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탐

   요즘 간혹 서점에 들어 책을 사오는 수가 있다. 그런데 정작 집에 와서는 그 책이 끝까지 읽혀지는 일이 별로 없다. 조금 읽다가 보면, 책읽기가 수면제가 되어 10페이지도 못 넘겨 눈이 감겨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엔 책 구입을 자제해야지' 하는 마음을 몇 번 이나 먹었으면서도, 영광도서 근방을 지나치기만 하면 들러보고 싶고,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사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니 이것은 나의 책 탐이라 해야 하겠다.

  사람이 늙어면 노탐이 생긴다고 한다. 염라대왕 호출날이 가까워지면 욕심이 줄어져야 하는게 순리일 터인데, 오히려 세상 잔류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 보다 많은 재산도 갖고 싶고, 감투도 더 많이 써보며, 호화 생활도 더 누려 보고, 또 멋있는 연애도 해 보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책만 보면 사고 싶어 하는 나의 이 책탐도 노탐 중의 하나인가 생각된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책탐을 내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랴. 그런데 절 반도 읽지 못하고 팽개쳐 버려진 책이 수두룩 하게 꽂혀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나 만을 탓 할 일이 아니라는 아전인수격인 생각이 든다. 책을 접하고 있노라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유인, 매혹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 서전에서는 책을 '어떤 사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종이를 꿰면 물건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이 어찌 물건으로만 볼 수 있으랴.

   거기엔 저자의 사상 감정이 숨쉬고 있고, 지혜의 번뜩임이 있다. 호수처럼 잔잔한 속삭임과 하소연이 있고, 웅변의 함성이 담겨도 있다. 따라서 거기서 따스한 체온과 정을 느끼며, 사랑과 존경심을 느끼기도 하니 생명체와도 같다.

 그리하여 책은 나에게 다정한 벗이요, 가이드요, 스승이다. 나의 마음의 샘터요, 애인이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애인은 찾는 이만을 상대 할 뿐, 지나쳐 버리는 이에게 결코 말을 건너오는 법이 없다. 그는 고고하지만 도도하지도 않으니 진정한 교양 인이요, 도덕 군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책탐을 좀체로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이같은 책의 마력에 있다고 할 것인즉 나는 책의 포로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