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두 사람이 고성을 지르며 싸우고 있다. 건널목에서 한 사람은 좌측통해을, 한사람은 우측통행을 하다가 부딪쳐 서로 내가 잘했다고 다투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엔 인도로 까지 나와서 다투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개입을 하였다. "건널목에서는 우측통행이 맞는 겁니다." 하고 우측통행을 하라는 표시가 그려져 잇는 길바닥의 화살표를 보라고 가리켜 주었더니, 그제야 자기 잘못을 깨닫고는 머리를 긁었다. 그리하여 건널목에서 우측통행을 해야 될 까닭을 부연 설명해 주었더니, 풀이 죽어서 미안하다며 사과함으로써 해결이 되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처럼 무슨 일을 잘못할고 있다가 실수하는 일이 있다. 우리의 교통규칙은 '차는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기에 건널목에서도 으레 그러리라고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건널목에서는 사람도 우측통행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좌측통행을 할 경우, 우측통행으로 달려오는 차가 신호와 동시에 재빨리 멈추지 못해 사람과 맞부딪혀 사고가 나기 쉽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건널목 길바닥을 자세히 보면 우측통행을 하도록 화살표 두 개가 그어져 있는데, 무심코 지나는 사람은 잘 못 보게 된다.
이와 유사한 일로, 엘리베이터를 작동하기 위한 단추를 누를 때에도 흔히 시비가 벌어진다. 올라갈 사람은 위의 단추를, 내려갈 사람은 아래 단추를 누르면 되는 것인데, 자기가 엘리베이터에게 명령하는 입장에서, 올라오라고 '오름'표시단추를 누르고, 내려오라고 '내림'표시 단추를 누름으로써 혼선을 빚고,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고 다투는 것이다.
이용자는 엘리베이터에게 자신의 희망사항을 알리기만 하면, 주체인 엘리베이터가 알아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순리인데, 거꾸로 이용자가 주체가 되어 엘리베이터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명령을 하려고 달려드니가 엘리베이터는 화가나서 순종을 안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것은 기계도 사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우리 속담에 '알아야 면장한다'는 말이 있다. 이말은 무슨 일을 하려면 학식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며, 옳게 알아야 큰소리 칠 수 있고, 모르면 기가 죽어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말로도 통한다. 앞서의 건널목에서 다투었던 두 사람 중, 일반도로에서는 좌측통행이지만, 건널목에서는 우측통행이 맞다는 사실을 옳게 알고 있는 사람은 큰소리 칠 수 있었고, 그것을 알지 못했던 사람은 결국 기가 죽어 사과까지 했으야 하였다. 또 엘리베이터의 단추 누름 시비에서도 결국 '희망 표시' 쪽이 '명령 자시'쪽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던가?
요즘 와서 갑자기 젊은 세대들이 기세가 등등해진 반면, 노인세대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심지어 깔보임까지 당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옛날처럼 젊은이들이 어른을 존경하는 풍토도 사라져가고 있다. 옛부터 우리나라는 예절이 바르고 장유유서의 질서가 서서 어른을 깎듯이 존경하는 미풍이 있어 세계적 자랑거리가 되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그러지 못하여, 2001년도 유니세프 조사에 의하면, 아태지역 17개 나라중, '어른 존경심 꼴지'라는 불명예스러운 경과를 낳게 하였다고 하니, 낯뜨거운 일이며, 급격한 사회상의 변화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함께 그 원인을 규명해 보아야 하겠다. 나는 그 원인을 컴퓨터의 출현에서 찾고 싶다. 컴퓨터가 도입되기전에는 어른들이 젊은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많이 알고 있었기에 젊은이들은 이런 어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였다. 그런데 컴퓨터가 나오면서 마치 지진후에 지작을 변동시키듯이 사회상에 큰 변동을 일으켰다. 그만큼 컴퓨터는 이 사회에 큰 지진 역할을 하였으니 그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어린아이 적부터 컴퓨터를 배워서 이것이 생활화되어 있는데, 어른들은 이를 외면하였으니 여기에서 점은 세대와 노인 세대사이에 갭이 생겨 젊은 세대가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무궁무진한 인터넷(컴퓨터)세계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데, 노년 세대는 여기에 완전 까막눈이 되어 버렸으니, 옛날과는 달리 오히려 젊은 세대가 어른 세대보다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어른들이 기를 못펴게 된 것이 아닌가?
원래 존경심이란, 상대가 나이 많다고 무조건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존경할 만한 요소를 지녔기에 우러나는 것이다. 옛날엔 어른이 젊은 세대보다 유식하여 배울 점이 많았기에 존경을 하였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커퓨터까지를 알고 있음으로써 오히려 우월감을 갖게 되었다. 존경심이 사그라지는 원인이 여기 있다 하겠다. 물론, 어른의 입장에서는 컴퓨터가 전부냐고 할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른은 인격을 갖춘 인생의 선배이니, 당연히 존경을 하여야 마땅하다고 하겠지만, 무조건적인 주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컴퓨터 세상이 되면서 젊은이들이 컴퓨터란 새로운 '지식 무장'을 갖춤으로써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졌음으로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도, 이것이 결국 젊은이들로 하여금 어른 공경심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등장되지 않았나 생각되어 씁쓸한 생각이 든다.
'알아야 면장한다'고. 그러니 어쩌겠는가? 부득이 어른들도 늦게나마 컴퓨터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 간혹 글쟁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인터넷이나 E-mail이야기가 나온다. 젊은 문우들의 대화 가운데 내가 이해 못하는 말들이 오고간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고 오기에 받치어 컴퓨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나도 몇 달전에 컴퓨터에 발을 밀어 넣어 보았다. 8일간의 초보자 연수과정에 등록을 하고, 매일 3시간 강의를 들었다.
우선 당면 목표는 워드 치는 능력을 갖추어 내작품을 직접 워드로 작성해 메일로 원고 보내는 것만이라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의 내용은 나의 입맛에 맞는 것만이 아니어서 막상 달려들어 보니 쉽게 학습이 되지 않는다. 문자판을 익혀야 하는데 기억력이 멀리 달아나 버려 잘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자꾸 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해 보건만 옛날 머리(두뇌)같지 않다. '늙었다'는 것이 절감되고, 진작 배워놓지 않았던 게 후회된다. 그러나 어찌하랴. 남이 한 달 걸리는 것을 나는 1년 걸려서 배울 작정으로 있는데, 짓줒은 친구는 "앞으로 얼마나 살려고?" 하면서 핀잔을 준다. 헷갈리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일 비록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좇으려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