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의 늪」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손님들이 모여 들었다. 사랑 대청엔 이미 음식상이 준비되어 방장을 치고 있었다. 손님들 가운데 내가 커피 세례를 준 P교수와 '돈이 썩기로서니 남이 사가한 돈 뒤치닥거리 할 사람이 있겠소' 하고 자리를 뜬 C 전무와 하인립 씨가 너무 권력에 밀착해 있대서 비난한 N씨가 섞여 있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하 인립 씨는 조금 늦게사 왔다.
  연회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대청 가까이로 가서 화단 언저리에 있는 무궁화나무 그늘에 몸을 가누었다. 거게선 마소리가 대강 들렸다.  하 인립 씨가 들어서자 모두들 일어섰다. 저마다 말은 조금씩 달랐지만 나쁜 놈 때문에 엉뚱한 고생을 했다는 뜻만은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인립씨는,
  「아닙니다. 난 그만한 고통은 치러야 할 사람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하고 겸손했다.
  「하인립 씨는 가없는 장미라……」
하고 P교수가 한바탕 칭찬을 했다. N 씨는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 봤지만 하인립 씨처럼 순수한 사람은 드물어.」
했고, C 씨의 말 첫마디는 못 알아들었는데 뒤말은 이랬다.
  「……엉뚱한 사람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40만 원은 내가 조달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자 성유정 씨가 그 엉뚱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모양이었다. 눈치가 빠른 C전무는 성유정씨와 나와의 관계를 알아차렸는지,
  「그 그만둡시다. 여게 없는 사람 얘긴 안 하는게 좋을 것 같소.」
하고 뭉개 버렸다.

   화제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물은 모양이었다. 하인립 씨가 마하는 소리가 드렸다.
  「할 형편만 되면 나는 당장이라도 사업을 하겠소. 쓴 것 단 것 다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운명은 이상한 거라 실패를 거듭해서 겨우 사업을 할 만한 지각이 생겼을 땐 돈이 없거든.」
   모두들 핫하 하고 웃었다.
   하인립 씨는 그 웃음 소리를 자기에게 대한 찬사로 들은 모양이었다. 우쭐하는 기분이 없지도 않은 것 같은 투로 말을 다시 시작했다.
  「사업이란 겁나는 거더만,  사업을 하지 않을 땐 자신이 없는 것이면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데 사업을 해 보니까 그게 안 돼요. 뻔히 안되는 것도, 글쎄요 한번 생각해 보죠 하는 따위의 말이 나오거든요. 뿐 아니라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런 것을 꼭 됩니다 하고 말해야 할 경우가 있어요.  처음엔 그런 말을 한 것이 후회가 돼서 잠을 못 잘 정도로 후회도 하고 걱정도 했는데 시일이 가면 그게 예사가 된단 말요. 요는 사업을 하면 사람잡치는 거라.」
  「그래도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성유정 씨의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해야겠다는 거요. 성공만 하면 잡친 사람은 도로 안 잡치게 하거든요. 오늘날 보시오. S, K, H 등 대재벌의 총수들은 아마 거짓말 한마디 않고 살 수 있을 거요.」
  「수탈과 착취 위에 서서?」
한 것은 아마 N씨인 것 같았다.

   하인립 씨는 주택 사업을 했을 때의 실패담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재부 책임자와 현장 책임자를 형제에게 맡긴 바람에 자재와 시간의 로스를 가져와 그것이 치명적인 원인 되었는데 그런데도 자금만 넉넉했으면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을 그렇게 안됐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얘기였다.
  이어 하인립 씨는 복개 사업을 해서 상가를 만든 사업 얘기를 시작했다. 그건 내겐 초문인 얘기였다. 내가 세상의 표면에서 사라지고 난 뒤의 일인 것이다.

  「3천만 원씩 내 가지고 둘이서 6천만 원으로 회사를 만들었지, 공사할 토건 회사를 선택한 것은 R였어.  그런데 공사를 5분의 1도 안 했는데 기성고(旣成高)에 따른 공사비를 내라는 거야. 그럴 약속이 아니었거든. 완공을 하고 난 뒤에 상가의 보증금 받은 돈으로 공사비를 주게 돼 있었거든. 그러나 자금 사정이 딸려 못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해.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증자(增資)를 하지는 데 내겐 돈이 없었거든.  내 버려 두면 이미 든 3천만원을 쓸모 없이 포기해야 할 사정이 된 거야. 하는 수가 있나. 나는 증자를 승인했지. 그래 반 가지고 있던 주식이 25퍼센트로 된거라. 그것이 또 12.5퍼센트로 되구……알구 보니 그 토건 회사와 R은 이리 결탁되어 있었더만. 그래 나는 비털터리가 되었소.」
  「결국 자본이 모자라 실패했단 얘기 아닌가.」
  성유정 씨의 말소리였다.
  「이를테면 그런 거지.」
  「자본이 약한 사람이 자본이 강한 사람에게 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뭣 때문에 그런 새삼스러운 소릴 하고 있어.」
  나무라는 듯한 투로 성유정 씨가 말했다.
  「자본주의에 의한 희생자다, 그 말 아닌가?」
  P의 목소리였다.
  「자본주이에 의한 희생자가 아니구 자본주의를 깔보고 덤볐다가 호된 벌을 받은 거지 뭐.」   이렇게 하인립 씨가 말하자 성유정 씨는,
  「알곤 있구나.」

하고 웃었다.

   화제는 국제 정세 얘기, 국내 정세 얘기로 옮아갔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C전무, P교수, N씨를 면박해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가 그 자리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면박의 효과가 될 몰랐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런 따위와 좋아라고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는 하인립 씨가 미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저렇게도 주책이 없어 가지구…….)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 1천만원 부채를 갚지 못하는 대신 C,  P,  N의 가면을 벗겨 세상의 잔인함을 알림으로써 1천만 원어치의 봉사를 하인립 씨에게 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무궁화 숲을 벗어나 대여섯 걸음 걸으면 축대가 있고 축대의 계단 다섯 깨만 밟아 오르면 연회장인 대청 마루 정면에 설수가 있는 것이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랬는데 너무 오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탓인지 무릎이 삐걱 하더니 땅바닥에 딩굴고 말았다.
  한참을 딩군 채 있다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새우는 데 어떤 환상이 눈 앞에 스쳤다. 그 환상이란 이제까지 보아왓던 대청 마루의 연회 광경이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했건 무슨 말을 했건 가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사랑하는 마누라와 아이들을 죽인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비겁하고 간사스럴 망정 인간들이 아닌가. 사람의 탈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나는?)

   인간들의 향연을 지척에서 보며 나무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잇는 나의 몰골이 그냥 나의 존재의 의미라고 생각했을 때 천상에 찬란한 별들이 빛을 잃었다.
  어떤 화제로서의 발전인지,
  「도의가 이처럼 땅에 떨어져선……」
한 것은 C 씨.
  「가치의 혼란이 이 모양인데 도의가 설 까닭이 있소?」
한 건 P교수.
  「그래도 차츰 질서가 잡혀 가지 않소?」
하는 건 C전무.
  「세상은 일국(一局)의 바둑이야.」
하고 하인립 씨는 한숨을 섞었다.
  「20년 전만 해도 성유정 씨의 생일 잔치엔 기생 아가씨들이 사랑 놀음을 왔었는데.」
  「기생도 보통 기생이던가. 국창들이 왔었지, 반선희, 박만월, 김초희…….」
  P교수가 사뭇 감개 무량하게 말했다.
  노래가 나올 테지, 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P교수가 '황성옛터에…' 하고 시작했다.
  C전무는 내가 질세라 하는 투로 일본 노래를 불렀다. N씨는 점잖게.
  「아아 목동아」
  돌연 하인립 씨가 기성을 질렀다.
  「쨍 하고 해들 날 돌아온단다…….」

   성유정 씨 평대로 하인립 씨는 삼국 제일의 주책바가지인 것이다.
  나는 설 수가 없어서도 아니고,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을 들킬까봐 겁이 나서도 아니라, 짐승처럼 기어서 샛문 있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샛문을 열고는 기회동 골목을 달려 내려오는 데 '짐승처럼 기어야 한다'는 명령 같은 소리가 몇 번이고 내 뇌리에 메아리를 남겼다.

   나는 한강으로 나갔다. 깊게 물이 고인 곳을 골라 다리에 기대섰다.
  내가 여기서 몸을 던지기만 하면 P다, C다, N이다 하는 인간들을 넘어설 뿐 아니라 하늘의 별로서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한강에 몸을 던지지 않을 것이란 내 마음을 알고도 있었다. 난 이미 자살할 자격마저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긍지없이 사람은 자살할 수가 없다. 동물이 자살을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동물과 같은 굴종을 통해서 이세상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내 죄업을 보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보상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지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그러기 위해선 나는 미아리의 아내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장엄한 밤이란 것이 있다.
  가령 나폴레옹의 밤과 같은 것이다.
  마렝고의 밤도 장엄했다. 아우스테를리츠의 밤도 장엄했다. 워털루의 밤도 장엄했다. 세인트헬레나의 밤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각이 되면 도어를 열고 들어와 시복 마르샹이 공손하게 최경례를 한다.
 「황제 폐하, 만찬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착석을 기다려 신하들이 정장을 하고 차례대로 들어와 식탁에 앉는다.
  만찬이 끝나면 잠깐 동안의 잡담. 그리곤 라스 카아즈에게 회상을 구술(口術)한다.
  「유럽은 이성(理性)에 의해 승복시켜야 했다. 검에 의해 정복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잠고대까지도 장엄한 것이다.
  밤이 깊으면 세인트헬레나에서의 애인 아르비이느가 침상을 찾는다. 아르비이느는 나폴레옹의 딸을 낳았다. 나폴레오네란 이름이다. 장엄한 세인트헬레나의 밤이 만든 딸이다.

   그런데 나의 밤은 장엄할 까닭이 없다. 장엄할 수 있는 계기는 있었다. 한강에서 몸을 던지기만 했더라면 장엄이 별처럼 한강에 쏟아져 내렸을 것이었다.
  장엄은 나폴레옹에게만 귀속시킬 수밖에 없다. 왜? 내겐 회상록을 쓸 만한 회상이 없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처럼 워털루에서 역사에 의해 패배한 것이 아니고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휴지만도 못한 돈에 의해 패배했기 때문이다.

  나의 밤은 몇 해가 묵은 아리랑 잡지의 그 볼품없이 피어 오른 책장의 부피와 같으면 그만이다. 세월과 더불어 낡아 버린 기사와 기록,  생명은 사라지고 형태만 남은 무의미한 활자의 나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잡지는 내게 있어서 성서의 역할을 하게 한다.  내가 그 잡지에 애착하는 것은 미아리의 그 방에 있는 유일한 책이란 때문만도 아니다. 나는 거기서 동서 고금에 걸친 영락(零落)의 사상을 모조리 조립할 수가 있고, 뿐만 아니라 그 옛날 나폴레옹과 더불어 무지개를 쫓아다니던 시절 내 뇌리에 새겨진 시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황제와 세인트헬레나의 거리는? 그건 아무도 모른다. 왕관이 너무나 눈부시기 때문이다. 왕들은 식탁에 앉았고 왕비들은 일어서서 춤춘다. 맑은 날씨의 다음엔 눈보라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나폴레옹도 죽었다.
   하물며 네 놈들이사!'

   장엄은 하늘에 별들과 더불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