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의 늪」

 

   나는 일어서며 커피가 담뿍 담긴 커피 잔을 들고 그 뜨거운 커피를 P의 얼굴에 정면으로 쏟아 놓은 채 다방을 뻐져 나왔다. 그리고 카운터에 두 마디 말을 남겼다.
  「커피 값은 저 자에게 받아요. 처먹은 건 저자니까.」

   다벙에서 너온 나는 느릿느릿 걸었다. 결코 도망치는 것이 아니란 마음을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다방에서 누가 뒤쫓아 나오면 망설임 없이 다방으로 돌아가 내 감정의 경위를 설명하고 톡톡히 P를 망신시킨 뒤에 경찰이건 어디이건 가자는 대로 갈 그런 각오를 했다.  그러나 그 골목이 끝나도록 뒤쫓아 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잠시 골목 쪽으로 뒤돌아 보고 섰다가 발길을 김장길 변호사의 사무실로 돌렸다.

   거의 하루 종일 더위 속을 걸어 다녔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게다가 하루 종일 서둔 일이 아무런 보람이 없었는데 따른 허전함이 겹쳤다. 보다도 40만 원은 어떡하든 구해보겠다고 나선 주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그것이 괴웠다.

   나는 김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이르러 간신히 3층까지 난간을 짚으며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대기실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냉차를 한잔 청해 마시고 숨을 돌렸다.
  김 변호사가 있는 방에서 웃음 소리가 났다. 누가 와 있느냐고 여자 사환에게 물었다.
  「성유정 씨라고 하던데요.」
  그 답을 듣자 아는 '아아'하고 신음하는 애달픔과 함께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가능하다면 피해 가고 싶은 사람이어서 고의로 내 생각에서 제외하긴 했지만 속수무책인 이 마당에선 꼭 나타나 줘야 할 인물인 것이다.

   성유정 씨와 하인립 씨느 어릴 적부터의 친구일 뿐 아니라 서로 인척 관계에 있는 사이다. 그런데 하인립 씨가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성유정 씨는 하인립씨가 사업을 하려는 데 대해 맹렬한 반대를 한 것이었다.
  「사업할 돈이 있으면 서울 근교에서 농장이나 하라.」
는 권고를 했었다고 들었다.

   나는 노크도 하지 않고 도어를 밀고 김 변호사의 방에 들어섰다.
  성유정 씨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봤다.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사람은 그런 표정을 할 것이 아닌가 싶은 그런 표정이었다.
  성유정 씨는 일어서 내 손을 잡으며,
  「나쁜 사람 같으니라구, 그렇게 소식이 없을 수가 있어?」
하고 말은 나무랐지만 눈으론 웃고 있었다.
  「이군, 걱정말아요.  돈을 성 교수가 준비하겠대.」
  김장길 변호사가 활달하게 말했다.

   대학교수 노릇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요즘의 처지겠지만 성유정 씨 같으면 능히 그렇게 하리란 짐작을 바로 아가 하고 있었던 터였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긴, 누구 일인데.」
하며 성유정 씨는 웃었다.
  김 변호사는 무슨 모임이 있다면서 일어섰다. 그러면서도,
  「두 분은 모처럼 만난 모양이신데 이 자리에서 더 얘기를 하세요.」
하는 말을 남겼다.
  「우리도 일어서지.」
하는 성유정 씨를 따라 밖으로 나온 나는 광화문 지하도 근처에서 힘겨운 말을 한마디 했다.
  「성 선생님, 35원만 빌려 주십시오.」
  「35원? 왜 하필 35원이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까 해서요. 오늘 하루 종일 걸었더니 미아리 너머까지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무슨 바쁜 일이 있나?」
  「아아뇨.」

   긴 여름 해도 저물어져 가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공기인데도 저녁 나절의 안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성유정 씨와 같이 거리를 걷고 있다는 안심인가 보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그런 안심에 편승하진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면서 성유정 씨가 이끄는 대로 걸어 갔다.
  내수동 골목의 '푸른 집'이란 간판을 단 술집 한구석에 선풍기를 등지고 앉아 성유정 씨는 대뜸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뭣이 말입니까.」
  「고향에도 통 연락을 안 한다며?」
  「고향에 누가 있습니까, 어디.」
  「사촌이 있잖나. 지난번 신학기에 자네 사촌이 아들 대학 입학 시킨다고 올라와 내 집에 들렀더라.  서울대학교의 상과대학에 들었다는 얘기던데?」
  「상과대학요?」
  「자네도 참 상과대학이었지. 내가 얼마나 자넬 찾았는지 알기나 하나?」
  「절 뭣 때문에 찾습니까?」
  「이 사람 딱한 소릴 하누먼.」
  「제가 어디 사람입니까.」
하고 나는 음식이 날라져 오자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속을 채워 두어야 성유정 씨의 대작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만하고 술이나 들게」
  성유정 씨는 내잔에 가뜩 술을 따랐다. 나도 성유정 씨의 잔에 술을 채웠다.
  두세 잔 오가고 나니 갑자기 술기가 올랐다. 성유정 씨의 말이 시작되었다.
  「사업이건 인생이건 한 번쯤의 좌절을 자네처럼 받아들여서야 어디 이 세계가 지탱하겠나.」   「선생님답지도 않은 말씀 마세요.」
  「내가 기상천외한 사상을 가진 줄 아나? 상식 이외의 무슨 사상이 내게 잇겠나.」
  「그러니까 그만 두시란 것 아닙니까.」
  「죽음에 대해서 생물적인 공포밖엔 지니고 있지 못한 놈이, 자살을 결행할 수 있는 사람에게무슨 충고를 한다는 건 비겁자가 용사에게 하는 충고처럼 쑥스러운 것이지만 진짜로 용기 있는 사람은 비겁자의 충고도 들어야 하는 거다.」
  「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용기가 있으면 이런 꼴로 선생님 앞에 나타나 있겠어요? 마누라와 아이들 다 죽여 놓고 이렇게 뻔뻔스럽게 앉아 있겠어요? 그러니까, 외람됩니다만 부탁입니다. 제게 관한 얘기는 그만둡시다. 하 선생 얘기나 합시다. 전 하 선생에게 천만원 빚을 진 놈입니다.  그런데 하 선생은 돈 40만 원 때문에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성 선생님에게도 3백만원 빚을 진 나 아닙니까.  선산이 있는 산판을 판 돈을 내가 몽땅 날려 버린 것 아닙니까.」   「이 사람, 그 얘긴 왜 꺼내는 거야. 모두 지난 일 아닌가.」
  「아닙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선생에게 비 돈, 성 선생에게 빈 돈 그걸 갚지 않고 배겨내기 위해 계집, 자식을 몽땅 죽이구, 죽는 척 해 놓구 나는 살아나구……그런 연극을 꾸민 것 아닐까 하구요.」
  「왜 그러나 이군!」
  「그러니까 제게 관한 얘긴 그만둬 주십사 하는 겁니다.」
  「좋다, 그럼 얘길 안하지.  자 술이나 마시자.」

   묵묵한 가운대 술잔이 오갔다. 그런데 그 침묵이 또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말을 꺼냈다.
  「하 선생 일은 잘 되겠죠?」
  「김 변호사는 안심해도 좋다고 하더라. 돈만 갚아주면 잘 하면 무죄, 최악의 경우라도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다니까 안심해도 된다는 얘기였어.」
  「하 선생 면회하시렵니가.」
  「안 하겠어.」
  「공판할 땐 나가시렵니까.」
  「공판에도 안 나가겠어.」
  「저도 안 나갈랍니다.」
  「그러는 게 좋을 거다.」

   다시 묵묵한 술잔의 응수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번엔 성유정 씨가 말을 꺼냈다.
  「앞으로 어떻게 할 텐가.」
  「절대로 자살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것만은 확길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세상의 표면에 나타나진 않을 겁니다. 두더지로서 한 평생을 살 겁니다. 이것도 확실합니다.」
  「그렇게 살아 무슨 으미가 있단 말인가.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낫지.」
  「의미는 기왕 어느 시점에서 모조리 말살해 버린 걸요. 그러니 자살할 의미마저 없어져 버린 겁니다.」
  「의미를 찾아볼 생각은 없나?」
  「무의미의 의미는 있습니다.」
  「무의미의 의미?」

  성유정 씨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말의 장난을 하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럼 얘길 하겠습니다.  최소 한도의 노력으로 행운을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이를 테면 노인들을 만나면 가능한 한 친절을 베풀어 하워 휴즈 같은 사람에게 부딪치는 겁니다. 유산을 노리는 일이죠. 어떻게 돈이 생기면, 생긴댔자 아내의 돈을 훔쳐 내는 거지만 그걸 갖고 복권을 삽니다. 당첨되길 노리는 거죠.  또 하나는 간첩을 잡는 일입니다. 보상금을 노리는 거죠. 이렇게 해서 현재 나를 먹여 살리고 있는 아내를 얼마 동안아니마 호사를 시켜줌으로써 단 하루라도 장엄한 아침을 맞아 보고 싶은 겁니다. 의미 이하의 의미, 무의미의 의미가 뭣인가를 아셨죠?」

   어느덧 성유정 씨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완전 무결한 인격주의를 지향하시는 성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무의미의 의미가 못 마땅하실 겁니다.」
  나는 성유정 씨의 비위를 뒤틀어 놓고 싶은 광폭한 충동에 일시 사로잡혔다.
  일제 때는 '天皇陛下'로부터 금시계를 받은 최우등의 학생, 해방 후의 혼란기엔 혼자 혼란하지 않은 온건한 지식인, 6.25땐 인민군이 그 동리에 소(沼)를 팠는데도 만석꾼인 그집만은 대문 한번 두드려 보는 법 없이 지나쳐 버린 집의 아들, 자유당 때도 민주당 때도 공화당 지금에도 티끌 하나 책잡혀 보지 않은 대학 교수, 내게 3백만 원의 돈을 떼어먹혔는데도 싫은 소리 한마디 없는 관대한 선배! 삼천리 강산이 와들와들 떨고, 3천만의 국민이 악착 같은데 이러한 인간이 과연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여기에 돌연 깡패가 나타나 저 반들반들한 이마를 주먹으로 때리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성유정 씨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러한 내 마음 속의 드라마엔 아랑곳 없이 성유정 씨는 조용히 말했다.
  「간첩을 잡을 자신이 있는가?」
  「있죠. 김일성이 자꾸만 간첩을 남파하다고 하잖습니까.」
  「어떻게 잡을 텐가.」
  「간첩 신고는 113, 아닙니까.」
  「간첩을 잡을 생각을 한 근본적인 동기는?」
  「수출 증대에 이바지함으로써 애국을 하려고 했는데 그 일이 좌절됐으니까 갑첩이나 잡아 애국하자는 겁니다.  성 선생께선 못 마땅합니까? 이런 사상 갖곤 요즘 대학생들의 인기를 끌 수가 없다는 겁니까?」
  「이군 취했군.」
  「그렇습니다. 취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성 선생이 하는 일은 모두가 옳은 겁니까.  나는 그런 완전 무결주의가 싫습니다. 왜 내 빰을 치지 않습니까. 왜 내게 노여움을 보이지도 않습니까.나는 선 선생의 완전 무결한 인격보다 하인립 씨의 주책바가지가 월등하다고 생각해요.  왜, 보다 인간적이니까요.  성 선생은 하 선생을 경멸하고 있죠? 성 선생의 생활태도를 닮지 않았다구요.  그런데도 뭣 때문에 40만원의 돈을 물어주려는 겁니까. 나는 성 선생의 혈관엔 붉은 피가 아니고 뜨물 같은, 우유 같은 액체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하인립 선생의 피는 붉어요. 그 분은 인간이에요.」
  「이군 취했군.」
   성유정 씨는 다시 한번 이렇게 되풀이 했을 뿐 그 얼굴은 예나 다름없이 조용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성나게 할 수 있을까.
  「자 술은 이만 하구 가자.」
  성유정 씨는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수양버들의 바람인 것이다.

 

   전등불이 휘황한 거리에 얇은 옷차림의 남녀들이 범랍하고 있다. 흡사 수족관을 들여다보는 풍경이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 어귀에 섰을 때 나는 내 왼편 호주머니에 무슨 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얼른 손을 찔러 보았다. 지폐의 감촉을 가진 종이가 한 웅큼 쥐어졌다. 나는 그것을 꺼내, 옆에 선  성유정 씨에게 내밀었다.
  「이렇겐 필요없습니다. 35원만 주세요.」
  「그냥 가지구 있어.」
  「안 됩니다. 도루 받으세요.」
  네온사인을 반사한 안경 너머로 성유정 씨의 눈이 이상스런 빛을 띠었다.  나는 웬지 겁에 질렸다.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면 영원히 그만일 것이란 공포가 일었다.
  「어디 가서 한잔만 더 합시다.」
  내 말은 애원하는 투가 되었다.
  「그럼 그걸 넣어 둬요.」

   성유정 씨는 싸늘하게 말하고 몇 발자국 걷다가 섰다.
  「내가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을 하겠다면 한잔을 더 사지.」
  「예, 정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어딜 갈까.」
하고 생각하는 눈치더니 성유정 씨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역시 조용한 곳이 좋겠지.」
하며 성유정 씨는 H동 쪽으로 차를 달리게 했다.
   택시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있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상념이 있다.  거대한 악마의 장부(臟腑) 속을 누비고 있는 기생충이란 상념이다.

   택시가 멈춘 곳은 '카사비앙카'란 네온사인이 음탕한 빛깔을 발산하고 있는 언저리였다.
  「푸른 집에서 하얀 집으로 온 셈이구먼요.」
  약간 아첨기가 없지도 않은 투로 말해 보았는데도 들은 척도 않고 성유정 씨는 위이타가 열어주는 도어 저편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따라 들어갔다.
  라틴 풍의 기타 소리가 어디선지 들려오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원피스의 무늬로서 잠자리 같은 인상을 풍기는 여인이 앞장을 서서 방문을 열었다.
  마제형(馬蹄型)으로 소파가 놓인 아담한 방이 나타났다.
  「스카치, 얼음, 물, 그리고 치즈를 갖다 놓구,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아요. 이따 연락할 때까지.」

   손님이라기보다 주인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말투로 분부를 내려놓고 성유정 씨는 상의를 벗었다. 어에컨디셔너의 조절로 알맞은 양도(凉度)라고 느낀 나는 구태여 상의를 벗고 때 묻은 내의를 노출시킬 필요가 없었다.
  주문한 것들이 오고 웨이터가 퇴장하자 성유정 씨는 자세를 고쳐 앉아 정색을 했다.
  (아아, 이제부터 사문(査問)이 시작되는 구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스카치의 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지금 어디 있지?」
  「미아리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주소는?」
  「잘 모르겠는데요.」
  「주소를 모른다?」
  「지금 얹혀 살고 있는 형편이라서.」
  「얹혀 살다니, 누구에게」
  「아내에게요.」
  「아내라니?」
  「그런 여자가 있습니다.」
  「언제 만난 여자야.」
  「2년 전쯤에요.」
  「어데서.」
  「술집에서요. 그 여자는 술집의 작붑니다.」
  「그렇더라도 주민등록증은 있을 것 아닌가.」
  「그런 것 없습니다.」
  「간첩을 잡기는커녕 자네가 간첩으로 몰릴 형편이로구먼.」

   성유정 씨는 스카치의 잔을 들었다가 놓았다. 무엇부터 먼저 물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눈치였다.
  「옛날 자네가 있었던 회사의 사장을 몇 달 전에 만났어. 어떡하든 자넬 찾아 달라는 부탁이더라. 이번 M단지에도 공장을 세울 모양이야. 자네만 좋다면 그 M단지 공장의 관리 책임자로 보냈으면 하는 의향이던데 아무리 찾아도 자네가 있어야지.」
  「그 회사엔 도루 가지 않겠습니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