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 邦 人

第 1 部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6

    일요일이면 좀처럼 잠이 깨지 않아, 마리가 와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마구 흔들어 깨우게 마련이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이 해수욕을 가고 싶어서 아침도 먹지 않았다. 나는 속이 텅 빈 것 같고 머리가 좀 아팠다. 담배를 피워 물어도 입맛이 쓰기만 하였다. 마리는 나더러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흰옷을 걸치고 머리를 풀어헤쳤다. 내가 예쁘다고 하지 그녀는 기쁜 듯이 생긋 웃었다.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레이몽의 방문을 노크하였다. 그는 곧 내려오겠다고 대답했다. 거리리에 나서자, 나는 피로하여 덧문을 열지 않고 있었던 탓으로 쫙 퍼진 햇살에 마치 따귀라도 얻어맞은 듯하였다. 마리는 기뻐서 깡충거리며 날씨가 좋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였다. 나는 기분이 좀 나아져서 시장기를 느꼈다. 내가 마리에게 배가 고프다고 하였더니, 그녀는 우리 두 사람의 수영복과 수건밖에 들지 않은 험겁가방을 열어 보였다. 나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레이몽이 그의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하늘색 바지에 소매가 짧은 흰 샤쓰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매꼬모를 썼으므로 마리는 우습다고 깔깔대는 것이다. 흰 팔뚝에는 검은 털이 덮여 있었다. 내 눈에는 좀 보기 흉했다. 그는 자못 만족한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며 내려왔다. 그는 나에게
  「안녕하시오, 영감.」
하며 말하고 나서 마리를 <마드마젤>이라고 불렀다.

  그 전날 나는 그와 함께 경찰에 가서 그 계집(레이몽의 정부)이 그에게 버릇없이 굴었다고 증언을 하였다. 레이몽은 견책을 받고 풀려나왔다. 나의 증언을 트집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앞에서 그와 의논하여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하였다. 바닷가는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버스를 타면 전차보다 더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친구도 우리가 일찍 찾아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막 떠나려는 순간 그는 갑자기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라비아 사람들 한 패가 담배가게 진열장 앞에 기대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우리를 마치 돌이나 죽은 마무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레이몽은 왼쪽에서 둘째 녀석이 바로 그놈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근심스러운 표정이었으나, 그건 이미 다 끝나 버린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마리는 영문을 몰라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에 나는 레이몽에게 아라비아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마리는 출발을 제촉하였다. 레이몽은 몸을 뒤로 젖히고 서둘러야겠다고 말하면서 히죽 웃어 보였다.

   우리는 별로 멀지 않은 정류장으로 갔다. 레이몽은 나에게 아라비아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일러 주었다. 그들은 제자리에 서서 우리가 떠나온 곳을 무관심한 태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레이몽은 마음이 놓여서 줄곧 마리에게 농담을 하고 있었다. 마리가 상다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지만 마리는 그의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끔 웃으면서 처다볼 뿐이었다.

  우리는 알제 교외에서 버스를 내렸다. 바닷가는 정류장에서 멀지 않았지만 바다를 굽어보며 내리뻗은 조그마한 언덕을 지나가야만 되었다. 언덕은 이미 푸르러진 바탕 위로, 누린 자갈과 흰 국화들로 뒤덮여 있었다. 마리는 헝겁가방을 휘둘러서 꽃잎을 떨어뜨리는 장난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푸르고 혹은 흰 울타리에 둘러싸인 작은 별장들이 늘어선 사이를 걸어갔다. 어떤 별장은 베란다까지 타마리스크 나무에 뒤덮여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별장은 바위 틈에 덩그렇게 서 있었다. 언덕 끝에 이르기 전에 고요한 바다는 눈앞에 나타나고 멀리 맑은 물 가운데 조는 듯 단단한 육지가 곶(岬)이 되어 내뻗고 있었다. 고요한 대기 속에 가벼운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조그마한 어선 한 척이 반짝이는 바다 한 가운데로 조용히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마리는 창포(蒼蒲)를 몇 떨기 꺾었다. 바다로 내려가는 언덕길에서 바라보니 벌써 바닷가에는 목욕하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레이몽의 친구는 바다 기슭에 자리잡은 조그만 목조 별장에 살고 있었다. 집은 바위를 등지고 있었으며, 집 앞을 받친 기둥들은 물속에 잠겨 있었다. 레이몽이 우리를 소개하였다. 그의 친구는 마쏭이라고 불렀으며, 훌;후리한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사람으로, 둥그스럼하게 흉허물 없이 지내자고 말하고, 아침에 방금 낚아온 생선 후라이가 있다고 말하였다. 내가 집이 어쩌면 그렇게 아담하냐고 하자, 그는 도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휴일마다 그 별장에 와서 지난다는 것이었다.
 「제 아내와는 누구든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고 그는 덧붙였다. 그의 아내는 마리와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마리와 결혼할 것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쏭이 헤음치러 가자고 하였지만, 그의 아내와 레이몽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셋이서 바닷가를 내려갔다. 마리는 곧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쏭과 나는 잠시동안 기다렸다. 그는 말투가 느렸는데, 말끝마다 <뿐만아니라>하고 덧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야기에 보충할 것이 없을 때에는 그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마리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주 그만입니다. 뿐만아니라 매력도 있구요.」
  나는 햇볕이 기분좋게 전신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그것에 도취되어서 그의 말버릇에는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발밑의 모래가 뜨거워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물속에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참고 있다가 마쏭에게,
 「들어가 볼까요?」
하고 말하고 나서 첨벙 뛰어들었다. 마쏭은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거 발이 땅에 닿지 않게되자 몸을 내던졌다. 그는 평영(平泳)을 하였는데, 매우 서툴었으므로 나는 그를 버려두고 마리에게로 쫓아갔다. 물은 시원하여 헤엄치기에 좋았다. 나는 마리와 함께 멀리 헤엄쳐 나갔다. 우리는 동작을 같이 하고 서로 만족감에 젖어 있었다.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서 몸을 둥둥 띄웠다.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며, 우리의 입가에까지 넘나드는 물은 마치 태양이 밀어내는 듯하였다. 마쏭이 모래밭으로 나가 길게 몸을 눕히고 햇볕을 쪼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도 그는 꽤 크게 보였다. 마리는 나와 같이 헤엄을 치고 싶어 하였다. 나는 마리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발버둥을 쳐서 그녀가 팔을 놀려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것을 도와 주었다. 고요한 아침에 철석거리는 소리가 우리의 귓전을 떠나지 않아 나는 드디어 지쳐 버렸다. 나는 마리를 남겨두고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헤음쳐 되돌아왔다. 바닷가로 나와서 나는 마쏭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일굴을 모래속에 파묻었다. 내가 <기분 좋다!>라고 하였더니, 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윽고 마리가 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금물에 젖은 몸은 미끈거려 보였으며, 미리칼은 뒤로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옆에 바싹 다가와 나란히 드러누웠다. 나는 그녀의 체온과 뜨거운 햇볕으로 하여 어렴풋이 잠들어 버렸다.

  마리가 나를 흔들어 깨우며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마쏭은 벌써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나는 배가 고팠으므로 바로 일어섰다. 그러나 마리는 아침부터 그녀에게 키쓰를 해 주지 않았다고 불평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나도 키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에 들어가시죠.」
하고 마리가 말하였다. 우리는 뛰어가서 잔 물결에 몸을 잠갔다. 몇 번 팔을 저어 헤엄쳐 나가다가, 마리는 나에게로 달라붙었다. 그녀의 다리가 내 다리에 감겨오자, 나는 정욕이 부잗쳐 올랐다.

  우리 둘이 돌아오려고 하자, 마쏭은 우리를 부르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다고 말하자, 그는 곧 아내에게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였다. 빵도 맛있었지만, 생성도 별미여서 나는 내 몫을 부리나케 먹어 치웠다. 다음에는 고기와 감자 후라이가 나왔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기에만 바빴다. 마쏭은 연방 술을 들이키며 나에게도 자주 딸아 주었다. 커피를 가져왔을 때, 나는 머리가 띵하여 담배를 많이 피웠다. 마쏭과 레이몽과 나는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하여 팔월달을 바닷가에서 함께 보낼 의논을 하였다. 마리가 갑자기,
 「지금이 몇 신지 아세요? 연한시 반예요.」
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그러나 마쏭은, 식사가 너무 일렀지만 배가 고플때가 식사 시간이니까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고 하였다. 마리는 그말을 듣고 왜 웃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술을 과음한 탓일 것이다. 마쏭은 나에게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점심을 먹고 나서는 반드시 낮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데, 나는 딱 질색이거든요. 나는 걸어야 해요. 건강에는 그것이 좋다고 언제나 말하지만, 소용없거든요. 어쨋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밖에 없지요.」
   마리는 마쏭 부인의 설거지를 거들어 주기 위해 남아 있겠노라고 하였다. 그러자면 남자들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키가 작달막한 파리엔느는 말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셋은 바닷가로내려갔다.

   햇살은 거의 직작으로 모래 위에 쏟아져 내려 바다에 반사하는 그 빛은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덕을 따라 바다 위로 솟은 조그마한 별장들 안에서는 접시며 포오크, 스푼 등속의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땅에 깔린 돌이 내뿜는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레이몽과 마쏭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들이 시귄지가 오래된 사이며, 한때는 함께 지낸 일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물가로 가서 바다를 끼고 거닐었다. 때때로 잔물결이 밀려와서 우리들의 헝겊신발을 적시는 것이었다. 나는 맨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몽롱하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레이몽이 마쏭에게 뭐라고 하였지만, 나는 잘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멀리 바닷가 저편 끝에서 푸른 화부복(火夫服)을 입은 아라비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련하였다. 레이몽을 쳐다보자,
 「바로 그 자식이야.」
하고 그는 말하였다. 우리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마송은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해수욕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을 그들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데, 어느덧 매우 가까운 거리에 이르렀다. 우리 편에서도 같은 보조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마쏭! 싸움이 벌어지거든 자네는 둘째 녀석을 상대하게. 이쪽 몸은 내가 맡을테니까. 그리고 뫼르소오, 자넨 다른 놈이 나타나거든 맡게.」
하고 레이몽이 말하였다.
 「그럼세.」
하고 대답하였다. 마쏭은 두 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뜨겁게 달은 모래가 지금 나에게는 불그스럼하게 보였다. 우리는 일정한 걸음걸이로 아라비아 사람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들과 우리사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간격으로 가까워졌을 때, 그들은 발길을 멈추었다. 마쏭과 나는 걸음을 멍추었다. 레에몽이 바로 그가 맡은 놈에게로 다가갔다. 나는 그가 뭐라고 하였는지 듣지 못하였지만, 아라비아 녀석이 머리로 받으려고 하자, 레이몽이 한 대 안기고 곧 마쏭을 불렀다. 마쏭은 미리 자목해 둔 녀석에게 덤벼들어 두어 번 힘것 후려갈겼다. 상대편은 얼굴을 모래바닥에 쳐박고 물속에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머리께로부터 거품이 물 위로 부글부글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에 레이몽이 또 몇 번 쥐어박아 아라비아 녀석은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레이몽이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면서,
  「자식 꼬락서니 좋지!」
하고 말하였다. 나는
 「조심해, 그는 단도를 가졌어!」
하고 말했지만, 벌써 레이몽운 팔을 찔리우고 입을 찢기었다.

 마쏭이 후닥닥 앞으로 뛰쳐나왔으나 또 다른 아라비아녀석이 일어서서 무기를 가진 놈 뒤로 다가섰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을 떼지 않고, 단도로 위협을 하면서 찬찬히 뒷걸음을 하가다 충분한 거리에 이르자 쏜쌀같이 도망쳐 버렸다. 그 동안 우리는 뜨거운 햇볕 아래 못박힌 듯 서 있었고, 레이몽은 피가 흐르는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쏭은 일요일마다 언덕 위의 별장에 와서 지내는 의사가 있다고 말하였다. 레이몽은 곧 가자고 하였는데, 입을 열적마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그를 부축하고 급히 별장으로 돌아왔다. 레이몽은 상처가 크지 않으므로 걸어서 의사에게 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레이몽은 마쏭과 함게 의사에게 가기로 하고 나는 남아서 여자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해주었다. 마쏭 부인은 눈물을 흘리고, 마리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더 설명하기가 귀찮아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쯤에 레이몽이 마쏭과 함게 돌아왔다. 그는 팡에 붕대를 감고, 입가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의사는 상처가 대수롭지 않다고 하였으나 레이몽은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쏭이 웃기려고 애를 썼지만,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바닷가로 내려간다기에 어디를가려느냐고 묻자, 바람을 쏘이고 싶다고 대답하였다. 마쏭과 나도 따라 나서려고 하자 레이몽은 화를 내며 책망하는 것이었다. 마쏭은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자고 하였지만, 나는 굳이 뒤를 따랐다.

 우리는 오랫동안 해변가를 거닐었다. 내려쬐는 햇볕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셔지며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레이몽이 가는 곳이 정해져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착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닷가의 한 끝까지 가서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에서 바다를 향해 모래바닥속을 흐르고 있는 조그마한 샘물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아라비아 사람들을 다시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름이 배인 화부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마음은 거의 가라앉은 듯 태평한 모습이었다. 레이몽을 찌른 녀석도 아무말 없이 레이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한 녀석은 갈대 피리를 불며 우리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는 피리로 낼 수 있는 세가지 소리를 되풀이하여 부는 것이었다.

  그 동안 거기에는 햇빛과 침묵이 흐를 뿐, 귀에 오직 졸졸 흐르는 샘물 소리와 피리의 세가지 가락만이 들려왔다. 레이몽이 포켓에 들어 있는 피스톨에 손을 대었다. 상대방은 움직이지 않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피리를 불고 있는 녀석의 발가락이 유난히 벌어져 있는 것이 내 눈에 띄었다. 레이몽은 상대방을 바라본 채,
 「쏘아버릴까?」
하고 물었다. 만류하면 화가 나서 그는 제풀에 쏘아 버릴  것 같아서,
「놈들은 아직 아무 말도 없는데, 그냥 소는건 비겁하지 않아?」
하고 나는 말하였다. 침묵과 뜨거운 햇볕 아래, 여전히 샘물과 피리 소리만이 호젓이 들려왔다. 드디어 레이몽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 놈에게 욕을 해 주어야겠군. 뭐라고 대거릴 하면 쏘아버리게.」
 「그래. 그렇지만 놈이 단도를 뽑지 않는 이상 쏠 수는 없지.」
하고 내가 대답하였다. 레이몽은 약간 화를 냈으며, 상대방은 레이몽의 거동을 일일이 살피며 여전히 피리를 불고 있었다.
 「쏘아서는 안돼. 사나이답게 맞서서 싸우게. 그리고 그 피스톨은 이리줘. 만일 다른 녀석이 덤비든지, 그 녀석이 단도를 뽑으면 내가 쏘아 버릴  테니까.」

 레이몽이 피스톨을 나에게 주었을 때, 그 위로 햇빛이 반사하여 번쩍거렸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이 우리들 위를 에워싸 있기라도 한 듯이 꼼짝도 않고 있었다. 심지어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서로 마주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바다와 오래와 햇볕, 그리고 피리와 파도 소리로 말미암아 더욱 두드러진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피스톨을 쏠 수도 있고 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쏘아도 좋고 쏘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라비아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하며 바위 뒤로 도망쳐 버렸으므로, 레이몽과 나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이제 레이몽은 마음이 다소 가라앉은 듯, 집으로 돌아갈 버스 이야기를 꺼내었다.

 나는 그와 함께 별장까지 왔다. 나무층계 앞에 이르자 햇볕으로 머리가 어지러운데다, 그 나무층계를 올라가야 하며, 다시 여자들과 상대할 것을 생각하니 맥이 풀렸다. 그러나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막심한 더위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괴로운 일이었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는 잠시후 바닷가로 발길을 돌려 버렸다.

 종전과 다름없이 모든 것이 붉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바다는 모래 위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위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내려쬐는 햇볕에 머리가 부풀어오른 것 같았다. 더위가 모조리 나에게 몰려와 나의 발걸음을 막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얼굴 위에 무더운 바람이 와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포켓 소의 주먹을 끌어쥐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조각에 부딪쳐 햇볕이 칼날처럼 반짝일 적마다, 턱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햇빛과 바다의 수분으로 눈부신 후광을 이룬 가운데 거무스름한 바위가 멀리 조그마하게 바라보였다. 나는 바위 뒤의 서늘한 샘을 생각하고 그 속삭임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태양과 더위와 사우는 수고와, 여자의 웃음소리를 피하여, 그늘과 휴식을 그곳에서 찾고 싶었다. 그러나 거기 다가갔을 때, 레이몽과 맞섯던 녀석이 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혼자서 번 듯이 드러누워 있었다. 두 손을 목밑에 고이고 얼굴만 바위 그늘에 가리웠을뿐 전신은 햇빛을 받고 있었다. 푸른 화부복에서는 더위 때문인지 김이 오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당황하엿다. 나로서는 그 사건은 이미 끝난 것으로 믿고 있었으므로 그일은 염두에 두지는 않고 그리로 왔던 것이다.

  그는 나를 보자, 몸을 추켜올리고 포켓에 손을 넣었다. 물론 나도 웃옷 속에 들어 있는 레이몽의 피스톨을 움켜쥐었다. 그는 다시 벌렁 자빠지며 누웠지만 포켓에서 손을 빼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 꽤 멀리, 한 열두어 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타는 듯한 대기 속에서 나의 눈에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파도 소리는 점심때보다 낮아지고 한결 잔잔하였지만, 모래 위에는 그때나 다름없이 햇살이 비치고 있었으며, 두 시간 전부터 정오 태양은 걸음을 멈추고 끓는 물속에 닻을 내렸던 것이다. 수평선 위로 조그마한 증기선이 지나갔다. 그것을 내가 눈길 한 곁에서 검은 점처럼 느낀 것은, 아리비아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햇볕에 아물거리는 해변이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나는 샘물을 향해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라비아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아직 나에게서 꽤 말리 떨어져 있었다. 아마 얼굴을 가린 그늘 탓인었는지, 그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기다리기로 하였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익는 것만 같고 땀발울이 눈섭에 맺히는 것이었다.

 태양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루던 날과 같이 내려쪼였다. 나는 그날처럼 머리가 아프고 이마의 힘줄이 피부 밑에서 욱씬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뜨거운 햇볕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한 걸음 발을 옮겨 본댓자 더위를 모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라비아 사람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고 단도를 뽑아서 햇볕에 번쩍이며 나를 겨누는 것이었다. 햇빛이 강철에 반사하자, 번쩍거리는 길다란 칼날이 금새 내 이마에 와서 부딪칠 것만 같았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눈섭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터운 베일로 누까플을 덮어 버렸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리워 내 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마에 울려오는 태양의 제금 소리와 단도로부터 내앞에 비쳐오는 눈부신 칼날을 느낄 따름이었다. 그 불붙은 듯한 칼날은 나의 속눈섭을 휩쓸고 어지러운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동요하기 사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후덥지근한 바람을 실어왔다. 활짝 개인 하늘은 불을 뿜는 듯하였다.

 나는 전신이 기장되면서 피스톨을 힘껏 움켜잡았다. 나는 권총의 미끈한 배를 매만지고 방아쇠를 가볍게 당겼다. 탕!하는 오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일은 저질러지고 만 것이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군형과 행복스럽던 바닷가의 특이한 침묵을 깨뜨리고 말았다. 이어서 나는 굳어 버린 몸둥아리에 다시 베방을 았다. 총알은 눈에 뜨이지 않게 깊이 들여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토막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