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정

CHEKHOV  ANTON  PAVLOVICH

  1

 흰 여름 제복을 입은 젊은 장교 한 사람이 안장위에서 몸을 재치있게 흔들면서 로트슈타인의 유산인 보드카 양조장의 넓은 뜰안으로 말을 몰고 들어섰다.  따스한 햇볕이 이 육군 중위의 별 달린 계급장이며, 백양나무의 흰 줄거리며, 뜰안에 흩어진 유리조각 위에 비치고 있었다. 삼라만상이 한여름의 밝고 싱싱한 생기를 띄고, 푸른 나뭇잎사귀들은 맑은 하늘을 향해 즐거운 듯이 설레이고 있었다. 연기에 그을린 지저분한 창고도, 코를 찌르는 보드카의 냄새도 이처럼 상쾌한 기분을 해치지는 못하였다.  중위는 안장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달려온 하인에게 말고삐를 넘겨 주고, 가느다란 검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현관에 들어섰다. 여러해 동안 사람의 발길에 낡기는 했으나, 아직도 반들거리는 깨끗한 층계를 오르자, 좀 무뚝뚝하고 나이가 지긋한 하녀가 맞아 주었다.  중위는 잠자코 명함을 내 주었다.  하녀는명함을 받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명함에는 <알렉사드르 그리고리예비치 소콜리스키>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곧 도로나와 아주머니께서 몸이 편찮아 만나실 수 없다고 전하였다. 중위는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면서, 잠시 천장을 쳐다보고 나서 말하였다. 
  「야단났군! 이봐요, 내 청을 좀 들어 줘요.」
  그는 시원스러운 어투로 말하였다.
  「가서 수산나 모아세에브나 아줌마에게 꼭 좀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전해요. 2, 3분이면 충분해요.  꼭 만나뵈어야겠으니 좀 만나게 해 줘요.」
  하녀는 한쪽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 오시래요!」
  잠시 후에 돌아온 하녀는 한숨을 몰아쉬면서 말하였다.
  「올라오세요!」
 중위는 하녀의 뒤를 따라, 화려하게 꾸민 넓은 방을 대여섯이나 지나고 복도를 거쳐서, 네모가 반듯한 커다란 방에 들어섰다. 발을 들여놓자 방안에 기득 가꿔 놓은 여러 가지 화초가 그를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듯한 쟈스민의 짙은 달콤한 향기에 취하였다. 어떤 꽃나무는 너울이 벽을 따라 들창을 가리려는 듯이 천장에까지 두 줄기로 뻗어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늘어지기도 하고 어떤 꽃은 방구석마다 둥그렇게 환히 빛나고 있었다.  거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온실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초 속에서는 곤줄매기, 방울새, 카나리아와 같은 새들이 지저귀며 법석대고, 때로는 들창 유리에 부딪치기도 하였다.
  「여기서 만나뵙는 것을 양해하세요.」
  요염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a>소리가 분명치 않으나 귀에 별로 거슬리지는 않았다.
  「어제 편도선을 앓았어요. 그래서 다시 더칠까봐 노늘은 꼼짝 않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말씀이지……」
  바로 방문 맞은 편에 갑진 중국식 잠옷을 걸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싸맨 여자가 뒤로 젖힌 머리 밑으로 베개를 고이고, 늙은이들이나 사용하는 커다란 악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털실로 뜬 머리수건 사이로 핏기없고, 길다란 코가 뽀족하게 도드라지고, 크고 검은 한쪽 눈만이 보일 뿐이다.  폭이 넓은 중국식 옷은 그녀의 키와 몸매를 완전히 가리었지만,  예쁘장한 흰손하며, 그 목소리, 그리고 코와 한쪽 눈만으로도 나이는 스물 여섯이나 기껏 해야 스물 여덟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너무 고집을 부려서 죄송합니다.」
  중위는 발뒷꿈치에 달린 박차를 잘각거리며 말하였다.
  「제 이름은 소콜리스키라고 하며, 사촌형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쿠류코프의 위임을 받고 왔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그 형은……」
  「아 알겠습니다.」하고 수산나 모이예세브나는 중위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하였다.
  「저 쿠류코프라는 이를 알고 있어요. 그리 좀 앉으세요. 저는 사람이 눈앞에 서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제 사촌형을 대신하여 당신에게 한가지 브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중위는 다시 한번 박차를 잘그락 거리며 자리에 앉아서 말을 이었다.
  「돌아가신 당신의 부친께서 지난 겨울에 제 사촌형의 보리를 사가신 일이 있는데 아직 청산이 덜 되었습니다. 수표의 날짜는 앞으로 한 주일 남아 있습니다만 많은 돈은 아니니까 그돈을 오늘 주실 수 없을까요?」
  중위는 이렇게 말하면서 죄우를 힐끗힐끗 살펴보았다.
  <나는 이 여자의 침실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였다.
 방 한쪽 모퉁이에 무성하게 자란 장미꽃 넝쿨이 한층 높이 뻗어 올라가 비붕을 이루고 있는 그 아래로 아직도 잠자리가 구겨진 침대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앞에 놓인 두 개의 안락의자에는 여자의 옷가자가 걸려 주름진 레스가 달린 옷자락과 팔소매가 양탄자 위로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방바닥엔 허리끈이며, 두 서너 개의 담배꽁초, 캬라멜 껍질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침대 밑에는 코끝이 중굴거나 뽀죽한 갖가지 슬리퍼가 줄을 지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달콤한 쟈스민 향기는 꽃에서 풍겨오는 것이 아니라, 침대와 슬리퍼에서 풍기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수표의 액수는 얼마나 되죠?」
  하고 그녀는 물었다.
  「이천 삼백 루우불입니다.」
  <아유!> 이 우태 여자는 마머지 한쪽 눈을 마저 드러내보이며 말하였다.
  「많은 돈이 아니라고 하시더니! 하긴 오늘 갚거나 한달후에 갚거나 일반이지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두달 동안 여기 저기서 독촉하는 돈이 어떻게 많은지 정신을 못차리겠어요. 외국으로 길을 떠나야 할 텐데, 이런 시끄러운 일들이 저를 붙잡고 늘어지는 군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종알거렸다.
  「보리다, 수표다, 이자다……진저리가 날 지경이에요. 어제는 세무서원이 왔길래, 입도 못벌리게 하고 쫓아 버렸지요. 고지서를 갖고 치근치근 달라붙길래 한마디 쏘아붙였어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니 그 고지서 갖고 귀신한테나 가보라>고 말예요. 그랬더니 그 작자는 제 손에 키쓰하고 나서 끽 소리도 못하고 가버리더군요.…… 그런데 그 돈, 당신 형님께서 2,3개월만 기다려 주실 수 없을까요……」
  「그건 곤란한데요……」
  중위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형님이야 1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제 사정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레서 저는 이렇게 몸이 달아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지금 저한테는 돈이 꼭 필요한데, 형님 손에는 단돈 한푼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나서서 돈을 걷으러 다니는 거랍니다.  방금 소작인 한테도 들려 오는 길입니다만, 또 딴 데도 가 봐야겠습니다. 이래가지고는 도저히 5천루우불을 마련하기가 어렵겠어요.  돈이 안되면 큰 일인데……」
  「아니 뭣 때문에 젊은 양반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세요? 욕심도 많으시네요. 방탕을 해서 빚을 졌나요, 노름을 해서 돈을 잃었나요? 아니면 장가를 드시나요?」
  「잘 알아맞추셨습니다!」
  중위는 빙그레 웃으며 엉덩이를 들썩하더니 다시 박차를 잘가락거렸다.
  「실은 결혼비용 때문에 그럽니다.」
  그녀는 손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 때문에 남자들은 장가들기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손수건을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하였다.
  「인생이란 한없이 짧고 부자유스러운 것인데, 사람들은 애써 자기자신을 묶어 두려고 한단 말예요.」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그렇죠. 사람은 각기 생각이 다른지만……당신은 아마도 가난뱅이한테 장가를 드시나 보군요. 열렬한 사랑 끝에 결혼을 하시게 되나요? 무엇 때문에 5천루우불 씩이나 필요해요? 3천이나 4천루우불을 가지고는 안되나요?」
  <꽤 수다스러운 여자로군!>중위는 이렇게 생각하며 대답하였다.
 「군대의 규칙상, 28세 미만의 장교가 결혼하려면, 제대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5천루우불의 보증금을 내야 합니다.」
 「아하, 알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은 방금 사람마다 작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하셨죠?……당신의 약혼자는 매우 훌륭한 분이라서 예외가 될지 모르지만……제가 보기에는 교양있는 훌륭한 남자들이 어떻게 여자들과 함께 살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어른 납득이 가지 않아요. 저도 이제 나이가 스물 일곱이나 됐지만 지금까지 양점하게 참아나가는 여자를 보지 못했어요. 모두들 겉으로만 양점을 빼지만 뒷구멍으로는 딴판이에요.……차라리 식모나 부엌떼기가 낫지요. 그래 저는 좀 안다는 여자들하고는 아예 상종도 하지 않고 있어요. 물론 그들 자신도 속을 주지 않고 저를 멀리하고 있지만 말예요. 저로서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에요. 그녀들은 돈이 필요하면 남편에게 바가지나 긁을 줄 알았지, 자기가 팔을 걷고 나서는 일은 절대로 없지요. 자존심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없고 겁이 나니까 그럴 밖에요. 그리고 제가 그들의 아픈 곳을 찌를까봐 벌벌 떨고 있지 뭐예요……그들이 저를 미워하는 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기는 그럴만도 해요, 저는 그녀들이 애서 하나님과 인간에게 숨기려고 하는 것을 파내어 백일하에 폭로하니까요. 그러니 어찌 저를 곱다고 하겠어요? 아마 당신도 제 흉을 많이 들었을 거예요.」
  「저는 여기 온지 멀마 된 되기 때문에……」
  「거짓말 마세요……눈에 빤히 나타나 있는 걸요. 그런데 당신의 형수는 잠자코 있었어요? 아무 감시도 하지 않고 젊은 남자가 그렇게 예쁜 여자와 가까이 하는 것을 방임해 둘 수는 없을 텐데요. 호, 호……그건 그렇고, 당신의 형님은 어떠세요? 상당히 미남자시더군요.  연회석에서 몇 번 뵌 일이 있지요. 교양있는 사람에겐 외모는 그다지 소중한 것이 못되지요. 속이 충실해야지……안 그래요?」
  「그야 그럴테지요.」
  중위는 웃으면서 대꾸하였다.
  「속에 들어 있는 게 문제예요. 그런데 당신은 형님을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군요. 하긴 당신도 잘 생겼지만 형님은 훨씬 미남이시더군요.」
  「우리는 사촌간이니까 그렇지요.」
  「참, 사촌형님이라고 하셨죠? 그래, 돈은 꼭 받으셔야 해요? 왜 오늘이라야 하죠?」
  「2, 3일이면 휴가가 끝나서요.」
  「그러나 어떡하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나중에 절 원망할테지만, 돈을 드리겠어요. 결혼하고 나서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그 망할 유태년이 그때 돈 준 것이 탈이야. 그 돈만 주지 않았던들 나는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로울 텐데>하고 말예요. 약혼한 여자 예뻐요?」
  「뭐 그저 그렇지요……」
  「그런 말 어디 있어요. 얼굴이 이러저러하게 생기고, 어디가 좋다거니 하고 말해야지요. 하진 여자란 값없는 삶의 대가로 아름다운 얼굴을 남편에게 바치지는 않지요.」
  「거, 별 말씀 다 합니다 그려!」
  하고 중위는 웃으며 말하였다.
  「아니 당신 자신이 여자이면서 그런 말씀 하세요?」
  「여자란……」그녀는 영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몸에 달고 나올 것을 달지 못한게 저의 죄가 될 수여 없잖아요. 그게 저의 탓이라면, 당신이 수염을 달고 있는 것도 죄가 되게요! 저는 자존심이 상한 여자지만, 남들이 제가 여자임을 상기시킬 땐, 저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해요. 인제 당신은 좀 나가계셔요. 저 옷 좀 갈아입어야겠어요.……응접실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중위는 그녀의 침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우선 그 지독한 쟈스민 낸새를 털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목구멍까지 싸아해지는 것 같았다.
  <세상에 별 여자가 다 있군!>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야기는 꽤 재미있게 지껄이는데……지나치게 수다스럽고 말이 많고 노골적이야. 좀 돈 여자인지도 모르지>

 응접실은 온갖 사치와 유행을 따라 화려하게 꾸며 있었다. 탁자 위에는 검푸른 색깔로 라인강의 풍경을 그린 접시며, 옛날 촛대며, 일본인의 골동품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와같이 화려한 장식품들은 오히려 그 주인의 취미가 고상하지 못함을 말해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금박을 칠한 커어튼 고리하며, 울긋불긋한 도배지, 색깔이 짙은 책상 보자기, 두툼한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서투른 서양화――이 모든 것들은 그의 저속한 취미를 더욱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서로 조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건들이 방안을 가득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꼭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같고, 또 그 중에서 많은 물건을 집어내 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장식품들을 일시에 장만한 것이 아니라, 경매 같은 때 싸구려로 조금씩 사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위는 이런 방면에 암런 조예도 없었지만 방안을 장식한 모든 것들이 하나의 공통된 특징, 즉 사치나 유행으로는 씻어 버릴  수 없는 결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을 아늑하게 꾸미보려는 의도나, 정신적인 뉴앙스를 살리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응접실은 마치 정거장의 대합실이나 클럽이나 극장의 복도처럼 살풍경해 보였다.
 방안에서 유태인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고작해야 야곱과 이삭이 만나는 장면을 그린 커다란 한 폭의 그림밖에 없었다. 중위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어깨를 한번 치켜올리고 오늘 처음 알게 된 이집 안주인의 뻔뻔스럽고 대담한 언행을 다시 되새겨보는 것이었다.
  이윽고 망문이 열리며 그녀가 나타났다. 아치 허리를 깎아낸 것 같은 날씬한 몸매에 검고 길다란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중위는 그녀의 코와 눈, 그리고 희고 여윈 얼굴과 양털 같은 새까만 곱슬머리를 한 그녀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코 미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가 이방인에게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 탓인지, 그녀의 검은 곱슬머리와 짙은 눈썹이 그 창백한 얼굴에 어룰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코와 귀가 흡사 양초로 녹여 만든 것처럼 하얗게 보이는 것은 그 독한 쟈스민의 향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여자는 이빨을 드러내며 생긋이 웃어 보였다. 중위는 그 히멀건 잇몸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여자는 혹시 황달병환자가 아닌가……>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아마도 이 여자는 칠면조처럼 신경질이 대단할 거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럼 가시지요!」
하고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앞장을 서다가 화분에 핀 노란 꽃잎사귀를 뜯어며 말하였다.
  「돈은 곧 드릴께요. 그리고 점심도 대접하겠어요……이천 삼백루우불이라고 하셨죠? 돈을 다세고 난후에 많이 드세요. 어떠세요, 우리집 방들이 아음에 드세요? 이 고장 여자들은 글쎄 저한테서 노린내가 난다고 흉을 보지 않아요. 터무늬없는 트집이에요. 술통에 빠졌다가 맡아보세요. 저한테 무슨 냄새가 나나……당신은 아마 제 말을 믿으시겠지요. 한 번은 우리 집에 노린내를 피우는 의사가 왕진을 온 일이 있었요. 그래 나는 의사더러 어서 모자를 집어쓰고 딴데나 가서 냄새를 피우라고 쫓아 버렸죠. 제 몸에서는 노린내가 아니라 약냄내가 나는 거예요. 아버지가 중풍으로 1년 반이나 누워 계셨거든요. 가엾긴 하지만 돌아가시길 잘 했지요. 아직도 생존해 계시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녀는 응접실과 비슷하게 꾸민 방 둘과 넓은 홀을 자나서 자기 서재로 장교를 안내하였다. 역시 장식품을 가득 늘어놓은 부인용 책상 옆 방바닥에 몇 권의 책이 펼처져 있었다. 그리고 옆방으로 문이 열려 있어 점심을 차려놓은 식탁이 내다 보였다.
  그녀는 쉴새없이 지껄이며 호주머니에서 열쇠 뭉치를 꺼내어 둥그스럼한 뚜껑이 비스듬히 달린 궤짝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면서 궤짝에서는 아에오로스의 하아프를 연상케하는 애달픈 멜로디가 울려나왔다. 그녀는 다시 열쇠 하나를 골라 또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여기 지하로 통하는 비밀통로와 출입구가 있어요.」
  그녀는 양 가죽으로 만든 조그마한 손가방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별 괴상한 궤짝도 다 있지요? 그리고 이 가방 속에는 제 재산의 4분의1일 들어 있어요. 자보세요. 배가 불룩하지 않아요? 어디 한번 제목을 졸라보시죠?」
  그녀는 중위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중위도 따라 웃었다.
  <알고보니 꽤 멋진 여자군!> 그는 여자의 손가락 사이에서 딩구는 열쇠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 요것이로군!> 그녀는 가죽 가방의 열쇠를 찾아내었다.
  「그럼 이 빚쟁이 양반아 수표를 주세요. 돈이란 사실 언제나 무의미한 거예요. 그래도 여자들은 돈이라면 혹하지 않아요! 저는 아시다시피 진짜 유태인이기 때문에 슈물리나 양켈리(고골리의 작품에 나오는 구두쇠 유태인의 이름으로 유태인을 비꼬아 부르는 말――譯·註)를 좋아는 하지만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우리네 셈족의 피가 싫어요.  돈을 벌어서는 꽁꽁 뭉쳐 두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지 자기자신도 잘 모르고 있거든요.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할텐데, 그들은 단돈 한푼에 벌벌 떨고 있지요. 그런 점으로 보면 저는 슈물리보다는 기병(騎兵)을 더 닮았다고 할까요. 저는 돈을 꼭 움켜쥐고 있는 것을 싫어해요. 아무튼 저한테는 유태인 답지 않은 면이 많아요. 어때요, 제가 말할 때 <a>소리의 액센트가 너무 강하게 들리지 않아요?」
  <글쎄요……>중위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이었다.
  「말소리가 매우 유창하게 들립니다. 다만 <a>소리가 좀 분명치 않은 것 같군요.」
  그녀는 히죽히 웃어보이며 가방에 달린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중위는 호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어 책상위에 놓았다.
  「액센트 하나로 유태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지요.」
그녀는 명랑하고 상냥스러운 눈웃음을 치며 중위에게 말하였다.
  「아무리 러시아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인체 해 보아도 소용 없지요. 뿌흐<솜틀>라는 말을 한번 시켜 보세요. 영낙없이 뻬흐흐흐라고 발음할 거예요. 그러나 저는 정확히 발음할 수 있어요. 뿌흐, 뿌흐, 뿌흐!」
  두 사람은 큰 소리로 함께 웃었다.
  <확실히 매력이 있는 여자야!> 중위는 마음속으로 감탄하였다.
  그녀는 가방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중위에게 한걸음 다가서서 남자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까까이 대고 말하였다.
  「저는 유태인 다음으로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을 좋아해요. 여학교 때 역사 공부를 잘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 두 민족의 손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아왔어요.……마드리드 같은 곳에서도 반년쯤 살았지요. 저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러시아와 프랑스 이외에는 민족다운 민족이 없는 것 같아요. 여러 나라 말을 실례로 들어 볼까요. 독일 말은 망아지 소리를 내고, 영어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어요.<회이치, 휘이치, 휴이치>이태리 말은 발음을 천천히 하면 괜찮게 들리지만 이태리 여자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유태인의 사투리가 그냥 튀어나와요. 그리고 폴랜드 말은 말씀이 아네요. 세상에 그보다 더 듣기싫은 말은 없을 거예요. <네 뻬프시·뻬프쉐·뻬프셈·뻬프샤·보 모제시 프쉐뻬프시씨 뻬프샤 뻬프셈> 이건(뾰뜨르야, 후추가루를 돼지고기에 너무 치지 말아라. 그러다간 매워서 못먹을라)라는 뜻이에요. 호호호!」
  그녀가 크게 웃어대는 바람에 중위도 덩달아 그녀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쳤다. 그녀는 사나이의 단추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다시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당신은 물론 유태인을 싫어하실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겠어요. 어느 민족이나 흠이 있듯이 우리도 결점이 많아요. 그런데 그것은 과연 유태인의 탓일까요? 아네요. 유태인인 다 나쁜 것은 아니지요.  나쁜 건 유태 여자들예요. 그들은 영리하지 못한데다가 욕심이 굉장하지요.  게다가 아무런 휘미도 없고, 정서도 모르구요. 따분하기 짝이없는 족속들이지요.……당신은 유태여자와 함께 살아본 일이 없을 테니까 잘 모르실 거예요.……그녀들에게서는 아무런 매력도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그녀는 말꼬리를 얼버무렸으나, 거기에는 지금까지 느껴온 재미도, 웃음도,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기가지 지껄이고 나서, 너무나 지나친 자기 말에 스스로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중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벙긋이 벌어진 두 입술 사이로 악물고 있는 이빨이 내다보이고, 얼굴은 물론 목덜미와 가슴팍에 이르기까지 고양이처럼 표독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중위에게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고, 재빨리 허리를 굽혀 책상위에서 무엇인가 움켜쥐었다.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수표가 바삭바삭 소리를 내었다. 그는 그토록 상얀스럽던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비열한 행위로 돌변한 것을 보자, 어안이 벙벙하여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알칼진 눈으로 중위의 눈치를 살피묘 움켜진 주먹을 허리께로 가져가더니 호주머니를 더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주 먹은 마침 물에서 너온 물고시처럼 호주머니 언저리를 맴돌뿐 좀체로 제 구멍을 찾아들지 못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표를 옷깃 사리로 집어넣어려고 하였다. 순간 중위는 가벼운 비명을 올리며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덤벼들어 수표를 움켜진 팔목을 꽉 뭍잡았다. 그녀는 더욱 이를 악물고 힘것 사내를 뿌리치며 손을 빼내었다. 그러자 중위는 두 팔로 여자의 허리와 어깨쭉지를 힘차게 부둥켜 안았다. 두 남녀 사이에는 격투가 벌어진 것이다.  그는 여자에게 욕을 보이게 될 것이 두려워 수표를 움켜진 주먹만 꼼짝 못하게 잡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품안에서 몸을 뱀장어처럼 비비 꼬며 팔굼치로 상대방의 가슴을 떠밀고 움켜진 주먹을 이리저리 빼 돌렸다. 그러자 중위의 손은 그 주먹을 쫓아 그녀의 몸뚱아리에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거 참 일이 우습게 되어가는걸!>그는 마치 자스민의 향기에 정신을 빼앗기기나 한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느 편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만 숨결만 더욱 거칠어갔을 뿐이었다. 두 남녀는 서로 부둥켜 안은채 가구에 부디치며,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밀었다 밀쳤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제 정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이윽고 중위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맞대고 정신없이 비벼대기까지 하였다. 그녀의 입술이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사나이의 입술을 스쳐갔다. 마침내 그는 여자의 주먹을 붙잡았다. 손을 펴보았으나 수표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중위는 그녀에게서 물러섰다. 그들은 머리칼이 흩어지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숨을 헐떡이며 마주 바라보았다.
  그토록 표독스럽고 매섭던 그녀의 표정이 차차 사그러지면서, 상냥스러운 눈웃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함참 깔깔거리고 웃더니, 점심이 준비된 옆방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중위는 그녀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라갔다. 그녀는 아직도 불그스레한 얼굴을 하고 숨을 몰아쉬며 식탁에 앉더니 포도주를 한 컵 들이켰다.
  「나는 당신이 제에게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중위가 먼저 말하였다.
  「천만에요.」
  그녀는 빵조각을 입속에 넣어면서 대답하였다.
  「그럼 어떻게 된 거요?」
  「좋도록 해석하세요. 우리 앉아서 점심이나 먹고 봅시다.」
  「그런데……그런 속임수를 쓰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저한테 설교를 할 생각은 아예 마세요. 저는 생각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럼 돈을 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이죠. 당신 같은 가난뱅이가 장가는 무슨 장가예요?」
  「그렇지만 그 돈은 형님의 겁니다.」
  「그럼 당신의 형님은 나중에 그 돈을 무엇에 쓸까? 부인 옷감에? 아긴 그런건 나한테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말예요.」
  중위는 처음 찾아온 이 여자의 집에서 어떻게 되어 자기가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방안을 거닐면서 애궂은 조끼 깃만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기는 자기가 그렇게 대담한 짓을 한 것은 이 유태여자가 먼저 꼴사나운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참 어처구니가 없군요!」
하고 그는 투덜거렸다.
  「저는 당신의 그 수표를 도로 받기 전에는 이집에서 떠나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아 그렇게 하심 저는 더욱 좋아요!」
  그녀는 웃으며 말하였다.
  「이왕이면 아주 우리 집에서 사시죠.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격투 끝에 흥분된 중위는 그녀의 웃음 섞인 얌체없는 얼굴이며, 나불거리는 입술, 그리고 할딱이는 가슴팍을 바라보며 어뚱한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수표의 행방 따위는 염두에 없었다. 웬일인지 이 판국에 그는 북받치는 정욕을 느끼는 동시에 이 유태 여자의 난잡한 생활태도에 대하여 언젠가 자기 형이 들려 주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의 마음을 더욱 대담하게 할 뿐이었다. 그는 여자 곁에 털썩 주저앉아 수표 생각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뭐 드시겠어요? 보드카? 포도주?」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그래 수표를 도로 받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기다리시죠? 며칠 동안이나 기다리시나 어디 두고 봅시다.  당신의 약혼자가 화를 내지 않을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