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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희망의 열쇠는 어디에나 떨어져 있다 >> 도전의 부자가 되어라
"내 다리 물어내! 내 다리 물어내라구!” 인현동 스카라 극장 앞 골목에 ‘보건당’이라는 자그마한 약국을 열어놓고 피부병에 잘 듣는 외용약 개발에 골몰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한 사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약국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일주일쯤 전에 만성습진으로 10년째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시험삼아 발라보라며 내가 만든 외용약을 주어 보낸 사내였다. 사내는 한눈에 보기에도 다리를 심하게 절룩이고 있었다. 나는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외용약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었다. “당신이 준 연고 바르고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다리를 잘라야 된대. 그냥 놔두면 독이 온몸으로 퍼져서 죽을 수도 있대. 이게 다 그 연고 때문이야. 당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책임질 거냐구?” 사내는 아픈 다리를 판매대 위에 올려놓고 악다구니를 쳐댔다. “죄송하지만 제가 다리를 좀 볼 수 있을 까요?”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봐! 실컷 보라구!”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바지를 걷어 올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상처를 덮고 있는 거즈를 걷어냈다. 순간 내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리의 상처는 분명히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상처 밑에서 발갛게 새살이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안심하세요. 다리는 잘라내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여기 새살이 올라오는 거 보이죠? 그동안 곪고 곪았던 습진의 뿌리를 뽑아내느라 그렇게 아팠던 겁니다. 일주일만 참아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완치될 겁니다.” 사내를 설득해서 돌려보낸 뒤에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아내는 아내대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하지. 괜히 조제약인지 뭔지 만든다고 고생만 실컷 하고 이게 무슨 꼴이에요. 그 사람 일주일 후에도 안 나으면 어떻게 하죠?” 아내가 걱정스레 던진 말은 그대로 날선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남들 하는 대로 하라’고 충고를 해 왔지만 아내에게서 듣는 그 말은 또 달랐다. 아내는 내가 남과 다른 길을 선택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손가락질할 때 유일하게 나를 믿고 따라준 조력자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은 아내의 눈물 1966년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나는 제약회사 입사 시험에서 한차례 고배를 맛본 뒤 바로 약국개업을 결심했다. 그해 5월 인현동 스카라 극장 앞 골목에 있는 보건당 약국을 인수했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에 겁날 게 없었다. 약국만 개업하면 만사형통일 거라 굳게 믿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믿음은 개업 첫날부터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골목 초입에 약국이 두 군데나 있어서 사람들이 골목 안에 있는 우리약국까지 약을 사러 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외상으로 갖춰놓은 약에는 먼지만 뽀얗게 쌓여가고 빚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내 혼사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결혼을 시켜놓으면 안사람 보기 민망해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까’ 싶으셨던 모양이다. 당시 나는 사귀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어머니는 이미 하동군에서 제일가는 유지의 맏딸이었던 아내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내가 사귀고 있는 아가씨 애기를 꺼내자 펄쩍 뛰면서 반대를 하셨다. “뭐라구?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아가씨라 했나? 거기다가 막내라고? 그런 아가씨가 우리 집 맏며느리 노릇을 잘도 하겠다. 맏며느리 노릇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어림없다.” “그래도 결혼은 지 좋은 사람하고 해야 되는 거 아입니까? 지는 그 아가씨 아니믄 결혼 안 할랍니다.” “광석이 니 참말로 세월 좋대이. 니가 지금 연애나 걸고 다닐 때가? 솔직히 니 가치를 지금 그만큼 올려놓은 게 누꼬? 내가 니 초등학교만 보내고 말았으면 니는 기껏해야 면서기 아니면 농사꾼이나 하고 살았을 끼다. 그랬으면 니가 언감생심 하동 최고유지 맏딸을 대보기나 했겠나? 지금 니한테는 그 집 딸도 과분하다.” “솔직히 제가 지금까지 제 마음대로 한 게 뭐가 있습니까? 결혼만이라도 제 마음대로 하게 해주이소.” 나름대로 항변을 해 보았지만 어머니에겐 씨도 안 먹힐 소리였다. “머리가 다 빠지도록 동이동이 술 이어다가 대학 보내고 약국까지 차려줬더니 하는 소리 좀 보소. 니가 이때 까지 니 마음대로 안 한건 또 뭐가 있노? 니가 정 그 아가씨하고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대신 니하고 내하고 부모자식 인연 끊자.” 사실 어머니는 우리 7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 치고 그렇지 않은 분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 중에서도 우리 어머니는 더 유달리 억척스러우셨다. 내가 여섯 살 나던 해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직후에 귀국한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억척이 없었다면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아버지가 수년간 큐슈 지방의 탄광에서 일해 모은 돈이 해방과 더불어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돌아와 아버지의 고향인 하동에 정착한 우리 가족은 궁여지책으로 담배장사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내가 담배를 말아놓으면 어머니가 돌 박이 동생을 업고 장에 나가 팔아오셨다. 때로 내가 담배목판을 메고 나가 지원사격을 했지만 장사는 주로 어머니 몫이었다. 그 후 주류 소매상을 시작해 도매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집이 하동군에서 행세깨나 하고 살게 된 데에는 누구보다 어머니의 공이 컸다. 그런 어머니가 의절까지 들먹이며 반대를 하고 나서는 데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떠밀리다시피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가 쪽 친척집에 갔던 아내가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저녁때가 돼도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았다. 슬그머니 방안을 들여다봤더니 아내는 좁은 방 안에 모로 누워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잘사는 친척들을 만나고 돌아오니 우리 사는 꼴이 더욱 한심한 모양 이었다. 신랑이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유능한 약사라고 해서 시집을 왔더니 약국은 날마다 파리만 날리고 있지, 제약회사에서는 하루걸러 한 번씩 들이닥쳐 약값 독촉을 하지, 신혼 방은 대낮에도 햇볕 한 점 안 드는 두더지 굴이지, 반 평 남짓한 부엌은 재래식 화장실과 붙어있어 비만 오면 오물이 부엌으로 넘어 들어오지,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아내에게 지옥이나 다름없는 생활일 터였다. 가늘게 떨리는 아내의 등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체 내가 뭐길래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와서 이 고생을 시키나’ 하는 자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날 나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간은 두 눈 위로 고생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일곱 살 나던 해부터 목판을 메고 장마당을 돌아다니며 담배를 팔던 일,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새벽에 한 지게, 방과 후에 한 지게씩 땔감으로 쓸 나무껍질을 볏겨 와야 했던 일, 친척집에 식량을 빌러 갔다가 밥 한 끼 못 얻어먹고 빈손으로 동아오던 길에 너무 배가 고파 무 장다리를 꺾어먹고 위경련을 일으켜 기절했던 일, 월사금을 못 내서 수업도 못 받고 쫓겨 왔던 일. 그때마다 반드시 송고하고 말겠다고 이를 앙다물던 나였다. 그런데 내가 조금 살 만 해졌다고 어느새 마음이 해이해졌구나 싶었다. 순간 가슴속에서 경기 같은 게 치밀어 올랐다. ‘그래, 남은 내 인생 30년을 걸자. 환갑이 되는 그해까지 남들 앞에 떳떳이 내보일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 이룩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3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30년인데 뭔들 못 하겠는가.'
컴컴한 우물 속에서도 푸른 하늘을 보아라 그때부터 자나 깨나 약국을 살려낼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뭐가 좋을까? 나만의 특별한 뭔가를 만들어낼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약국이 살 길은 다른 약국에는 없는 특별한 조제약을 만들어 파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조제약을 만들어 파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조제약을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고민하던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맞아, 그거야! 피부병을 고치는 조제약!’ 그 무렵 우리나라엔 1964년 동경 올림픽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옮아왔다고 해서 왜옴이라고 불리던 피부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왜 옴은 전염 속도가 무척 빠를 뿐만 아니라 한 번 옮으면 좀처럼 낫지 않는 고질병이었다. 나도 왜옴이 옮아 약국에서 팔던 연고를 이것저것 발라보았지만 살만 짓무르고 효험은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씩 발라보고 구석에 던져두었던 연고를 모두 섞었다. 그리고 내 피부에 직접 발랐는데, 뜻밖에도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혼합한 연고에 사루친산가루며 유황가루 따위를 더 보태 발라보았다. 그러자 좋다는 연고를 다 발라보아도 차도가 없던 왜옴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경험을 살려 피부병에 잘 듣는 외용약 개발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왜옴을 앓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렇다할 피부병 치료제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효과가 탁월한 외용약을 개발해 내놓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외용약은 내복약에 비해 위험부담이 적다는 것도 나의 결심을 부추기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속된 말로 약을 잘못 발라서 사람이 죽는 일은 없다. 설사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내복약보다는 덜 위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또 내복약은 환자의 입을 통해서만 효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외용약은 직접 눈으로 효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런 가시적인 효과가 약국 선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담겨 있었다. 나는 당장 피부과 전문서적들을 펼쳐놓고 연구에 들어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피부 연고를 조제하려고 들자 필요한 약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피부과 전문서적에서 뽑아낸 원료 약품만 해도 무려 50여 종이 넘었다. 우선 필요한 약품들을 하나하나 갖춰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 조제약 원료 전문 수입업체로 유명했던 정원약품을 찾았다. 그런데 내 손에 들어온 약품은 고작 5가지. “도대체 뭘 만드시려고 이렇게 많은 약품들을 구하세요? 하지만 이걸 어떡하죠. 저희 집엔 이것밖에 없는데요. 아마 모르긴 해도 저희 집에서 구하지 못하면 다른 데서도 구하시기 어려울 겁니다.” 꿈이 너무 컸던 탓일까, 너무나 허탈했다. 도저히 이것만 가지고는 어떻게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다시 꿈을 접어야 하나? 마음 한편 그렇게 절망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희망 같은 게 보였다. ‘우리나라 약사들이 그 5가지 약품만 갖고 모든 피부병 치료제를 조제해왔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승산이 있는 일이다. 많은 데서 최고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없는 데서 최고를 만들어내는 게 훨씬 쉬우니까. 최초이자 최고를 만들어낸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더 많은 원료 약품을 사용해 더 좋은 치료제를 만든다면 성공은 따놓은 당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 그것이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나는 그 길로 을지로 2가에 있는 화공약품 시약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그곳에는 내가 찾던 원료 약품이 30가지쯤 갖춰져 있었다. 나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25가지 정도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내복약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외용약은 화공약품점에서 구한 원료를 사용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아내를 조수삼아 외용약 개발에 몰두했다. 실험을 하느라 밤을 꼬박 지새우는 날도 많았다. 당시 이웃에서 제법 큰 약국을 하던 대학 동창은 그런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쯧쯧, 내외간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너는 약에 대해서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연구를 한다고 이 야단이냐? 유별나게 굴지 말고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해.”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산을 오르는 사람과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사람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나는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로 작정한 사람이었다. 정상에 올라서기 위해서라면 당장의 고생쯤은 참아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내 역시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내 일을 거들어주었다. 그제야 나는 아내를 선택한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외용약이 완성되자마자 약국 창문에 ‘피부병에 잘 듣는 조제약 있습니다.’ 라고 적은 광고판을 내걸었다. 광고판을 보고 문의를 해오는 손님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만든 외용약을 발라보게 했다. 물론 돈은 받지 않았다. 공짜였다. 참존의 샘플 전략은 그때 시작되었던 것이다. “내 다리 물어내”라며 찾아왔던 사내도 그런 손님 가운데 하나였다.
남산을 오르는 사람과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사람은 사내가 다녀간 뒤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르내려야 했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느냐 마느냐는 모두 그 사내에게 달려 있었다. 평생처럼 길었던 일주일이 지나고 사내에게 약속했던 날이 왔다. 나는 멀쩡히 약국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내를 보는 순간,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내는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친구까지 대동하고 나타났다. “선생님, 지난주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옳았어요. 다리가 썩어 들어가기는커녕 10년 동안 달고 다니던 만성 습진이 씻은 듯이 나았지 뭡니까. 선생님이야말로 진짜 명의십니다. 이 친구도 피부병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좀 봐주세요.” 거칠게 내뱉던‘당신’이란 말 대신 깍듯하게 예의 갖춘‘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으면서 나는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 일로 자신감을 얻은 후 외용약 샘플을 만들어 나눠주면서 적극적으로 약국을 알려나갔다. ‘보건당’이라는 약국 간판도 ‘피부를 보호한다.’는 뜻의 ‘피보약국’으로 바꿔 달았다. 외용약으로 인정을 받은 나는 곧이어 내복약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열 번 아니면 스무 번, 그것도 아니면 백 번씩… 최고 450번까지 처방전을 이리저리 고쳐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만든 내복약은 외용약 못지않은 효능을 보여주었다. 조제약에 들어가는 원료 약품만 해도 25가지에서 무려 150여 가지로 늘어났다. 점차 피부병 전문 약국다운 면모를 갖춰나갔다. 그 사이 피보약국은 피부에 관한 한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약국으로 입소문이 퍼져나갔고, 그러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나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남들 하는 대로 하라’던 주변 사람들의 충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모택동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불렀다. 바보를 보고 ‘저런 바보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했다면 그 바보가 바로 반면교사인 셈이다 나의 반면교사는 다수가 선택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피보약국 때도, 참존 때도 나는 언제나 남과 다른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가장 큰 힘이었다.
도전의 부자가 되어라 우리에게 손기정과 황영조 같은 마라토너가 있다면 에티오피아에는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가 있다. 비킬라 아베베는 역대 마라톤 선수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영웅성은 단순히 그가 두 번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냈다는 데 있지 않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그는 맨발로 역주, 2시간 15분 16초의 기록으로 당당히 우승의 월계관을 머리에 썼다. 그로부터 4년 뒤 아베베는 다시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 나타났다. 이번엔 맨발이 아닌 운동화를 신고 뛰었는데 2시간 12분대로 테이프를 끊으면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마라톤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도 불행의 그림자를 빗겨갈 수는 없었다. 69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그만 척추장애를 입고 말았던 것이다. 아베베는 마라토너의 생명인 두 다리를 잃고 나서도 결코 희망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두 다리를 잃었지만 아직도 내겐 건강한 두 팔이 있다.” 불의의 교통사고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장애를 딛고 부지런히 두 팔의 힘을 단련시켰고, 마침내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자올림픽 썰매 경주에 또다시 도전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그것은 마라톤 2연패의 위업보다 훨씬 더 고귀한 인간 승리의 위업이었다. 밤이 가면 새벽이 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성공과 실패가 오고가는 것 또한 인생의 순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은 그 밤을 견디지 못하고 미리부터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그 밤을 통해 배운 것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다리를 잃었을 때 두 팔이 건강함을 기쁘게 생각했던 아베베. 그는 분명 어두운 밤뒤에 숨어 있는 눈부신 태양빛을 볼 줄 알았던 사람이다. 빛을 예감할 수 있었기에 그 어떤 순간에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빛을 예감할 줄 아는 지혜, 나 또한 항상 그것을 배우고 싶었다. <다음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