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

CHEKHOV  ANTON  PAVLOVICH

2

  큰 아들 아니심이 집에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큰 명절 때나 돌아오고, 평소에는 농부들 편에 선물이나 편지를 자주 보내오곤 하였다. 그 편지는 언제나 청원서 용지에 누가 훌륭한 필적으로 대필을 해서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편지 속에는 편소의 아니심이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은 말투가 적혀있기도 하였다.
  <친애하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건강을 바라는 의미에서 꽃차(花茶) 한 파운드를 보내 드립니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는 끝이 달아 못쓰게 된 펜으로 긁어 놓은 것처럼<아니심·츠이브킨>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다음에는 필적을 자랑하는 듯이 데필(代筆)이라고 적어 넣는 것이었다. 편지는 몇 번이고 큰 소리로 되풀이 하여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염감은 감격한 나머지 얼굴이 상기되어 말하였다. <그녀석은 집에서 같이 살기를 원치 않는단 말이야. 유식한 사람들 축에 끼어 출세를 하려니까 그럴밖에. 그냥 내 버려 뒤야지! 사람이란 저마다 갈길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

  사육제를 하루 앞둔 어느날 우박이 섞인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영감과 와르바라는 비오는 것을 구경하려고 창문가에 다가섰다. 그러자 아니심이 정거장에서 썰매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집에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어전지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을 하고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딘가 그의 태도는 우울하고 거칠어 보였다. 다른 때처럼 바삐 돌아가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파면이라도 당 한 것 같았다. 와르마라는 그를 반가히 맞이하며, 능청스러운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고는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이 사람아, 아니 어떻게 된거야?……스물 여덟이 되도록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니 에이구 쯧쯧……」
  그녀는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였으므로 다른 방에서는 <에에구 쯧쯧>하는 말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과 아크시니아에게 귓속말로 소근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마치 무슨 음모자들처럼 교활하게 보이고 쉬쉬하는 눈치였다.
  아니심을 장가들이자는 의논을 하였던 것이다.
  「에이구, 쯧쯧, 제 동생은 벌써 장가든지가 언젠데……」
하고 아르바라는 말하였다.
 「그런데 자네는 장터의 수탉처럼 아직도 짝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웬 일이야? 어서 색시감을 구해야지. 그렇게 되면 자네는 직장엘 나가고, 안사람은 집에서 일이나 도우면 좀 좋아.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 혼자서 멋대로 살고 있으니 될 말인가. 세상의 이치에 따라야 해. 에이구, 쯧쯧, 자네나 거리의 떠꺼머리 노총각들은 안심도 하지.」

  츠이부킨네 집안에서는 며느리를 삼을 때에는, 부자집에서는 의례 그렇듯이, 우선 인물이 잘생긴 아가씨를 고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니심에게도 예쁘장한 아가시가 물망에 올랐다. 신랑감 아니심은 언 듯 보아 별로 두드러진 데가 없는 평범한 사나이었다. 키가 작고 몸은 약골이었으며, 두 볼은 바람이라도 든 것처럼, 언제나 부풀어 있었다. 눈을 좀처럼 깜박거리지 않아 항상 사람을 노려보는 듯하였으며, 블그스레한 턱수염이 거칠게 자라, 무슨 생각에 잠길 때면, 그 수염을 잘근잘근 씹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여 얼굴이나 걸음걸이에도 주정꾼의 티가 나 보였다. 그는 예쁜 아가씨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여 당연하지. 나도 애꾸눈은 아니까. 우리 츠이부킨 집안 아들 쳐놓고 못난 사람이 있나!」
  도시에서 그 다지 멀지 않은 곳에 트루구예보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자에 그 마을은 절반은 도시에 편입되고 나머지는 지역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도시에 편입된 지역에 어떤 과부가 조그마한 집 한채를 쓰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딸 리파는 너무나 가난한 처지라 품팔이를 다니곤 하였다. 그런데 이 리파는 트루구에보 마을에서는 얼굴이 아름 답기로 소문이 났지만, 집이 너무 가난하여 아무도 청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어떤 홀아비나 늙은 영감이라면 그녀의 가난을 준제시하지 않고 아내로 삼거나 첩으로 데려갈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면 그녀의 어머니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될 거야>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와르바라는 중매인을 통하여 리파의 소식을 듣고 트루구예보 마을에 찾아와 그 과부의 집에서 선을 보게 되었다. 그날에는 포도주며 그밖의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내왔다. 리파는 선을 보이기 위해 새로 장만한 연분홍 옷을 입고, 머리에 불꽃처럼 빨간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녀는밖에 나가 일하기 때문에 볕에 그을긴 하였지만. 파리해진 얼굴에 몸집이 날씬하게 생긴 쳐녀로서, 그 용모에는 상냥스럽고 세련된 아름다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수줍은 듯한 슬픈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며, 두 눈은 어린애처럼 순진한 호기심에 차 있었다. 그녀는 젖가슴이 여우 눈에 뜨일락 말락할 정도의 애숭이 소녀였지만, 시집가기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흠이 있다면, 축 늘어진 사내처럼 생긴 커다란 손이었다.

  「지참금이 없다구요? 그런 건 우리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고 츠이부킨 영감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째 아들 스체판의 처도 가난한 집안에서 데려왔지만, 지금 사이좋게 잘 살고 있어요. 집안 일에나 가게 일에 남에게 뒤짖 않지요.」
  리파는 문앞에 서서<당신들이 좋도록 하세요. 저는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하고 말하고 싶은 듯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품팔이를 하는 그녀의 어머니 푸라스코비아는 불안한 나머지 부엌에 숨어 있었다. 그녀가 아직 젊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어떤 상인의 집에서 마루를 룸치다가 준인한테 심한 꾸지람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때 하도 질겁을 하여, 그후부터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겁에 질리면 손발이 후들후들 떨리고 뺨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엌에 앉아서 손님들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손을 이마에 대고 성상 쪽을 향해 연방 성호를 긋고 있었다. 술에 얼근히 취한 아니심은 무엌문을 열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왜 여기 앉아 계세요? 어머님이 없이는 지루해서 견디지 못하겠어요.」
  푸라스코비아는 어쩔줄을 몰라 그 여윈 가슴 위에 두 손을 얹으며 대답하였다.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저희들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셔서……」
  선을 보고 나서 결혼식 날가지 정하였다.

 그 후부터 아니심은 으레 휘파람을 불며 집안을 이 방 저 방 돌아다니거나 그렇지 않으면 깊은 생각에 잠겨 마치 땅속까지라도 꿰뚫어볼 듯한 눈초리로 마룻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는 부활제가 끝나는 다음 일요일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으며, 약혼녀를 보고 싶어하는 기색도 없이 언제나 혼자서 휘파람만 날리고 있는 었다. 그의 결혼은 순전히 아버지와 계모의 뜻에 의해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집안 일을 돌볼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들에게 장가를 들이는 것이 이 고장의 품습이기도 하였다. 아니심은 근무처로 떠나면서도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으며 여느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눈에 거슬릴 정도로 난폭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또 실없는 말도 곧잘 지껄이는 것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