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의 늪」

 

  「그건 또 왜.」
  「그 회사뿐이 아니라 난 절대로 월급장이는 안 할 작정입니다.」
  「그럼 달리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가?」
  「그런 것 없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참인가.」
  「아까 말씀 드리지 않았어요?」
  「뭐라구.」
  「유산이나 노리구, 복권이나 사구, 간첩이나 잡구.」
  「계속 그렇게 빈정댈 텐가?」
  「빈정댄 게 아닙니다. 정직하게 말한 겁니다.」
  「그게 정직한 건가?」
  「예.」
  「할 수가 없군.」
  성유정 씨는 불쾌한 빛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선생님.」
하고 내 편에서 말을 걸었다.
  「말해 보게.」
  「성 선생은 절 끔찍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마누라를 죽이고 아이들을 죽이고 자기만 살아 남은 끔찍한 놈,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죠?」
  「자네가 고의로 살아 남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자네가 소생하기가지의 10일 동안을 나는 줄곧 자네의 병실에 있었으니까.  의사는 기적이라고 하더라. 만에 하나 있을까 말가 한……그러나.」
  「그러나 뭡니까.」
  「사업에 실패하고 빚을 졌대서 전 가족이 죽어야 한다면 세상에 사람이 살아 남겠나. 어덯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게 난 납득이 안 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
  「나도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서툰 소설의 주인공 같은 말은 꾸미지 말게.」
  「아닙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렇단 얘깁니다.」
  나는 스카치의 잔을 비웠다.

   성유정 씨는 손을 뻗어 내 잔에 얼음을 채우고 술을 따랐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는 듯 천천히 말했다.
  「자네가 두 번째 일을 저질렀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 우리는 그냥 자넬 내 버려 두려고 했다. 자네만 살아 있기가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또 그런 짓을 했겠느야 해서다. 그런데 하인립 씨가 서둘렀어. 절대로 자넬 죽여선 안된다는 거야. 그래 부랴부랴 병원으로 옮겨 놓고 자넬 다시 소생을 시켜 안심을 하고 잠깐 방심을 하고 있는 동안에 자네는 없어져 버렸지. 아무리 찾아도 흔적이 있어야지. 그래 우리는 깊은 산속이나 바다에 죽은 줄 알았다. 그랬는데 1년 전인가 자네를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그런데 어전 일인지 자네가 살아 있다는 확증을 잡았는데도 반갑지가 않더라.  굳이 찾고 싶은 생각도 없구…….」
  「그리고 보니 제가 공연히 나타난 것이로구먼요.」
  「그렇진 않아.」
  「하 선생이 구속되었다는 소식만 읽지 않았더라도 전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성유정 씨는 묵묵히 한 동안 앉아 있다가,
  「이군, 다시 인생을 시작해 볼 생각은 없나.」
하고 나를 정면으로 보며 말을 이었다.
  「다시 인생을 시작해 볼 생각을 해 보게. 과거를 씻을 수 있는 건 새로운 인생을 사직함으로써만 가능한 거야. 뭐든 좋다, 자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무슨 아이디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두울테니까. 이대로, 아니 자네 말대로 그렇게 썩고 있으면 자네도 괴로울테고 우리도 괴로워……갈 데가 없으면 당분간 우리집에 와 있어도 좋구, 부인이 있다니가 술집 같은 데 내 보내지 말도록 무슨 조그마한 장사라도 시작할 수 안 있겠나.」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남에게 고용살이도 알 할 거고, 장사도 안할 겁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요행이나 바랄 뿐입니다.」
  「T물산에 도로 가지 않겠다는 이유가 뭔가.」
  「설명을 하려면 긴 얘기가 됩니다.」
  「긴 얘기라도 좋으니 말해 보게나.」

 

  상과 대학을 나와 군복무까지 마치고 T물산에 들어간 것은 내가 스물다섯 살 때였다. 서른 살 때 고장이 되었으니 빠른 승진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과장이 되던 그 해, 채 사장의 아들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채 사장의 아들은 안와 같은 또래의 나이었다. 그는 오자마자 부사장이 되어 아버지를 보좌하는 일을 맡았다.

   무국에서 배워온 것인진 몰라도 능력주의로 한다면서 사내(社內)의 인사 쇄신을 단행하려고 했다. 자기 아버지를 도와 T물산을 오늘에 있게 한 중역들을 감사니, 고문이니 하는 한직(閑職)으로 돌리고, 다른 회사의 유능한 사람을 스카웃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채 사장의 반대로 그일을 실행에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기획조정실이란 것을 만들어서 자기가 그 실장직을 겸해 맡았다. 기획조정실이란 T물산뿐 아니라 7,8개나 되는 방계 없체 전부를 통할하는 참모 본부와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이 만들어진 덕택으로 T재벌 전체의 업태가 일목요연하게 파악될 뿐 아니라 낭비가 절약되기도 하는 효과는 있었다.  채 사자은 그런 점으로 해서 자기 아들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얼만가의 장점이 있는 반면, 재벌 운영에 있어선 치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화의 단결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화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이 T재벌의 특징이었는데 사장의 아들이 설치는 바람에 방계 회사의 간부는 물론 본 회사인 T물산의 간부들까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줄어들어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 정도까진 좋았다.
  채 사장이 회장으로 물러앉고 아들인 채종택이 사장이 되면서부터 일이 터지기 시작했다.  채종택은 아버지의 만류로 보류했던 인사쇄신을 단행했다. 그리고 방계 회사에도 그와 같은 방침을 강요했다. 방계 회사의 사장들은 모두 로봇이 되어 버렸다. 채종택 사장에게 아첨하는 놈은 승진하고 아첨하지 않는 놈은 퇴직을 하든가 한직으로 쫓기든가 하는 소동이 일었다.

   탈세 사건이 터진 것은 그 무렵의 일이다. 건설중인 국책 회사를 둘러싸고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도 같은 시기의 일이다.
  채 종택은 자기의 인사 쇄신책이 빚어낸 결과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간부사원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심지어는 각 부서의 간부들 책임 하에 회사의 장부를 위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게는 회사의 부채를 가장하기 위해 10억 원 남짓한 어음을 끊 두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 짓뿐이 아니다. 자기의 돈을 사채 시장에다 풀어놓곤 그 돈을 사채 형식으로 빌어 쓰도록 해서 기어이 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갖가지 정치적 목적을 들먹여 돈을 빼내선 직공들의 공임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를 꾸몄다.

   나는 나의 최량(最量)의 능력을 동원해서 수단을 불구하고 돈을 버려는 재벌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내 스스로 부정을 저지르며 재벌의 비대화(肥大化)를 도와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다.  개인이 돈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사회를 위해서 유용하게 쓰여진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도의적인 기초일 텐데 그 돈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자의 호사를 위해서만 쓰여진다면 이건 중대한 문제란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분명 좋은 소질을 가지고 있을 텐데 T물산은 그 선한 자본주의를 나쁘게 이용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을 때 나는 T물산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T물산을 그만둘 생각을 한 것은 채종택이 사장이 되었을 때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주식회사에 있어서 주식을 많이 가진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잇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그러니 대주주의 아들이 사장이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평생을 평사원으로 있어야 할 삶이 있고 기껏 과장, 부장에 끝나는 사람이 있는데 능력과 덕망엔 아랑곳없이 연령의 차를 뛰어넘어 사장의 아들이란 조건 하나마느오 사장이 되어 社規를 넘는 인간의 영역에 까지 군림한다면 이건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주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좋은 자본주의일 수 있자면 이득의 분배는 주식의 按分에 따르더라도 인사의 서열은 능력과 덕망에 따른 질서라야 한다.

   「나는 자본주의까진 승복할 수 있지만 봉건주의까지 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황차 본건주의에 승복하는 비굴한 자세로 자본주의를 나쁘게 이용하는 무리의 공범자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저는 T물산을 그만둔 겁니다.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다른 어떤 회사에 갈 생각이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전 자살할 필요조차 없는 송장입니다. 이런 끔찍한 송장이 다시 사회의 표면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성유정 씨는 그건 너무나 지나친 자학이라고 했다.
  자학! 고상한 말이다. 네겐 이미 자학할 '자기'조차 없는 것이다.
  「얘긴 그만하구 아가씨들을 끼어 한잔 할까.」
하고 성유정 씨는 소파 모서리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아까의 마담이 요염한 맵시의 아가씨를 둘 거느리고 들어왔다.
  「저 민이에요.」
  데보라 카를 닮은 데가 있는 아가씨가 ㄲ벅 나를 향햐 고개를 숙여 보이곤 성유정 씨 옆애 가 앉았다.
  내 옆에 앉은 아가시는 심이라고 했다.
  「심? 심청의 심?」
  「그래요.」
하며 웃는 그 아가씨의 빰에 얼룩처럼 보조개가 피었다. 시원한 눈, 바로 선 콧날, 꽃잎같이 그려진 입술, 심은 우아하다고 할 수 있는 아가씨였다.

   성유정 씨를 중심으로 얘기꽃이 만발했다.
  「쥐새끼가 말예요, 술통에 빠졌거든요. 고양이가 구해줬더니요, 쥐새끼가 술에 취해 간이 커져 갖구, 고양이 놈들 다 나왓! 하더나나요.」
  「그건 단군 시절의 얘기 아닌가.」
  「아녜요, 다음이 있어요. 그래 고양이가 뭐랬는지 아세요?」
  「뭐랬어.」
  「찬물 먹구 정신차려!」
  「선생님, 스코틀랜드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깍쟁이래요. 어느 스코틀랜드의 부부가 말예요, 런던의 식당에 들렀거든요. 웨이터가 뭣을 가지고 올깝쇼, 하니까 생드위치 일 인분에 쟁반 두 개 가지고 오라더래요. 그래 샌드위치 일인분과 쟁반 두 개를 가져다 줬더니 샌드위치를 이등분 갖고 남편이 먹더래요. 그런데 여자는 먹지 않고 남편이 먹고 있는 걸 보고만 있거든요. 웨이터가 가서 물었대요. 부인께선 그 샌드위치가 마음에 안 드시냐구요. 그랬더니 여자가 한 소린, 아녜요 저양반 먹고 나면 저양반의 틀니를 빌려 갖구 먹을 거예요.」

   아가씨들이 성유정 씨에게 대하는 것이 조카들이 외삼촌을 반기는 그런 태도라고 생각하며 나는 웃음을 머금고 그 장면을 지켜 보았다.
  아득바득 기를 쓰고서도 굶는 듯 먹는 듯하고 있는 미아리 그 판자촌에선 상상도 못할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요염하게 치장한 아가씨들의 뿌리를 찾아 들면 개나 고양이의 시체가 썩고 있는 늪에 이를지 몰랐다.
  그래 나는 심이란 아가씨에게,
  「집이 어디요.」
하고 물어보았다.
  「왕십리예요.」
하더니 심은 곧 성유정 씨에게 말을 걸었다.
  「왕십리 영어 아세요?」
  「왕십리 영어? 어떤 건데」
  「해 볼까요?」
  「한번 해 봐.」
  심은 먼저 웃어 놓고 씨부렁거렸다.
  「시 유 아게, 카마 아게, 하니야. 어브리디 캄캄, 굿굿, 어브리디 노오캄, 노오굿, 에브리디 캄캄 원 딸라도 오케, 에브리디 노오캄, 투 딸라 노오케, 와쓰마리유, 뒤 씽크 오케이?」
  「핫하」
하고 성유정 씨는 웃엇다.
  「그것 무슨 말이야.」
  「대학 교수님도 모르시겠죠?」
  「모르겠어.」
  「그럼 통역을 해 드릴께요. 또 만나요, 또 오세요, 여보. 매일 오면 좋구 매일 안오면 안 좋아요. 매일 오면 원 달러라도 좋지만 매일 안오면 2달러라도 안돼요. 제엔장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죠? 알아 들었수?」
  「가만 보니 미스 심은 왕십리 출신이구먼, 나니 양공주 출신 아냐?」
  성유정 씨가 넌지시 말했다.
  「이이구 망측해, 이래뵈도 난 작가가 되기 위해 관찰한 거에요.」
  「작가?」
하고 성유정이 놀란 척했다.
  「작가라면 소설가가 되겠단 말인가?」
  「그럼요? 저 애는 화가가 될 거구요. 나는 소설을 쓰구, 미스민은 삽화를 그리고 해서 언젠가는 베스트 셀러를 낼 거예요. 그때 성 선생님도 출판 기념회에 초대하겠어요.」
  「출판 기념회도 할 작정이구먼.」
  「하믄요. 출판 기념회를 해야죠. 그때 할 스피치도 다 준비돼 있는 걸요.」
  「소설은 쓰지 않구 스피치 준비부터 먼저 했나?」
  「그럼요. 유비무환 아녜요?」
  「미스 심, 그 스피치 한번 해봐, 얼마나 웃긴다구요. 선생님 한번 들어 봐요.」
  미스 민이 지레 킬킬대며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 성유정 씨도 권했다.
  「미스 심 한번 해 봐.」
  「못 하겠습니다. 결단코 못 해요.」
  「왜?」
  「김이 새니가요. 그런데 선생님 으악새 본적이 있나요?」
  「뜬금없이 으악새는 또 왜.」
  「아아, 으악새 슬피운다는 노래 있잖아요. 그 으악새 말이에요.」
  「본 적이 없는데.」
  「있긴 있겠죠?」
  「있어야만 슬피 울 것 아닌가.」
  「그러데 그런 새는 없다, 이 말이에요.」
  「으악새가 없어?」
  「없어요. 으악새란 나뭇가지와 나뭇가지가 부딪고 얽힐 때 나는 소리래요.」
  「으음.」
하고 성유정 씨가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으악새가 그런 것이란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잡학(雜學)의 대가들만 모인 자리라서 당해내지 못하겠군.」
하며 성유정 씨는 미스 심을 보고,
  「엘리자베드 레이란 여자처럼 자서전을 쓰지, 왜.」
  「엘리자베드 레이라면 헤이스 상원 위원과 스캔들을 일으킨 여자 말이에요?」
  미스 심의 말이다.
  「미스 심이 겪은 연애 편력을 그대로 쓰면 소설이 될 걸.」
  「어느 호스테스의 고백?」
하고 미스 민이 웃었다.
  「그런 건 이미 낡았어요. 그리구 연애 편력도 없었구요.」
  미스 심은 쓸쓸한 척 꾸몄다.
  「미스 심 같은 미인이 아직 연애를 못 했어?」
  「너무 계산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진실이 없는 것 같구,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편이 싫구… 사실 정신 똑 바로 가진 사람이 바의 호스테스를 진정으로 사랑하겠어요?」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어. 내가 아는 호스테스 가운데도 좋은 신랑을 만나 사는 사람이 꽤 많아요.」
  「성 선생 같은 분이 나를 사랑한다면?」
하고 미스 심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쟤 하는 소리 봐?」
  미스 민이 항의 하는 투로 말하며 성유정 씨의 손을 잡고 투덜 댔다.
  「괜히 우리 선생 바람내려고 그러니?」
  「나이 많은 사람 놀리지 말어.」
  성유정 씨는 너지시 말하고 미스민의 손을 풀었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