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대표선  <한국창작문학 수상>

 

망명(亡命)의 늪

 

 

   장엄한 아침이란 것이 있다.
   가령 나폴레옹의 아침 같은 것이다.
   이슬을 촉촉히 머금은 베르사유의 로코코식 정원.  그 기하학적인 숲 사이를 이제 막 오른 태양이 황금빛 광채의 무늬를 놓는다.  그럴 때 하품마저 장엄한 기품을 띤다.
   세인트헬레나라고 해서 사정이 달라질 건 없다. 하늘과 수평선이 안개빛으로 용해된 망망한 대서양의 아침이 장엄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롱웃드의 동창이 밝아 올 무렵이면 시복(侍僕) 마르샹이 도어 저편에서 나타나 정중한 최경례(最敬禮)를 한다.

   「폐하, 조찬을 드시겠습니까?」
   그럴 때 기침마저 장중한 기품을 띤다.
   그런데 나의 아침은 언제나 장엄하지 못하다. 숙취의 뒷날이거나 아내의 구박을 받는 악몽에 지친 뒷날이거나 하여간 궂은 일이 있던 뒷날이며, 다시 궂은 일이 시작되려는 갈림의 시점에 나의 아침은 있다. 이러한 아침이 장엄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내가 염세주의자와 다른 것은 언젠가는 장엄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리란 꿈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호화롭고 아늑한 새털 침구에서 아슴푸레 땀이 밴 몸으로 일어나 유리창을 열어제쳐 맑은 공기를 마시곤 똥물이 튀겨오를 걱정이란 절대로 없는 수세식 변기에 왕자처럼 버티어 앉아 장엄하게 아침을 맞이할 날이 있고야 말 것이란 꿈으로 해서 나는 가혹 행복하기조차하다.

   만나는 대로 노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으며 어쩌다 하워드휴즈 같은 사람에 부딪쳐 거액의 유산을 받을지 모를 일이고, 설혹 그런 횡재는 분에 넘친다 하더라도, 김일성이 자꾸만 간첩을 남파한다니까 간첩 한 놈쯤 붙들어 돈 백만원 수입하는 행운도 무망하진 않을 것이다.
  (간첩신고는 113)
  뿐 아니라 복권을 사는 재미가 또 있다. 누군가가 당첨해야 할 것이라면 내가 당첨된대서 조금도 우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꿈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해서 변소의 악취가 사라질 리는 없고, 튀겨오르는 똥물이 겁나지 않을 리 없다. 그날 아침도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궁둥이를 쳐든 자세로 변소 안에 앉아 있었다. 버릇대로 주인집에 온 신문을 살짝 실례해서 펴 들었다. 탐탐스런 기사라곤 없었다.
  무슨 장관이 무슨 얘기를 했다는 기사는 火星人이 무슨 성명을 발표했다는 정도의 실감도 없고, 그년도 상반기 은행실적이란 것은 土星에서 회의가 열렸다는 얘기보다도 무의미하다.

   이스라엘 특곡대의 전격작전 같은 얘기는 아무리 먼곳의 얘기라도 그런대로 신나긴 하는데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날 까닭도 없다. 불량 식품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악덕 상인의 흉측한 범죄 행위이기에 앞서, 뭐건 배만 채우면 된다고 해서 초근목피도 사양하지 않았던 이조이래의 사고 방식 탓이란 점을 문제 삼아 볼 만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저러나 식품에 유독 물질을 섞는 놈, 아동들의 급식용 빵에 돌가루를 섞는 놈 따위는 모조리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다. 권총을 마구 쏘아 한 둘을 죽이는 살인범에겐 기혹한 법률이 돈을 벌 목적으로 수십만의 생명을 죽이려고 드는 놈들에게 관대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신문을 읽으며 그 정도로 흥분해 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신문을 접으려는데 '하동욱'이란 이름이 눈에 띄었다.
   하동욱! 알 만한 이름이다.
   기사를 읽어 보았다.
   '검찰은 하동욱(52세)을 사기 혐의로 입건 구속했다. 피의자 하동욱은 S기술단(技術團)에 용역(用役)을 맡아 준다고 40만원을 사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그 일단짜리의 기사가 어떻게 눈에 띄었을까. 자칫했더라면 놓칠 뻔했다는 의식으로 그 사실이 신기롭기까지 했다.
   하동욱이라면 하인립 씨의 본명이다. 시인을 자처하는 하씨는 주로 필명인 하인립으로 행세해 왔다. 하동욱이란 본명은 호적부나 주민등록부, 사업상의 공식 문서에나 기재되어 있을 뿐 햇빛에 바래지지 않은 이름이다. (하인립 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럴 리가 없지. 필시 동명이인일 게다.)
하면서도 나는 안절부절 못 하는 마음이 되었다. 하인립 씨를 만난 지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과, 구속된 사람이 바로 그 하인립 씨면 큰일이란 생각이 겹쳤다.

   아내는 아직도 잠결에 있었다. 벌린 입 한족 언저리에 흘러내린 침이 말라 붙어 있다. 걷어찬 이부의 한 부분은 허연 허벅다리가 구겨 누르고 있다. 잠자는 얼굴은 이처럼 백치같이 어리석고 조용한데 잠을 깨기만 하면 여우처럼 교활하고 이리처럼 앙칼스러워지는 건 어떻게 된 까닭일까. 내게 생활을 지탱해 낼 힘이 있기만 하다면 영원히 재워놓고 싶은 그런 여자다.

   아내 머리맡에 있는 지갑에서 동전 서너 닢을 꺼냈다. 아내는 동전이 몇 님쯤 들어 있는 지갑이면 언제든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둬둘 만큼 관대하다. 그 반면 조금이라도 부피가 있는 돈은 감쪽같이 어디엔지 감추어 버린다. 물론 감추기 힘들 만한 부피의 돈이 있을 까닭이 없다.    나는 아내의 지갑에서 꺼낸 동전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공중 전화를 걸어 볼 참이었다.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긴 골목을 빠져 나가 한길로 나가서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7시가 가까운데도 거리엔 사람의 그림자가 드물었다. 이 근처의 사람들은 그만큼 게으르다고 할 수가 있다. 여름철의 가장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의 이 무렵인데 이 근처 사람들은 그런 시간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공중전화가 있는 박스, 이 박스와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런 만큼 항상 정답다. 조용히 들어서서 문을 닫고 송수화기를 집어들면 전세계를 향해 호소할 수 있다는 그 가능으로 해서 가슴이 떨린다. 그리고 넓은 공간을 금 그어 유리 벽을 쌓아 성을 만들고 그 유리의 성 안에서 정다운 사람을 찾아 密語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야말로 문명의 혜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와 그 공중전화 박스와의 인연은 어느 겨울 밤에 비롯되었다. 전날 밤 외박을 한데다가 그날 밤도 얼근하게 취해 늦게사 돌아온 아내의 얼굴을 힐끔 훔쳐 본 내 눈길이 약간 사나왔던 것이 화근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사람을 보죠.」
   코트를 벗어 내동이치며 아내는 앙칼스럽게 시작했다.
   「계집 하나 못 먹여 살리는 주제에 그래도 강짜는 있어 갖구.」
   치마를 벗어 팽개치며 한 소리다.
   「 사람을 째려 볼 밸이 있거들랑 계집 먹여 살릴 궁리나 해봐요. 계집 먹여 살릴 궁리도 채 못하겠거든 이녁 밥값이나 해봐요. 내가 외박한 게 못마땅하다 그거죠? 흥.」
   저고리를 벗고 경대 앞에 앉으며 아내는 언성을 높였다.
   「당장 우리 헤어집시다. 귀밑머리 마주 푼 사이도 아니구, 당장요.」
   그렇게 하지고 응할 수 있는 처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일시적인 기분을 사기 위해 위험을 범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심한 폭풍우도 끝날 때가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잠자코 있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왜 말을 하지 않죠? 내말이 말 같지 않다, 거건가요?」
   「……」
   「모두들 나를 미친년이라고 해요. 지금이 어느 땐데 놈팽이를 그르고 있느냐는 거예요. 나이라도 젊었을 때 정신 차리라는 거예요. 아아, 나도 미친년 노릇은 그만 할래요.」
   「……」
   「참말이에요. 우리 헤어집시다. 당신이 안 나간다면 내가 나갈 테니까. 아아 지긋지긋해.」    그리고는 나를 향해 홱 돌아앉았다.
   「어쩔 태요, 헤어질 테야? 어쩔 테야」

   아내는 여느 때와는 달리 기어이 내게로부터 다짐을 받을 작정인가 보았다. 나는 어설프게 무슨 말을 했다가 장차 곤란을 당하느니보다 이 밤만이라도 어디로 피할 궁리를 했다.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의 욕설이 계속되었다.
  「뭘 잘했다고 나를 째려 보지? 내가 제 조강지천가? 도대체 넌 뭐란 말이냐. 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놈!」
   드디어 최소한도의 경어도 벗겨 바렸다.
  「나를 요모양 요꼴로 만들려고 꼬셨지? 제가 무슨 사장이라구? 하기야 속은 내가 미친년이지.」

   그러나 내 쪽에서 아내를 꼬신 적은 없다. 사업에 실패한 나머지 죽고 싶다니까 청춘이 만리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쓰냐고 자기편에서 나를 위로하려고 들었고 그 위로를 받고 있는 동안 우리는 어느덧 부부가 되어 있었다. 나내는 자기가 만든 나의 인상에 속은 셈이다. 아내는 나를 조금 도와 주기만 하면 갱생할 사람으로 본 모양이지만 나는 한 가닥 요행을 바라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어도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은 깡그리 포기하고 있는 터였다.
  「우리 이쯤에서 헤어집시다. 이 이상 원수가 되기 전에요.」

   이때, 선뜻 내 뇌리를 스친 것이 있었다. 그 무렵 신설된 공중전화의 박스가 반들반들 유리빛으로 빛나며 내 뇌리에 자리를 잡았다.
   (옳지, 그 곳이면 하룻밤을 새울 수 있겠다.)
  이런 작정과 더불어 빼짱이 생겼다. 일어서서 방문을 박차고 나설 계기만 있으면 되게 되었다.   「흥,  네 물건에 홀딱 빠져 내가 널 놓지 않을 거란 배짱이 있는 모양이지만 어어럽시오. 나는 음탕에 미친 년이 아냐. 그만한 물건 가진 사내는 얼마라도 있어. 물건 좋구 돈 많은 사내두 얼마든지 있단 말야. 알겠어? 내일 헤어지는 거다아!」

   취기와 신경질이 상승작용(相承作用)을 하는 모양으로 아내는 못할 말없이 노까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터라 빙그레 웃었다. 이것이 또한 아내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한 모양이다.
  「네  X에 자신이 있다, 이 말야? 천만에, 이젠 질색이다. 난 음탕에 미친 년은 아녀, 절대로 아녀,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음탕에 미친 과부년이나 찾아가면 될 것 아냐? 그런 년이 서울 장안에 우굴우굴하다는데 넌 그런 재간도 없냐? 어, 더러워, 더러워, 텟테테 텟테테……」

   침 뱉는 시늉을 하고 있는 아내를 곁눈으로 보며 나는 내복을 입고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양복을 입었다.
  아내는 순간 주춤하는 것 같더니,
  「흥」
  하고 경대 쪽으로 돌아앉았다.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됐을 무렵이고 호주머니에 돈 한푼 없는 놈이 가면 어딜 갈 거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나는 아내의 등 너머로 읽었다.
  「내게도 밸이 있다, 그 말씀이구랴? 잘 생각했어, 갈 테면 가봐.」

   나는 소매와 깃이 닳은 외투를 옷걸이에서 내려 입고 역시 낡은 목도리까지 목에 둘렀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 바람이 차가왔지만 아내의 입에서 내뿜는 욕설이 미지근한 온기에 섞여 꽉 차 있는 지옥을 벗어난 것이 우선 상쾌했다.
   주인집 방엔 환히 불이 켜저 있었다. 주인 부부가 아내의 악담을 어떻게 들었을지 알 까닭이 없다. 하도 빈번하게 되풀이 되는 것이라서 이미 호기심조차 마멸되어 있을지 몰랐다.

  대문을 의식적으로 요란스럽게 여닫은 것은 아내가 뛰어나와 만류해 줄 것을 은근히 바랐던 것과 술에 취한 아내가 문단속하길 잊었을 경우, 주인이 나와 대문을 잠그라는 뜻이 겹쳐 있다.   긴 골목을 뻐져 나올 때까지 뒤쫓아 오는 소린 없었다. 골목 어귀의 구멍 가게가 이제 막 문을 닫으려는 찰나였다.  거기서 나는 담배와 성냥, 그리고 소주 두 병과 오징어 두 마리를 외상으로 사고, 가졌던 푼돈을 죄다 오 원짜리 동전으로 바꿨다. 그만한 편리를 봐줄 수 있을 정도론 그 구멍 가게에, 나와 아내의 신용은 있었다.

   통행금지 시간이 지난 거리엔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가서 깜쪽같이 그 박스안에 몸을 가눌 수가 있었다. 유리 문을 닫으니 밀폐된 방이 되었다. 무픞을 안고 앉을 수 있을 만한 스페이스이기도 했다. 추운 날씨긴 해도 바람막이가 있는 데다가 줄곧 마시고, 씹고,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견디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경찰관이 지나는 듯한 눈치가 보이면 얼른 일어나서 전화를 거는 척했다. 급한 병자가 생겨 병원에 연락하는 중이라고 핑계를 구며댈 작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그런 거짓말을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심야, 인적이 끊어진 거리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세상을 내다보는 기분이란 약간의 추위쯤은 견디어 낼 수 있는 보람과 같은 것을 지녔다.

   줄잡이 6백만의 사람을 수면 속으로 봉쇄해 버린 서울의 거대한 밤은 그것이 안은 다양한 꿈으로 해서 소화불양을 일으켜 괴물의 어느 한 부분이 경련을 일으켜도 마땅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파열을 일으켜 피와 고름이 홍수처럼 흘러 내려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처럼 공중전화 박스 속에 있는 내 자신이 서울의 장부(臟腑)에 이상을 일으키고 있는 이질 분자가 아닌가.  민일 내개 저주의 의사와 악의의 발동이 있다면 서울의 장부에 급성 맹장염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저주할 의사도 악의를 발동시킬 생각도 없다.

   설혹 화화스런 육체의 향연이 저 어두운 창 너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짐작을 했어도 내겐 질투할 정열조차 없다. 호사스런 무수한 잠이 서울 가득히 깔려 있는데 다리 한번 만족스럽게 평수 없는 옹색스런 잠을 청하고 있대도 나는 어느 한 사람 원망할 생각은 없다.
   나느 이처럼 선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몇 시나 되었을까, 마지막 술방을 삼켰다. 그런데도 취할 기색은 없다. 되레 6백만 서울 시민을 도맡아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명석해졌다. 술이 끊어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추위가 엄습해 왔다. 아랫배에 힘을 넣으면 이빨이 달달 떨리고, 이빨이 떨지 않게 입을 가다듬으면 아랬도리가 떨렸다. 퍼져 앉은 궁둥이의 그 두꺼운 살을 통해서 창날처럼 예리한 한기가 등골을 찔러 댔다.

  나는 부득불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되는대로 다이얼을 돌렸다.  어두운 하공 속에 우리는 전화의 벨 소리, 나는 것이 울리고 있는 공간을 갖가지로 상상하면서 추위를 잊으려고 애썼다. 이제 막 살인을 끝낸 범행의 현장에 울리는 벨 소리. 부부의 침실에 침입해서 情夫를 가진 아내의 가슴을 써늘 하게 하는 벨 소리. 텅 빈 창고에 울려 퍼져 쥐새끼들을 놀라게 하는 벨 소리, 심야의 벨 소린 섣불리 수화기를 목 들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