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회

   어느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 오는 동안에 특별히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 는 질문을 받았다.

   후회!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랴. 우선 자랄 적엔 소견머리기 부족하여 부모에게 불경스런 언행과 행동으로 속을 썩여 드렸던일, 동생을 잘 돌보지 않아 뜻밖의 사고를 당했던 일, 학교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시험에 낙방하거나 취직이 되지 않아 부모에게 걱정 끼쳤던 일들이 후회가 될 수 있다.

  결혼 후에는 부부 간에 너무 만만하다고 함부로 대해 상대를 괴롭게 했거나 격한 감정싸움으로 이혼 직적까지 몰아갔던 일, 그밖에 자식들에게도 홧김에 지나친 처벌을 하거나 모욕적인 꾸지람람을 함으로써 아이를 반항하게 하였던 일 등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이다.

   인생을 팔순을 살았으니 후회되는 일이 하두 가지랴. 그 중 한가지만을 말하라고 하니 어버지의 건강 관리를 잘못해드려 일찍 비명에 가시게 한 불효가 평생의 한이 된 사실을 들 수 있겠다. 
   선친 께서 어느 날 "애야, 내가 왠지 눈이 좀 침침하다."고 하셔서 서면의 K안과에 모시고 갔다. 진찰을 마친 원장은 "어르신의 눈은 안과에 올 병이 아니고, 혈압이 높아 그런 것이니 내과로 가셔요"한다.  B내과로 모시고 갔더니, 역시 고혈압임을 진단, 혈압 강하제를 받아 계속 복용하였다. 약 6개월을 복용하고 나니 정상 혈압으로 수치가 내려가게 되었으므로 안심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완치가 된 줄 속단하고, 그 후 일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으니, 이 무관심이 평생 후회의 씨앗이 될 줄이야.

   그로부터 2년 반 후, 아버지가 72세 되시던 해 12월 29일 1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나오는데, 사환아이가 "이 선생님, 집에서 전화를 해 달라고 합디다." 하는 것이었다. 즉시 전화를 내니, 아버님이 위독하시니 빨리 오시라고 하였다. 택시를 독려하여 30분 후에 대문을 들어서는데, 왕진 왔던 의사가 현관에서 나오면서 "아이구 안 되었습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급히 방에 들어가 보니. 아버지께서는 이미 말문을 닫으신 후였다.  너무나 뜻밖인지라, 기가막혀 처음엔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안긴 듯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아내로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내가 출근한 후 아버지께서 화장실에 다녀오시더니,  "애야, 내가 좀 어지럽다."하시기에 큰방에 눕게 하시고, 즉시 동네 단골의원에게 전화로 왕진을 요청하였다. 약 1시간 후 에 도착한 의사의 진찰 결과는 "혈압이 높았던 모양이던가, 심장마비로 가셨습니다." 라는 진단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결국 고혈압으로 가신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혈압 관리를 자식인 내가 잘못하였으니, 내가 아버지를 비명에 가시게 한 셈이다. 이 생각은 그 후 두고두고 죄책감으로 변하여 갔다. 후회막급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가 어찌 그다지도 의학 상식이 부족하였던가. 고혈압 증세는 평생 동안 신경을 써야 하는 병 증세이거늘 그리도 몰랐던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수인의 심정이다. '그때 만약 내가 혈압관리를 잘해 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운 후회의 정은 아무래도 내가 염라대왕에게 불려가는 그날까지 않고 가야 할 짐일 것 같기만 하다. (200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