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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끈덕진 집념 끝에 기념탑은 우뚝 서고
東學은 137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1세 교조가 水雲大神師 崔濟愚요, 제2세 교조가 海月神師 崔時亨, 제3세 교조가 義菴聖師 孫秉熙, 제 4세 교조가 春菴上師 朴寅浩先生이시다. 東學이 天道敎로 된 것은 포덕 46(1905)년 12월 1일에 제3세 교조이신 의암성사 손병희 선생께서 개명하셨고, 이날을 동덕님들은 ‘顯道 기념일’ 또는 ‘布德의 날’로 부고들 있다.
종교라고 하면 대개 죽은 후의 문제를 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천도교는 來世보다 現實을 위주로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근본에 있어서 내세와 현실은 하나이다. 다만 형식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사께서는 [무궁한 이울속에 무궁한 나]라고 하시어 長生의 원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천도교 신앙의 목적으로는 輔國安民, 布德天下, 廣濟蒼生, 地上天國건설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울사람이 되어 한울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다리던 위령탑 제막식이 거행되는 순간이다. 포덕 136년(1995년) 3월 21일 화요일 12시 경남 하동군 옥종면 신촌 뒤 고성산(일명 톡골)에서는 동학 혁명군 위령탑 제막식이 거행되었고, 금년 11월 11일 11시에는 102주년 위령제가 거행되었다.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 사업회가 주최하고 천도교 중앙총부가 주관한 이 행사는 동학혁명의 일환으로 왜군에 대항해 일어나 순도한 동학혁명군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이루어 진 것이다. 전국에서 300만이 동원되어 30만이 천추의 한을 남겼는데 그 중 185명이 고성산 전투에서 산화하셨다. 이고성산 전투는 민족 자주 자립과 반봉건, 그리고 반외세의 투철한 정신을 순국으로 지켜낸 이들 동학군의 정신적 승리의 전투이다. 뒤늦은 감이 있으나 21년전 옥종중학교 재직시 곽창석 교사(현 천도교 진주시 교구장)에 의해 발굴(1974. 5. 10)되어 끈덕진 노력 끝에 전국에서 뜻있는 유지 및 천도교인 1,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한편, 이 고성산은 1994. 7. 4. ‘도 지정 기념물 제142호’로 지정된 후 기단 18평에 탑 높이가 15m의 화강석 석조물로 동학혁명 당시 들었던 횃불을 형상화 시켰으며, 소요경비는 약 6억 원이 들었다.
본 행사에는 천도교 중앙총부 교화관장 단암 홍장화씨가 ‘집례’를, 삼천포 여성회장 윤상선씨가 ‘청수 봉전’을, 경상도 연원회 운영위원장 하암 김덕칠 도정이 ‘동학혁명군 12개조폐정 개혁안 낭독’을 부산 예술대학 관악부와 천도교 여성합창단 50명여명이 ‘천덕송 합창’을, ‘경과 보고’에는 고성산 위령탑 건립 추진 위원장이요 천도교 진주시 교구장 석암 곽창석씨가, ‘건립문 낭독’에는 사천교구장 준암 김은수씨가, ‘탑문 낭독’에는 요담정 수도원장 고정훈 종법사님이, ‘추념사’는 천도교 교령 김재중씨가, 헌가에는 하동군수와 경남 도위원 권호제씨, 만세삼창에는 중앙총부 태암 김현국 종법사님이 맡으셨다.
한편 표창 및 공로패 수상에는, 고성산 동학혁명군 위령탑 건립추진위원장이요 현 천도교 진주시 교구장 석암 곽창석씨가 천도교 중앙총부 교령의 표창패와 경상도 연원회 운영위원장의 감사패를, 교령님의 감사패 수상자로 진주시청 징수과장 민영봉, 하동군청 기획실 제해조,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신촌 정원주, 서울 서일 석재대표 이해천, 진주 경상건설 대표 천진수씨가 수상하였다. 다음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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