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부채」

 

   「아냐, 슬쩍 여자 생각을 해봤지. 어떤 주간 잡지에서 보니까 그 녀석 꽤 많은 여자를 농락한 모양 아냐? 그런 치에게 몸을 함부로 맡기는 것이 여자다 하고 생각하니 여자가 딱 싫어졌다는 얘기다.」
  「너무나도 간단한데.」
하는 B의 말을 막고 A가 말을 이었다.
  「간단하다니, 설혹 창녀라고 하자. 돈 받고 파는 여자 말야. 그런 여자라도 이수근이 따위의 사내는 거절한다. 이런 식으로 되어 주었으면 하는데 말야.」
  「너도 참, 붙들리기 전에 누가 이수근의 정체를 알앗겠어?」
  C가 말했다.

   시무룩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술잔은 돌았다.
   이번에도 C가 말을 꺼냈다.
  「개헌이 될 것 같애?」
  「개헌이라니?」
  A는 흥미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바꾸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야.」――B.
  「이놈아 나라의 중대사다, 중대사. 그런 것을 무관심하게 보아넘겨?」――C.
  「그럼 넌 개헌에 반대냐, 찬성이냐?」
  B가 C더러 물었다.
  「말해 뭣해, 자식아.」
  「어느 편이냐 말야.」
  「난 반대다.」
  C가 또박 말했다.
  「이만큼 안정 세력도 만들어 놓았고 건설의 실마리도 잡혔고 했는데 정권이 바꿔져 봐, 또 혼란이 일어날 것 아냐? 개헌하지 않았을 경우의 대안도 생각하고 얘기해야 할 것 아냐?」
하는 B.
  「이 자식 똑 누구의 말 같구나. 누가 나와도 대통령 후보는 나올 것 아닌가? 호보가 나타나면 선거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C.
  「혼란이 있고 북괴의 공작도 있을 테니 말 아닌가.」――B
  「혼란이 겁이 나서 민주주의 하지 말라는 얘기로군.」――C.
  「누가 민주주의 말자고 그랬나. 개헌도 민주적 절차를 밟아 할테지. 달리 방법이 있나?」――B.
  「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를 밟는다고 되는 거가 아냐.」――C.
  「민주주의에 있어서 절차가 문제지 뭐가 문젠고.」――B.
  「임마, 넌 언제부터 정치를 그렇게 잘 아니.」――C.
  「생각해 봐, 거저 감정적으로만 떠들어 대지 말고.」――B.
  「감정적이 또 뭐야. 개헌을 해야 할 사람에게도 백 가지 이유가 있다고 치자. 해선 안된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백 가지 이유가 있다고 치자. 그럴 것 아냐? 그럴 때면 현재의 원칙대로 하는 거다. 원칙대로.」――C.
  「나는 현 대통령의 애국심을 믿어. 자기 인격과 양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개헌을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애국심으로선 개헌을 할 거야.」――B.
  「개헌을 하게 되면 또 데모 소동이 일겠지?」
  A가 근심스럽게 말을 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B.
  「만일 알 수만 있다면 너희들 한 달 전에쯤 내게 알려 줘.」――A.
  「뭣 하게」――B.
  「제주도에나 갈까 해서」――A.
  「제주도」――C.
  「바로 그때 피하면 비겁하가고 할 테니 미리 일찌감치 피해 버리는 거야.」――A.
  「데모에 끼이지 않겠다, 그런 말이로구먼」――C.
  「나는 데모에 끼이지 않는 행위 외엔 효도할 재간이 없는 놈이니까.」――A.
  「자아식 우습게 노네.」――C.

   B와 C사이에 다시 토론이 시작되었다. A가 함참 동안 그 두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오늘 밤은 왜 이렇게 자꾸만 시사적 정치적으로만 놀려고 그래, 지금부터 오락적 낭만적으로 놀자꾸나.」
  모두들 그 의견에 찬성했다. 그러나 오락적 낭만적으로 논다고 해봤자 설익은 음담(淫談), 몇 번이고 재탕을 한 재담(才談)을 되풀이하는 주제밖엔 되지 않았다.
드디어 C가 탄식을 했다.
  「설악산에 갈 용기도 없고, 해프닝을 할 수 있는 재간도 없고, 히피가 되기에는 조숙해 버렸고, 재즈에 미치기엔 신명이 적고, 데모에 끼일 박력도 없고, 매춘굴에 가서도 외입 한 번 못하고 납덩이 같은 동정을 끌고 돌아다니며 논다는 것이 매너리즘, 우리의 청춘은 치욕의 청춘이다. 청춤의 치욕이다. 아아 치욕의 청춘을 이 탁한 대포로써 탁화(濁化)시켜라. 포도주를 마시는 구라파 학생은 아폴로의 총명을 디오니소스처럼 도취시키지만 탁주를 마시는 한국의 학생은 구정물을 마시는 돼지의 이취(泥醉)를 배운다.」
  「말 한 번 잘했다. 치욕의 청춘들아!」
  B도 기세를 올렸다.

  돌아오는 길, 버스 타는 곳까지 방향이 같은 A와 동식은 나란히 걸었다. A가 입을 열었다.
  「납덩이 같은 동정이란 C의 표현은 좋았어. 이걸 빨리 없애야만 결혼 상대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대로라면 누구든 제일 먼저 나타나는 여성과 아무렇게나 결혼해 버릴 것 같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우선 여자를 안아 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말야.」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결혼하라는 학설이 있대.」
하고 동식이 말했다.
  「잘란 여자는 잘란 여자대로, 못난 여잔 못난 대로, 유식하면 유식한 대로, 무식하면 무식한 대로, 정결하면 정결한 대로, 부정하면 부정한 대로 뜻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하잖아?」
  A가 동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동식이, 너입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해?」
  동식은 비수에 찔린 것처럼 아찔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기껄였다는 자책으로서였다. 따분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갔다. 이번엔 동식이 입을 열었다.

  「신(神)이란 있는 것일까?」
  「목사의 아들이라고 해서 네게 그걸묻나?」
  「아냐, 참으로 알고 싶은 거야.」
  「나도 뭔지 모르겠어. 우리집엔 신의 은총이 가득 차 있거든. 그 냄세가 바로 위선 같은 냄새라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요즘은 달라졌어. 위선도 철저하기만 하면 선의 행세를 할 수 있다고 된거야. 나는 그 위선의 가면을 벗길 틈만 찾고 있었는데 그 가면이 피부와 완전히 유착해 버려서 가면을 벗기려면 살을 에여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거든. 그렇게 철저한 위선을 가능케 하자면 어떤 초월자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그게 바로 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지.」
  「나는 그런 뜻으로서가 아니라, 전지 전능하고, 벌을 줄 놈에겐 벌을 주고 보상을 해야 할 자에겐 보상을 하는 신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볼테르와 같구먼. 신이 없으면 신은 만들어야 한다고 하잖았어!」
  「볼테르와도 다른 뜻이야.」
  「자네와 같은 그런 뜻이라면 신은 영영 없을지 모르지. 나의 백부는 명쾌하단 말야. 아버지를 보기만 하면 하시는 말씀이 있지. 예수고 뭐고 한 2천 년 믿어 별 수 없었으니 그만 두라는 거야. 이름난 목사로 알려진 아버지도 2천 년의 증거를 들이댄 이 강력한 발언엔 꿈쩍도 못하드만」

   밤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설악산의 조난자들이 살아날 가망은 자꾸만 줄어들었다.
  A와 동식은 버스 타는 곳에서 헤어졌다. 혼자가 된 동식은 자기에겐 그 '납덩이 같은 동정'이 없다는 의식을 새롭게 했다. 동식은 그의 동정을 성녀의 처녀와 맞바꾸었다. 버스 간에 앉아 전등 불빛을 받고 휘휘 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동식은 선명한 영화의 장면을 방불케 하는 어느 날의 정경을 회상하고 있었다.

 

   지난 가을 늦은 철의 어느 날 아침. 전화통에 성녀의 메조스프라노 음성이 울려왔다.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다.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머리를 곱게 빗고 종로에 있는 K1다방으로.
  달걀색 코트 밑에 진회색 울 스커트를 입고 가느다란 목에 목주(木珠)의 목걸이를 달곤 성녀는 상냔한 웃음으로 동식을 맞이했다.
   「워커힐에 빌라라는 것이 있어. 따로따로 띄어서 지은 일종의 방갈로지. 가 본 일 있어? 없어? 거기 안 갈래?」

   한번도 자진해서 어딜 가자고 말한 적이 없는 성녀의 이 당돌한 제안은 동식을 당황하게 하도록 기쁘게 했다.
  「돈 걱정은 하지 마, 여게.」
하며 성년는 깔깔한 새 지폐가 모로 선 채 꽉 들어 있는 백을 열어 보였다. 부자집 딸이면서도 돈을 그처럼 많이 가지고 나온 것도 성녀로서는 처음인 것이다. 빌ㄹ의 이름은 PEARL 7호였다. 가을의 한강이 눈 아래 흐르고 가을의 들이 멀리 가을의 산에까지 평쳐 있고, 가을의 천호동이 가을의 하늘 밑에 가을의 정취를 풍기며 평화로왔다.

   주스를 빨다가 말고 성녀가 말했다.
  「당신, 아니 너 상징이란 말 아니? 심볼이란 상징, 상징이란 심볼」
  동식은 잠자코 있었다.
  「이 밀실에 여자를 가뒤 놓고 남자가 알 일을 아나?」
   동식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성녀의 코트를 끄집어당기듯 벗겼다. 그레스 뒤에 잠겨진 지퍼를 풀어 내렸다. 브래지어를 푸는 솜씨가 어색했다. 성녀 스스로 브래지어를 벗었다. 무사들의 갑옷을 방불케 하는 내의가 나타났다. 주렁주렁 달린 스타킹 슬립을 끄르고 마룻바닥에 끓어 앉은 채 그 긴 스타킹을 벗겨 내렸다.

   「상징이 뭔지 알어? 상징이?」
   성녀는 베드 위에서 신음했다. 처녀가 사라지고 동정이 사라지는 순간에 다시 한번 속삭였다.   「상징이 뭔지 알어? 상징이」
  동식은 성녀를 안은 채 잠이 들었다. 눈을 덨을 때 성녀는 곁에 없고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식은 옷을 입고 창가에 앉았다. 샤워 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봤다. 가을을 바라보며 샤워 소리를 들었다. 신혼 여행 첫날밤에 들어야 할 그 샤워 소릴 왜 지금 듣고 앉았는가의 의미를 챙겨 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빌라에서 나왔다. 성녀도 동식이도 말이 없었다. 또 언제 만나자는 얘기도 없이 둘이는 헤어졌다. 그 이튿날 동식은 성녀에게 전화를 했으나 집에 없다는 대답이었고, 그 다음 날 전화를 걸려는 참인데 성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결혼하게 되었으니 그리 알라는 간단한 사연이었다. 그 편지를 받곤 전화도 하지 못했다. 편지를 쓰지도 못했다. 워커힐에서의 그 하루의 충격적인 아방튀르에서 깨나지 못한 채 슬픔도 고통도 아직 심상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한 달이 가고 두달이 갔다. 동식은 실성한 사람처럼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건성으로 날을 보내고 있는 참인데 한 장의 그림 엽서가 태평양의 섬 '괌'도(島)에서 왔다. 미국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하고.
'――여길 떠나면 당신을 영영 잊을 작정입니다'

   이름을 쓰진 않았으나 필적으로 보아 성녀의 그것이었다. 엽서의 그림은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영문으로 된 설명은 '열대의 태양 밑에 불꽃나무는 그의 영광을 향해 화려하게 꽃피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불꽃나무는 'In it's glory'란 표현이 꽉 어울리도록 진홍(眞紅)의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결별의 선고가 '영광'이란 문자의 꽃과 동반하고 있다니 동식은 악의와 독기를 가슴 속에 심었다.

   

   M동 산 13번지. 그 곳엘 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용기가 나질 않았다. A, B, C 누구에게라도 의논을 해서 동행을 청해볼까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설악산 조난자들의 시체가 전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은 그 이튿날 동식은 설악산에 갔다 왔다는 어떤 산악 회원을 찾았다. 가만 있을 수 없는 심정이라기보다 자기 자신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솟구친 행동이었다. 그 산악 회원은 조난 현장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그 설명 가운데 조난자들의 얼굴이 죄다 망가져 있더라는 말이 나오고 정면에서 들이닥친 얼음 바위 때문에 순식간에 만사가 끝난 것 같더라는 얘기를 듣고 동식은 총총히 물러나 버렸다. 얼음의 동상이 되어 고귀하게 숨진 젊은이의 이미지가 일시에 무너지는 듯하면서 동식은 그 설명자를 미워했다. 그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영원히 젊은 조난자들의 이미지를 그처럼 산문적으로 깨뜨릴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분개했다.

   그러한 성명은 영웅적인 중음을 일상적인 죽임의 비참으로 격하시켜 버리는 노릇이다. 누가 실질적인 설명을 요구라도 했가. 과학적인 성명을 원하기라도 했던가. 영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웅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동식은 그 산악 회원을 찾아간 것을 후회했다.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런 흥분 상태에서 그는 M동 13번지를 찾게 된 것이다.

   동회에서 물었더니 좁은 골목길을 거의 산마루까지 기어올라야 한다고 했다. 골목길을 기어오르면서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들어오는 길가집의 내부에 새삼스러운 감회를 가졌다. 기어들고 기어나는 집안인데도 좁은 마당이나 좁은 청마루가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어, 거기서 쉬어 갔으면 하는 마음을 돋구는 집도 있고, 사람의 내장을 끄집어내어 함부로 팽개쳐 버린 것 같은 지저분한 집안꼴도 있었다.

   산마루 가까이에 이르자 골목 한 모퉁이에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고 어떤 집에선지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 어떤 집에 싸움이 난 것을 동리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는 것이란 짐작이 갔다. 동식은 그 가운데 서 있는 노인 항 사람을 붙들고 M동 산 13번지를 물었다.
  「이곳이 전부 산 13번지외다.」
  노인의 대답이었다.
  양수연이란 분의 집이 어디냐고 거푸 물었다.
  「바루 이 집이요.」
하고 싸움이 나 있는 듯한 집을 노인이 가리켰다.
  「헌데 무슨 소동이죠.」
하고 묻자 노인은,
  「여게서 들어 보슈. 들어 보면 알 게요. 그런데 댁은 이 집허구 무슨 관계가 있는 사람이오?」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노인은 수상쩍은 눈으로 동식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다시 그집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집은 골목길에서 한 단쯤 낮은 곳에 있는 집이어서 좁은 뜰과 뜰 한구석의 장독대 마루에, 또는 뜰에서 있는 사람들이 죄다 바라보였다.
  「그러질 말구 썩 물어서시우.」
  집 안에서 앙칼진 노파의 소리가 울려 나왔다. 이에 겹쳐 젊은 남자의 목소리도 울려 나왔다.   「안 된다면 안 된단 말예요.」
  「남자의 말엔 울먹이는 투가 있었다.」
  「아, 보슈. 그놈은 원수요, 원수. 우리 명숙의 원수란 말요, 그 원수놈허구 어째?」
  노파의 알칼진 소리였다.
  「아니라니까요, 할머니. 아니라구요.」
  청년은 여전히 물먹거렸다.
  「아니던 기던 상관할 것 없으니 이 일에 방해하지나 마슈.」
   이번엔 남자 노인의 소리였다.
  「성례를 하려면 우리 형님허구 해야 헌단 말예요. 그 밖의 딴 사람허군 못 헌단 말예요.」
  「참 기가 차서, 어디서 난데없이 날라들어 가지곤 생떼를 쓰니 에이 기가 막혀. 이 동네는 사람도 없나,  이사람을 쫓아 줄 사람도 없나.」
  노파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보쇼, 젊은 어른, 생떼를 쓰지 말고 썩 물러서시오.」

   무당의 의상을 한 중년 여자가 창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보는 탁 가라앉은 소리로 청년을 타일엇다.
  「안 된단 말예요. 안 된단 말예요.」
  청년은 밀어내는 중년 여자의 손을 뿌리치며 울먹이는 고함을 질렀다.
  동식은 어떤 내용의 사건인지 도시 요령을 잡을 수가 없었다. 초조했다. 그래 아까의 노인더러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좀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은 잠깐 동안이나마 같이 서 있었다는 데 마음을 허할 생각이 났던지,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한 일이요.」
했다. 계속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동식의 눈초리를 보며 노인은 얘기를 시작했다.
  「이 집 조카딸이 감옥에서 죽어아왔소.」
  「신명숙이란 이르이죠?」
  「이름은 뭔지 모르지. 헌데 처녀로서 죽은 귀신은 몽달귀신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배. 그래 이모되는 사람이 조카딸 몽달귀신면해 주려고 신랑감을 구하고 있는데…….」
  「죽은 사람의 신랑감을요?」
  동식은 그 황당무계한 얘기에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마침 이 동네에 총각으로 죽은 귀신이 있었거든. 그래 두 집에서 합의를 보고 오늘 그 성례식을 하려고 무당까지 불러 막 초혼(招魂)을 시작하는 판인데 난데없이 어떤 청년이 나타나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지 뭐야. 그 실갱이라우.」「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