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길

  청년은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노년은 뒤를 돌아보며 산다고 한다. 나의 산행 이력서를 뒤져보면 어언 40년이 된다. 30대 중반 아침등산을 시발로, 그 후 1일 산악회에 동참을 거쳐 정식으로 D산악회에 가입하여 그간 나잇값으로 본의 아닌 산악회회장 감투도 써보았다.

  산행의 과정은 등산길과 하산길로 편성된다. 알핏 생각하기엔 등산길은 힘이 들지만, 하산길은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산쟁이일수록 하산길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로 산행 사고는 등산길보다는 하산길에서 많이 나고 있다. 등산길은 한 걸음씩 착실히 발을 옮겨 디디기만 하면 되지만, 하산길은 내리막 경사길이에 특히 미끄러짐과 헛디딤을 조심하지 않으면 뜻밖의 봉변을 당한다.

  등산 애호가 K씨는 하산길에 눈 덮인 소나무가지를 헛디뎌 허방에 빠져 실족사하였고, 또한 B씨는 하산길 길바닥에 뻗은 물 묻은 매끈한 마무뿌리에 미끄러져 넘어짐으로써 목뼈가 부러지고 병원신세를 지다가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산행에서 정상을 밟는 순간의 보람을 위해 발걸음을 포개 올리는 것은, 마치 모든 직업인이 자신의 소망을 위해 온갖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같다고 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 인생 하산길을 걷고 있다.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라고 '고희'를 마치 큰 벼슬처럼 예찬하였지만, 오늘날은 평균수명이 팔십을 육박하고 있으니, 두보는 지금 지하에서 자신의 시를 수정하기에 바쁠 것이다.

 무슨 일에서나 끝맺음이 중요하듯, 하산길이 등산길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과정임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하산길은 등산을 마친 순간이 아니라, 정상 답파의 기쁨을 안고 산행의 진미를 차 마시듯이 천천히 음미하는 마무리 시간이다.  나의 인생 하산길의 당면과제는 여생을 겸손하게, 덤비지 말고, 쾌식, 쾌변, 쾌면하는 건강 제일주의로 살아 마지막 인생 하직할 때, 남의 신세를 덜지고 갈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200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