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아 잘 있거라
요즘 항간에 '5등아 잘 있거라, 6등은 간다'는 유행어가 나돌고 있다. 사연인즉, 칠순 노인이 성울 사는 나들에 집에 가서 한 주일쯤 쉬고 오게 되었단다. 아들, 며느리, 손자 등 한 가족이 모처럼 함께 모여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그런데, 그간에 집안 돌아가는 상황을 관망해 보니, 너무도 자기 생각에 어긋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며느리가 자식 교육을 비롯한 가정 관리를 하고 있는 태도와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노인에게는 손자)을 소중히 여기고 키우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것이 너무지나쳐 과일보호가 심하였다. 뿐만 아니었다. 애완견을 키우고 있는데 개에 대한 애정 쏟음이 이반저만이 아니었다. 또 파출부의 비위 맞추는 데에도 예사로움을 넘어서고 있었다. 거기에 비하여 며느리가 시아버지인 자기를 대해 주는데 따른 정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서운한 생각이 자꾸만 솟아났다. 시아버지를 대하는 형태가 형식적이고 마지못해 대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아버지는 며칠을 지내면서 서운한 생각이 극에 달하여 온갖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며느리가 정 주는 순서를 자기 나름대로 매겨 보았더니, 1등은 아이, 2등은 자기자신(며느리), 3등은 애완견, 4등은 파출부, 5등은 남편, 6등은 시아버지의 순서가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시아버지 자신이 생각할 때에는 '내가 그래도 이 집안에서느 가장 어른인데...' 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며느리의 거동을 보니, 시아버지 자신의 순위가 애완견보다도, 또 파출부보다도 더 뒷전으로 밀려난 존재로 인식되었으니 그 섭섭한 정도가 오죽하였겠는가? 시아버지는 허탈감을 이기지 못해 결국엔 실망을 안고 '5등아 잘있거라, 6등은 간다'라는 쪽지 편지를 아들에게 남기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요즘의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빗대어 만들어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전혀 어뚱하고 터무늬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요즘의 시화에서 자식에 대한 과이보호가 날로 심해지는 반면, 부모에 대한 공경 정도는 하루하루 줄어지고 있는 현실을 자주 접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회가 핵가족화 되면서 '내 새끼', '내 남편(또는 내아내)'만 소중히 알고, 자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부모는 뒷전으로 밀쳐내 버리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으니 동방예의지국의 효정신은 어디에서 찾아야 될 것인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효사상은 분명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이며 미덕이 아니었던가? 효를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 하여 모든 덕행의 근본으로 여겼었다. 일찍이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가족 제도와 효정신의 실천국인 코리아가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고 예언한 바 있다. 또 20세기 최고의 석학 토인비도 "한국에서 장차 인류 문명에 크게 기여할 것의 하나는 효사상이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효사상을 세계적 자랑거리라고 극찬을 하였다.
이처럼 외국인들 조차 부러워하고 있는 우리의 효정신을 정작 효의 역사적 종주국인 우리나라 국민이 헌신짝 버리듯 하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 지난날의 우리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급급한 나머지, 효사상과 같은 전통정신 기르기에는 눈돌릴 겨를이 없었다. 예절이나 인성 따위는 어찌되었든, 좋은 대학에만 붙어 주면, 효자인 것처럼 애거복걸 하다시피 하고, '오냐오냐식 교육'을 자행함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은영중에 '나만 좋으면 되고, 내가 제일이다'는 자기중심적 인간으로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으니, 자업자득의 업보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결과로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우리나라가 2001년 유니세프의 조사에서, 아태지역 17개 나라중 '어른 존경심 꼴지'라는 불명예스러운 훈장(?)을 달게 되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낯 뜨거운 일인가?
어쩌다가 이나라가 이골로 전락되고 말았단 말인가? 급격한 사회상의 변천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앞서의 한 늙은이의 쪽지편지로부터 발상, 전파된 '5등아 잘 있거라, 6등은 간다'라는 유행어는 따지고 보면 어느날 갑자기 생긴 은어가 아니고, 그 뿌리가 먼제 있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이 유행어에서 입시위주 교육에 눈이 멀어 인성교육을 보지 못하는 오늘날의 우리 교귝에 경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이 경종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면, 훗날에 돌이킬 수 없는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란 예감이 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