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기생 이야기

   얼마전 '충절의 진주 정신'을 기리기 위해 8월 8일을 '논개 가락지의 날'로 선포하고, 그 기념으로 만든 은가락지(2돈쭝)5백개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는데, 이번에 '6.15공동성명 실천을 위한 남북 해외공동 행사' 남측준비위원회 여성본부대표단의 한 사람인 서은해 대표가 '논개 가락지'20개를 북한 여성대표들에게 전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논개는 임란 때의 의기(義妓)이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축하 주연을 벌이고 있을 적에 기생으로서 이 자리에 있던 논개가 울분을 참지 못해, 전사한 우리 장군들으 ㅣ 원한이나마 풀어주고자 술에 취한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남강 물 속에 떨어져 함께 죽었고, 뒷날 이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논게 가락지'에 대한 발상은 그가 왜장을 안고 몸을 던질 적에 손가락마다에 하나씩 열 개의 가락지를 끼고 갔다는 데 착안한 것이라 하니, 가락지가 결심이나 맹세를 기약함을 부각시켰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내가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하숙생활을 할 적에 하숙집 이웃에 몇몇 기생들이 셋방을 얻어 살았다. 하숙집 아줌마로부터 그들의 생활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지라, 보도를 접하고 보니 그때 내 두뇌 컴퓨터에 입력되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기생'하면 평양 기샹과 진주기생을 떠올리게 되고, 그중 진주 기생은 절개가 곧은 것으로 알아주었다. 그것은 다분히 '논개'라는 의기에 영향 받은 바 컸다고 하겠다. 옳은 진주 기생들은 몸을 팔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정조관념이 굳었다는 말이다. 비록 술집에 나가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돕는 일을 하더라도 자기 정조만은 굳건히 간수하는 것을 긍지로 삼았기에 남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더 매력을 느끼게 하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 달시 기생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상당한 요건을 갖추어야 되었었다. '기생'과 '갈보'는 엄격히 구별되어 있었다. 술자리에 나가 가무로서 흥을 돋우어 준다는 면에서는 같은 일을 한다고 볼 수 있었으나, 기생은 고급요정에만 나가는 A급 접대부인데 비하여, 갈보는 통술집 같은 아무 데나 나가는 하급 접대부였다. 따라서 국어사전에도 기생은 '지난날 노래나 춤을 배워 술자리에 나가 흥을 돕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여자(기녀, 예기)'라 하였고, 갈보는 '웃음과 몸을 팔며 천하게 행동하는 여자(논다니, 매춘부)'라고 구별하여 풀이하고 있다.

   갈보는 노래만 부를 수 있으면 취업이 되지만,기생은 일전한 교육과정을 거쳐야 했었다. 거기서 노래와 춤은 물론, 장고, 거문고 등 악기를 다루는 법도 배워야 했다. 또 기생으로서의 마음자세, 몸가짐 등 예법에 이르기까지도 교육을 받았었다. 따라서 기생은 귀족 접대부 대접을 받았으나, 갈보는 '똘갈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천시 당했었다.

   당시 '기생 머리 얹어준다'는 말이 있었다. 이는 돈 있는 남성이 마음에 드는 기생이 있으면 기생어미의 주선으로 상당 금액을 치르고 처녀기생에게 장가를 들고, 땋은 머리를 올려 비녀를 꽂아줌으로써 성인의 예를 갖추어 준 데서 비롯됐다. 그리하여 그 처녀기생은 자기를 성인으로 승격(?)시켜준 은혜를 잊지 않고 오래도록 그를 기둥서방으로 섬겼던 것이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엔 긍지를 갖고 기생의 도를 지켜나가는 절조 있는 기생이 많았던 것이니 격세지감이 느껴질 것이다.

  하숙집 아줌마의 말에 의하면, 진주 기생들이 정조관념을 굳게 지켜나갈 수 있었던 데는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었다. 그것은 기생마다 각기 기둥서방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확실한 기둥서방을 지니고 있는 기생은 진정으로 자기의 정을 줄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헤프게 허락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지마는, 기둥서방을 정하지 못한 기생은 뿌리 약한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리듯, 아무에게나 몸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생들 입에서 나온 체험담의 일단에서 우러난 것이라 하니, 확실한 정보로 믿을 만하지 않은가?

   우리 역사상 이름을 남긴 기생으로는 황진이가 있다. 그는 미색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박연폭포, 서경덕과 더불어 '송도삼절'이라 할 만큼 유명하였다. 15세 때 이웃 총각이 혼자 연모하다가 병으로 죽으매, 서둘러 기생이 된 특유한 운명의 여인이었기에 뭇 남성의 여인으로 만족하였지만, 당시 여성이 생명처럼 소중시하던 정조관념의 면에서는 감히 진주 기생을 따를 수는 없었다.

   기둥서방! 이것이 어찌 진주 기생들만의 전유물이라 할 것인가?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의 기둥서방' 곧 정신적 지주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의 지주가 없는 사람은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다.

   오늘날 정치인 가운데는 마음의 기둥서방이 없어 철새처럼 이리 갔다 저리갔다 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빈축을 사는 사람이 있다. 마음의 기둥서방을 갖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신의가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청치인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니, 누구보다도 국민에 대한 신의를 존중하고 마음속에 든든한 기둥서방을 키워야 하겠다.

   요즘 노래방에 가정주부가 노래꾼들을 위한 도우미로 나가고 있다고 하니, 지난날의 기생 역할을 연상케 된다. 노래방은 시민을 위한 건전한 오락시설이다. 그렇다면 가정주부가 노래방 도우미로서 흥을 돋우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에서 그쳐야 할 것인데, 도를 넘어 탈선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된다고 할 것인즉, 여기서도 요구되는 것이 마음의 기둥서방이다. 비록 도우미로 나갈지언정, 가정주부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도우미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는 지조가 필요하다 하겠다.

   '절개란 옳은 일을 지키어 뜻을 굽히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니, 이는 여성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절개를 잃은 사회는 신의가 무너진, 살맛 없는 사회가 된다. 이번에 진주여성민우회에서 논개 가락지를 북한 여성들에게 전달한 것은 절개를 고조시킨 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를 계기로 북한 동포들이 어쩌다가 잘못 씌워진 공산당 굴레에서 벗어나, 옳은 방향을 찾아 진정한 민족적 화합으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남북통일의 날을 앞당기는 일에 이바지가 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