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 邦 人
第 1 部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2
나는 잠에서 깨어나 이틀 동안 휴가를 청하였을 때, 왜 사장의 기색이 좋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바로 토요일이다. 나는 그것을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생각이 들었었다. 사장은 내가 자연히 일요일가지 나흘 동안 쉬게 될 것이므로, 그의 마음이 탐탁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어머니의 장례식을 오늘 치루지 않고 어저께 한 것은 내 탓이 아니었다. 또한 나는 어차피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장의 심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제 일로 피곤하였기 때문에 일어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수염을 깎으면서 오늘은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던 끝에 해수욕을 가기로 하였다. 나는 항구의 해수욕장으로 가려고 전차에 올라탔다. 그리하여 곧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득실거렸렸다. 나는 거기서 전에 우리 회사에 있던 타이피스트 마리·콘르돈나를 만났다. 당시 나는 그녀를 좋아하였다. 그녀 역시 나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곧 그녀는 회사를 구만두어, 우리는 사귈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나는 그녀가 부표(浮票)위로 오르는 것을 거들어 주면서 그녀의 가슴을 스쳤다. 그녀가 부표 위에서 배를 깔고 업드렸을 때, 나는 물속에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눈밑으로 흘러내린 채 웃고 있었다. 나도 부펴에 매어달려 그녀의 곁으로 기어올랐다. 어쩐지 나는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나는 희롱을 하는 것처럼 머리를 뒤로 젖혀 그녀의 배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므로 나는 그냥 그러고 있었다. 온 하늘이 나의 눈속으로 잦아드는 듯하였고, 높고 푸른 하늘에는 황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목덜미에서 마리의 배가 들먹이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부표 위에서 어렴풋이 잠들어 있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지자, 마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서 팔로 그녀의 껴안고 함게 헤엄을 쳤다. 그녀는 줄창 웃고 있었다. 우리가 물가로 나와 몸을 말리고 있을 때 그녀는 말하였다.
「선생님보다 제가 더 검군요.」
나는 그녀에게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지 않겠느야고 물었다. 그녀는 웃고 나서, 페르낭델이 주연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가 옷을 다 입었을 때, 마리는 내가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것을 보자, 놀라는 표정을 하며 상사(喪事)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대답하였다. 언제 상을 당하였는가를 알고 싶어 하기에 나는「어제」라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약간 뒤로 물러섰지만, 별로 책망하지는 않았다.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하였으나, 사장에게도 그런 말을 한 일이 있었으므로 그만 두었다. 그런 말을 한댔자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말이란 어차피 좀 어긋나게 마련이다.
마리는 저녁이 되자,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다.
영화는 때때로, 우습긴 하였지만 싱겁게 끝났다. 마리는 자기 다리를 내 다리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여화가 끝날 부렵에 키쓰를 한다는 것이 그만 서툴게 되고 말았다. 영화관을 나와 그녀와 둘이서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마라는 이미 가 버리고 없었다. 그녀는 아주머니에게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나에게 하였다. 나는 그날이 일요일인 것을 알게 되자 기분이 언짢았다. 나는 자리 속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베게에 마리의 머리칼이 남긴 짭짤한 냄새를 맡으면서 열 시까지 잠들었었다. 그리고 나서 침대에 눈운채 열두시까지 담배를 피웠다. 나는 여느 때처럼 셀레스트네 레스토랑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레스토랑 사람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걸어올 터인데, 나는 그것이 싫었다. 나는 계란을 부쳐오게 하여, 빵도 없이 접시에 입을 대고 먹었다. 빵을 사러 내려가기도 싫었던 것이다.
조반을 먹고 나서 심심하기에 집안을 서성거렸다. 어머니가 계실 때에는 알맞는 아파아트 방이었다. 지금 나 혼자에겐 너무 커서 식당의 테이블을 나의 방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약간 찌그러진 의자들과, 유리가 노랗게 된 옷장, 화장대, 그리고 구리 침대가 놓인 이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 밖의 것은 모두 팽개쳐 두었다. 나는 할 일이 없어 옛 신문을 한 장 읽어 내려갔다. 나는 크륜셀 향염(香鹽)광고를 오려서, 재미있는 신문기사를 모아 두는 노오트에 붙였다. 그리고 나서 손을 씻고 발코니에 나가 앉았다.
내 방은 교외의 큰 거리로 향해 있었다. 오후의 날씨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거리는 녹진하여, 뜸뜸이 오가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쳤다. 맨 먼저 소풍을 가는 가족들이 지나갔다. 바지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덮인 해군복을 입고, 풀기가 빳빳하여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두 소년과, 커다란 리본에 칠피 구두를 신은 소녀, 그뒤에는 자주빛 옷을 입은 둥뚱한 어머니와 호리호리한 아버지가 따르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나도 얼굴만은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비 모양의 끈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단장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와 그의 아내를 보자 동네 사람들이 왜 그를 신수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후에 젊은이들이 지나갔다. 제각기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붉은 넥타이에, 허리를 졸라 맨 윗도리, 수를 놓은 포켓, 코고 네모잔 구두――그런 차림새를 하였다. 나는 그들이 시내로 영화구경을 가는 것임을 추축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일찌감치 길을 떠나 왁자지껄하면서 전차를 타려고 발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지나간 후 한길에는 점점 사람의 그림자가 뜸하였다. 아마도 극장마다 영화가 시작된 모양이다. 이제 가도에는 가게를 보는 사람들과 고양이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 위로 보이는 하늘은 맑았지만 윤기가 없었다. 맞은편 담배가게 주인은 의자를 문앞에 내다놓고 등판 위에 두 팔을 고이고 구꾸로 타고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미어질 듯 초만원을 이룬 전차들도 지금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담배가게 옆에 있는 조그마한 카페<피에로>에서는 보이가 빈방을 쓸고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나도 의자를 담배가게 주인처럼 돌려놓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리하리라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 두 대를 피우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쵸코렛 한 조각을 갖고 창 앞에 돌아와서 먹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으로 보아 소나기가 올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늘은 다시 개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비를 약속이라도 하듯이 먹구름이 지나가느라고 거리는 어둠침침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섯 시에 전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야외경기장에서 구경꾼들을 싣고 온 것이다. 승객들은 발판이며 난간에까지 매달려 있었다. 다음 전차의 승객들은 저마다 손에 조그마한 가방을 든 것으로 보아 그들이 선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냅다 고함을 질렀다. 그들의 클럽은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높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 몇 사람은 나에게 손짓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이겼어!」
하고 나에게 외치기도 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그렇다」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 때부터 버스가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기울었다. 하느은 지붕 위로 붉게 노을지고, 저녁때가 가까워지자 거리는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다. 행인들이 차차 늘어갔다. 사람들 속에는 그 신수가 좋은 영감도 눈에 띄었다. 어린애들은 손목을 잡혀 울며 끌려오고 있었다. 뒤이어서 동리 영화관에서 구경꾼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구경꾼들 중의 젊은이들은 평상시보다 굳은 결심이라도 한듯한 비장한 표정으로 보아 나는 활극을 구경하였으리라고 짐직하였다. 시내 영화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좀 뒤떨어져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앞에 간 구경꾼보다 좀 심각해 보였다. 그들은 길가에서 맍은 편 인도 위를 거닐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동리의 젊은 여자들은 모자를 벗은채 서로 팔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나란히 서서 이 일행과 마주치며 희롱을 하자, 여자들은 고개를 돌리고 킬킬대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나와 안면이 있는 몇몇 여인들은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가로등이 켜지면서 어둠 속에서 반짝이이기 시작하던 별들을 희미하게 가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람과 빛이 뒤바뀌는 보도를 바라보고 있는 탓으로 나의 눈은 피로하였다. 가로등은 눅룩한 보도를 환히 비추고, 전차의 헷드라이트는 반짝거리는 행인의 머리칼이며, 웃음을 띄운 얼굴, 혹은 팔목시계 위에 불빛을 던지는 것이었다.
드디어 전차의 왕래가 차츰 뜸해지고, 다시 쓸쓸해진 보도 위를 고양이가 천천히 건너가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저녁을 먹을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의자 뒷등에 오랫동안 턱을 고이고 있었으므로 목덜미가 아팠다. 나는 빵과 제리를 사가지고 올라와서 내 손으로 요리를 하여, 서서 뜯어먹었다. 다시 창가로 가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바람이 싸늘하였다. 창문을 닫고 방안으로 돌아오자 거울 속에 비친 테이블 위에는 알콜 램프와 빵조각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대 나는 일요일이 또 지나가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끝났으며,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되니, 결국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