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부채」

 

   동식은 이 편지를 읽고 쓴 웃음을 지었다. 최(崔)가 어떻게 해서 자기와 성녀와의 사이를 알아차렸을까 하는 의혹도 생겼다.  A도 대강의 짐작은 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최처럼 당돌하게 밟고 들어서지는 않았다. 도회의 청년과 시골 청년의 기질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대체로 서울의 친구들은 이편에서 의논을 하지 않는 한 사적인 고민이나 가정적인 일에 간섭하려 들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시골의 친구, 특히 경상도 친구는 이편에 무슨 고민이 있다고 짐작만 하면 묻지도 원하지도 않는데 의논 상대를 자처하고 일익의 힘이 되어 주려고 애쓴다.

   때론 이런 것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최의 경우엔 어쩐지 그렇지가 않았다. 최의 특이한 성격을 이해하고 있는 탓인지도 몰랐다.
   최가 그 특이한 성격을 드러낸 것은 1학년 때부터였다.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고 아직급우들의 낯을 익힐 시간의 여유도 없었을 무렵 대학가는 데모 선풍에 휘몰렸다. 학생회의 간부가 동식의 교실에까지 데모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러 왔다.

   학생회 간부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학생은 공부하기 위한 선발된 신분이며 동시에 선발된 양심이다. 더욱이 우리 대학은 전국 학생의 선봉에 서야 할 자각적 위치에 있다. 국가, 또는 민족의 중대사에 이 선발된 양심이 결집해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경색되고 만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엔 우리 학생도 총을 잡고 전선에 나가야 하듯이 지금 저질러지려고 하는 부정과 불의에 단호히 항거해야 한다. 우리의 항거 수단은 지금 단계에 있어선 데모 행동이다. 자 여러분 대모에 나서자!」

   그때,
  「그 의견은 존경합니다. 그러나 나는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하고 일어선 것이 최였다.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에게 쏠렸다. 뜻하지 않은 반격에 흥분한 학생회의 간부가 데모를 할 수 없다는 그 이유를 따지고 들었다.」
  최는 침착하게 답변했다.
  「데모를 하려면 죽을 각오를 하고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내겐 그런 각오가 서 있지 않습니다. 데모를 하려면 그 목적이 관철될 때까지 철저하게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내겐 그런 각오가 서 있지 않습니다. 데모를 하는 것과 나의 이익이 80퍼센트까지라도 일치해 있으면 그런 각오를 해보기로 결심이라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80퍼센트는커녕 50 퍼센트의 일치도 있을까 말가 하니 각오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모를 하는 것과 민족의 이익과는 1백 퍼센트 일치되어 있는데 어째서 50퍼센트도 일치되어 있지 않다고 하느냐. 그것은 민족으로서의 자각과 학생으로서의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는 탓이 아닌가 하고 학생회 간부는 탁자를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이에 대해 최는 이렇게 말했다.
  「데모의 목적이 명백하다고 하나 추상적이고 그 결과는 애매한데, 데모를 하다가 잃을지 모르는 우리의 생명은 구체적이고 그 결과는 명백하니까, 50퍼센트의 일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비겁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고 학생회의 간부는 호통을 쳤다.
  「자기 소신대로 행동하려는 것이 비겁한지, 자기의 소신을 굽히고까지 부화뇌동하는 것이 비겁한지는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겠지요.  나는 지리산 밑에서 자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에서 죽었습니다. 옳건 그르건 소신대로 죽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본의 아니게 뇌동하다가 죽은 죽은 자도 많을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뇌동하다가 죽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자랐습니다.  나는 뇌동(雷同)하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랐습니다.」

   아직 지각이 모자라는 대중이나 학생이 선견의 명이 있는 지도자나 선배의 지도에 따른 것이 어찌 뇌동이 된단 말인가고, 학생회의 간부는 더욱 소리를 높였다.
  「지각 없는 대중과 학생은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야 하지요. 그러나 뇌동이 되지 않으려면 그 지시를 그 지시를 자기 나름으론 납득하고 따라야 할 줄 압니다.」

   미리 납득하길 거부하고 있는 우매하고 완고하고 비겁한 의식형태도 있다면서 학생회의 간부는 4·19의 정신을 이해하고 그 전통을 이어 받을 생각은 없느냐고 힐난했다.
  「4·19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과 이번의 데모에 참가하는 것과는 별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19의 정신을 이해하는 동시에 4·19가 그 뒤 어떠한 상황을 만들어 내었는가 하는데 대해서도 이해와 연구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그럼 '너는'하고 낮은 인칭으로 학생회의 간부는 4·19의 역사적 의무를 무시할 것이냐고 흥분했다.
  「4·19가 찬란한 민족사의 한 페이지로서 남을 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족사의 한페이를 찬란하게 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영웅이 되길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천재(天才)가 되길 원합니다. 영웅이 될 포부가 있었으면 사관 학교를 갔든지 대학이라도 정치과를 택했을 것입니다.」

   천재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학생회의 간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최를 쏘아보고만 있었다. 긴장한 교실의 공기가 유머러스하게 누그러졌다.
  학생회의 간부는,
  「현명하고 순수한 민족적 양심을 가진 여러분은 비겁한 사나이의 궤변에 속지 않고 구국의 대열에 참여할 줄 믿습니다.」
하는 말을 남겨 놓고 총총히 교실에서 사라져 버렸다. 학생회의 간부가 나가자 눈군가가 소리쳤다.
  「나는 영웅이 되길 원하지 않고 천재가 되길 원한다. 좋은데…….」

   당시 불문과 1학년이 학년 단위로 데모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최의 영향이 큰 작용을 한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최에게 '앙팔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 후 최는 학생회의 사문(査問)을 누차 받은 모양이지만 조금도 기세를 꺾이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러한 최의 기왕을 돌이켜 보며 동식은 최에게서 온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아직 완전히 잠을 깨지 않은 동식의 의식 속에 쥘부채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 아니면 그 단서의 인트가 그 쥘부채에 있을 것이란 생각이 돋아났다. 동식은 이 생각과 더불어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곤 아침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자기 방의 문을 잠그고 고등학교 때에 사용한 확대경으로 쥘부채의 세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피죽, 대오리, 바탕, 축, 이런 순서로 자세히 관찰해 가는데, 있는 그대로가 확대되어 나타날 뿐 신발견은 없었다. 다만 축에 청실 홍실 검은 실로 어우른 술이 달려 있는데, 청실과 홍실은 보통의 실이었고 검은실만은 실이 아니라 머리칼이었다. 음부의 치모(恥毛)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섞였지만 그런 생각을 묵살하고라도 머리칼을 섞었다는 사실에 은밀한 의미가 함축되었다고 볼 수가 있었다.

   다음에 동식은 나비의 머리를 바쯤 묻도 있는 나리꽃에다 확대경을 들이댔다. 술을 표현한 듯한 형상의 것에 세 줄기 나비의 두부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첨단에 육안으로 볼 때 깨알 같은 반점이 있었는데 그 반점을 세빌하게 확대해 보니 뚜렷한 형태가 솟아나왔다. 반점의 하나는 'ㅅ' 또 하나는'ㅁ' 다른 하나는 'ㅅ'이었다. 보면 볼수록 어떤 의미를 가지고 ㅅ, ㅁ, ㅅ 이라고 기입했다.

   반점의 의미가 있는 것을 깨달은 동식은 이번엔 나비의 날개를 살폈다. 그다지 힘들지 않게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차례차례 다음과 같은 부호가 나타났다.
  ㄱ, ㄷ, ㄱ
  이것은 ㅅ, ㅁ, ㅅ 에 대응하는 부호임에 분명했다. 그리고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뜻이 있어 뵈는 단서, 또는 힌트 같은 것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동식은 부채와 확대경을 책상 서랍에 넣어 버리고 벌렁 드러누워 ㅅ,ㅁ,ㅅ과 ㄱ,ㄷ.ㄱ의 의미를 모색하기로 했다. 모색한다느니보다 추리를 한다는 것이고 추리를 한다느니보다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며 보는 수밖애 없었다.

   남자를 상징하는 나비를 크게 비긴 것을 보면 부채를 만든 사람은 틀림없이 여자다. 그리고 나비의 날개에 남겨진 ㄱ, ㄷ, ㄱ은 남자의 이름일 게고 나리곷의 술에 달린 ㅅ, ㅁ, ㅅ은 여자의 이름이다.
  나비와 꽃, 이것을 해명하긴 어렵지 않다. '당신은 죽어서 나비가 되고, 나는 죽어서 꽃이 되리라'고 이 나라에 전해 내려 온 상문상사(相聞相思)의 노래에 불행한 애인이 불행한 애인에게 대한 애절한 사랑을 담아 본 것일게다. 쥘부채는 그러니까 상사의 부채다.

  「그러나 ㄱ, ㄷ, ㄱ은 아땋게 읽으며 ㅅ, ㅁ, ㅅ 은 어떻게 읽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동식은 초조하게 어제의 형무관과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못해 약속한 시간을 한시간이나 앞두고 그 다방엘 나갔다.
  신문으로 보는 설악산의 상황은 오늘도 비관적이었다. 우선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질 못한다니 딱한 일이다. 그러나 비정한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한 가닥의 기적을 비는 마음이 아타깝게 나타나 있다는 사실만이 위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적이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파헤친 눈속에서 눈을 말똥말동 뜨고 조난자들이 무사히 기어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일까.  얼어 붙은 육체에 서서히 혼기가 돌고 다시 숨을 쉬게 되는 기적이 나타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 기적이 있기에 비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기적이 없다면 기도하는 마음처럼 허무한 건 없다.

   동식은 이제라도 저 다방의 문을 통해 성녀의 파리한 얼굴이 나타날 수 있는 기적을 꿈꾸어 봤다.  뉴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표까지 사 가지고 들어간 연화관에서 예사로 나와 버리는 성녀가 아니었던가.
  '그 녀석하고 살아 보니 시시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하며 백을 팽개치듯 탁자 위에 던져 버리고 살짝 동식의 옆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성녀로선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행동일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동식은 아무 말 없이 상냥한 미소를 띠고 성녀의 팔목을 잡아 언제나 하듯이 기볍게 흔들어 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적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동식은 그저 음산한 눈을 뜨고 지난날을 되새겨 보았다.  모든 행동이 얌체 가시내와 선머섬마를 섞은 것 같은데 성녀의 키쓰만은 정성스러웠다. 속눈썹이 길게 뻗은 눈을 다소곳이 감고 얼굴의 각도를 어떻게 하든지 이 편에 맡기곤 그 갸냘픈 팔의 한쪽으론 동식의 목을 안고 한쪽으로 허리를 감아 정염(情炎)이 완전히 가시도록 키쓰의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시간을 잊게하고, '예스'와 '노오'를 조작하는 의식의 피안(彼岸)에다 황홀한 엑스터시를 만들어 내는 명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황홀한 키쓰가 끝난 어떤 때 성녀는,
  「너보다 내가 세 살이나 위인데.」
하면서 한숨을 섞었다.
  동식은 무슨 잠고때를 하느냐고 투덜댔다.
  「디즈레일리의 부인은 디즈레일리보다 몇 살 위였지? 셰익스피어의 부인은 셰익스피어보다 몇 살 위였지?」
  그러니 나이가 많고 적고가 성녀로 하여금 배신케 하는 이유와 동기는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형무관은 약속한 정시에 다방엘 나와 동식 앞에 앉았다. 동식은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형무관은 종이 쪽지를 꺼내, 탁자 위에 놓으면서 동식이 알아달라고 한 명단이라고 했다. 전부 합쳐 7명의 이름이 쓰여 있고 이름 밑엔 연령, 재감 연수, 죄명, 석방된 후의 주소가 쓰여 있었다. 동식이 실망 한 것은 모두다 남자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동식은 실망의 빛을 나타낼 수가 없어 그 명단을 주의 깊게 보는 척 했다.  강도, 살인 미수, 방화, 절도가 둘, 보안법 위반이 한사람 끼어 있었다. 재감 연수는 8년이최고, 3년이 최하였다.
  「흥미의 대상이 될 것 같은 사람이 있소?」
  형무관이 담배에 불을 붙여 물면서 물었다.
  「글쎄요.」
하고 동식이 망설이자 형무관은 또 하나의 쪽지를 끄집어내며,
  「여사(女舍)에다 물었더니 석방된 여수(女囚)는 없고 어제 새벽 병사한 시체가 하나 가족에게 인도되었다고 하던데 이건 그 죽은 여수의 이름이오.」
하곤 그 쪽지도 탁자 위에 놓았다.
  동식은 산선이 와락 그 쪽지 위로 쏠렸다. 그 쪽지 위의 기록은 다음과 같았다.
  신명숙(申明淑)39세, 형기20년, 재감 17년 병사, 시체 인수자 양수연(병사자의 이모부), 주소 서울특별시 M동 산 13번지.

 

   동식은 그 쪽지를 읽고 넋을 잃었다. 너무나 놀라운 재료가 나타난 바람에 감상을 간추린 여유가 없엇다.
  「비상조치법 위반으로 무기형을 받은 여자인데 민주당 정권 당시 20년으로 감형되었다오. 17년 살았으니 앞으로 3년만 더살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죄인이긴 해도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어때 학생, 그것 소설감이 되지 않겠소?」
  이러는 형무관의 말에,
  「되구 말구요.」
하고 엉겁결에 대답은 했으나 가슴의 동요가 심해서 소설이고 뭐고 염두에 없었다. 그래 간신히 물었다.
  「17년을 살았으니 1950년에 수감된 게구먼요.」
  「그렇지, 그러니까 나이는 스물 두 살 때지.」
  「아직도 이런 재소자가 많이 있습니까?」
  「아직도 많지. 전국적으로 말하면 상당한 숫자가 될 거야.」
  「사면이나 감형 같은 것이 있다고 하던데요.」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아까 말한 비상조치법 위반 같은 죄인에겐 사면이나 감형은 없지. 민주당 정권 때 꼭 한 번 있었을 뿐야.」
  「그건 왜…….」
  「바로 그들은 국가의 적, 민족의 적이 아냐? 우리 나라의 형편으로선 아직 그런 분자들에게 관대할 수 있는 여유가 없잖아?」

  물어 보고 싶은 일들이 많은 것 같았으나 요령 있는 질문의 형식이 되지 않아 동식은 덤덤히 앉아 있었다. 형무관은 그럼 가봐야겠다면서 자리에서 섰다. 동식은 어디 같이 가서 식사라도 하지고 그를 만류했으나 곧 교도소로 돌어가야 한다면서 동식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 도 근무하러 가십니까?」
  「우린 24시간 든무요. 형무관 10년 하면 징역5년을 치르는 격이란 말은 옛말이고 지금은 8년 징역을 치르는 셈이란 말요.」
  「수고가 많겠습니다」
  「뭣, 직업이니까.」

   동식은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형무관을 다방입구까지 전송하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신명숙, 형기 20년, 재감 17년, 출감 3년 앞두고 병사. 스물두 살의 쳐녀로서 수감되어 서른 아홉에 시체가 되어 나오다. 소설? 어립도 없는 이야기다.'
  깊은 피로가 엄습하는 것 같았다. 동식은 눈을 감았다. 성녀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꺼졌다. 친구의 얼굴도 떠올랐다가 꺼쪘다. 설악의 조난 사고도 심상 위로 스쳤다.
  '내가 살아온 세상! 이건 장난이 아닌가!'

 

   그 길로 돌아와 동식은 열을 내고 자리에 누웠다. 으슷한 오한이 스미는 몸을 이불 속에 도사리고 누웠으면서도 생각을 멈출 순 없었다.
  ㅅ, ㅁ, ㅅ 이 시명숙 자신을 뜻하는 부호일 것이란 추측이 신념처럼 굳어만 갔다.
  '그렇다고 치고 그 쥘부채는 왜 거기에 덜어져 있었을까?'
  열 띤 머리를 굴려 드디어 동식은 하나의 이야기를 꾸몄다.

   ――그날의 새벽, 한 대의 리어카가 형무소 문간에 닿았다. 이윽고 철문 곁에 있는 통용문이 열렸다. 거기서 조잡하게 만든 관(棺)과 유품(遺品)을 싼 보따리가 나왔다. 먼저 관을 리어카에 싣고 다음에 보따리를 실었다. 늙은 이모부가 리어카를 끌고, 늙은 이모가 리어카를 밀며 백설이 덮인 길을 더듬어 내려왔다. 리어카의 진동이 심한 까닭으로 보따리의 끈이 풀리기 시작했다.  독립문 그곳에 이르렀을 때, 유류품의 제일 위에 얹어 놓은 그 부채가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눈위에 떨어졌다.
  일련의 판토마임을 보는 것처럼 뇌리에 전개되는 상상의 정경을 보고 있는 동안에 동식은 스스로가 꾸민 이 이야기를 사실인양 믿고 싶은 심정으로 기울어 들었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