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姦 婦」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그들이 성벽에 오른 것은 오후 다섯 시였다. 바람은 전혀 일지 않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이고 더욱 쌀쌀해진 추위가 그들이 볼을 저미는 듯 하였다. 층계 중간에 한 늙은 아랍사람이 벽에 기대어 서서 그들에게 안내를 해 주랴고 물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절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흙이 굳어 버린 층계참(層階站)이 몇 군데 있었는데, 위태로운 길다란 층계는 위로 올라감에 따라서 공간이 넓어져 점점 퍼져가는 차고 건조한 햇빛을 받게 마련이었다.
    오아시스 특유의 갖가지 소리가 역력히 들려왔다. 맑은 대기가 위로 올라갈수록 긴 진폭(振幅)으로 주위에서 진동하는 것 같았다. 마치 그들이 지나가면서 광선의 결정체위에 더욱 큰 음파를 일으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망루에 이르러 우거진 종려나무너머로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았을 때, 쟈닌느는 하늘이 온통 짧고도 우렁찬 또 하나의 음부(音符)로 울려, 그 방향(反響)이 점점 자기 위의 공간을 채우다기 갑자기 멎어버리고, 끝없는 벌판에 자기 혼자 남게 되는 것같이 느껴졌다.

 쟈닌느의 시선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천천히 옮겨갔으나, 그 순수한 곡선 위엔 단 하나의 장애물도 없었다. 발 밑에는 아랍인 총락의 푸르고, 흰 테라스가 얼기설기 겹쳐 있었으며 햇볕에 널어 놓은 고추가 군데군데 검붉게 얼룩져 보였다. 사람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몇몇 집 안마당에서 커피를 볶는 향기로운 실연기가 오르고, 웃음 섞인 이야기 소리며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진흙 담으로 고르지 못하게 구분된 네모꼴 종려나무밭이 망루에서는 맛볼 수 없던 바람에 불려 꼭대기가 설렁거리고, 더욱 멀리서는 생명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거무틱틱한 돌이 깔린 벌판이 지평선까지 뻗고 있었다. 오아시스 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쪽으로 종려나무밭을 따라 흐르고 있는 냇가에는 거무스름하고 큼직한 천막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거리가 멀어서 콩알 만하게 보인다는 낙타떼들이 잿빛 대지 위에 숨은 뜻을 지닌 이상한 암호를 이루고 있었다. 사막에서의 침묵은 허공처럼 광대무변하였다.

   쟈닌느는 몸 전체를 벽에 기대인 채 소리없이 앞에 벌어진 허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있었다. 옆에서는 남편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추워서 내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도대체 여기서 볼게 뭣이람?>그러나 쟈닌느는 지평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멀리 남쪽 하늘과 땅이 선을 그리며 마주치는 곳에서, 그녀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그 무엇, 자기에게 부족했던 그 무엇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문든 들었던 것이다.
   오후의 햇볕은 점점 엷어져 결정체(結晶體)같이 보이던 빛이 액체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우연히 한 여인의 마음속에 몇 해를 두고 습관과 권태로 얽힌 매듭이 서서히 풀려가는 것이었다. 쟈닌느는 유목민들의 야영소(野營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그 검은 텐트의 마을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그곳 사람들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그들의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서 집도 없이, 세상과 동떨어져,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방대한 지역을 방황하는 한 무리의 나그네들이었다.

   그 지역은 넓은 대지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지는 멀리 남쪽으로 강물이 숲을 기름지게 하는 곳까지 수천 킬로나 뻗쳐 있었다. 옛날부터 속속드리 황폐한 이 메마른 벌판을 끊임없이 헤매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아무도 섬기지 않는 이 기이한 왕국의 비참하지만 자유스러운 영주(領主)들이었다.
  쟈닌느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녀는 어찌하여 이런 생각이 그토록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또한 못견디게 애수에 잠기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만 언젠가는 그 왕국이 자기에게 약속되어 있으면서도 겨로 자기의 것이 될 수 없으며, 다만 요지부동인 하늘과, 흘러넘치는 햇살의 물결위에 눈을 뜬 순간만이 영원히 자기 것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랍인 초락에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마소리가 갑자기 잠잠해지는 순간, 세월의 흐름이 정지된 듯이 느껴졌다. 따라서 순간부터 늙지도 않고 죽지는 않을 듯이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괴로움과 감격에 울던 자기 마음 이외의 생명은 정지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햇빛은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열이 식어 버린 태양은 붉게 물든 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갔다. 한편 동쪽에서는 잿빛 파도가 넓은 공간으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싸늘한 하늘에 메아리쳤다. 쟈닌느는 추위에 이가 덜덜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다간 얼어 죽겠어. 바보같이. 그만 돌아가지.」
  이렇게 말하며 마르쎌은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난간에서 몸을 돌려 남편의 뒤를 따랐다. 층계에 앉아 있던 아랍 노인은 이들 내외가 마을로 내려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쟈닌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발을 옮겨놓다가 갑자기 심한 피로를 느껴 허리를 굽히고 무거운 자기자신을 질질 끌다시피 길을 걷고 있었다. 이미 흥분은 가라앉았다. 그녀는 자기가 발을 들여놓았던 그 세계에 어울리기에는 자기자신이 너무나 덩치가 크고 살결이 희다고 생각하였다. 어린이, 소녀, 말라빠진 사나이, 슬쩍 스치고 지나가던 주둔병(駐屯兵) 따위만이 이 땅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쟈닌느는 잠들기까지, 아니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끌고 다니는 일 외에 무엇이 남아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사실 식당가지 몸을 질질 끌고 갔다. 남편은 피로하가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는 그동안 감기와 사우고 있었다.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침대까지 남편의 뒤를 따라 억지로 기어가 말없이 곧 불을 껐다. 방은 쌀쌀하였다. 그녀는 열이 심해지며 오한이 났다. 숨도 답답해졌다. 피는 맥박을 치며 돌고 있었으나 전신은 차가왔다. 그녀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돌아누웠다. 그러자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녀는 병을 물리치려고 하였다. 이제 남편은 이미 잠들고 있었다. 자기도 자야만 했다. 거리의 소음이 공기구멍을 통해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카페의 축음기에서 어렴풋이 알아들을 수 있는 콧노래가 군중들의 소음에 뒤섞여 들려왔다. 그녀는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나 검은 천막의 환상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속눈섭 밑으로 움직이지 않던 낙타들이 스쳐가고, 호젓한 고독감이 그녀의 마음 속에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게 말야, 나는 왜 여기를 왔을까!>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잠시 후에 눈을 떴다. 주위는 고요하였다. 그러나 마을 변두리에서 목쉰 개짖는 쇠가 고요한 밤 공기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모서리쳤다. 다시 뒤로 돌아누었다. 그녀의 어깨에 남편의 단단한 어깨가 닿았다. 그녀는 잠결에 남편에게 몸을 기대었다. 아주 잠들어 버린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잠이 오는데 가장 마음 놓을 수 있는 안식처나 되는 듯이 남편의 어깨에 무의식적으로 마구 매달리는 것이었다. 말은 하느라고 하였지만 입밖으로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자기자신에게도 전혀 들리지 않고, 다만 남편의 체온만을 느낄 따름이었다.

  20년 동안 아플 때나 여행을 할 때나 두 사람은 밤마다 이렇게 체온을 나누며 지내온 것이다……그밖에 쨔닌느는 집에서 할 일이란 별로 없었다. 어린애도 없었다. 그녀에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오직 남편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며, 남편과 고락을 같이 해 왔을 뿐이다. 마르쎌이 그녀에게 준 기쁨이란 그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것 뿐이었다. 그는 아마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비록 증오에 찬 사랑이라도 느낀다면 그와 같이 찌푸린 얼굴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얼굴이란 어떤 것인가? 그들은 밤이면 손으로 더듬으며 사랑해 왔다. 어둠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 외에, 즉 대낮에 떳떳이 내세울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단 말인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오직 그녀가 남편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것을 의지하고 살아왔다. 특히 밤에는 그러했다. 밤마다 남편은, 세상 남자들의 얼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그런 완고한 태도로 있기를 싫어하고, 늙어 죽기를 싫어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란에 사로잡혀 오직 관능 속에 고독과 밤의 불안을 몰아 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육욕에 사로잡힌 광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공통된 모습이었다.

  마르쎌은 마치 아내를 멀리 하려는 듯이 몸을 꿈틀거렸다. 그렇다!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내 아닌 다른 애인에게 손을 대기가 두려웠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 부부는 이미 헤어졌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하기야 혼자 사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들의 천직(天職)이나 불행이 이성(異性)과 가까워지는 것을 가로막아 밤마다 죽음과 같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쎌은 특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어린애처러 무력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쟈닌느를 필요로 하는 마르쎌은 그때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바싹 다가가서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속으로 옛날 자기가 붙인 애칭(愛稱)으로 그를 불렀다. 그 애칭은 지금도 때때로 사용해 왔지만 둘이 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애칭을 불렀다. 그녀 역시 남편과 그의 힘과 기벽(奇癖)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죽는 것이 두려웠다.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녀는 곧 까닭 모를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남편에게서 몸을 떼었다.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행복하지 못하다.> 사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의 짐에 눌려 질식할 것 같았다. 그 짐은 20년 동안이나 무의식중에 지고 오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어 힘껏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나 다른 사람은 벗어나지 못할 지라도 그녀만은 그 무서운 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서 가까이서 들리는 듯한 부름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밤의 한 끝에서 개짖는 소리만이 힘없이 계속해 들려왔다. 미풍이 종려나무 숲을 스쳐가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그 바람은 고용한 하늘 아래 사막과 밤이 연결되어 생명의 영위(營爲)가 끊어짐으로써 늙은이도 죽는이도 없는 곳으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바람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녀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조차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사실 그 소리는 묵살할 수도 있고, 알아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귀에는 다만 소리 없는 호소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당장에 대꾸하지 않으면 영원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호소연다. 그렇다. 당장에, 적어도 그것만은 확실하였다.

 쟈닌느는 사며시 몸을 일으켜 움직이지 않는 남편의 숨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남편은 잠들어 있었다. 곧 침대 속에서 느끼던 온도가 사라져 온몸이 추워왔다. 그녀는 현관의 덧문을 통하여 스며드는 희미한 광선 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기 시작하였다. 구두를 들고 문앞으로 갔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며시 핸들을 돌렸다. 핸들소리가 비꺽거려서 그녀는 잠시 주춤하였다.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사방의 정적이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으므로 다시 손잡이를 돌렸다. 핸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녀에게 무한한 해방감을 가져다 주었다.드디어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가 조심스레 도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뺨을 문에 대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남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돌아섰다. 얼굴에 차디찬 밤바람이 부딪쳤다. 그녀는 복도를 뒤어갔다. 호텔 문은 닫혀 있었다. 빗장을 뽑는 동안에 야경(夜警)이 찌푸린 얼굴을 하고 층계 위에 나타나 아랍어로 말을 걸었다.
  「곧 돌아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어둠속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에서는 별들이 종려나무들과 집들 위에 냐려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신작로를 따라 달음질치고 있었다. 그 길은 성벽쪽으로 뻗고 있었는데, 밤이라 인기척이 없었다. 이제는 태양을 정복해 버린 추위가 밤을 독점하고 있었다. 차디찬 공기가 폐부(肺腑)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장님처럼 어둠속을 달리고 있었다. 신작로 끝에서 불빛이 나타나더니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다가왔다. 그녀는 발길을 멈추었다. 날개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빌빛 뒤에 커다란 아랍식 외투들과 그 밑에 가느다란 자전거 바퀴들이 눈에 띄었다.
   아랍외투들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둠 속에서 세 개의 붉은 불길이 솟아 오르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다시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층계 한복판에서 숨이 막힐 듯하여 좀쉬고 싶었다. 안깐힘을 스며 테라스에 올라가, 난간에 몸을 던져 아랫배를 기대었다. 그녀는 숨이 덕에 닿았다. 모든 것이 눈앞에 아물거렸다. 그렇게 달려왔지만 몸은 조금도 녹지 않고 도리어 사지가 덜덜 떨렸다. 그러나 들이마신 찬공기가 체내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떨리는 중에도 미지근한 체온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밤의 공간으로 눈을 돌렸다.

 가금 나나운 추위가 돌을 터뜨려 모래를 만드느라고  사그락거리는 흐미한 소리가 들릴뿐, 그 밖엔 아무 소리도 그녀를 에워싼 고적과 침묵을 훼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에 일종의 소용돌이가 온통 하늘을 자기 주위에 끌어내리려는 듯하였다. 메마르고 차디찬 밤의 장막속에서 수천 개의 별들이 끊임없이 반작이고 있었다. 그리고 번들거리는 얼음 덩어리들은 순식간에 흩어져서 어느새 지평선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쟈닌느는 하늘에 떠도는 별들을 한없이 바라보며, 그 별들과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신비한 이 천체의 운행이, 추위와 욕정으로 싸우고 있는 그녀를 차츰 심오한 자기 존재에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눈앞에서 별이 하나씩 떨어져서 사막으로 사라졌다. 그때마다 그녀는 밤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넣았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취위도, 존대의 중력도, 생사에 대한 불안도 잊어 버리는 것이었다.

   두려움에 쫓기면서 무작정 뛰쳐나온 그녀는 드디어 자기자신의 근원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더 떨지 않게 되 육체의 피가 다시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그녀는 난간 꼭대기에 아랫배를 기대고 움직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직도 산란한 자기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들이 성좌(星座)에서 사막의 지평선 위에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어둠의 무결이 그녀를 부드럽게 애무하기 시작하여 추위를 몰아내고, 그녀의 심장으로부터 솟아올라 끊임없이 출렁거리며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입술까지 남쳐 흐르고 있었다. 푸른 하늘이 그녀 위에 확대되자 그녀는 그 순간 차디찬 대지 위에 쓰러졌다.

   그녀가 방을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조심 되돌아왔을 때, 아직 남편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리에 눕자 그는 낑낑거리며 요란스럽게 일어났다. 그는 무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전등을 켰다. 등불이 쟈닌느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쳐왔다. 그는 비틀거리며 세면대로 걸어가서 물병을 쭉 들이켰다. 그는 침대에 누우려고 한쪽 무릅을 침대에 올려놓은 채, 영문도 모르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이상 더 참을 수 없어서 눈물을 떨어뜨리며 울고 있었다.
 「염려 말아요.」하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