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 邦 人

第 1 部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5

  레이몽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 친구 한 사람(그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이다)이 알제 근방의 조그마한 별장에서 일요일 하루를 보내도록 나를 초대하였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러고 싶기는 하였지만, 어떤 여자 친구와 만날 약속이 있다고 하였다. 레이몽은 그 여자 친구와 동행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자기 친구의 부인은 남자 떼들을 자기 혼자서 상대하지 않게 되어 퍽 반가워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외부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사장이 싫어하는 줄 잘 알고 있으므로, 곧 수화기를 놓으려는데, 그는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초대에 대한 것은 저녁에라도 권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야기가 있어서 전화를 걸었노라고 말하였다. 그는 진종일 그 정부(情婦)의 오라비가 낀 아리비아 사람들의 패들에게 뒤를 쫓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혹시 집 근처에서 그놈들을 만자거든 나에게 좀 알려 주게.」
  나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하였다.

 잠시 후에 사장은 나를 불렀다. 전화는 좀 삼가고 일에 더 충실하라는 말을 하겠지 하고 생각하자, 은근히 불쾌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아직 구체적인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계획에 대하여 나와 의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하여 사장은 다만 내 의견만을 들어 보려는 심산이었다. 즉 파리에 출장소를 내어, 직접 큰 회사와 거래를 틀 계획인데, 그리로 갈 의향이 없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되면 파리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며, 1년에 얼마 동안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네는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마음에 들 걸세.」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라고 대답하였다. 사장은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갖지 않는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이란 결코 생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떤 생활이든 다 그것이 그것이며, 이곳에서 지내는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못마땅한 눈치를 보이면서, 나는 언제나 딴전을 피우며 야심이 없어서 일을 해 나가는데 지장이 많다고 하였다. 나는 일을 하려고 자리에 돌아왔다. 나는 굳이 사장의 비유를 거슬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내 생활을 바꿔야 할 아무런 까닭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다. 학생시절에는 그런 야심도 많았지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때, 그러한 것이 실제로 전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왔다. 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무방하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경혼해도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가가의 여부를 알고 싶어 하였다. 나는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그건 필요없는 말이며,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저하고 결혼해요?」
하고 마리가 반문하였다. 나는 역시 그런건 중대한 일이 아니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말하였다. 말하자면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쪽이고 나는 승낙을 하였을 뿐이다.

 그녀는 나에게<결혼이란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래듯 말하였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자기와 같은 관게를 맺은 다른여자들로부터 청혼을 받더라도 승낙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가의 여부를 생각해보는 듯하였지만,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섰다가,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모양인데, 나중에 바로 같은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덤덤히 앉았노라니, 그녀는 웃으면서 내 팔에 매달리며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결혼하겠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사장이 한말을 들려 주었더니, 그녀는 파리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전에 잠시 파리에서 산 일이 있다고 말하자, 어떻더냐고 묻는 것이었다.
 「더러운 도시야. 비들기들도 보이지만, 뜰안은 어둠침침하고, 사람들은 너무 피부가 창백하지.」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우리는 그후 큰 거리를 거닐었다. 여자들은 모두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도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이 있어 주었으면 싶어서 셀레스트네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였다. 그녀는 그러고 싶지만, 볼일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어느새 집 근처에 와 있었다. 내가 잘가라고 하자, 그녀가 나를 쳐다보면서,
 「내가 어떤 볼일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을 미쳐 못했노라고 말하자, 그녀는 나를 책망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의 어색해하는 표정을 보자 다시 웃고 나서 내 앞으로 다가와 입술을 내미는 것이었다.

  셀레스트네 레스트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막 수저를 들고 있노라니까 카가 작으마한 웬 여자가 들어와서 나의 테이블에 앉아도 좋으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앉아도 괜찮다고 대답하였다. 그녀의 거동은 호들갑스럽고, 능금 같은 얼굴에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쟈켓을 벗어젖히고 다급히 매뉴를 살펴보더니, 셀레스트를 불러 명확하고 재빠른 목소리로 음식을 주문하고 오오르 피에보르를 기다리는 동안에 핸드빽을 열고 네모진 종이조각과 연필을 꺼내어 계산을 해 보고는, 지갑에서 팁까지 합쳐서 정확한 금액을 꺼내 놓았다. 오오르 피에브로가 나오자 그녀는 성급히 먹었다. 다음 요리를 기다리며 또 다시 핸드빽에서 푸른색연필과 한 주일 동안의 래디오 프로그램이 실려 있는 잡지를 꺼내어 거의 모든 프로에 정성껏 하나하나 표적을 하였다. 잡지는 모두 열 두어 페이지쯤 되었으므로, 그녀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 세밀히 그 일을 계속하였다. 내가 식사를 끝마쳤을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 표시를 하기에 열중해 있었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마치 자동인형 같은 몸짓을 하며 쟈켓을 입고 나가버렸다. 나는 별로 할 이도 없기에, 레스토랑에서 나와 잠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보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와 정확한 발걸음으로 갈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녀는 옆으로 비키지도 않고 뒤돌아 보는 일도 없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시야에서 그녀를 놓쳤으므로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였지만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문깐에 싸라마노 영감이 서있는 것을 보고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그는 개 마당에 가보아도 볼 수 없으니 개는 필경 잊어 버린 것이라고 하였다. 그곳 직원들은 아마 차에 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모양이다. 영감이 경찰에서 그런것도 모르냐고 하자, 흔적도 없이 날마다 일어나는 일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싸라마노 염감에게 다른 개를 기르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그는 개와 오래 지내는 동안에 정이 들어서 그런다고 하였다. 그럴법한 일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쭈그리고 앉고, 싸라마노 염간음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감은 나와 마주앉아 두 손을 무릎위에 놓고 있었다. 그는 앍은 모자를 쓴채, 누런 수염 밑으로 말을 씹어삼키듯이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와 마주앉아 있기가 좀 부자연스러웠지만, 별로 할 일도 없는데다가, 잠도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나는 그이 개에 대하여 몇 마디 물어 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그의 아내가 죽은 후부터라고 하였다. 그는 상당히 늦게 결혼 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연극을 좋아하여, 군대에서는 군이극 <보오드빌>에 출연한 일조차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철도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얼마 안되는 은급이나마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의 가정생활은 썩 행복하지는 못하였지만 대체로 보아 원만하였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직장 동료에게 부탁하여 어린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처음에는 우유로 길러야 했다. 그런데 개의 수명은 사람의 수명보다 짧은 까닭에 그들을 함께 늙어갔다.

  「그 놈은 성미가 못되어서 가끔 입에다 그물을 씌우곤 했지요.」
하고 영감은 말하였다.
  「그렇지만 좋은 개였어요.」
   내가 혈통이 좋은 개라고 말하자, 싸라마노 영감은 흐뭇한 표정으로,
  「게다가」하며 말을 이었다.
  「병에 걸리기 전에 보신 일이 없으시죠? 그 털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개가 피부병에 갈린 후로는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영감은 포마드를 발라 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개의 노쇠현상으로 고칠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하품을 하자 노인은 그만 가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좀 더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개가 그렇게 되어서 안됐다고 하자, 그는 고맙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그 개를 퍽 귀여워하였다고 말하였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가엾은 자당님>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내가 몹시 쓸쓸할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영감은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재빠른 어조로, 동리에서는 모두들 내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냈기 때문에 나를 불효막심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어머니를 몹시 사랑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노라고 하였다. 나는 어찌된 영문이지 내가 동리에서 악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으며, 내게는 어머니를 부양할 만한 돈이 없었으므로, 양로원에 보낸 것은 당연한 처사로 생각한다고 대답하였다.

  「더구나 어머님은 내게 하실 말씀도 없구 해서 적적해 하신걸요.」
하고 내가 덧붙이자
  「그럴테죠, 양로원에서는 친구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하고 그는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방으로 가서 자려고 일어섰다. 이제 그의 사생활에는 큰 변화가 왔는데,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알지 못하였다. 내가 그와 알게 된 후 처음으로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 그의 피부의 비눌이 닿는 것이었다. 그는 히죽 웃어 보이고는, 방을 나서려다 말고,
  「오늘 밤만은 제발 개들이 짖지 말아 줬으면 좋으련만……. 혹시 우리 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거든요.」하고 말하였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