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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위칼자루를 쥐되, 칼날을 쥔 것처럼
4년 전쯤의 일이다.
어이없는 가짜 덤핑 판매 일단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덤핑 판매가 되었다는 재품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영업 사원이 미심쩍어 하면서 사들고 온 쿤트롤크림은 겉보기엔 영락없는 우리제품이었다. 포장 용기는 물론이고 명품보증서까지 똑같았다. 하지만 내용물을 발라보자 단박에 그 실체가 들러았다. 포장만 번드르한 가짜였던 것이다. 역추적을 해보니 어느 간큰 사내가 콘트롤크림 10만여개를 만들어 그 중 1만여 개를 시중에 풀어놓은 상태였다. 사내는 화장품 전문점을 돌면서 참존 사장이 비자금 마련을 위해 내놓은 물건이니 안심하고 들여놓으라고 사기를 쳤단단, 없어서 못 팔던 제품을 10퍼센나 싸게 준다니 화장품 전문점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자 가짜 콘트롤크림 회수에 들어갔다. 가짜를 반품받아 진품으로 바꿔준 것이다. 사기를 친건 새내지만 콘트롤크림의 이미지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우리가 직접 뒷수습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현금 판매의 위력을 절감하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우리가 여늬 화장품 업체처럼 어음거래를 했더라면 감히 그런 사기극을 벌일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사실 어음거래는 화장품 업계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산업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관행이다. 특히 화장품 업계에서는 정도가 더욱 심해서 제품 대금을 4~6개월짜리 어음으로 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자금회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어음할인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어음 할인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할인료도 터무늬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 게다가 어음거래는 항상 부도의 위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하마디로 어음거래는 중소기업의 숨통을 조르는 유통구조다. 때문에 나는 창업 초기부터 현금 판매를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대림점 수가 많아지고 매출이 늘어나자 현금 판매만을 고집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한 달짜리 어음만 받아줘도 매출액이 최소 30퍼센트는 늘어날 것이다. 50퍼센트 신장, 100퍼센트로 신장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는 임직원의 말에 그만 고집을 꺾고 말았다. 한번 어음거래를 트기 시작하자 1개월짜리 어음이 2개월짜리 어음이 되고, 2개월짜리 어음이 3개월짜리 어음이 되는 것은 잠깐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94년 초반에 들어서자 주력상품인 데이나이트 맛사지 크림과
클린싱워터가 판매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데이나이트 맛사지크림은 출시된 지 너무 오래돼서 인기가 전만 못했고, 클린싱워터는 경쟁 없체에서 유사 품을 싼값에 내놓는 바람에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제는 대리점 재고가 있거나 말거나 한달에 한차례씩 제품을 갖다 안기고 어음을 받아오는 밀어내기식 염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리점은 대리점대로 어음 결제일이 다가오면 떠안고 있던 재고를 매입원가 이하로 덤핑 판매해서 부도를 막았다. 전국 대리점마다 적게는 4개월치, 많게는 6개월치씩 쌓여 있던 재고가 헐값에 팔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애써 쌓아올린 명성과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판이었다. 새로 뽑은 영업사원 150명을 전국에 배치하여 덤핑 판매를 감시하게도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인건비 지출이 회사의 자금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식 해결책이었다.
칼자루를
쥐려면 94년 말이 되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영업사원들은 이제 4개월짜리 어음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천존 부도설'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결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였다. 결국 11월말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450명에 이르던 사원도 반으로 줄였다. 이어 벼르고 벼르던 폭탄선언을 했다. "95년 1월 1일 부터는 무조건 현금 판매입니다. 어음은 1개월짜리만 받겠습니다. 1개월 이상은 절대로 안 됩니다. 단 현금으로 결제를 하는 대리점은 10퍼센트 할인해 주겠습니다." 사원들은 사원들대로 반대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칼자루를 쥘 수 있는 제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94년 8월 출시된 콘트롤크림이 바로 그것이었다. 공전의 히트 상품이 된 콘트롤크림도 당시에는 판매하기가 그리 여의치만은 않았다. 부도설까지 나도는 판국이다보니 대리점에서도 선뜻 받아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쉬운 소리까지 해가며 남품을 해야 했다. 심지어는 사원들에게 콘트롤크림을 1인당 100개씩 팡아오게 하는 편법까지 썼다. 창업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그런데 콘트롤크림을 한 번 써본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히트의 조짐이 있었다. 대리점이나 소매점도 소비자들이 찾는데야 별 도리가 없었다. 현금을 주고 제품을 사가는 대리점이 하나둘 늘어갔다. 사실 현금 판매를 선언한 이루 '95년 1월에 현금 주고 사가는 물건은 단돈 5천만원 어치도 안될 것'이라는 게 우리 엽업사원들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그해 1월 우리는 현금 판매로만 8억3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금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 연말이 되자 단기순이익만 27억원에 이르렀다.
칼자루를 거머쥔 다음에는 해를 거듭해갈수록 대리점들도 대금의 10퍼센트를 할인해주는 현금결제에 맛을 들여갔다. 1천만원어치만 구입해도 1백만원을 벌고 들어가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비싼 활인료를 물어가며 어음할인을 하지 않아도 되니 10퍼센트쯤 깍아줘도 손해볼 일이 없었다. 현금 판매의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현금을 주고 제품을 구입한 대리점은 소매점에도 현금 판매를 할 수밖에 없다. 소매점은 소매점대로 우리 제품과 타사 제품을 달리 취급하게 된다. 외상으로 산 물건은 반품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내돈주고 산 물건은 안팔리면 손해가 막심하다. 결국 기를 쓰고 우리 제품부터 팔게 되는 것이다. 나역시 소매 약국 시절에 익히 경험했던 일이다. 뿐만 아니라 대리점이나 소매점이나 무턱대고 많은 양을 주문하는 일이 없어졌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지만 내돈 드는 일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탓이다. 그 결과 원1회로 정해져 있던 정기적인 주문은 제품이 필요 할 때마다 수시로 주문하고 납품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갔다. 대리점의 평균 재고 회전도 20일 이하로 떨어졌다. 재고가 쌓일 겨를이 없으니 덤핑 판매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쪽에서도 정확한 판매 예측에 따라 적적량의 재고만을 보유하게 되니 쓸데없이 재정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졌다. '이달에는 또 어떤 대리점에서 부도를 낼까?' 노심초사하는 일 없이 회사 재정을 보다 안정적이고 계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은 말할 것도 없다. 영업 사원들 또한 수금 걱정 없이 본연의 업무인 시장 조사와 판매 촉진, 대리점 관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95년 현금 판매를 실시한 이래 해마다 흑자를 거듭해 왔다. 현금 판매 전략이야말로 부도위기에 놓여 있던 참존을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현금 판매 저략도 콘트롤크림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없었다면 전혀 먹혀들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싸움의 승패는 누가 칼자루를 쥐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하지만 칼자루를 거머쥔 다음에는 마치 칼날을 쥔 것처럼 처신해야 한다. 다음 순간에는 내가 칼날을 쥐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지금 칼자루를 잡았다고 자만도할 일도, 칼날을 잡았다고 좌절할 일도 없다. 다만 매순간 칼자루를 거머쥐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명품의 부자가 되어라 나는 지난 1995년부터 모든 제품에 명품보증서를 함께 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