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와 클로버

  잔디와 클로버에게 싸움을 붙여 놓으면 누가 이길까?
  요즘 나는 우리 L아파트 화단 잔디밭에서 잔다와 클로버가 벌이는 기세싸움을 유심히 관전하고 있다. 외모상으로 클로버가 잔디에게 아침 해장거리도 못될 것 같은데, 실제는 그 반대 현상을 빚고 있으니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한 듯하다.

  잔디는 줄기가 땅바닥에 붙어 옆으로 길게 뻔고, 마디마다 뿌리가 내려 조경용으로 쓰인다. 클로버는 세 잎이 긴 잎자루에 호생하며, 부드러워 토끼의 먹이로 쓰이기에 '토끼풀'이라고도 하고 흰꽃이 피어 화사한 느낌을 준다.

   두 풀은 바람이란 중매쟁이로 잔디밭에서 만나기만 하면 서로 영토 전쟁을 벌인다. 얼핏 그 생김새만 보아서는 거센 잔디가 보들보들한 클로버에게 이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 잔디밭을 가꾸어보면 잔디가 클로버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맥을 못추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잘 조성된 잔디밭에 클로버 씨앗이 바람에 날아와 흙에 발을 붙이기만 하면 싹이트고 줄기가 뻗어 나가는데, 클로버의 줄기가 지나가는 데는 마치 황달병 걸린 사람처럼 노랗게 시들어 버리니 호랑이 잡아먹는 담비 격이다.

  우리는 억세게 생긴 것은 언제나 부드럽게 생긴 것을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곰곰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억세게 생겨 강해 보이나, 남자가 꼭 이기는 게 아니지 않은가. 우선생존 수명에 있어서 여자는 80세를 넘는데 남자는 75세이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자가 남녀 합해 961명인데 89.2퍼선가 여자란다.  최고령자도 여자는 111세가 2명인데 남자는 107세가 1명 있을 뿐이다. 더욱이 요즘은 '고개 숙인 남자'란 말이 생길 정도로 여성 상위 시대가 되고 있다.

  또 우리 몸의 치아와 혓바닥을 비교해보라. 딱딱한 뼈로써 형성된 치아는 나이 들면 그 뿌리부터 무너져버리지만, 보들보들한 혓바닥은 주인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건재하여 음식 운반, 맛보기 등 비위를 잘 맞추는 역할을 완수한다.

  독재주의와 민주주의의 경우도 그렇다. 2차 세계대전 때 군국 독재주의 일본이 처음엔 파죽지세로 민주국가 미국을 격파하는 듯하였으나 미국이 온 국민의 힘을 모아 반격을 하니 일본이 결굴 항복을 하고 말지 않았던가. 격앙된 거센 말 한마디는 평생 원수를 낳고, 부드러운 말 한 마디는 천 냥 빚도 소멸시켜준다.(2007. 9 『수필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