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의 늪」

 

   이것도 역시 뒤에 안 일이지만 나의 발주 서류는 내가 의로한 날짜보다 한 달이나 늦게서야 발송되었다.  시설이 완비된 것은 착수한 지 1년만이고 시제품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2개월 후다.  그럴 부렵 나는 미국에 잇는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한국의 모재벌에서 그 전열기의 특허를 사러 와 있는 모양이니 빨리 미국으로 건너와 다른 회사와 계약을 못 하도록 계약 갱신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무슨 소린가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계약서의 원본을 읽어 보았다. 다른 회사완 계약을 못하게끔 규정한 조목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상대방 회사에게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를 적은 편지를 보내긴 했다.

   편지를 보낸 그날 밤에사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내의 다른 회사에 특허권을 팔지 못하도록 규정은 해 놓았으나 위약을 했을 때의 보상 규정이  너무나 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보증금 5만 불인데 위약했을 때의 보상 규정은 그 두 배인 10만불이었다. 전열기의 장래성을 보아 재벌이면 그만한 보상금을 대신 물어주고도 특허권을 사려고 덤빌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는 미국의 그 회사에 전보를 치는 한편 외무부에 여권 수속을 했다. 그런데 며칠을 두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녀선 서류를 구비해 냈는데도 외무부에선 좀처럼 여권을 내주지 않았다.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다. 나는 심지어 외무부 직원이 그 재벌과 짜고 나를 방해하는 것이라고까지 오해하게끔 되었다.

   그동안 공장은 돌아가고 있으나 이미 내 정신은 아니었다. 재벌에 있어 본 나의 경험으로 같은 업종을 가지고 재벌과 경쟁선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달 반 만에야 손에 넣은 여권을 쥐고 나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처음으로 간 미국인데도 그 풍광이며 경색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시카고에 있는 그 회사를 찾아갔더니 부사장이란 초로의 사나이가 쌀쌀하게 말했다.
  「고소를 한다면 응소하겠소. 배상금은 귀국의 거래 은행으로 보내 놨으니 곧 통지가 갈 겁니다.」
  만사는 끝난 것이었다.

   가을바람이 일기 시작한 미시건 호(湖)에 몸을 던지려다가 마누라와 아이들이 눈에 어른거려 얼빠진 몰골로 서울에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그 전열기가 아주 헐값으로 백화점에 나돌고 있었다. 내 사럽을 가로챈 그 재벌이 관세의 액수엔 구애 없이 수입해 들여와 덤핑을 함으로써 내가 만든 상품의 시장 진출을 막아 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쓰러지고 난뒤 그들은 전열기를 양산해선 이득을 취할 참인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음을 먹었다.
  「오냐, 네놈들이 죽이기 전에 내가 주어주마, 내 가족과 더불어 몽땅 죽어 주마, 내 저주를 받고 네놈들은 천만 년을 살 봐라.」
  채권자들이 광풍처럼 몰려왔다. 빚더미에 앉아 변명할 말도, 언제쯤 갚을 수 있겠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짓말 이외는 꾸며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상금을 찾았으나 빚에 비하면 구우(九牛)의 일모(一毛)격이었다.

   채권자에게 시달리는 집의 주부가 어떤 상황으로 되는가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알 까닭이 없다. 채권자에게 시달리는 집의 아이들이 어떻게 처참한 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알 까닭이 없다.
  사기꾼이란 말이 내 이름처럼 되었다. 아이들은 사기꾼의 아이들이 되었고 마누라는 사기꾼의 마누라가 되었다.  이러한 고통을 참아 가며 살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그야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되었다.

   그래도 자살할 각오는 서지 않았다.
  「오냐 죽어주마.」
   하고 마음속에서 물부짖었지만 그것은 관념이었지 구체적인 행동이 되기엔 좀 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한 어느날이다. 은이가 풀이 죽어 학교에서 돌아왔다. 채권자의 일부가 응접실에서 호통을 치고 있었기에 초등학교 2학년 짜리인 소년이 왜 풀이 죽어 있는가 묻지를 못했다.

  그날은 마누라가 그 재벌의 중역으로 있는 내 선배를 찾아간 날이기도 했다. 나의 감정은 공장을 불살라 버릴망정 그 재벌에 넘길 생각은 없었지만 채권자들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보아 주기 위해선 치욕을 참아야 했다. 그 선배와 마누라는 잘 아는 사이이기도 해서 마누라가 나선 것이다.

  울어 눈이 퉁퉁 부어 통금 시간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온 마누라의 갈팡질팡한 얘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되었다.
  이왕 그 사업을 하실 요량이면 이미 시설이 되어 있는 우리공장을 송두리째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선배의 답은 이랬다.
  「모처럼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니 계속해 보시지 왜 그래요.」
  형편이 안 된다고 하니까,
  「사업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말고 덤빈 것이 잘못이야」란 말이 있었고,
  어떻게든 인수해 줄 수 없느냐고 간청을 했더니,
  이미 공장을 짓고 기계 발주도 해 버렸으니 시기가 늦었다는 말과 함게 곡 인수해야 할 경우이면 하고, 내가 그 공장건설을 위해 들인 돈의 20분의 1쯤 되는 액수를 들먹여 보더라는 것이다.

   마지막 길이 거기서 막혔다.
  공장을 내놓아 보아야 기계는 고철값이 될 것이어서 기껏 토지 대금이 남을 정도가 뻔했다.
  채권자들의 성화가 지나간 깊은 밤에 나와 마누라는 의논을 했다. 살아 있어 가지곤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일체의 재산 목록과 인감을 싸서 놓고, 고문 변호사 앞으로 편지를 썼다.

   「이것 밖엔 없습니다. 모든 채권자들에게 내 사과를 전하고 이걸로 가능한 한 처리를 해 주십시오.」
   마누라는 그 편지를 말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더니 내 무릎에 엎드려 통곡을 시작했다.
   「당신만을 죽게 할 수 없어요.」
   「당신만을 죽게 할 수 없어요.」
  아아, 그 처량한 소리!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인 은이가 언제 왔는지 방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오후의 일을 상기했다.
  「은이야, 왜 오늘 풀이 죽었지.」
  「급장을 그만두랬어요.」
  은이가 떨리는 말로 조용히 대답했다.
  「왜?」
  「사기꾼의 아들이 어떻게 급장 노릇을 하겠느냐는 거지 뭐.」

  언제 왔는지 바로 내 등 뒤에 서있던 숙이의 말이었다. 숙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뭐라구? 선생이 그런 소릴 했어?」
  나는 그때 벌써 내 정신이 아니었다.
  「선생님이야 그런 말 안했지만……다 알아요.」
  숙이는 찔금찔금 눈물을 짜고 있었다.
  「좋다, 내일 모두 해결할께. 오늘 밤은 자자.」

   자기 방으로 가려는 아이들을 오늘 밤은 같이 자자면서 요를 두 개 깔았다. 나는 숙이를 안고 자고 마누라는 은이를 안고잤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문이란 문, 창이란 창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가스 레인지의 꼭대기를 떼 와선 방 한구석에 놓고 가스를 틀었다…… .

 

   미아리 아내의 집에 영영 들어가지 말까 했으나, 종결을 지음으로써 뒤를 깨끗이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튿날 밤이 되길 기다려 나는 마아리로 갔다.
  아내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경대 밑에 쑤셔 놓아져 있는 옛날 '아리랑' 잡지를 꺼냈다. 아마 몇십 번을 훑어보았는지 모를 그 잡지를 첫 장부터 넘기기 시작했다. 책의 모서리 술은 너무나 많은 손길이 지나갔기 때문에 솜처럼 부풀어 있다. 영어에 있는 '독 이어즈'-개귀 처럼 되어 있다는 말은 참으로 잘 된 표현이다.

  여느 때 같으면 그 책장을 차근차근 넘겨보고 마지막 편집자 이름까지 훑어보고 책 뒷면에 있는 '제 3종 우편 인가'를 받은 날짜까지 다 읽고, 그래도 아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골목 어귀까지 나가보곤 했다. 아내가 오늘 밤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얽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기디리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묘한 심정은 이 세상에 숱한 남자가 있다고 해도 아마 나밖엔 모를 것이다.

  나는 끝까지 뒤지지도 않고 아리랑 잡지를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자, 이제 내가 없어지면 또 다른 놈팽이가 저 아리랑 잡지를 읽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어나 앉아 그 잡지를 얌전히 접어, 경대밑 틈서리에 보일 듯 말 듯 꽂아 놓았다.

   아내가 돌아온 것은 자정 조금 지나서였다. 방 가운데 웅크리고 앉은 나를 힐금 보더니,
  「이젠 제법이야? 외박을 다 하시구.」
하고 싸늘하게 웃는다.
  그건 곧 앙칼이 발동한다는 예보이기도 했다. 나는 이왕 헤어지는 마당엔 그런 소란을 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점잖게 말했다.
  「거 좀 앉아요.」
  「앉았거나 섰거나 할 말이 있으면 해요.」
  후닥후닥 옷을 벗어제치며 한 소리였다.
  「당신 나와 헤어지길 소원했지.」
  「그럼요.」
  「나도 각오했어, 헤어지기로.  그래, 오지도 말고 사라질까 했지만 그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그 말 하러 왔소.」
  「흥.」
  「그럼 나는 갈라우.」
  하룻밤쯤은 여기서 새고 가려는 마음이었는데 돌연 이렇게 변했다.  내 작정엔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다.
  '혹시 오늘 밤 그 천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내가 열어 제쳐진 문으로 그냥 나가려고 하니까 아내가 후다닥 일어서더니,
  「조금 기다려요.」
하고 내 팔을 끌었다.
  「……?」
  「헤어지는 판에 송별회는 있어야 할 것 아뇨?」
  딴으론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화장을 지우다 말고 속치마 바람으로 밖으로 나갔다.
  소주 두병, 맥주 두 병, 북어와 오징어를 사 들고 돌아오더니 부엌에 가서 밥상에 김치와 술잔을 얹어 들여왔다.
  앙칼스런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상냔한 여자만 거겐 있었다.
  나는 콧등이 시큰하는 것을 느꼈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더만 그런 대로 정은 들었던 모양이라고 속으론 쓴 웃음을 지었다.
  「먼저 맥주부터 합시다.」
하고 아내는 내 잔과 자기 잔에 가득 맥주를 부었다.
  「자 들어요.」
  나는 단숨에 맥주 잔을 비웠다. 차고 청량한 맥주가 후덥지근한 폐장 속을 산간의 시냇물처럼 흘러 내려간 기분이다.
  「헤어지는 건 멋져. 이별의 미아리 고개도 멋지구. 그런데 어딜 갈거요.」
  「나 취직을 했어.」
  「취직을? 어디, 취직을 했수.」
  「과부집에 취직을 했어. 먹여 주고 재워주긴 해겠데.」
  「안성마춤 자리를 구하셨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닌 게 아니라 내 같은년, 이 사립문만 나가고 나면 말쑥이 잊어 버릴  거라. 오죽 지굿지굿하게 굴었다구.」
  아내는 두 병째의 맥주를 땄다.
  「아냐, 종종 생각이 날지 모르지. 뭐니뭐니 해도 2년 동안 당신덕택으로 굶지 않고 살았으니까.」
  이것이 나의 진정이었다.
  「내가 어디 당신을 사람 대접이나 했수? 이렇게 되고 보니 좀 더 잘해줬더라면 하구, 후회가 되는 구먼요.」
  아내는 꽉 차 있는 맥주 잔을 나에게 돌리고 자기는 다른 잔에 소주를 따랐다.
  「아냐, 나는 사람 대접을 받을 만한 인간이 아냐. 내가 어떤 사람이란 걸 말면 당신은 날 곁에도 못 오게 했을 거요.」
  하마터면 내 신상을 고백할 자 모른다는 위험을 느꼈다. 아내는 내게 대해선 전연 아는바가 없다. 학력도 경력도 그리고 그 끔찍한 사건도.

   「당신을 처음 만난 밤…….」
하고 아내는 추억을 더듬으려는 눈치였다. 처음 만난 밤이란 내가 두 번째의 자살에서 실패했다는 걸 알고 허둥지둥 병원에서 빠져 나온 그날 밤을 말하는 것인데 아내는 물론 그 사연을 모른다.  나는 목이 마른 바람에 병원 뒤켠 거리에 늘어선 대폿집의 한군데에 기어 들어가 사이다 한병을 청해 마셨다. 아내는 그집의 작부로 있었던 것이다.

   사이다를 마시고 소주를 마셨다. 사업에 실패해서 집도 절도 가족도 없어졌는데 갈 곳은 한강밖에 없다고 지껄이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다.
  「만리 같은 청춘이 있는데 죽긴 왜 죽어요. 보매 인품이 좋은 어른인데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있을지 누가 아우.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 있잖수.」
  그리곤 폐점 시간이 되자 올 데 갈 데가 없다는 나를 끌고 이집으로 온 것이었다. 덕택으로 나는 2년 동안을 숨어 살 수가 있었다.

   아내로선 허우대도 그만하고, 얼굴도 반반하고 막상 까막눈은 아닌 것 같고 악인 같지도 않은 내게 뭔가 은근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완전한 무능력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아내는 여우처럼 음흉하고 불호랑이처럼 앙칼스럽게 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말 그대로 나를 내쫓지 못한 단 한가지 이유는 남성으로서 탁월한 내 물건에 대한 애착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내와 2년 동안을 지낼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앙칼스런 성정, 어느 모로 보나 애착할 곳이란 없는 바로 그 점이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나 그건 사실이었다. 만일 아내가 네게 다정스럽게 굴어 내가 아내에게 애착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죽은 향숙과 아이들에게 대한 죄책감을 훨씬 더해서 아마했을지 모르는 제3차의 자살을 기도했을지 모를 일이다.

   「초상난 집도 아니고 이게 뭐요.」
하고 아내는 내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푸념을 섞어 말을 시작했다.
  「이별은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한 이별이 아뉴? 쓸쓸할 것 뭐 있수. 두고두고 내 욕 많이 하고 오래오래 잘 사슈. 돈 많은 과부 만났으면 호강도 할끼구……마음 태키거든 새 양복 한 벌 쫙 빼입고 넥타이 매고 관철동 그 집을 한번 찾아구시구랴.」
  아내는 술에 취한 모양으로 혀가 고부라졌다.
  「당신도 좋은 나편 만나 잘 사시오.」
  「내 팔자에 좋은 남편? 웃기지 말아요. 그런데 당신 오늘 밤 꼭 송별연은 해 줘야 해요. 내 깨끗이 씨고 올께요.」
  아내는 비틀거리면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육체의 송별연을 위해 뒤물을 할 요량인가 보았다.   그러나 송별연은 어뚱하게 뒤틀리고 말았다.
  막바지에 이르자 아내는 돌연 이를 뽀드득 갈았다.
  「아이구 죽어, 어떤 년에게 내가 이걸 뺏겨. 산수갑산까지도 내가 못 따라갈 줄 알아? 그년을 그냥 둘 줄 알아? 찢어 죽일 게다, 아아 죽겠다. 죽어, 어떤 년에게 내가 이걸 뺐겨, 아이구 이놈아 사람 죽는다, 이놈이 사람 죽이네…….」

 결국 나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하워드 휴즈 같은 노인은 만나지도 못하고 복권도 당첨되지 않고 간첩도 붙들지 못한 채 미아리 그 방에 들어앉아서 가끔 경대 밑에 꽂아 둔 아리랑 잡지나 뒤적이며 그날 그날을 보내는 신세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여름이 가는 어느날 하인립 시의 뒷일이 궁금해서 김장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고 유예로서 하인립 씨 두 분의 간곡한 전갈을 전한다고 했다.
  그 사유는 바로 내일이 성유정 씨의 생일이니 그 생일을 자축하는 동시 하인립 씨를 위로하는 뜻을 겸해서 성유정 씨 댁에서 연회가 있으니 꼭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성유정 씨 같은 사람이면 생일을 자축도 타축도 할 만 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연회에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랬는데 그 시각이 되고 보니 슬그머니 생각이 변했다. 아내가 최근에 사준 남방셔츠를 입고 저녁 나절을 노려 가회동에 있는 성유정 씨의 집 근처에 갔다.

   손님의 내방을 위해 대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 알릴필요없이 사랑 쪽의 뜰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곤 숲과 담벼락 사이에 있는 공간에 몸을 숨겼다. 내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연회를 모양만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