보였다. 그는 라바라바만 걸친 채 커다란 우산을 쓰고 있는 몇몇 토인과 마주쳤다. 그들은 저마다 의젓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걸어가면서 그에게 웃어보이면서 괴상한 말로 인사를 건네었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