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 邦 人
第 1 部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1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니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온 것이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경박>
이 전보만으로서는 돌아간 날자를 알 수 없다. 아마도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은 알제에서 약 20리쯤 떨어진 마랑고에 있다. 오후 두 시에 버스를 타면 날이 어둠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밤샘도 하고 내일 저녁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장에게 이틀 동안의 휴가를 요청하였다. 뚜렸한 이유가 있는 까닭에 사장은 거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그야 제 탓이 아니니까요.」
사장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슬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구태어 변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히려 사자이 나에게 조문이라도 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마 모래쯤 내가 장례를 마치고 오면 무슨 일이 있을 테지. 지금은 어쩐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장례식을 치루고 나면 엄연한 사실이 되어 예절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두 시에 버스를 탔다. 날씨가 몹시 무더웠다. 나는 언제나 하느 습관대로 셀레스트네의 레스트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레스트랑 종업원들은 모두들 나를 동정해 주고 슬퍼해 주었다. 그리고 셀레스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란 한 분밖에 없는 것이니……얼마나 슬프겠오!」
내가 레스트랑을 나올 때 종업원들은 모두 문깐까지 바래다 주어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좀 무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양로원으로 가는 동중에서야 겨우 생각이 나서 에마뉴엘의 집에 들려 검은 넥타이와 완장을 빌려왔으니 말이다. 에마뉴엘은 몇 달 전에 아저씨를 잃었던 것이다.
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갔다. 그렇게 서둘러 뜀박질을 하고, 버스에 흔들리며, 또 가솔린 냄새와 길위를 반사하는 햇빛, 그러한 모든 것 때문에 아나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버스 소에서 사뭇 자고 있었다. 눈을 뜨자, 어떤 군인이 내 어깨에 기대고 있다가, 나에게 웃어 보이며 먼곳에서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길게 말하기 싫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양로원은 마을에서 약 2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걸어서 갔다. 나는 곧 어머니의 유해를 보려고 하였지만 문직이가 먼저 원장을 만나야 한다고 하였다. 원장은 바쁜 분이라 한참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동안 문직이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드디어 나는 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나를 자기 사무실에서 맞아 주었다. 키가 작은 노인으로 레지웅·돈뇌외르 훈장을 차고 있었다. 그는 맑은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하도 오랫동안 놓지 않으므로, 나는 어떻게 손을 뽑아야 할지 매우 난처하였다. 원장은 서류를 뒤적이고 나서 말하였다.
「뫼르소오부인은 지금부터 3년전에 이리로 오셨습니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오직 당신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나를 책망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
「변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당신 서류를 읽어 보았지만 어머님을 부양할 형편이 못되더군요. 어머님에게는 돌볼 사람이 필요하였는데, 당신의 급료는 얼마 되지 않고……하여튼 어머님은 이곳에 계시는 편이 더 행복하셨을 겁니다.」
「네. 사실 그런 셈이죠. 원장님.」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어머님에게는 같은 연배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난날의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지요. 당신은 젊으니까, 같이 살면 아마도 적적했을 겁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집에 같이 계실 때 어머니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하시며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양로원에 들어가자 처음 며칠 동안은 우는 일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성(惰性)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에 내가 별로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일요일을 허비해야 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차표를 사가지고, 두 시간 동안이나 여행을 해야 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원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머니를 보고 싶으실 테지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방문을 나서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층계로 나오면서 말하였다.
「유해는 조그마한 빈소(殯所)에 옮겨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하였지요. 이 안에서 사망자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은 2, 3일동안 신경이 날카로와져 곤란한 일이 많답니다.」
우리는 안뜰을 지나갔다. 거기에는 노인들이 많이 모였으며, 두서넛씩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에는 잠시 말을 그치더니, 지나가고 나자 마치 재잘거리는 앵무새들처럼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집 앞에 이르자, 원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가보겠습니다. 뫼르소오씨, 사무실로 오시면 언제든지 뵙겠습니다. 장례시은 아침 열 시로 되어 있습니다. 밤샘할 것을 생각하고 정한 거지요. 그리고 한 말슴 드릴 것은 어머님께소 평소에 이 안 친구들에게 장례식은 종교장으로 해 주었으면 하고 말슴하셨던 모양이더군요. 종교장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내가 갖추어 놓았으니 그리 아십시요.」
말을 마치자 그는 돌아갔다. 나는 원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어머니는 무신론자(無神論者)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숭상한 일은 없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천장에 유리창이 달리고 하얗게 회칠을 한 매우 밝은 방이었다. 의자와 X자모양을 한 틀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있는 두 개의 틀 위에는 뚜껑이 덮인 관이 가로놓여 있었다. 호도 기름을 칠한 널판 위에 대충 박아 둔 나사못만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관 곁에는 희 불라우스를 입고, 머리에 짙은 빛깔의 수건을 쓴 간호부가 있었다.
그때 문직이가 내 뒤를 따라왔다. 그는 약간 더듬거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입관은 하였습니다만 보실 수 있도록 뚜껑을 열어 드리죠.」
그가 관으로 다가서려고 하기에 나는 제지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보지 않으시렵니까?」
「네, 그만두겠습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괜한 말을 하였구나 싶어서 좀 어색하게 되었다. 그는 곧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왜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나무라는 어조가 아니라, 그저 이유를 알아 보자는 듯 하였다. 나는 대답하였다.
「글쎄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흰 수염을 비비 꼬면서 나를 보지 않고 말하였다.
「하긴 그러실 겁니다.」
맑고 푸른 그의 눈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얼굴 빛은 좀 붉은 편이었다. 그는 나에게 의자를 권하고 자기도 내 뒤에 조금 떨어져서 걸터앉았다. 간호부가 일어서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문직이가 나에게 말하였다.
「종기가 나서 저렇답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간호부를 쳐다보았다. 눈 아래를 감은 붕대가 머리까지 싸고 있었으며, 코끝 언저리에도 붕대가 덮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붕대로 뒤덮다시피 하였다.
간호부가 나가 버리자 문직이가 말하였다.
「저도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내가 어떤 시늉을 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자리에 선 채, 나가지 않고 서 있었다. 그렇게 내 등뒤에 서 있는 것이 나로서는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방안에는 저녁때가 가까운 석양의 아름다운 햇빛이 가득차 있었다. 벌 두리가 우리창에 부딪치며 붕붕거렸다. 나는 어렴풋이 졸음이 왔다. 문직이에게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는 말하였다.
「이곳에 오신지 오래 되십니까?」
「5년 됐습니다.」
하고 그는 마치 그렇게 묻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는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내가 그에게 당신은 마랑고 양로원에서 문직이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더라면, 그는 매우 놀랐을 것이다. 그는 올해 예순살로, 파리 태생이라고 하였다. 그때 나는 그이 이야기를 가로막고 말하였다.
「그러세요? 그럼 이 고장 분이 아니시군요.」
그가 나를 원장실로 안내하기 전에, 나에게 들려준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나에게 산이 없는 평지에서는, 더구나 날씨가 몹시 더울 때에는 소히 매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파리에서 산 일이 있기 때문에 촘처럼 그곳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도 그때였다. 파리에서는 시체를 3, 4일 두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서둘러서 곧 영구차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말하였다.
「여보, 그런 이야기는 이분에게 할 것이 못돼요.」
영감은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사과 하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뛰어들어,
「아닙니다. 별 말슴을 다 하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문직이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고 재미있게 생각되었기 깨문이다.
그는 조그마한 분소방에서, 자기는 극빈자로서 양로원에 들어왔지만, 건강하여 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자진하여 문직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도 역시 양로원에 적을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그가 원내(院內)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니, <그네들>이니, 또 때로는 <늙은이들>이니 말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양로원에는 이 문직이보다 더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물론 그들과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문직이로서 그들에게 어느 정도 권리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간호부가 들어왔다. 갑자기 떵거미가 내리더니 곧 유리창 위로 밤이 덮여왔다. 문직이가 스윗치를 누르자, 별안간 쏟아지는 불빛으로 하여 나는 앞이 캄캄하도록 눈이 부셨다. 그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내가 별로 생각이 없다고 하자, 그는 밀크커피를 한잔 가져오겠다고 하였다. 나는 밀크커피를 대단히 좋아하므로 그러라고 하였다. 잠시 후에 그는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그 커피를 마시고 나니, 담배 생각이 났다. 그러나 어머니 유해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몰라 주저하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망서릴 까다락이 없었다. 나는 문직이에게 한 대 권하고 둘이서 같이 피웠다.
문득 그가 말하였다.
「자당님의 친구분들도 밤샘을 하러 오실 겁니다. 풍습이 그러니까요. 의자와 커피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나는 두 개의 전등 중에서 하나는 끌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바람벽에 반사하는 불빛이 눈부시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문직이는 안된다고 하였다. 다 켜든지, 아주 끄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별로 유의하지 않았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돌아와서 의자를 늘어놓고는 한 의자 위에다 커피 주전자와 둘레에 찾잔 두 개를 놓았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 유해 저편으로 가서 나와 마주앉았다. 간호부는 방 구석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팔꿈치의 움직임으로 보아 털실로 무엇을 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안이 훈훈한데다가 커피를 마셔서 몸이 한결 더워졌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부터 밤의 그윽한 꽃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나는 돔 졸았던 모양이다. 무엇이가 스치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으로 방안의 환한 불빛은 더욱 눈이 부셨다. 내 앞에 그림자 하나 없고, 모든 것이, 모서리 하나하나, 곡선 하나하나가 누이 아프도록 똑똑히 드러나 보였다. 그때 어머니의 친구(院內)들이 들어왔다. 모두 여너문 명 되었는데,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눈부신 불빛 속을 살며시 살며시 걸어 들어와 의자 하나 삐걱거리지 않고 앉았다. 나는 그때처럼 자세히 사람을 본 일이 없으며, 얼굴, 옷차림, 그리고 사소한 거동 하나하나가 모조리 눈에 띄었다. 그들은 마치 이 세상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없이 조용하였다. 여자들은 거의 모두가 앞치마를 치고 허리띠를 동여매어, 커다란 배를 더욱 드러내보였다. 나는 늙은 여자들의 배가 그때처럼 부른 것을 본 일이 없었다. 한편 남자들은 거의가 몹시 메마르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보이지 않고, 주름 바탕 한가운데 희미한 점이 번쩍거리는 얼굴을 보고 나는 저으기 놀랐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제각기 나를 바라보기 위해 이가 빠진 입속으로 입술이 말려들어간 얼굴을 어색하게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 대한 인사인지, 혹은 그들의 일종의 습관인지 나는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아마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문직이를 둘러싸고 나와 마주앉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거기 와 앉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착각을 하였다.
자시 후 한 여자가 울기 시작하였다. 둘째 줄에 앉은 그녀는 앞에 앉은 다른 여자에게 가리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짧게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줄곧 울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녀가 언제까지고 울음을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이 생각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힘없이 침울한 표정을 하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모두들 관이라든가, 지팡이라든가, 그 빆에 무엇이든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한 가지만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렇게 슬피 울고 있는 여자를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저으기 이상스러웠다. 나는 그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말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문직이가 그녀 곁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무엇이라고 소근거렸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다시 울음을 계속하였다. 그때 문직이가 내 곁에 와서 앉았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나를 외면하고서 입을 열었다.
「저분은 자당님과 매우 각별하게 지냈지요. 이 양로원 안에서 자당님과는 유일한 친구였는데 이제 그야말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저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한숨과 흐느낌은 차츰 뜸하여 갔다. 그녀는 훌적이더니 마침내 울음을 그쳤다. 나는 잠은 오지 않았으나 피곤하여 허리가 뻐근하였다.
지금 여기에는 대면하기가 거북한 사람들의 침묵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때때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나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리는 거기 앉아 있는 노인들이 볼 안쪽을 빨아서 그와같이 아릇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들 자신은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제각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 앞에 누워 있는 시체는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된 인상었던 듯 싶다.
우리는 모두 문직이가 따라주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밤이 새었다. 한 번 눈을 떠보니 노인들은 모두 쭈그리고 앉은 채 잠들어 있었는데, 한 사람만은 지팡이를 쥔 손등 위에 턱을 고이고 마치 내가 깨기를 기다리고라도 있었다는 듯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가 허리가 몸시 아파서 눈을 떴다. 유리창 위로 아침 햇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잠시 후 노인 한사람이 잠을 깨어 기침을 하였다. 그는 바둑 무늬가 있는 커다란 손수건에 침을 밷고 있었는데, 그것은 담을 뱉는다기보다 개래를 잡아뽑는 듯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깨우고, 문직이가 갈 시간이 되었다고 일러 주었다. 그들은 일어섰다. 괴로운 밤샘을 하느라고 그들의 얼굴은 부석부석하였다. 방문을 나서면서 그들은 모두 나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서로 한 마디의 이야기도 주고 받지 않은 그날 밤이 마치 우리들의 친밀감을 한결 두텁게 한 듯 싶었다.
나는 피곤 하였다. 문직이가 자기 방으로 안내해 주어 나는 간다한 세수를 마쳤다. 그리고 또 밀크커피를 마셨다. 매우 맛이 좋았다. 밖으로 나왔을 땐 해가 높이 떠 있었다. 바다와 마랑고 사이에 가로 누운 언덕 위로 하늘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언덕 위로 소금기가 풍기는 냄새를 싣고 바람이 불어왔다.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가본 일이 없었으므로, 어머니만 아니라면 산책하기가 얼마나 즐거우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원의 플라타나스 마무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선한 흙 냄새를 들어마셔서인지 졸음이 오지 않았다. 희사의 동료들 생각이 났다. 바로 지금쯤 그들은 일터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것이 제일 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집 안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에 자기 자신을 되찾았다. 창문 밖에서는 한동안 소란하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해는 더 높이 떠올랐다. 내 발에 햇빛이 쪼이기 시작하였다. 문직이가 마당을 건너와서, 원장이 나를 부른다고 일러 주었다. 나는 원장실에 가서 그가 시키는대로 여러 가지 서류에 서명을 하였다. 그는 줄무늬 있는 바지에 검은 웃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손에 전화를 든채 나에게 말하였다.
「장의사(葬儀社) 사람들이 조금 전에 왔습니다. 관을 덮어야 하겠는데 그러기 전에 한 번 더 어머님을 보지 않으시렵니까?」
나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원장은 전화로 목소리를 낯추어 일렀다.
「퓌자크, 인부들에게 일을 하라고 하게.」
그리고 나에게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하기에, 나는 고맙다고 그에게 치사를 하였다. 그는 자기 책상 뒤에 짤은 다리를 포개고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는 우리 두 사람 외에 당버 간호부가 참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윈칙적으로 양로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장례식에 참석 할 수 없었다. 다만 밤샘만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건 인정 문제입니다.」
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특별히 어머니와 절친한 친구였던 토마·페레라는 노인만은 장지까지 따라가라는 허락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원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그건 좀 어린애 같은 감정이지요. 어머님과 그는 떨어져 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원내(院內)에서는 모두들 놀리느라고 페레에게 <당신의 약혼자이구려> 하면 빙그레 웃는 것이었어요. 그들에게는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이 기뻤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님이 세상을 따난 것을 그는 몹시 슬퍼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의 권고대로 어제밤의 밤샘만은 금했습니다.」
우리들은 꽤 오랫동안 말없이 있었다.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무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문득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마랑고 교부(敎父)님이 벌써 오시네. 꽤 부지런하시군.」
그는 마을에 있는 교회까지 가려면 적어도 35분은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내려갔다. 빈소가 있는 건물 앞에 교부와 합창대 어린이 둘이 서 있었다. 한 어린이는 향로(香爐)를 들고 있었는데, 교부는 은줄의 길이를 맞추려고 그에게로 허리를 굽혔다. 우리가 앞으로 가자, 교부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나를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나는 관의 나사못이 조여지고 방안에는 인부네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영구차가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원장의 말과, 기도를 시작하자는 교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이링 빨리 진행되었다. 인부들은 큰 보자기를 들고 관 앞으로 다가서고, 교부와, 그를 뒤따르는 어린이들과 함께 나와 원장도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 낯선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뫼르소오씨입니다.」
하고 원장이 말하였다. 나는 그 여인의 이름을 들은 일이 없다. 다만 그녀가 당번 간호부임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웃는 기색도 없이 뼈가 드러난 길쭉한 얼굴을 약간 숙였다. 우리는 시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섰다. 우리는 인부들의 뒤를 따라 양로원을 나왔다. 영구차가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양이 길다란데다 옷칠(漆)을 하여, 번쩍거리는 품이 필통을 연상하게 하였다. 그밖에 형색이 어울리지 않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가 페레씨라는 것을 나는 곧 알았다. 그는 꼭대기가 둥글고 챙이 넓직한 소프트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바지가 구두 위에 구겨 늘어진 옷차림을 하고, 크고 흰 카라가 달린 샤쓰에는 지나치게 작은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리고 죽은깨가 박힌 코밑에서 입술이 떨고 있었으며, 가냘프고 축 늘어진 머리칼은 못생긴 귀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선지피처럼 새빨간 귀가 달려 있어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 십장이 우리에게 자리를 정해 주었다. 교부가 앞장을 서고, 다음엔 영구차, 영구차 주위에는 네 사람의 인부, 그 뒤에 장장과 나, 끝으로 당번 간호부와 페레씨가 따르기로 되었다.
이미 하늘에는 햇빛이 가득 퍼져 있었다. 햇볕은 땅위를 쨍쨍 내려쬐기 시작하였다. 더위는 어느덧 심해갔다. 출발하기 전에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몹시 더웠다. 노인은 모자를 벗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 있으려니까, 원장이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장은 나에게, 어머님과 페레씨는 간호부와 함께 저녁마다 마을가지 산책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위의 벌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밑으로 내다보이는 언덕까지 잇닿은 사이프레스 나무 숲이며, 검붉고 푸릇푸릇한 땅, 그린 듯이 드문드문 산재해 있는 집들을 통하여, 나는 어머니의 심경을 헤아릴 수 있었다. 저녁은 그 지방에서 끝없이 서글픈 휴식의 시간과도 같았으리라. 오늘은 대기에 흘러넘치는 햇빛으로 말미암아 아물아물 아물거리는 풍경은 보기에도 허망하고 갑갑하였다.
우리 일행은 길을 떠났다. 그때 나는 페레영감이 다리를 약간 전다는 것을 알았다. 영구차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영감은 점점 뒤떨어지는 것이었다. 영구차 곁을 따라가던 인부 한 사람도 지금은 뒤에 떨어져서 나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태양이 하늘로 그렇게 빨리 떠오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벌서 벌판에는 윙윙거리는 벌레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풀잎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뺨위로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모자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손수건으로 부채질을 하였다. 옆에서 걸어가던 인부가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는 오른 손으로 모자챙을 들어 올리고, 왼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셨지요?」
그는 하늘을 가르키며 말하였다.
「어지간히 내려쪼입니다.」
나는 「네」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잠시후에 다시 물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나는 또 「네」하고 대답하였다.
「연세가 많으십니까?」
「꽤 많았습니다.」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고개를 돌렸더니 우리 뒤로 한 오십 미터쯤 떨어져서 폐레영감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어 들고 팔을 휘저으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돌려 원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불필요한 몸짓은 전혀 하지 않고, 점잖게 걷고 있었다. 이마 위에는 땀이 몇 방울 흘러내렸지만, 굳이 그것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행열이 좀 빠른 것 같았다. 주위 일대는 햇빛을 받아 한결같이 눈부시게 빛나는 벌판이 보일 뿐, 하늘에서 내려쬐는 햇볕은 뜨거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행은 새로 포장을 한 길을 지나게 되었다. 뜨거운 햇볕에 아스팔트가 녹아 발이 빠져서 번쩍이는 바닥에 발자국을 내어놓곤 하였다. 영구차의 새까만 빛깔들 사이에서 나는 정신이 좀 얼떨떨하였다. 햇볕,가죽 냄새, 영구차를 끄는 말똥 냄새, 옻냄새, 향 냄새, 잠을 못잔 하룻밤의 피로, 이 모든 것들이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뒤를 돌아 보았다. 구름처럼 무더운 공기속으로 페레영감이 까마득하게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유심히 살펴보니 길을 벗어나 벌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길은 좀 더 가서 구부러져 있었다. 페레영감은 그 고장 지리를 잘 알고 있으므로 우리 일행을 따라오려고 지름길에 접어든 것이다. 길이 구부러진 곳에 이르렀을 때, 그는 우리를 따라왔다. 그러더니 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벌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는 그러기를 여러 차례나 되풀이 하였다. 나는 관잣노리에서 핏대가 뛰어올랐다.
그다음에는 모두가 하도 급속히, 순조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므로, 내 기억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마을 어구에서 당번 간호부가 나에게 한 말이다.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답고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천천히 가면 더위를 먹을 염려가 있지요. 그렇다고 빨리 가면 땀이 나서 안돼요. 교회당에 들어가면 오한이 날 테니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밖에 그날에 있던 몇 가지 광경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페레영감이 마지막으로 마을 근처에서 우리를 따라왔을 때, 그는 흥분과 슬픔으로 하여 눈물이 뺨 위에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은 주름살에 배어 흘러내리지 않았다.눈물은 맺혔다가는 합쳐져서 쭈그러진 얼굴 위에, 옻을 바르듯이 물칠을 해 놓은 것 같았다. 그밖에 생각나는 것은, 교회당과 보도 위에 서있던 마을 사람들, 묘지에 피어난 제라니움 꽃, 페레영감의 기절한 모습(그는 마치 이형이 해체되어 쓰러지듯 하였다), 어머니의 관 위로 굴러 떨어지던 붉은 흙, 그 속에 뒤섞여 묻히던 흰 나무뿌리. 또 사람들의 목소리, 어느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일, 끊임없는 엔진 소리, 그리고 버스가 마침내 깨끗한 알제 거리에 도착하여, 나는 이제는 삻컷 잠을 잘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기쁨――그러한 것들이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