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부채」

 

   유 선생이 텍스트를 꺼내 들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오늘은 제 3장부터지. 자 그럼 A군.」
  A는 유창한 발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A의 불란서 발음은 본 바닥의 파리장을 뺨칠 정도라는 정평이 있었다. A군에 비하면 유 선생의 발음은 엉망이다. 로마자를 표기한 그대로 읽어 가는 발음이었다. 맨 처음 학생들은 유 선생의 발음을 듣고 킬킬 대며 웃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불란서의 반제품(半製品)쯤이나 되는 선생들에게서 월등하게 좋은 발음으로 배워 왔기 때문에 아무리 자제(自制)를 하려고 해도 유 선생의 뒤죽박죽한 발음엔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선 선생은 고등학교 때 고의로 발음을 무시하는 일인(日人)교사에게서 불란서어를 배웠다. 대학에 들어갔을 땐, 그 대학에 발음 겸 회화를 가르치는 젊은 불란서 여성이 잇었는데 첫 시간에 그 여성의 비위를 거슬려 놓았다. 환영하는 뜻으로 서툰 불란서 단어를 휘두르며 환성을 올린 것을 그 여성은 자기에게 대한 인격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불란서는 자유의 나라라고 하지만 사제간의 구별은 대한히 엄격한 모양이야. 그런 전통 속에서 자란 여성이 돼 놓으니까 우리들의 소행을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지. 학교를 그만둬 버렸어. 주임 교수가 노발 대발해서, 너희들이 뿌린 시앗은 너희들이 거두라면서 끝내 발음 교사와 회화 교사를 우리반엔 보내지 않고 말았지.」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유 선생은 이런 말도 했다.
  「외국어의 발음은 조금쯤 서툴러야 해. 나처럼 심한 경우는 물론 안되지만, 외국어를 너무 잘 지껄이면 뭔지 비루해 뵈고 닳아 먹은 것 같고 하잖아? 더욱이 불란서어는 콧소리를 내야 하는데 서툴게 잘 하려다가 실수한 콧소리를 들어봐. 이가 빠진 문둥이 흥청대는 소리나 다를 게 있는 가. 허지만 어런 소링 약자의 변명이지. A군쯤 되는 사람이 할 소리다.」

   학생들은 유 선생의 말을 약자의 변명으로 듣지 않았다. 우선 발음에 능한 A가 대단히 좋은 소리를 들었다면서 재빨리 실천하려고 들었다.  학교의 강의 시간에 A가 택스트를 읽는 지명을 받았는데 A는 유선생 투로 텍스트를 읽어 내려간 적이 있었다.  주임 교수인 Y선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더니, 어덯게 된 셈아냐고 따졌다. 그리곤 교실을 조롱한다면서 호되게 A를 나무랐다. 이 얘기를 했더니 유 선생도 정색을 하고 A를 꾸짖었다.
  「발음은 너희들이 배운 대로 해. 내 뽄을 따면 나를 조롱하는 것아리고 인정할 테니까.」

   이것은 모두 옛날 얘기다. 유선생은 학색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지 자신의 발음을 대폭 고쳤다.
  A에서 B로 넘어와 어느덧 C가 읽을 차례가 되었다. 텍스트는 흥미가 있는 내용이었지만 동식은 잠바 주머니에 있는 부채에 자구만 마음이 쏠렸다. 부채에 마음이 솔리자 이젠 명료한 물음의 혁신으로 생각이 번져만 갔다.

   어떤 사람의 부채일까, 누가 만든 부채일까, 뭣을 하기 위한 부채일까. 어떻게 바로 그 부채가 거기에 떨어져 있었을까, 하필이면 내가 왜 그 부채를 줍게 되었을까, 어떤 우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C가 동식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감짝 놀랐다. 동식이 읽을 차례였다. 어디부터지? 하는 눈초리로 페이지 위를 더듬는 것을 보고 C는 손을 건너 동식의 책장을 두어 장 넘겨 놓곤,
  「여기부터」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식은 읽어 내려갔다. 두어 페이지 읽고 나니 유 선생은 그만, 하고 이 때까지 읽은 부분을 우리말로 고쳐 보라고 했다. 다행히 대수롭지 않은 것이어서 동식은 건설으로라도 우리말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그러는 도중 'Va-t'en'이란 대사가 부딪쳤다. '봐, 땅'이란 '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가라' 고만 번역하기엔 뭔지 조금 모자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적당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그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도 없어서 '가라'괌 해 버렸다.
  「가라! 그래도 되긴 하지만.」
하면서 유 선생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후의 문맥이 있잖아? 어떻게 좀더 적당하게 할 수 없을까?」
  동식이 머뭇거리는 눈초리로 A쪽을 보았다. A가 말했다.
  「그럼 가라, 또는 가요 그럼 하면?」
  「됐어, 이 경우엔, 가요 그럼이 적당하다.」

   다시 차례는 A로 넘어갔다. 그러나 A는 '봐, 땅'이란 말에 걸려 버렸다. VA TE EN의 줄인말,  EN은 '여기에서'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직역을 하면 '여기에서 떠나자'로 된다. 그런데 EN이란 말엔 '그럼' 이란 뜻이 또 있단 말인가. 이런 초보적인 문제를 들고 물어볼 수도 없는 쑥스러운 마음의 바탕 위에 '봐 땅'이란 단어가 검은 부채와 더불어 빙빙 돌았다.

   다시 동식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도 어물어물 했다.
  C가 책장을 넘기고 읽을 곳을 가리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너 이상한데?」
  B는 중얼거렸다. A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동식은 고개를 들어 유 선생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어색하게 텍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이럭저럭 그날의 과업이 끝났다. 끝나고 난 뒤 유 선생이 물었다.
  「동식 군,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
  동식은 당황했다. 화끈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선뜻 쥘부채를 꺼내려고 왼손을 잠바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나 손을 거기에서 멈춰 버리고 간신히 말했다.
  「아뇨, 별일 없습니다.」
   A군이 불쑥 한마디 했다.
  「걘 실연했어요.」
  「실연?」
하고 유 선생은 동식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산으로 가자.」
   「남산으로 가서?」
   「눈에 덮인 서울을 구경하다가 내려와서……」
   「그리고?」
   「영화나 보다가.」
   「나이롱뽕이나 할까?」

   「그리곤?」
   「진 놈이 대포 사지.」
   유 선생의 집을 나와 한길을 걸어오면서 이런 말들을 주고 받다가 C는 돌연 혀를 찾다.
  「기껏 낸다는 아이디어가 항상 그 꼴이야.」
  「태평 성대의 대학생이 그렇고 그렇지, 뭐 별 수 있겠나.」
한 것은 A.
  「그렇다고 설악산에 뒤쫓아가서 조난이라도 당해야겠단 말인가」
한 것은 B.

    그러나 일단 남산으로 가기로 작정은 되었는데 동식은 그속에 끼지 않기로 했다. 셋은 일제히 공격의 화살을 던졌다. B는 심지어 '너 성병(性病)에 걸린 건 아니지?' 하는 투로 신랄한 조롱까지 했다. 중구난방의 상태에서 동식은 '급한 볼일이 있다'고만 해 놓고 학우들에게 등을 돌렸다. 어수선한 문제를 혼자 간직한채 그들과 어울려 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식은 혼자 덕수궁 담길을 돌았다. 사람의 그림자가 드문 호젓한 길, 담벼락 위로 자욱이 쌓인 눈, 그 위로 넘실거리는 가지마다에 꽃핀 눈! 위트릴로의 설경(雪景)도 이처럼 아름답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설악산의 조난자 들이 다시 뇌리를 스쳤다.

   그들은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설악산으로 갔다. 영화관도 다방도 대폿집도 도서관도 없는 험준한 산으로,  산이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의 곁을 떠나 애인과 하직하고 거기엘 갔다.  건강한 마음이 좇는 허망이란 병든 마음이 카우는 희망보다도 더 허망하다. 태양처럼 찬란한 허망, 태양처럼 넓은 허망 속에 그들의 건강과 의욕과 젊음은 수정처럼 결정(結晶)할 수 있을까. 일체의 정열과 포부와 염원을 압축해서 한 알의 수정이 되리라는 사상엔 감동이 있다.동식은 덕수궁 안으로 들어섰다. 눈이 쌓인 오전의 덕수궁 뜰엔 사람의 흔적이란 없었다. 역사의 이까가 눈의 의상을 입고 이날의 덕수궁은 학생의 독차지였다. 눈을 인 등나무 밑 벤치, 마른 곳을 찾아 동식은 걸터앉았다.

   호주머니에서 부채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 부채를 180도 각도로 펴들고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양편 피죽은, 폭 4밀리가량, 방사형으로 뻗은 대오리는 각각 2밀리, 대오리와 대오리사이의 가장 넓은 부분도 2밀리, 일직선을 이룬 축엔 8모로 깎인 못이 박혀 있고, 이 못이나 대오리나 피죽은 모두가 상아(象牙), 이나라도 그것 비슷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피죽이나 2밀리씩의 목을 가진 대오리는 정밀 기계에서 뽑아낸 것처럼 정교했다. 동식은 앞으로 돌렸다.

   낡은 하늘색의 바탕 위에 두부(頭部)를 밑으로 한, 나비 한 마리가 손바닥의 넓이 가득히 수놓여 있었다. 나비의 빛깔은 검게 보일 정도의 녹색, 날개의 바닥엔 붉은 무늬를 점점이 놓았고, 날개 언저리의 굴곡에는 교치(巧緻)를 다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부채, 아무튼 하루 이틀에, 아니 한 두달에 만들어질 수는 없는 물건의 됩됩이었다. 대오리 사이에 기인 비단의 빛깔은 진한 감색인데 색이 닑은 하늘색인 것을 보면 한두 해가 지난 무럭도 아닌 것 같았다. 더욱이 그 상아 빛의 피죽과 대오리엔 긴 세월을 두고 ㅅ람의 기름이 스며든 듯 반들반들한 두께마저 느껴졌다. 그럼에도 섬뜩한 마음은 들어도 불결하다느 생각은 들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사랑을 구하기 위한 기원의 산물인가?'
   '저주하기 위한 부첩의 뜻인가?'

   사랑을 비는 마음에도 알맞은 부채이며 저주를 위한 부첩으로서도 어울리지 않을 바 아닌 부채라고 생각하니 동식은 선뜻 무슨 계시와 같은 것이 상념 위를 스치는 것 같아 마음을 가다 듬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부채의 의미 저 편에 성녀의 의미 심장한 미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식은 그 미소를 사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 미소를 저주할 수도 있었다.

  성녀(星女)는 동식보다 세 살 위인, 동식이 다니는 대학의 대학원생이었다. 자질구레한 동기만으론 동식의 성녀에 대한 사랑을 설명할 수가 없다. 동식이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연이었다면 그 사랑도 우연일 것이고, 동식이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 필연적이었다면 그 사랑도 필연이었을 것이다. 동식이 성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성녀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왔다고 느겼고, 성녀는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있다고 생각하며 의심하지 읺았다. 그만큼 서로는 자연스럽게 말을 거넬 수 있었고 함께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고 거리낌 없이 서로의 마음을 펴 보일 수가 있었다. 사랑의 고백을 한 것은 성녀 편에서였다.

   동식은 그 밤을 잊지 않는다. 2년 전의 4월 20일 밤 아홉 시, 동식과 성녀는 남산의 팔각정 위에 있었다. 오를 때 안개가 짙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1미터 앞을 뚫을 수 없는 정도였는데 팔각정에 이르자 시야는 완전히 막혀 버렸다. 그 무수한 전등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도시는 완전히 안개 속에 묻혔고 동식과 성녀는 아득히 하계를 하직하고 구름 위로 올라온 천사의 고독을 닮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겅녀가 동식의 목을 안고 속삭였다. '아이러브'. 동식은 벅차게 숨을 내쉬면서 응했다. '오씨무아'. 둘이는 얼마 동안을 서로 안고 안긴 채 서 있었는지 모른다. 안개의 바다위에 하나 둘 전등 불이 솟아나고 서울의 면모가 소생한 등불로 해서 아슴푸레 윤곽을 찾았을 때, 동식과 성녀는 경찰관들의 눈치를 피하면서 조용히 산을 내려왔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순한 짙은 안개를 걱정한 때문인지 그날 밤 팔각정 근처엔 무장한 경찰관들이 출동해 있었다.

  동식은 성녀와의 사랑의 고백을 위해서 서울의 등불이 일제히 그 빛을 안개 속에 숨겨 주었다는 해석을 즐겼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면, 안개의 위계에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씁쓸했다. 성녀의 사랑의 고백을, 서울을 덮어 버린 안개의 조작을 예상하지 않고는 상상하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 고백을 절해고도에서의 사랑의 가능을 시사한 것이기 해도 절대적인 사랑의 고백이라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숱한 우리말을 두고 하필이면 어색한 영어와 불란서어로서 응수되었다는 점에도 뻘서 안개의 위계를 깨달아야 할 틈서리가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검은 나비의 부채는 기왕에 그 안개와 지금 내 가슴 속에 서려 있는 안개를 깨뜨려 없애라는 운명의 계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도 터무늬 없는 생각의 비약일 뿐이다. 동식은 다시 한번 부채를 접었다가 폈다가 하면서 성녀와의 일을 생각했다.
  성녀는 까다로운 애인이었다.
  「호텔에 갈까?」
  「노오」
  「여관에라도 갈까?」
  「노오」
  「다방엘 갈까?」
  「노오」
  「중국집에 가서 뭣을 먹을까?」
  「노오」
  「레스토랑에 가서 양식을?」
  「노오」

   이러한 '노오'가 백법쯤 계속된 다음 겨우 한번의 '예스'를 얻었다는 것이 한강변 버드나무 밑에 같이 앉는 일이고, 도봉산 개울에 같이 발을 담가 보는 일이고, 덕수궁 돌담을 돌아 보는 일이었다. 어쩌다 영화관엘 같이 가 보면 뉴스가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나와 버리고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와 버리기가 일쑤고, 중국 음식은 불결해서 못 먹고, 냉면은 매워서 못 먹고, 불고기집엔 사람이 득실거려 못가고, 비이프 스테이크는 덜구었다고, 또는 지나치게 구었다고 먹지 않는다.

   ('노오'로서만 만들어진 육체, 일체에 '노오'로서만 응하기 위해 기능하는 신경, 그래도 목도 팔도 다리도 허리도 가늘고 얼굴은 언제나 파리했는데…….)
  젖가슴과 궁둥이와 허벅다리에만은 약간의 볼륨이 있었다. 그래 동식은,
  「당신은 최대한의 노오와 최소한의 예스로써 된 여자.」
라고 빈정 대기도 했었다. 그러면 성녀는,
  「앞으로 당신은 이 최대한의 노오를 어덯게 처리핳 셈이지?」
하고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좋았다. '노오'의 연속에 지친 동식의 신경은  그 일순의 웃음으로써 구원을 받았다. 새하얀 이빨이 엷은 입술 사이로 살짝 드러나면서 왼쪽 눈이 치때이듯 가늘어지는 그 웃음! 아마 지금 그 웃음이 눈앞에 있으면 검은 나비가 수놓은 쥘 부채로써 성녀의 이미빼기를 살짝 때려 주기도 했을 것이다. 동식은 그 부채를 드려서 알맞은 성녀의 체구를 상상해 봤다. 성녀의 얼굴과 몸집 그대로를 3분의1쯤으로 줄이면 될 것이었다.

   (요정이다.)
  하마터면 그 요정이란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그렇다. 요정이다. 이건 분명 요정의 소유물이다.」
하면서 보고 있는데 그때까진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눈에 뜨였다.
  나비의 두부가 향한 바로 그 밑에 노랑 반점 같은 것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한 떨기 곷이었다. 너무 작아서 눈에 드이지 않았던 것인데 분명 꽃이었다. 나비의 머리 끝을 반쯤 묻고 있는 나리꽃 비슷한 ㅗ양의 곷이었다. 사랑을 비는 마음이 간절한 의미로서 담겨진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동식은 숨을 몰아쉬고 그부채를 소중히 접어 포켓에 넣고 뜰을 걸어 덕수궁 정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왔다. 잠자코 있을 수 없는 충동 같은 것이 소구쳤다.

   덕수궁에서 나와 서소문 근처 어떤 중국 음식점에 들었다. 성녀 같으면 질색을 할 곳이다. 담뱃불로 지져 온통 곰보투성이가 된 탁자에서 허기진 식탐으로 짜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
  서소문 육교 밑에서 서대문쪽으로 고부라지는 바로 그 곳에 쓰러질 듯이 서 있는 나지막한 기와집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 마다 아직 거기에 있구나 하는 심정으로 보아 오던 집이다. 이조말엽을 훨씬 거슬러 올라간 때부터 있었던 집일 것이다.

   흙담은 무너질 듯 위태롭고 지붕의 기와 사이엔 마른 풀이 엉성했다. 그 집의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붉은 스카프로 머리를 사맨 상냥한 얼굴의 소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짐짓 놀란 적이 있었다. 그 쓰러질 듯한 고옥(古屋)과 신선한 소녀와는 아무래도 아울리지 않았다. 현대식 고층 빌딩의 복도에서 삼베 치마 저고리의 노파를 보는 위화감(違和感)과 맞먹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이다.

   유심히 그 대문에 시선을 솓으며 앞을 지났으나 비스듬히 틈서리를 보인 채 대문은 조용하 닫혀져만 있었다. 소녀의 얼굴의 구체적인 윤곽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얼굴이 풍긴 신선함은 아가 일처럼 뚜렸했다. 동식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보니 독립문 근처에 와 있었다. 범인(犯人)은 반드시 범행 현장에 한 번 와 본다는 이야기가 기억 속에 떠올랐다.

   인도와 차도와의 접경, 차도 편으로 부채는 덜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언저리의 눈엔 수레바퀴가 지난 흔적도, 사람의 발자국도 없었다. 줄잡아 1미터쯤 상거가 있는 곳으로 차도 지났고 사람의 발걸음도 지났다. 그러고 보니 그 쥘부채는 차에서 떨진 것도 아니고 걸어가는 사람이 덜어뜨린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영천 고개에서 온 인도(人道)가 독립문 바로 가까이에 이르러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그 지점에 2미터 사방으로 처녀설(處女雪)을 남겼는데 그 처녀설 가운대쯤 쥘부채가 반쯤 펼쳐진 채 있었던 것이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