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사상 사이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던 무렵, 한 친목모임에서 동상철거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누군가가 맥아더는 우리 한국을 궁지에서 건져준 은인인데, 난데없이 남북통일을 방해하고 민족의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으니, 이는 그들을 가르친 교직자들에게 책임이 있고, 또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도 국민 정서를 올바로 순화시켜 주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비꼬았다.

  '도둑이 제 발자국 소리에 놀란다'고 나는 교직 출신이면서 문학인 대열에도 끼여있으니,  추궁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동상 철거 주장의 동기를 유발했던 K교수가 부산 B고교 출신이라, 내가 그 학교에 재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나를 겨냥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난날의 우리 교육이 인성교육면에서 비판받아야 할 일이 없었던가와 문학의 면에서 국민의 정서순화에 얼마나 기여를 하였던가를 되돌아 볼 때, 누구도 자신 있는 대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6·25 한국전쟁은 분명 북한 공산군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남침전쟁이었다. 여기에 한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이 참전하였으며, 맥아더는 이의 선봉장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한국을 위기에서 구출 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맥아더를 은인으로 여겨 고마움의 뜻을 담아 기념동상을 세웠던 것이니 당연한 도리였다. 그런데 K교수가 갑자기 맥아더는 우리의 원수라 주장하고 나섰으니 그는 우리와는 다른 경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이 교직자의 할 일이요, 올바른 정서를 심어주는 것이 문학인의 할 일이다. 앞서의 모임에서 교직자들에게 책임이 있고, 문학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비록 농담조로 뱉은 말이지만, 교직자와 문학인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그 책임을 공감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옛날부터 전쟁을 할 적에는 공격 사유를 담은 선전포고를 하고 시작했다. 그래서 포고문의 명분이 있으면 정당성이 인정되고, 그러지 못하면 침략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6·25전쟁은 북한이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으로 시작하였으니 비겁한 처사였다. 유엔 16개국이 군사를 파견한 것도 한국이 불의에 짓밟히는 것을 보고 의분심을 공감한 데서 나온 결과였다. 여기에 선두 주자였던 맥아더는 우리의 은인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사람이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죽어가는 이를 보고 측은해 하며, 옳은 일에 앞장서는 이에게 박수보내고, 자기를 도와주는 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정상적인 정서를 지닌 사람이다. 학교 교육의 주목적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데 있고, 문학의 주목적은 올바른 정서를 심어주는 데 있다. 어찌하여 그들은 맥아더는 우리의 원수라는 말을 안색도 안변하고 하는 것일까. 그들도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측은하다는 생각을 할까가 궁금해진다. 정서는 감정이요, 사상은 생각이나 견해인데, 이둘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정서는 감성 쪽이고, 사상은 지성쪽이다.  사상이 다른 사람끼리 싸울 때면, 사생결단을 내려고 드니, 지성과 감성이 무관하다 할 수 없고, 따라서 정서와 사상의 사이도 칼로 자르듯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아닌가 생각된다.  (200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