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 邦 人

第 1 部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4

   나는 한 주일 동안 줄곧 일을 꽤 많이 하였다. 레이몽이 와서 그 편지를 보냈노라고 하였다. 나는 에마뉴엘과 함께 두 번 영화 구경을 갔는데, 그는 스크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러면 나는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약속대로 마리가 찾아왔다. 나는 몹시 욕정을 느꼈다. 그녀가 붉고 흰 줄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데다가, 가죽 쌘들을 신고 있기 때문이었다. 탄력있는 젖가슴이 완연히 노출돼 보이고, 햇볕에 그을은 살갗은 오히려 얼굴을 꽃같이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알제에서 몇 킬로 떨어진 바닷가로 갔다. 언덕쪽엔 바위들 사이에 자란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오후 네시의 햇볕은 과히 덥지 않았지만, 바닷물은 미지근하였다. 길게 뻗친 게으른 듯한 물결은 나즉히 출렁이고 있었다. 마리가 한 가지 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헤엄을 치면서 입에 물을 잔뜩 물어서 하늘로 뿜는 것이었다. 그러면 물거품이 레에스처럼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빗방울처럼 얼굴 위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바닷물에 입속이 절어서 얼얼하였다. 그러자 마리가 물속으로 나에게 다가와서 내 몸에 착 달라붙었다. 그녀는 자기의 입술을 내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녀의 혀끝이 나의 입술에 닿자 산뜻함을 맛보았다. 우리는 잠시 물결속을 딩굴었다.

  바닷가에 나와서 옷을 갈아입을 때, 그녀는 반짝이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키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우리는 급히 버스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안에 들어서자 우리는 곧 침대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두었다. 햇볕에 검게 탄 우리의 육체위로 여름밥이 스며들어 참으로 유쾌하였다.
  아침에 나는 마리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하고, 고기를 사러 내려갔다. 돌아와 보니 레이몽의 방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싸라마노 영감이 개를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층계 위에서 구둣소리와 함께 개가 발톱으로 긁는 소리가 나더니,
 「빌어먹을 망할 자식!」
하는 영감의 마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거리로 나가 버렸다.

 내가 마리에게 영감의 이야기를 들려 주자 그녀는 한바탕 웃어대었다. 그녀는 내 파자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웃을 때, 나는 또 욕정을 느꼈다. 잠시 후에 그녀는 나더러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무의미한 말이었지만,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점심 준비를 하면서 까닭없이 자지러지는 듯 깔깔대고 있기에 나는 또 키스해 주었다. 바로 그때 레이몽의 방에서 말다툼 소리가 들려 왔다.

  먼저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레이몽이 소리쳤다.
 「네년이 나를 골려먹으려고 했겠다. 흥 나를 골려먹어? 어디 맛을 좀 볼래.」
 그러자 툭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의 비명이 울려왔다. 그 소리가 하도 처참하여 층계참에는 곧 사람들이 꽉 찼다. 마리와 나도 낭하로 뛰어나갔다. 여자는 고함 소리를 지르고 레이몽은 여전히 때리는 것이었다. 마리는 사태가 험악하다고 하였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더러 순경을 불러오라고 하였지만, 나는 순경이 싫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3층의 납땜쟁이와 순경 한사람이 같이 들어왔다. 순경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대답도 없었다. 더 요란스럽게 두드리자, 잠시 후에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레이몽이 문을 열었다. 그는 입에 담배를 물고 유순한 태도를 보였다. 여인이 뛰어나와 순경에게 레이몽이 때렸다고 말하였다.

 「이름이 뭐야?」
하고 순경이 물었다. 레이몽이 우물쭈물하며 나를 쳐다보더니 입에 담배를 문채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순경은 두터운 손바닥으로 레이몽의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 담배는 몇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레이몽은 안색이 변했으나 즉시 무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공손한 목소리로 담배를 주워도 좋으냐고 물었다. 순경은 그러라고 하면서,
 「다음부터는 순경이 노리개가 아니라는 것쯤 당신도 알아야 해.」
하고 덧붙였다. 그동안 여자는 사뭇 울면서,
 「저를 마구 때리지 않아요. 아주 개망나니에요.」
하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선생님!」하고 이번에는 레이몽이 입을 열었다.
 「남자에게 개망나니라는 말을 마구 지껄여도 법에 걸리지 않나요?」
 「잔소리 말어!」
하고 순경은 말하였다. 그러자 레이몽은 계집에게로 돌아서며 말하였다.
 「함부로 주둥아릴 놀리지 말아. 요년아, 다신 안 만날 줄 알아!」
  순경은 레이몽에게 입을 닥치라고 말하고는, 계집은 가도 되지만, 레이몽은 경찰에서 호출할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순경은 레이몽에게 몸이 떨리도록 술에 취해 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레이몸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조금도 취하지 않았어요. 그저 선생님 앞에 서 있으니 떨릴뿐이지요. 별 도리가 있습니까?」

 그가 문을 닫아 버리자, 구경꾼들은 모두 흩어졌다.
  마리와 나는 점심을 마련하였지만, 그녀는 별로 식욕이 없는 모양이어서 나 혼자 다 먹어 버렸다. 마리는 한시 정각에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잠들었다.
  세 시쯤 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레이몽이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는 내 침대가에 걸터앉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일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후의 일은 내가 목격한 바와 같았다.

  나는 그에게 이젠 계집이 단단히 경을 쳤을테니 마음이 흐뭇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그렇다고 대꾸하였다. 그리고 그는 순경이 아무리 뭐라고 했댔자, 계집이 톡톡이 망신을 당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였다. 한편 자기는 순경의 심리를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노라고 덧붙였다. 그는 순경이 따귀를 갈겼을 때 자기가 응수하리라고 믿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도대체 순경을 싫어한다고 말하였다.

 레이몽은 매우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는 나더러 함께 나가지 않겠느냐고 하기에, 나는 일어나서 머리를 빗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는 자기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레이몽은 말하기를 계집이 자기에게 버릇없이 굴었다고 말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증인이 되어 주겠노라고 승낙하였다.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레이몽이 부란디를 사 주었다. 그리고 당구를 한판 쳤지만 나는 제대로 맞추지 못하였다. 그는 색시집에 가지고 하였지만 나는 그런 델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거절하였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레이몽은 계집을 골려 주어 매우 흐뭇하다고 하였다. 그는 나를 매우 친절히 대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나는 시간이 즐겁게 여겨졌다.

 멀리서 바라보니 싸라마노 영감이 화가 치민 듯이 서 있었다. 나는 그 곁에 이르러서야 그가 개를 데리고 있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두서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컴컴한 복도를 살펴보다가, 충혈된 눈을 두리번거리며 길가를 훑어 보는 것이었다. 레이몽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망할 자식!」
하고 중얼거리는 것이 어렵풋이 들렸다. 개가 어디 갔느냐고 묻자, 그는 불쑥 도망쳐 버렸다고 한마디 던지더니, 이어서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오늘도 연병장엘 데리고 갔읍죠. 노점 근처엔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웅성거리고 있는지! 탈주왕(脫走王)이라는 이상한 간판을 구경하려고 잠깐 멈춰 섰다가, 다시 발길을 옮기려니까 그 놈이 없어졌지 뭡니까. 벌써부터 작은 목걸이를 사주려고 생각하곤 있었지만 그 빌어먹을 자식이 그렇게 도망쳐 버리리라고는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어요.」
  레이몽은 옆에서 개는 아마도 길을 잃어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곧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나서, 주인을 찾기 위해 수십 킬로나 쏘다닌 개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영감은 곧이들으려 하지 않고 더욱 흥분하는 것이었다.
 「그놈은 필경 내 손에 잡히고야 말거야요. 누가 그걸 갖다 기르기라도 한다면 모르지만, 그러지도 않을 것이, 누가 그 흠집투성이 개새끼를 곱다고 하겠어요. 아마 순경에게 잡힐겁니다. 틀림 없지요.」

   나는 그에게 경찰서의 개를 보관하고 있는 마당에 가보라고 말하고, 세금을 얼마간 내면, 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영감은 세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모르므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러자 영감은 화를 내며,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돈을 버리다니……아 그만 뒈져버리라지!」
  레이몽은 웃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2층 층계참까지 올라와서 헤어졌다.

  잠시 후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영감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내가 문을 열자, 영감은 문깐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용서합쇼.」
  나는 들어오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고 구두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흠집투성이가 된 그의 손은 약간 떨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숙인채,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설마 개를 잡아가지야 않겠지요? 뫼르소오 산생! 주인이게 돌려 주겠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죠?」

 나는 경찰에서는 사흘 동안 뜰안에 매어 두어, 주인이 찾아가기를 기다리지만, 사흘이 지나면 적당히 처분해 버린다고 일러 주었다. 그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고나서 가지 방문을 닫고 들어가더니 방안에서 왔다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침대가 삐걱거리더니 바람벽을 통하여 야릇한 소리가 들려 왔다. 영감은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왜 어머니의 생각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젯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 저녁도 먹지 않고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