約 婚 女

CHEKHOV  ANTON  PAVLOVICH

1

  밤 열시경이었다. 정원 가득히 보름달이 비치고 있었다. 슈민의 집에서는 마르파·미하일로브나 할머니의 청으로 시작된 저녁 미사가 막 끝났다. 나쟈는 잠시 정원에 나와 있자, 식당에 만찬 준비가 다 되어 있고,  화려한 비단 옷으로 몸을 감은 할머니가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들여다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창문을 통하여 스며드는 달빛 탓인지 더욱 젊어 보였다. 옆에는 안드레이 신부의 아들 안드레이·안드레이치가 서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원은 적막하고 서늘하였다. 땅위에는 검은 그림자가 고요히 비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개구리 움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다운 5월이라는 느낌이 새삼스러웠다. 나쟈는 5월의 향기를 깊숙이 들여마셨다.  그녀는 연약하고 죄많은 인간은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신비롭고, 아름답고, 풍만하고 거룩한 봄의 생기가 저 수목이 우거진 하늘 밑,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광야와 숲속에서 막 퍼져나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까닭 없이 울고 싶었다.

  그녀는 벌써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 열여섯 살 적부터 결혼에 대하여 생각해 오던 끝에 마침내 지금 창가애 서 있는 청년 안드레이와 약혼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안드레이가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 날짜는 7월 7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데 웬일인지 그녀는 조금도 기쁜 줄 몰랐다. 그녀는 밤마다 잠을 못 자며 걱정에 잠겨 있었다. ……부엌이 있는 지하실에서 하인들이 수얼대는 소리,  나이프가 부딪치는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들이 열린 창문을 통하여 들려오고, 칠면조를 굽는 냄새와 소금에 저린 벗지 냄새가 풍겨왔다. 그녀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언제나 한결 같이 팽생토록 되풀이될 것 같았다.

  이때 누가 집에서 나와 층계 위에 발을 멈췄다. 그는 알렉산들·치모페이치라고 하는 손님으로 열흘 전에 모스크바에서 왔다. 그를 사샤라고 브르기도 하였다.  그는 전에 할머니의 먼 친척이 된다는 마라야·페트로브나라는 몰락된 귀족 미망인의 외아들이었다.  이 미망인은 그 때 병들어 핼쓱한 몸을 이끌고 원조를 받으러 이 집에 자주  드나들던 일이 있었다.  사샤는 훌륭한 화가라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는 사샤를 불쌍히 여겨 모스크바의 고미사로프스키 학원에 보내었다. 그 후 약 2년이 지나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5년만에 간신히 건축과를 졸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건축업을 시작하지 않고 모스크바의 어느 석판(石版)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몸이 약했으므로 거의 해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할머니한테 와서 요양하여 회복시키곤 하였다.

  그는 단추가 달린 프록코오트와 구김살이 간 무명바지를 입고 있었다. 샤쓰도 구겨져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산뜻한 데가 없었다. 무척 여윈데다가 커다란 눈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리고 텁수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미남티가 남아 있었다.  규민 택에서는 집안 식구나 다름없이 대접하였으므로,  그는 자기 집처럼 지낼 수 있었다.  그가 이집에서 쓰고 있는 방은 <사샤의 방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는 층계 위에서 나쟈를 보자 가까이 다가왔다.
  「여긴 참 경치가 좋군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암요, 당신도 가을까지 여기 머물러 있어요.」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나는 9월까지 머물 작정으로 왔으니까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나쟈 옆에 앉았다.
  「나는 여기 앉아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예요.」
하고 나냐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바라보니 어머니가 한결 젊어 보이는군요.  어머니에게도 여러 가지 약점이 있지만 말예요.」
  그녀는 여기서 말을 잠깐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역시 좋은 분이예요.」
  「암 좋은 분이고 말고!」
하고 사샤는 마장구를 쳤다.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면에서 매우 선량하고 인자한 분이지만……저 뭐라고 할까요?  오늘 아침 일찍이 당신네 부엌에 가보니까 말씀이 나니더군요.  네 사람의 머슴이 침대도 없이 마룻바닥에서 자고 있지 않겠어요.  침대 대신에 깔고 있는 누더기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빈대가 우글거리며, 진딧물이 날으고……, 20년 전이나 조금도 달라진데가 없더군요.  항머니한테서야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어머니께선 불어도 좀하고 아마츄어 연주에도 곧잘 나가는 분이니 그것쯤 잘 알고 계실 것 아녜요.」
  사샤는 이렇게 말하면서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나쟈 앞에 그 가느다란 두 손가락을 내밀어 보였다.
  「이 집에서 하는 일들이 내눈에는 어쩐지 이상하게만 보여요.」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나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어요. 아무도 일을 하지 않으니 말예요.  어머니는 공작부인처럼 하루 종일 나돌아다니고, 할머니는 물론,  당신도 역시 하는 일이라고는 없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의 약혼자 안드레이까지도 몰고 있거든요.」
  나쟈는 작년에도 그리고 재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사샤는 이런 말이외에는 달리 비평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나쟈는 전 같으면 우습게만 생각되었을 처이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비위가 상하였다.
  「그건 이미 낡아빠진 말예요. 오래 전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서 싫증이 났어요.」
  나쟈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좀더 새로운 것을 생각해 보세요.」
  사샤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쟈를 따라 일어섰다.  두 사람은 집으로 향해 발길을 옮겼다. 나쟈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에 균형이 잡혀 있었다. 사샤에 비하면 매우 건강해 보이고 또 옷차람도 화려하였다. 나쟈도 이것을 알 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샤가 가엾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쩐지 게면쩍기도 하였다.
  「당신은 허튼 소리를 너무 해요.」
하고 나쟈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방금 내 안드레이에 대하여 비평하였지만, 그분의 일은 조금도 모르고 있잖아요?」
  「하아, 내 안드레이라……당신의 안드레이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다만 당신의 청춘이 아까와서 그래요.」
  두 사람은 식당에 들어갔다. 모두들 식사를 하려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몹시 뚱뚱하고 짙은 눈썹과 고밑이 까만 못생긴 할머니는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이집에서는 <조모님>으로 통하는 할머니가 제일 웃어른이라는 것은 그 말씨나 몸짓으로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장에 여러 개의 점포와, 원주(圓柱)와 정원이 달린 커다란 저택을 갖고 있었으나, 그래도 아침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몰락하지 않도록 눈물을 흘리며 가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단정한 옷차림에 코안경을 쓰고 손가락마다 다이어 반지를 긴,  삼단 같은 머리를 인 나쟈의 어머니 니나·이바노브나와, 그리고 그녀와 무슨 우스운 이야기라도 시작하려는 듯한 얼굴을 한,  이가 다 빠지고 빼빼 마른 노인  안드레이 신부, 그리고 고슬머리를 하고 마치 미술가나 배우처럼 풍채가 좋고 잘생긴 나쟈의 약혼자 안드레이·안드레이치―이 세 사람은 한참 최면수에 대한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는 한 주일만 지나면 몸이 회복될 거야.」
하고 할머니는 사샤에게 말하였다.
  「그저 사람은 많이 먹어야 하느니라, 네 꼴을 보니 참 한심스럽다.」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꼴이 안되겠구나! 망나니의 자식이란 바로 너와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야.」
  「아버지의 재산을 방탕한 생활에 탕진하고……」
  안드레이의 신부가 웃음 섞인 말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망나니 녀석들과 상종했으니까요.」
  「저는 누구보다 아버지를 좋아해요.」
하고 안드레이·안드레이치는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였다.
  「뭐니뭐니 해도 훌륭한 분입니다. 선량한 노인이구요.」
  한동안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사샤가 웃음을 터뜨리며 손수건을 입으로 가져갔다.
  「부인은 최면술을 믿고 계셔요?」
  안드레이 신부가 니나·이바노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믿는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하고 니나는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자연현상 속에는 신비로운 일이 많다는 것은 믿고 있지요.」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그 신비의 세계를 종교가 해결해 줄 수 있지요.」
  기름기가 번지르르한 커다란 칠면조가 나왔다.  신부와 니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게속하고 있엇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다이아몬드가 번쩍거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글성하였다.  그녀는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신부님과 토론할 만한 상대는 못돼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풀 수 없는 수수께기들이 많다는 것을 신부님도 인정해야 할 거예요.」
  「저도 인정은 합니다.」

  만찬이 끝난 후에 안드레이·안드레이치는 바이얼린을 켜고 니나는 피아노로 반주하였다.  그는 10년전에 대학 문과를 나왔지만 취직을 하지 않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가끔 자선 음악회에 출연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이 거리에서는 그를 음악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가 바이얼린을 켜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탁자 위에서는 사모바르가 조용히 끓어오르고, 차를 따라 마시는 사람은 사샤 하나뿐이었다.  이윽고  시계가 열수시를 쳤다. 그러나 갑자기 바이얼린 줄이 끊어졌다. 모두 다 한바탕 웃고 나서 부산히 작별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나쟈는 손님을 바래주고 나서,  어머니 방과 자기 방이 있는 2층에 올라갔다(아랫층은 할머니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래층 식당에서는 불을 끄기 시작하였으나 사샤는 그대로 남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차를 마실 때면 언제나 모스크바 식으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자리에서 으레 일곱잔은 마셨기 때문이다.  나쟈가 옷을 벗고 침대에 드러누웠을 때에도 아래층에서는 오랬동안 하인들이 뒤치닥거리를 하는 소리며, 할머니가 잔소리를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윽고 집안이 조용해지고 때때로 사샤의 잔기침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