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姦 婦」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버스는 한참 허덕이다가 다시 떠났다. 연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던 목자들의 누더기 더미 속에서 팔 하나가 올라가더니 곧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길은 더욱 험악하여 버스가 마구 뒤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진동으로 말미암아 아랍인들은 사뭇 건들거리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쟈닌느가 잠이 들려는데, 향단(香丹)이 가득 든 노란 곽이 눈앞에 나타났다. 주둔병은 그녀에게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쟈닌느는 주저하다가 하나 집어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주둔병은 곽을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미소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오른편 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로 몸을 돌렸으나 겨우 억센 목덜미가 보일 따름이었다. 그는 유리창 너머로 허벅허벅한 흙더미에서 일어나는 짙은 먼지 않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는 여러 시간을 달렸다. 여객들은 피로로 말마암이 숨소리조차 조용했다. 그런데 밖에서 왁자하니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랍식 외투를 입은 아이들이 팽이처럼 뱅뱅 돌면서 손벽을 치며 버스 주변에 모여들었다. 버스는 나즈막한 집들이 늘어선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오아시스에 이르는 것이다. 바람은 여전히 몰아쳤으나 벽돌이 가로막아 모래먼지가 햇빛을 가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은 흐렸다. 아이들의 아우성 속에서 부레이크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버스는 더러운 유리창이 달린 직흙으로 지은 호텔 앞에 멈추었다.

 쟈닌느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지붕 너머로 노랗고 가느다란 회교사원의 탑이 보였다. 왼쪽에는 오아시스의 종려나무들이 무성하여 그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오가 가까웠는데도 추위는 여전하여 바람에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쟈닌느는 남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남편보다도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그 병정이 먼저 눈에 띄었다. 그녀는 그의 미소나 인사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녀 곁을 지나가 버렸다. 남편은 버스 지붕에 얹저둔 포목 트렁크와 거무스름한 고리짝을 내리게 하였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전수 혼자서 짐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을 멈추고 지붕 위에 서서 버스 주변에 몰려든 아랍식 외투들에게 무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쟈닌느는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듯이 보이는 얼굴들에 둘러싸여, 그들이 떠들어대는 아우성 소리에 심한 피로를 느꼈다.

  「전 방으로 올라가겠어요.」
하고 그는 남편에게 말하였다. 남편은 조급하게 운전수를 지시하고 있었다. 쟈닌느는 호텔로 들어섰다. 메마르고 무뚝뚝한 주인은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주인은 그녀를 거리가 내다보이는 차고(車庫)위의 2층 방으로 안내하였다. 방안에는 쇠로 된 침대, 흰 리포린 칠을 한 의자와 옷걸이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갈대로 만든 병풍 뒤가 화장실로 되어 있는데, 세면대는 부드러운 모래 먼지로 덮여 있었다. 주인이 문을 닫았을 때, 석회칠을 한 벽에서 싸늘한 한기가 솟아나왔다. 쟈닌느는 핸드백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또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눕든가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그녀는 핸드백을 손에 든채, 하늘이 내다보이는 천장 가까이 뚫린 바람구멍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쟈닌느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자기도 모르는 것이었다. 다만 고독과 추위 그리고 가슴을 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꿈속에 잠겨 있는 듯이 보였다. 남편의 고함소리와 함께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보다 바람 구멍으로 통하여 들려오는 소리에 더 정신을 팔고 있었다. 이제는 잔 물결이 조잘대는 것같이 종려나무를 흔들어대는 바람소리에 일종의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윽고 바람이 한층 세차게 몰아치는가 싶더니 물결의 조잘거림은 거센 파도의 울부짖음으로 변화하였다. 쟈닌느는 벽 저편에 종려나무의 바다가 폭풍에 물결치고 있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예상했던 거와 딴판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파도는 피로한 눈을 한결 부드럽게 스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어깨를 웅크리고 그자리에 서 있었다. 냉기가 무거운 두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날씬한 종려나무와 자기의 처녀시절을 연상하고 있었다.

   일행은 몸을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남루한 벽 위에는 울긋불긋하게 쨈 속에 빠진 듯한 낙타와 종려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아르카아드 모양의 창문을 통하여 약간의 광선이 스며들었다. 마르쎌은 호텔 주인에게서 상인들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작업복에 훈장을 단 늙은아랍인 두 사람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마르쎌은 생각에 잠겨 빵을 뜯으며, 아내에게 냉수를 마시지 않게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끓인 물이 아냐. 포도주를 마셔.」
  전신을 노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포도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메뉴에 돼지고기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코오란(回敎의 經典)에는 금지되어 있지만 돼지고기도 잘 구으면 탈이 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우리는 요리법을 알고 있거든.>
 「당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오?」

   쟈닌느는 아무 생각도 않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예언자를 무색하게 한 요리사들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서둘러야 했다. 그들은 이튿날 아침에는 더 남쪽으로 떠나야 했고, 그날 오후에는 그곳의 굵직한 상인들을 모두 만나야 했다. 마르쎌은 늙은 아랍인에게 커피를 독촉하였다. 아랍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종걸음으로 나가버렸다.
 「아침에는 조용히, 밤에는 서두르지 말고.」
  마르쎌은 웃으면서 말했다. 커피가 나왔다. 그들은 조급히 커피를 마시고 먼지투성이 거리로 나섰다. 마르쎌은 트렁크를 들기 위해 젊은 아랍인 한 사람을 불렀다. 그런데 품삯 때문에 시비가 벌어졌다. 마르쎌은 이 점에 대하여 아내에게 여러 번 말하였지만, 그들은 두배의 품삯을 요구해야 겨우 4분의 1밖에 받지 못한다는 애매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쟈닌느는 매우 마땅치 않았지만 짐을 진 두 사람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녀는 홀가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육중한 외투 밑에 털옷을 껴입고 있었다. 잘 굽기는 했지만, 돼지고기와 포도주는 그녀에게는 달가운 것이 못되었다.

   그들 일행은 나무들이 뽀얀 먼지를 쓰고 쭉 늘어선 조그마한 공원 곁을 지나갔다. 간간이 마주치는 아람인들은 외투자락을 걷어올리고 이쪽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나가는 것이었다. 쟈닌느는 그들에게서 몸에는 비록 누더기를 걸쳤을망정 자기 고장에서 볼 수 없었던 떳떳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군중들속을 헤치고 지나가는 트렁크를 뒤쫓고 있었다. 그들은 황토로 된 성벽문을 지나서, 역시 먼지를 뒤집어쓴 나무들이 무성하고 안으로 길게 상점들이 들어선 좁은 광장에 이르렀다.

   그들은 포탄 모양으로 된 푸른 회칠을 한 작은 집 앞에 멈춰섰다. 안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으며, 출입구를 통해서만 겨우 햇빛이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반짝거리는 판자 뒤에 흰 콧수염을 기른 늙은 아랍인 한 사람이 각각 색깔이 다른 세 개의 작은 컵에 차주전자를 기울였다 들었다 하면서 차를 따르고 있었다. 어둠침침한 상점 안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는데, 박하차의 신선한 향기가 문턱에 선 마르쎌과 쟈닌느를 맞아 주었다. 문을 들어서니, 주석으로 만든 차주전자와 찻잔과 쟁반들이 그림엽서를 꽂은 회전대에 뒤섞여 일종의 장식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마르쎌은 카운터와 마주쳤다. 쟈닌느는 입구에서 햇볕을 막지 않으려고 비켜서서 기다렸다. 그러자 그녀는 늙은이 뒤의 어둠침침한 곳에 아랍인 두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상점 안 쪽으로 잔뜩 쌓여 있는 불룩한 부대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진홍색과 검은 색의 양탄자와 수를 놓은 명주가 벽에 쭉 걸려있었다. 땅바닥에는 향기로운 씨앗이 든 작은 상자가 가득 놓여 있었다. 카운터 위에는 반짝이는 구리 쟁반이 달린 저울과, 눈금이 닳아서 지워진 낡은 자(尺)둘레에 설탕덩어리가 쭉 놓이고, 그 중에서 하나는 푸른 포장지가 벗겨져서 꼭대기가 부서져 나갔다. 늙은 상인이 카운터 위에 찻종을 놓고 인사를 할 때, 차 향기에 이어서 방안에서 나는 포목과 향료의 냄새가 진동했다.

   흥정을 할 때 마르쎌은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낮은 목소리로 조급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트렁크를 열고 늙은 상인에게 포목과 명주를 꺼내 보이고는 그것을 펴놓기 위해 저울과 자를 밀어놓았다. 그는 흥분하여 언성을 높이면서 어색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남의 마음에 들고 싶어하면서도 자신이 없는 여자의 태도 같았다. 그는 손을 크게 벌리고 매매하는 시늉을 하였지만 늙은이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 뒤에 앉은 두 아랍인에게 차 쟁반을 넘겨주며 몇 마디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마르쎌을 실망케 한 모양이었다. 마르쎌은 포목을 걷어서 트렁크에 집어넣고 이마에 나지도 않은 땀을 씻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 짐꾼을 불러서 시장 쪽으로 발을 옮겼다. 첫가게에서 주인의 태도는 거만스러웠지만 먼저번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자식들 마치 부처님이라도 된 줄 알지만, 장사속은 매일반이야. 먹고 살기란 어려운 것이야.」
  마르쎌은 이렇게 말하였다.
  쟈닌느는 말없이 남편의 뒤를 따랐다. 바람은 전혀 일지 않았다. 하늘은 군데군데 개이기 시작하고 싸늘한 햇빛이 두꺼운 구름을 뚫고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광장을 떠나 흙담을 끼고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흙담 위에는 시들은 섣달의 장미가 매달려 있고, 여기저기 시들고 벌레먹은 석류가 달려 있었다. 머지와 커피의 향기, 나무 껍질을 태우는 연기, 돌냄새, 양 냄새 등이 뒤섞여 그 거리에 감돌고 있었다. 흙벽으로 된 상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쟈닌느는 다리가 무거워졌다. 그러나 남편은 물건이 팔리기 시작하자 점점 명랑해지고 더욱 상냥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쟈닌느를 프티트(어린애를 부르는 말)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렴요.」하고 쟈닌느도 맞장구를 쳤다.
 「그들과 직접 타협하는 게 좋아요.」
  그들은 다른 중심지에 돌아왔다. 해는 오후가 된지 오래고, 이제 하늘도 거의 개여 있었다. 그들은 광장에서 발을 멈추었다. 마르쎌은 손을 부비며 트렁크를 살펴보고 있었다.
 「저것 봐요.」
하고 쟈닌느가 말하였다. 관장 저쪽에서 메마르고 억세게 생긴 아랍인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그는 하늘빛 외투를 입고 노랗고 부드러운 장화를 신고, 손에 장갑을 끼고 햇볕에 그을은 독수리같은 얼굴을 쳐들고 있었다. 타아번(卷頭布)에 달린 수실만이, 쟈닌느가 때때로 동경하여 오던 식민지부대의 프랑스 장교들과 구별되었다. 그는 그들이 서 있는 곳으로 곧장 걸어갔다. 그는 천천히 장갑을 빼면서 그들이 서 있는 저너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저런, 저 녀석도 장군이나 된 듯이 으시대는군 그래.」
  마르쎌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였다. 사실 그러했다. 이 고장 사람들은 모두들 거만하였지만 그자는 더욱 심했다. 그는 텅 빈 광장을 지나 트렁크도 일행도 안중에 없다는 듯이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아람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마르쎌은 갑자기 트렁크의 쥐고 뒤로 잡아당겼다. 아랍인은 아무것도 못본 듯이 성벽 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쟈닌느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놈들은 안하무인이란 말이야.」

   쟈닌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도 아랍인이 으시대는 꼴이 밉살스럽고 갑자기 자기자신이 불행한 듯이 생각되었다. 그녀는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들의 조고마한 아파르트망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호텔의 차디찬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의 풀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 사막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성벽의 망루에 올라가보라고 하던 호텔주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트렁크는 호텔에 맡기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피곤하여 저녁식사 전에 한잠 자고 싶어 하였다.
 「제발 그렇게 해요.」
하고 그녀가 말하자 마르쎌은 아내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지.」
  그녀는 호텔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흰 옷을 입은 구중들은 점점 수가 늘었다. 모두가 남자들 뿐으로 그녀는 그렇게 많은 남자들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다만 몇몇 남자들이 그 메마르고 누르죽죽한 울굴을 이쪽으로 돌릴 뿐이었다. 쟈닌느에게는 그 얼굴들이 버스속의 프랑스 병정이나, 장갑을 낀 아랍인이나 모두가 한결같이 교활하고 거만하게 보였다. 그들은 타국 여자에게 얼굴을 돌리기는 하였지만, 결코 유심히 바라보지 않았으며, 발목이 아파서 서있는 그녀의 곁을 가볍고 그리고 묵묵히 스쳐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쟈닌느는 불쾌하여 더욱 떠나고 싶었다. <내가 왜 여길 왔을까?> 그때에 마르쎌이 저만치서 내려오고 있었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