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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규모의 경쟁을 포기하라 >> 실력의 부자가 되어라
45세의 늦은 나이에 새로 출발한 화장품 사업,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피보약국 시적부터 꾸준히 쌓아왔던 풍부한 피부 지식이 있었기에 애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그리고 가장 좋은 품질의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볼 차례였다. 하지만 조언을 얻으려고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만류했다. 화장품 제조업은 품질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절대로 승부수가 될 수 없다던 품질. 그것이 바로 나만이 던질 수 있는 결정적인 승부수였으므로 나는 또다시 거꾸로 뛸 준비를 해야 했다. “100명이 모이는데 99명이 검정 양복에 검정 모자를 쓴다면 나는 흰 양복에 흰 모자를 쓰겠다.” 기회가 될 때마다 내가 늘 얘기하는 말이다. 만약 검은 양복을 입고 있다면 99명 속에 묻히고 말지만 흰 양복을 입게 된다면 나머지 99명이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이 되어버린다. 어떤 색깔의 양복을 입느냐에 따라 나의 색깔이 180°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99명의 검은 양복 속에 끼지 못해 불안해하는 것보다 기꺼이 검은 양복들을 나의 배경으로 삼고자 한다. 그렇다고 요즘 젊은이들처럼 무조건 ‘튀고 보자’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튀기 위해서는 남들이 그 튀는 행동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서태지가 빨간 머리를 하고 나오건 흑인처럼 꼬불꼬불한 레게 머리를 하고 나오건 사람들은 ‘서태지니까’ 하고 인정을 해버리고 만다. 서태지를 서태지이게 하는 것이 음악성이라면 참존을 참존이게 하는 것은 ‘차별화된 제품’이다. 나는 창업 초기부터 생산과 판매, 광고,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제품의 차별화였다.
왜 달라야 하는가?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화장품 업계에서는 봄이면 노란색 레몬 화장품을, 여름이면 푸른색 쿨 타입 또는 젤리 타입의 화장품을 내놓는 것을 관행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남이 만든 제품이 잘 팔린다고 나도 덩달아 비슷한 제품을 내놓으니 팔릴 리가 없다. 결국 쌓이느니 재고요, 철지난 재고품을 덤핑 판매하다 보면 남느니 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남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유혹을 떨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그런 유혹에 빠진 적이 있다. 모 화장품 회사에서 머드팩을 출시하여 쏠쏠히 재미를 보고 있을 때였다. 우리도 팩 제품을 만들자는 영업부 직원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그래? 그럼 우리도 한번 해보지 뭐’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석고 팩을 내놓게 되었다. 하지만 청개구리 정신을 망각한 결과는 혹독했다. 팩은 사용 빈도수가 일주일에 한 번을 넘기지 않는다. 소비량의 절대치가 다른 제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 점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하게 덤볐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외국에서 용기까지 수입해서 한꺼번에 수십만 개를 만들어 내놓은 석고 팩은 얼마 팔아보지도 못하고 도중하차를 해야 했다. 초창기 같았으면 이 한번의 실패만으로도 회사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 지고 따라나섰다가는 망신만 톡톡히 당하고 돌아오게 마련이다. 시장의 논리는 이보다 더 냉혹해서 어수룩하게 남을 따라하다가는 망신 정도가 아니라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한다. 참존 같은 업계의 후발주자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차별화, 그 중에서도 제품의 차별을 첫 번째 전략으로 꼽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제품의 차별화는 품질의 차별화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무리 작고 허름한 식당이라도 음식 맛이 좋으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정밀하기로 이름나 스위스 시계도 자그마한 가내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태반이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품질’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업 초기부터 세계 제일의 명품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제품 생산에 임해왔다. 지난 85년 출시된 데이나이트 마사지 크림이 무려 10년 동안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비록 이름 없는 중소기업 제품이지만 품질만은 세계 유수의 화장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기에 대기업 제품을 젖히고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참존이라는 회사명부터가‘참 좋은 제품’으로 인정받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지난 93년 부한 화장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브랜드 네임에 불과했던 참존을 회사명으로 채택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난 95년부터 우리 제품에 ‘써 본 사람은 다 좋다고 하고 나도 써보고 그렇게 느끼며 자신 있게 남에게 권하는 세계 제일의 명품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문안을 박은 ‘명품보증서’를 넣고 있다. 그것은 영국의 ‘버버리’가 코트의 대명사로 불리듯 ‘참존’을 화장품의 대명사로 만들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고객과의 약속이다.
왜 기초화장품만 고집하는가? 다음으로 기초화장품 생산에만 주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기초 화장품만을 고집하는 것은 색조화장품이 갖고 있는 단점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색조화장품은 라이트 사이클이 너무 짧다. 유행이 워낙 빨리 바뀌는 탓에 신제품이 나와서 조금 팔리나 싶으면 이내 한물간 구닥다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것만이 아니다. 열이면 열 모두 선호하는 색깔이 달라서 다양한 제품을 두루 갖추지 않으면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그런 만큼 용기 제작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색조화장품은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 쓰는 제품이 까닭에 용기가 미려하지 않으면 잘 팔리지 않는다. 유행이 바뀔 때마다 용기를 새롭게, 그것도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일에는 제품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 못지않게 비용이 많이 든다. 그것은 곧 한마디로 말해, 물량 공세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색조화장품을 만들어 팔면 당장은 기초화장품 한 가지만 만들어 파는 것보다 매출이 늘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유행이 바뀔 때마다 쌓이는 재고를 덤핑으로 처리하다보면 실수익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결국 속빈 강정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기초화장품은 다르다. 오늘 못 팔면 내일이라도 팔면 된다. 기초화장품은 색조화장품과 달리 일단 한 번 인정을 받으면 꾸준히 팔려나가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계속해서 그 제품만 쓰는 경향이 있다. 창업 초기부터 기초 화장품만을 고집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옛 어른들 말씀이‘열 재주 가진 놈 저녁 땟거리 걱정한다.’고 했다. 이것저것 벌여놓기만 하다가는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만능 엔터테이너를 선망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만능 엔터테이너는 만년 엔터테이너일 뿐 대가가 되기는 어렵다. 나는 참존이 화장품 업계의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기보다는 화장품의 명가(名家)가 되기를 바란다. ‘남의 떡’을 곁눈질하지 않고 묵묵히 한 길을 가며 내실을 다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존의 생존 전략이자 성공 비결이다.
왜 한 제품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가?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참존의 히트 상품은 모두 이런 리뉴얼(renewal)과정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마사지크림=참존’이라는 공식을 낳기도 했던 ‘데이나이트 마사지크림’은 94년 마사지크림과 영양크림을 더한 콘트롤크림으로, 98년에는 콘트롤크림에 엣센스 성분가지 더한 뉴 콘트롤크림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88년에 나온 국내 최초의 수성 세안제인 ‘클렌징워터’도 피부 보습 효과와 진정 효과가 강화된 징코 클렌징워터와 좀더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징코 클렌징티슈로 거듭났다. 96년 영양크림과 에센스를 하나로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크림엣센스’ 역시 98년 피부 탄력 물질인 사이토카인 성분을 첨가한 크림엣센스 사이토케러로 리뉴얼되었다. 소비자의 요구는 참으로 다양하다. 때로 품질 개선을 요구하는가 하면, 때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포장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하나하나 충족시켜가는 것이 명품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소비자를 평생 고객으로 묶어두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만큼 상품의 생멸 주기도 무섭게 빨라졌다. 어제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상품이 내일이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그러나 그 중에는 세월을 거슬러가며 사랑받는 제품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런 장수의 비결이 더도 덜도 아닌 ‘품질이라는 기본을 충실히 지켜가는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비록 남들 눈에는 미욱한 청개구리 짓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 실력의 부자가 되어라 작년 초, 그러니까 1999년 2월에 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을 앞에 놓고 감히(?) 기업 경영론을 강의한 적이 있다. 전경련 국제경영원 주최로 열린 ‘99년 최고경영자 신년세미나’에 초청받아 ‘참존의 경영차별화 전략’을 주제로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피력하는 자리였다. 그때의 신문기사 한 토막을 잠깐 옮겨보면 이렇다. “연간 매출액이 4백억 원대에 불과한 중소기업 사장이 내로라하는 대기업 그룹 총수들에게 ‘실전경영학’ 강의를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중소기업 사장이 대기업 그룹 총수들에게 실전 경영에 관해 강의를 한다? 분명 화제가 될 만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화제가 되었을까? 스스로 판단해보건대, 그 이유는 바로 참존의 철저한 차별화와 고집스러운 전문화 전략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초 화장품만을 고집해온 전문화 전략은 ‘바늘에서 선박까지’ 경쟁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광풍을 맞고 맥없이 쓰러져간 대기업들에게 따끔한 충고가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문어발식 기업 경영, 남들이 하면 나도 따라한다는 식의 재계 관행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사실 화장품 업계에선 사세를 확장하게 되면 당연히 색조 제품이나 다른 품목을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거부하고 기초 화장품만을 고집하고 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어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기초 제품에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명품을 만들자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다른 집 아이가 조기유학을 떠난다고 해서, 아니면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해서 내 아이의 개성과 성격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너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진정 우리 아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가를 곰곰이 짚어보고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할 필요가 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모자를 쓴 99명의 사람들 중에 유독 흰 양복에 흰 모자를 쓰고 있어도 당당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자신감, 그 당당함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