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와 클로버
만약 잔디와 클로버에게 사움을 붙여 놓으면 누가 이길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맞힐 수 잇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전의 결과를 보지 않고는 정확한 답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잔디와 클로버는 옆으로 뻗어 가면서 번식하는 식물이라는 면에서 고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생김새나 성질면에서는 판이하다.
잔디는 줄기가 땅바닥에 붙어 옆으로 길게 뻔고, 마디마다 뿌리가 내려 재생력이 강하다. 지펴를 빽빽하게 덮기 때문에 조경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데, 금잔다 같은 우리나라 재래종을 비롯, 수입종도 들어와 그 품종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옛부터 우리 나라에는 무덤을 잔디로 덮어 만들었기에 '잔디찰방(察訪)'이란 말이 있어 왔는데, 이는 '무덤의 잔디를 보살피고 보살피고 지키는 이'란 뜻으로, 죽어서 땅에 묻힘을 농담으로 이르는 말이다.
클로버는 원산지가 유럽인 들풀로, 세 잎이 긴 잎자루에 호생하며, 여름에 나비 모양의 작은 흰꽃이 핀다. 일찍이 화란(네델란드)에서 들어 왔던지, '화란자운영'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토끼가 잘 먹는다고 '토끼풀'이라고 한다. 한편 클로버는 일찍이 중국에서도 건너와 자운영(紫雲英)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이를 '녹비(綠肥) 작물'이라 하여 논밭에 심었다가 자란 뒤에 갈아엎어 비료로 쓰며, 꽃에서 꿀을 얻기에 '자운영 꿀'이 있기도 하다. 내가 어릴 적 자운영을 논에 씨뿌려 두었다가 한창 잎이 무성해지는 4, 5월에 홍자색 꽃이 피면 갈아엎어서 모심기를 하는 것을 보았으며, 양봉가들이 자운영 꽃을 보고 벌통을 배치하는 수도 있음을 보아왔다.
이처럼 잔디는 무덤이나 화단등에 종경용으로 쓰이고, 클로버는 농업용으로 녹비, 또는 벌꿀을 따는 데 이용하는 풀이어서 관계가 먼 풀이었다. 그런데 이 두 풀이 언제부터인가 바람이란 중매쟁이로 인해 잔디밭에서 만나 서로가 영토 점령을 위한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잔디가 클로버 밭에 가서 싸움을 거는 일은 없고,클로버가 잔디밭에 침입해 결투를 청하는 것이다.
잔디와 클로버는 얼핏 그 생김새만 보아서는 거세게 생긴 장디가 보들보들하게 생긴 클로버에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하는법, 호랑이는 담비보다 몸집이 몇 배나 크지만 담비에게 잡아 먹히기에 '호랑이 잡아먹는 담비가 있다'는 속담이 생긴 것이다. 잔디와 클로버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하여는 실제로 잔디밭을 가꾸어 본 사람이라야 정답을 얻을 수 있다. 나도 잔디밭을 조성해 보고서 비로소 잔디가 클로버 앞에서 맥을 못춘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 하였다.
잘 조성된 잔디밭에 어쩌다가 그 연약하게 생긴 클로버의 씨앗이 바람의 힘을 빌어 잔디밭에 앉아 흙을 만나기만 하면, 싹이 트고 부리가 내려 줄기가 잔디 사이를 비집고 뻗어 나가는데, 클로버의 줄기가 지나가는 데는 어찌된 셈인지, 잔디는 맥을 못추고 황달병에 걸려 시들어 버리는 것이니, 내가 제법 오랫동안 유심히 관찰을 해 보았으나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독사가 그 먹이사슬인 동물을 잡아먹을 적에, 미리 독소를 뿜어냄으로써 꼼짝 못하게 해놓고, 슬슬 잡아먹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니와, 클로버에게는 잔디가 무슨 먹이사슬이라도 되는 것인지?
잔디는 억세게 생겼고, 클로버는 보드랍게 생겼다. 억세게 생긴 것은 힘이 있어보이고, 보드랍게 생긴 것은 연약하여 힘이 없어 보이기에 우리는 억센 것은 언제나 연약한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곰곰이 떠져보면 꼭 그헣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억세게 생겨 힘이 강해보인다. 그러나 매사에 있어 남자가 여자에게 꼭 이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생존 수명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 남자는 평균수명이 75세인데, 여자는 80세 이상이라 하니 여자의 슬이 아닌가? 더욱이 요즘엔 남자가 큰소리치던 시대는 가고, 여성 상위시대가 도래하매 아내에게 맞고 사는 남편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기에 일찍이 "남자는 여자를 지배한다. 그러나 여자는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어 오지 않았던가?
다음으로, 우리 몸에서 입안의 치아와 혓바닥을 비교해보자. 딱딱하고 강한 뼈로써 형성된 치아는 나이 들면 그 뿌리부터 무너져서, 하나 둘씩 빠져 달아나고 마는데, 연하고 보들보들하게 생긴 혓바닥은 주인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건재하면서 음식물 운반과 맛보기 등의 일을 차질없이 감당해 내지 않는가? 그러니 여기서도 보드라운 형가 딱딱한 이빨을 이겼다고 하지 않겠는가? 어느 익살쟁이 친구의 농담 한마디가 생각난다. '고집 센 마누라 고분고분 길들이는 데는 억센 주억으로 때려잡으려 해서는 안 되고, 몸뚱이 중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으로 어루만져 주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고.
독재주의와 민주주의의 경우도 비교가 된다. 독재정권은 강력한 수단으로 국ㅁ빈을 호령함으로써 우선엔 일사불란하게 통솔을 잘 한다. 반면에 민주정권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노라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당장 눈에 보이는 결속력을 보이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힘이 결집되기만 하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제2차 세계대전때 군국 독재주의 일본이 처음엔 파죽지세로 나와 민주국가 미국을 격파하는 듯하였으나, 미국이 온 국민의 힘을 모아 변격을 하니 일본이 결국 항복을 하고 말지 않았던가?
나는 요즘, 지은 지 3년째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 화단의 잔디와 클로버가 벌이는 기세싸움을 실감나게 관전을 하고 있다. 외모로는 클로버가 잔디에게 맥도 못 추고 물러설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 반대의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을 보고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이라도 한 듯하여 클로버에게 박수라도 보네고 싶어진다.
그러나 클로버여! 나는 지금 그대에게 '참 장하다'는 칭찬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나, 친찬은커녕 오히려 아침마다 잔디밭 속의 그대를 찾아내어 낱낱이 뽐아 버리는 일을 하고 다녀야 하니, 정말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이 든다네. 나는 현재 이 아파트의 주민으로서 화단의 잔디밭을 가구어 나가야 할 입장이기에, 이를 방해하는 그대를 제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시멎을 이해하고, 잔디 밭 아닌 다른 곳으로 집단촌을 이루어 나가주기를 바랄 수 밖에.
나는 잔디와 클로버를 다 좋아한다. 그래서 잔디와 클로버가 언제까지나 동거할 수 없는 숙연을 가겼다는 것이 아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