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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부채」
그러나 그 정경을 마무리 선명하게 죄리에 재현하고 확인해 봐도 답안은 아노지 않았다. 되레 불가사의하다는 관념이 섞이기 시작하니 생각은 오리무중을 헤매는 거나 같았다. 탐정이나 수사가 드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쉬운 것이 결코 아니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섞였다. 동식은 그 근처를 왔다갔다 하며 서성 거렸다. 그 자리에 있어 보았댔자 신통한 수가 터질 리가 없으리란 짐작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훌훌 떠나 버리기엔 뭔지 아쉬움이 남았다. 동식은 그곳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문득 교도 작픔 직매소란 간판을 봤다. 교도 작품이란 뭘까 하고 생각했다. 교도 작품이란 학생들의 작품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것이 하필이면 그곳에 있을리가, 하고 생각하다가, 형무소를 교도소라고 허더라는 지식이 떠올랐다. 동식은 그 직매소엘 들어가 보았다. 옷장, 이불장, 찬장, 탁자 같은 큰 가구를 비롯해서 쟁반, 목기 같은 것이 꽉 차게 진열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무관인 듯피은 사람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동식은 앝은 견식의 탓인지는 모르나 그의 눈엔 그곳에 진열된 물건들은 어던 일류의 가구점에 갖다 놓아도 전연 소색이 없을 것 같았다. 너무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탓인지 젊은 형무관 한 사람이 동식의 곁에 와서 말을 걸었다. 죄인과 재소자라는 명칭의 차이가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의 위치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 하고 생각하다가 동식은 복받쳐 오르는 일종의 감회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동식은 조그마한 쟁반 위에 파인 조각을 눈여겨 봤다. 난(蘭)을 방불케 하는 풀과 그 풀 위로 날고 있는 나비의 형상에 우선 마음이 끌렸고 그 조각의 솜씨에 감동했다. 그것은 5센티 길이도 못 되는 여자의 나상(裸像)이었다. 목은 성냔 개비를 두 개 겹친 것쯤이나 될까. 그런데 그 조그만 물체에 성숙한 여자의 유방, 허리, 발톱까지 달린 다리와 발을 섬세하게 조각해 놓곤 그 끝에 귀이개를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동식은 숨을 주였다. 동식의 눈이 번쩍 뜨였다. 쥘부채가 불현 듯 눈앞으로 스쳤다. 그 피죽이나 대오리를 상아, 아니면 인조 상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바로 칫솔대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쥘부채는 형무소에서 나온 물건이다. 수인(囚人)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런데 그 수인은 여자다. 동식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마음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거기서 나와 동식은 다시 부채가 떨어져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 쥘부채가 형무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단서를 잡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쓰다가 버릴 수밖에 달리 용도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칫솔의 대로써 쥘부채를 만들고 여자의 정교한 나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도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생활의 주면엔 신비의 가능이 충만해 있다는 얘가가 아닌가. 충만한 신비의 가능에 외면하고 매일매일을 평범한 회색으로 도말(塗抹)하고 있는 생활이란 불행하지 않은가. 불행은 어디서 덮쳐 오는 것도 아니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준비하는 것이며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동식은 생각했다. 동식은 또한 쥘부채를 만지작거리며 아까 본 여인 나상을 생각했다. 요정(妖精)의 이미지는 그 조그만 나상으로 인해서 보다 선명해졌다. 그 나상은 섹스에 기갈이 난 죄수가 벌을 무릅쓰고 감방 안에서 스스로의 섹스를 승화시킨 집념의 화신이었다. 악취를 풍기는 사타구니 속의 발기를 만지던 불결한 손끝에서 영롱한 옥과 같은 요정이 탄생했다. 동식은 그런 정황을 상상하면서도 아까의 그 나상에 순화된 에로티시즘을 느꼈다. 에로티시즘이 예술이 되자면 고난과 시련의 용광로를 통해 극대화의 방향으로든, 극소화의 방향으로든, 아무튼 정신의 빛깔이 스며든 변형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동식은 또한 아까의 그 나상의 작자와 에로스의 만화경(萬華鏡)을 꾸며 보인 '예프다 나이만'과의 정신적 거리가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 봤다. '예프다 나이만'은 방대한 패널을 만들 작정으로 알루미늄의 유방, 알루미늄의 궁둥이를 통해 아름다운 형(型)들을 구축했다. 서대문 형무소의 예술가는 예프다와 같은 자각은 없이, 버려진 칫솔대의 그 비좁은 세계 속에서 요정을 방불케 하는 여자의 아름다운 유방, 허리, 궁둥이, 허벅다리를 발굴해 냈다. 그러고 보니 쥘부채도 음습한 요기와 같은 예로티시즘을 지니고 있었다. 손바닥 크기만한 검은 나비와 작은 나리꽃의 교환이란 이미지가 평범한 관념으로써 이루어질 리가 없다. 거기엔 어떤 집념이 개재하고 작용하고 있을 것이었다. 검은 나비의 이미지와 아까 본 나상이 겹쳐지자 동식의 마음 속에도 어떤 집념의 원형질 같은 것이 괴기 시작했다. 새침한 옆 얼굴로 성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녀가 미국으로 떠나간 것은그 여자로선 다행한 일이다. 만일 그들의 신가정이 서울 안에 있었더라면 주먹 크기만한 돌덩이가 그 신가정의 유리창을 산산이 부숴 놓고 말았을 테니까. 테러리스트는 제정 러시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식의 마음 속에 어렵풋이 하나의 계획이 짜여졌다. 그 계획에 따라 동식은 당분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의 계획이란 그 자리에 서서 사람이 좋아 뵈는 형무관 하나를 만나 수단 것 궁금한 것을 물어 본다는 것이었다. 동식은 모자나 차림으로 보아 간부에 속하는 듯한 젊은 형무관이 가까이 오는 것을 봤다. 동식은 그 형무관 가까이에 가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긴요하게 물어 볼 일이 있으니 잠간 동안 시간을 빌 수가 없겠느냐고 말을 걸었다. 그 형무관은 수상쩍은 표정으로 동식을 바라보더니 그가 학생임을 알자, 짤막한 동안이면 좋다고 하면서 근처의 다방엘 가길 승낙했다. 동식은 되도록 속셈을 보이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원거리에서부터 이런 일 저런 일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형무관은 직무에 따른 기밀에 관계된다고 하면서 좀처럼 입을 열자 않았다.
동식이 집엘 돌아가 보니 최(崔)로부터 두툼한 편지가 와 있었다. 최는 지리산 밑을 고향으로 하고 있는 동기생이다. 최는 방학 동안 고향에 돌아가 있었다.
느그 서울 놈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방학 동안에 소설을 한편 쓸 작정이었지. 깜찍하고 브릴리언트하고, 깊고, 정서적인 그런 것을 하나 써서 불역(佛譯)까지 할 참이었는데 슬프도다! 뜻대로 되지 않는구려. 줄거리가 있는 소설은 낯이 간지러워 쓸 수가 없고, 줄거리가 없는 것은 싱거워서 못 쓰겠다. 형식으로 말하면 줄거리가 없기도 하면서 있기도 한 그런 것이라야 하고, 내용으로 말하면 우리의 생(生)의 실상에 파고드는 그런 것이라야 할 텐데 역부족이 아니라 환경의 탓으로 어절 수가 없다. 난 파리엘 가야만 소설을 쓸 것 같다. 평균 1,5마리의 기생충을 기르고 잇는 누리티티한 백성들의 얼굴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야만 세계의 수준으로 소설을 슬 수 있을 것 같다. 막대기를 헤아리고, 막걸리를 마셔야만 선거할 줄 아는 우리 동포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만 문학다운 소설이 나올 것만 같다. '더블린' 사람들만을 예상하고 조이스가 <율리시이즈>를 쓸 수 있었겠느냐. 드릴러 소설이나 읽고 서부 소설이나 읽는 미국 독자만을 예상하고 헨리 밀러가 <석세스>를 쓰겠느냐? 더불린을 떠나서, 미국을 떠나서 제임스 조이스와 핸리 밀러는 더블린을 빛내고 미국을 빛내는 작품을 비로소 슬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느냐.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소설을 써서 느들 놀라게 할 것은 단념하고 시를 쓰기로 했는데 아아, 여게도 또한 난관이 있도다.
예 하나,
예 둘,
이상과 같이 되었는데 내용일랑 보지 말고 형식만을 보아 주라. 아무리 독창적인 유행가 작사자라도 형이상학이란 말은 뺏어 갈 수 없겠지. '도지사님 날 사랑해 주오'란 가사는 만들지 못하겠지. '그리운 머슴이여 말똥 같은 똥 누지 말라'는 가사에 곡을 붙이지는 않겠지. 우행가의 촉수를 피해 시를 만들자면 이렇게 고귀한 어휘만을 가려야 한다네. 한구에서 시를 살리자면 시 이전에서 요령껏 하든지 아예 시를 넘어서 버리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자네의 의견을 준비해 두게. 시를 쓰려는 동기는 느그를 놀라게 할 목적도 있었지만 우리 고향 초등학교 여선생이 문학 소녀인지라, 대학하고도 불란서 문학과에 다닌다면서 그 흔한 시 한 수 짓지 못하느냐는 핀잔어린 눈초리가 무서워서였는데 이와 같은 시인파산선고를 자초하고 말았다.
PS-1 PS-2 PS-3 대장부 생을 받아, 일개 아녀자 때문에 심금을 어지럽게 한다면 하위지군자호(何謂之君子乎). 우리 몇 해 뒤에 파리로 가서 프랑스와 사강 같은 여자나 낚자. 그래서 문자 그대로 실질적인 동서교류를 하는 거다. 그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