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부 채

 

 

   하이얀 눈 위에 검은 나비가 앉아 있었다.
   주춤, 동식은 발길을 멈췄다. 이제 막 걷히인 어둠의 여운이 안개처럼 서려 있는 눈위에 한 마리의 나비가 습습한 검은 날개를 화짝 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겨울, 눈으로 덮인 이 계절에 나비가 웬일인가? 하고 시선을 쏘았는데 나비로 뵈던 그것은 나비가 아니었다. 나비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 부채 모양의 것이 반쯤 펼쳐저 있는 것이었다. 동식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동식은 그 부채를 손에 들고 안팎으로 뒤집어며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그리고 접어 보기도 했다. 길이는 7센티나 될까. 두께는 2센티, 아니면 2센티 반, 접은 채 손아귀에 넣어 보니 그 쥘부채는 길이로서도 부피로서도 동식의 손아귀에 버긋하지 않고 넘어나지 않았다. 동식의 손바닥 치수를 재어 보고 맞추어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는 눈이 되었다.
  아직 이른 아침. 버스와 택시들이 바퀴에 끼운 체인 소리를 요란하게 칠거덕거리며, 눈길을 질주하고 있을 뿐, 영천 고개에서 동식이 서 잇는 독립문 근처까지, 그리고 서대문 네거리에 이르는 길엔 사람들의 그림자가 드물었다.

   동식은 다시 쥘부채를 펴봤다.
   축(軸)을 중심으로 180도 일직선이 된 부분의 길이가 14센티 가량, 축에는 청실, 홍실, 검은 실로 어우른 술이 달렸다. 부채라고 하기보단 부채를 닮은 완구(玩具), 완구라고 하기보단 마스코트의 의미가 짙은 그런 것이다.

   상아빛으로 매끄러운 피죽과 부챗살은 여간 섬세한 솜씨가 아니었다. 무슨 비단인 성싶은 하늘빛 바탕에 수놓인 검은 나비의 형태도 이만저만한 정교함이 아니었다.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한 그만큼 그 조그만 쥘부채엔 음습한 요기(妖氣)마저 감도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습득물로서 소화시키기엔 그 진기함이 지나쳤다. 그러나 어떤 운명의 계시로 받아들이기엔 동식의 심정은 아직도 신비로운 사고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냥 집어 던져 버릴 수도, 호주머니에 집어 넣을 수도 없는 야릇한 심정으로 동식은 그 부채를 흔들어 보았다. 그런대로 바람은 일었다.

   그는 부채를 접어 잠바 포켓에 넣고, 바로 그길을 걸어 서대문 네거리를 거쳐 신문로로 빠질까, 대로를 건너 사직터널을 지나 공원 앞 지름길로 빠질까 하고 망설이다가 자동차가 뜸한 틈을 타서 대로를 건넜다. 사직터널로 자나기를 한 것이다.

   동식은 포켓 속에서 쥘부채를 만지작거리면서도 그 부채 생각은 잠시 잊고 다시 아까의 상념속으로 말려들었다. 동식은 영천고개를 넘어 부채가 떨어져 있는 곳까지 눈을 밟고 오면서 줄곧 설악산의 조난 사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간밤, 라디오를 통해 그 조난 사고의 소식을 듣고 동식은 자기 나름의 충격을 받았었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곧 라디오의 스위치를 들었지만 그 몇 시간 동안에 진전된 소식이 있을 리도 없었고 사실 있지도 않았다.  동식이 받은 충격은 의연 꼬리를 물고 있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눈길을 걷게 된 것도, 걸으면서 자기의 충격을 가라앉힐 속셈이었던 것이다.

   설악산에서 조난한 10명 가운데 동식의 친구가 섞여 잇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끼어 있는 것도 아니다. 감수성이 강한 탓으로 조난한 사람들에게 유별난 동정을 느낀 때문도 아니었다. 어쩐지…… 그렇다.  어쩐지 그 조난 사고에 마음이 휘말려 들고 있을 뿐이다.

   방학인데도 서울을 뜨지 않고 거리의 먼지처럼 굴러다니고 있는 동식에겐 난데없이 이목(耳目) 앞에 솟아난 설악산이란 그 이름이 우선 거창한 충격이었고, 겨울의 설악산을 등반하려다 조난한 비장함이 신선한 놀람이었고, 그 충격과 놀람이 불러 일으킨 감정이 상승 작용을 하며 퍼져 가는 파문을 뚫고 설악산이 다시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서곤 했다.

   동식은 설악산에서 조난한 사람들에게 일종의 질투 비슷한 감정조차 느끼고 있는 스스로의 마음을 발견했을 때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질투의 연유를 곧 깨달을 수는 없었다. 며칠전 읽었던 어떤 글에서 얻은 감동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산으로 가라!
  해발 1만 척, 산위에선 에덴 동산의 샘물과 같은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네 육(肉)과 마음을 감산 공기엔 아무런 압력도 없다. 아무런 빛깔도 없다. 그 공기를 마신 나의 폐장엔 달콤한 꿀방울 같은, 육과 마음의 영양만이 남는다.  나는 소생한다. 그러나 이건 산위에서의 얘기다.

 

   아니다, 라는 내심의 소리가 있었다. 동식은 사직터널 안으로 걸으면서 '사자(死者)는 영원히 젊다'는 사상을 익혀 보았다.
  '그럴 수밖에, 죽은 사람은 영원히 젊다'
  만일 그들이 설악에서 죽었다면 그들은 설악에서 영생을 얻은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동식은 지금 이 순간 죽음과 격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을 죽은 사람으로 감정해 보는 스스로에게 죄를 느꼈다. 그 조난자 10명의 가족들과 애인들의 모습이 아무런 구체성도 띠지 않으면서 가끔 어떤 추상화에서 받은 것 같은 가렬한 인상의 더미가 되어 눈앞을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은 자꾸만 죽음의 방향으로 기울어 들었다.
  수천 년 동안 젊음을 냉동할 수 있는 얼음 자국이 쌓인 눈, 설악! 그들은 죽음으로써 여원한 젊음을 설악에서 얻었다. 다가선 죽음을 그들은 어떻게 맞이했을까. 프로메테우스처럼 비장한 얼굴이었을까, 헤라클레스처럼 단호한 표정이었을까. 아마 고통은 없었을 게다. 낸정하고 슬기로운 정신을 담은 채 육체가 그대로 동상마냥 빙화(氷化)했을 것이니 말이다.

  축축히 젖어 오는 습기와 더불어 육체가 얼어 가면 의식은 잠들 듯 조용해지고 완전히 잃어 버린 순간 가냘픈 생명은 촛불처럼 꺼지고, 눈은 쉴새없이 내리고 쌓여 순백의 무덤을 만든다. 이집트 황제의 무덤보다 거대하고 페르샤의 궁전보다 찬란한 무덤. 설악산은 이제 막 젊은 영웅들의 죽음을 안고도 움직이지 않고 슬처하지 않는다.

  동식은 돌연 자기가 설악의 무덤 속에 동상마냥 빙화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설악산에서 빙화한 그의 모습은 그를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변절한 애인의 가슴 속에 평생토록 녹지 않을 빙상(氷像)으로서 남을 것이었다. 해와 더불어 그 여인의 머리칼에 백발이 불어 가고 그 얼굴에 주름이 더해 가도 그 가슴팍에 얼어 붙은 동식의 젊음은, 그 젊은 눈동자는 언제나 차가웁게 눈을 뜨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설악에서 얼음의 동상이 되지 못하고 설악의 조난자들에게 대한 터무늬없는 질투를 반추하면서 동식은 먼지처럼 지금 어두운 터널을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빋가 잦아졌다. 줄줄이 헤드라이트가 터널의 벽을 스치고 클랙슨 소리가 귀에 따갑도록 요란하게 반향한다.  동식은 터널을 빠져 나와 사직공원 앞에서 지름길을 걸어 신문로로 나왔다. 거기엔 파출소가 있었다. 그는 문득 쥘부채 생각을 했다. 경찰관에게 신고를 해 버릴까 하는 마음도 듣았지만 그 마음과 더불어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의지처럼 굳어졌다.   설악산과, 젊은 죽음과, 변절한 애인과, 거리의 눈 위에서 주운 쥘부채, 이러한 맥락 없는 간념의 인자(因子)들이 어떤 의미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듯 바쁘게 교차하는 심상(心象)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동식은 포켓 속에서 다시 한번 그 쥘부채를 쥐어 보았다.

 

  동식이 가는 곳은 신문로에 있는 유(柳)선생의 집이다. 거기에서 동식을 끼워 네 사람의 학생이 유 선생을 중심으로 불란서의 희곡을 읽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이는 시간은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달랐지만 수업이 있을 때는 매주 한 번, 방학할 때는 매주 세 번씩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일에 게으른 성미를 가진 학생들이었지만 유 선생 집에서 모이는 이 모임에만은, 뻘써 1년 남짓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껏 한 사람도 빠진 일이 없고 피차의 사정을 어렵게 할 정도로 정한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만큼 모두들 유 선생을 좋아했고 이 모임이 마음에 들어 있었다.

   유 선생은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대학의 선생도 아니고 다른 학교에 나가는 선생도 아니다.  본인의 말을 빌면 그저 누항(陋巷)에 묻혀 사는 은사(隱士)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선배의 소개로 불란서 문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고 불문과에 다니는 친한 친구끼리 유 선생을 찾아간 것이 기연(機緣)이 되어 함께 책을 읽기로 된 것다.

   신문로는 고급 주택이 많이 서 있는 지대다. 2,3층의 고급 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사이에 유 선생의 집만이 구가(舊家)의 옛모습을 지니고 조초하게 끼어 있다.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동식은 좁은 뜰을 걸어 몸채에서 잇달아 낸 서재 앞으로 갔다. 노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유리창을 넘어 한창 얘기꽃을 피우고 있는 학우들의 모습도 보였고 소리도 들려 왔기 때문이다.

   도어를 열ㄹ=었다. 방 안의 훈기와 더불어 낯익은 시선들과 향긋한 커피 냄새가 한꺼번에 풍겨 왔다. 활활 소리를 내며 타고 있는 오일 스토브 위의 커피 케틀이 기분 좋게 끓고 있었다.
  차가운 설악의 풍경이 일순 뇌리를 스쳤다.
 「동식이, 너 오늘 조금 늦지 않았어?」
  A가 팔뚝을 들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동식은 엉겁결에 왼손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쥘부채를 꺼낼까 하다가 말고 유 선생에게 인사를 드리고 소파의 끝에 가 앉았다.

   동식이 들어오는 바람에 중단되엇던 얘기가 다시 이어졌는데 역시 설악산 조난 사고가 화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각기 익살을 부림으로써 내심의 감상을 캄플라지하려는 눈치였으나 모두들 어조엔 조난자들에게 대한 동정보다는 그들에게 대한 시기, 아니면 동경(憧憬)같은 냄새가 묻어 있었다.

   「하여간 죽음의 형식으로서는 최고가 아닌가?」
   C가 이렇게 말하자 B가 혀를 찼다.
  「넌 약간 건방져. 자아식 죽음의 형식을 골고루 마스터한 것 같은 소릴 하구 있어.」
  C도지지 않았다.
  「이놈아 꼭 마스터해야만 되는가? 이 형편없는 실증주의자!」
  B가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유선생이 막았다.
  「아직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는데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말어!」
  이 유선생의 말을 받고 A가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까 B나 C는 설악산에 가서 죽지 못해 환장한 놈 같은 말투다」
  「너절한 평화보다 상쾌한 비극이 낫다, 이 말 아닌가.」
  C가 이렇게 말꼬리를 물고 나오자 유 선생이 손을 저었다.
  「이대로 나가단 도 일대 논전이 벌어지겠다. 너희들은 꼭 벌레 같다니까. 자 커피나 마시자.」

   커피는 케틀에서 포트로, 포트에서 컵으로 옮겨질 때의 과정이 좋다.  암흑색 액체의 줄기가 쭈르르 소리를 내고 장미빛 안개가 아련히 피어 나는 순간이 기막히다.
  캅을 양손으로 움켜 쥐고 훌훌 불며 한 모금 마시고는 A가 호들갑으 떨었다.
  「커피란 게 이렇게 좋은 맛이란 건 처음으로 알았다.」
  참으로 좋은 커피맛이었다. 유리창 밖으로 바라뵈는 눈꽃을 꽃피운 나뭇가지가 더욱 맛을 돋구었다.  설악의 친구들은 이 커피 맛과도…… 하다가 동식은 매정스럽게 자기를 버리고 딴 사람과 결혼해 버린 애인을 생각했다. 그 여인은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내일 아침 또 따끈한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게다, 색각을 하면 행복하게 잠들 수가 있다.
  실감이 있는 말이라고 그것을 들었을 땐 흐뭇해 했다. 사람의 행복이란 결국 그런 사소한 즐거움의 누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제접 대견스러운 의견을 덧붙여 보기도 하면서.

   한잔의 커피가 끝나기도 바쁘게 C군이 익살을 부렸다.
  「커피맛도 알고 술맛도 알고 했으니 이제 무엇 맛도 알면 A군은 사람 다 되네.」
  「그 뭣 맛이란 건 뭐냐?」
  B군이 짓궂게 물었다.
  「너 몰라서 묻나?」
  「그래.」
  「풍기상 대답을 못하겠어.」
  「C군 꽤나 말을 할 줄 아는데.」
하고 유 선생이 웃었다. 학생들도 따라 웃었다.
  「사람이 되자면 우선 환멸의 맛을 알아야 하는 거다.」
  A가 제법 합축이 있는 듯이 말했다.
  「아직 환멸의 맛을 모르나?」
하고 B가 시비조로 나섰다.
  「나면서부터 환멸, 환멸 아냐? 나고 보니 중단된 국토였더라, 얼마 안가 6·25동란이더라, 대학에 들어가 보니 그 꼴이 그 꼴이더라.」
  「환멸의 맛을 쓰디쓴 쑥물처럼 쓰다, 예이츠의 시에 그런 게 있잖아?」
  「C군, 그런 엉터리 떨지 마, 예이츠의 시에 어디 그런 게 있어?」
  「야야 B여! 조금쯤 내가 아는 척하는 것 봐 넘겨 주면 어때?」
  「그렇게 간단하게 항복해 버릴 건 뭐 있노?」
  A가 거들었다.
  「그러다가 버릇된다야 아무개 교수처럼」
  B가 눈을 흘겼다.
  「헌멸은 쓴 것만은 아냐. 쓰다고 해서 나쁜 것만도 아니고. 한꺼풀, 한 꺼풀씩 가면이 벗겨져 나가는 뜻도 되는 게고, 그만큼 실상(實相)에 다가서는 뜻도 되는 거지, 환멸 없는 인생이란 게있었나, 생활의 양념 같기도 한 거다.」

   설교 비슷한 얘기가 되고 보니 유 선생은 약간 수줍은 표정을 띠었다.  유 선생은 학생들보다 그의 한 세 대 위이면서도 어른티를 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어떤 철다구니 없는 소리를 학생들이 지껄여대도 그 하잘 것 없는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의견 충돌이 있으면 동격으로 싸웠다. 학생이 언젠가 그런 뜻의 말을 했더니 유 선생의 한다는 말이 이랬다.
  「아직 나도 철이 덜 들었으니까」「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