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차 (視角差)

 

  나의 두뇌 컴퓨터에 입력돼 있는 20대의 기억 하나.
  8.15 해방 직후, 어느 유명 야당의 당수인 조모씨에게 좀 날뛰는 대학생 딸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나노라하고 거리를 누비고 다녔었는데, 학생들 간에 그를 두고 '세 번 놀라게 하는 여인'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첫 번째는 그의 지나가는 뒷보습만 보고 '저 여자가 00당 당수 조아무개의 딸이란다" 해서 놀라고, 두 번째는 지나가는 얼굴을 앞면에서만 보고는 "야, 근사하다"해서 노라고, 세 번쩨는 막상 정면에서 보고는 "그 얼굴이 너무 못났음을 보고 실망감에 빠져 놀라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가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해 주는 하나의 예화이다.

  이와 관련, 다음에 일본과 관계있는 이야기를 세가지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재 국난이었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을 돌아보고 온 두 사신이 선조대왕에게 보고를 하는데, 김성일은 "일본이 조선을 고략할 의사가 전혀 없더라."고 하고, 황윤길은 "공격을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 상반된 보고를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임금이 크게 노하여 김성일을 처벌하라고 명하였다(다행히 유성룡의 변호로 처벌을 면하기는 하였지만)

  또, 10여 년 전에 발간된 책 가운데 전여옥이 지은『일본은 없다』는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4~5년 뒤에 서현섭은『일본은 있다』는 책을 내어 이 또한 베스트셀러가 된 일이 있었다. 전자는 일본을 한 측면에서 보고 '우리가 너무 일본에게 겁을 집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 함이었고, 후자는 일본을 정면에서 깊이 살펴보고, '일본은 우리가 결코 만만하게 바라만 볼 존재가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배워야 할 장점을 소유하고 있음을 중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쓴 책이었다.

  그리고 또, 과거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아 36년간이나 지배한 것은 역사적으로 명백한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한승조 교수가 일본의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원망하기보다는 축복해야 하고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같은 사물을 두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것인가? 나는 최근에 공자의 고향 중국 곡부(曲阜)를 돌아보고서 시각차란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닌 것인가 하는 놀라움을 절감하고 돌아왔다. 공자는 역사상 석가, 예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성인(聖人)의 한사람으로 숭상을 받는 분이 아니던가? 우리 인류에게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륜, 도덕을 가르쳐 준 만인의 은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1960년대 모택동 공산당이 집권 후에 만인의 은인으로 알았던 공자를 하루아침에 '역사상 지배계급의 옹호자'였다는 죄명을 덮어씌워 사형선고를 추서(?)하고 공자를 비하시키는 운동을 일으켜, 공묘(孔廟), 공림(孔林), 공부(孔府)등에 제례를 지내거나 참배하는 일을 금지하였을 뿐 아니라, 공자의 유적을 마구 훼손까지 하였었다.

 그리하여 10년간 공비운동(孔卑運動)을 강력하게 추진하다 보니, 백성들의 반항에 부딪혀 공산당 내에서도 "백성들을 등진 정치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그 후 10년간은 공자 비하운동을 멍추고 방치 상태로 두었는데, 그로부터 두 번의 10년이 지난 30년 만에 내가 곡부에 가서보니, 이제는 열화 같았던 공자 비하운동의 불씨가 사그라지고 공자 유적을 다시 복원하자는 운동이 살아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때마침 현 중국 정부의 실용주의 정책에 힘입어 관관객 유치를 위해 공자 유적 복원에서 한걸음 나아가 유적 미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여 이에 열을 올리고 있었느니, 중국 공산정권은 그대로이지만, 그들의 시각은 완전히 바뀌었음을 간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자 격하운동이 한창일 때 부수어져 두동강 았던 비석에 시멘로 땜질한 것을 볼 수 있었고, 유적 안내의 새 표지판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시각차란 이렇게도 무서운 것인가? 보통사람의 시각에서는 공자는 인간의 윤리, 도덕을 가르쳐 준 전세계인의 도덕교사였지마는, 무산계급자의 시각에서는 지배계급의 통치 권한만을 옹호해온 변호사로서, 오히려 멸시의 대상자로만 보였던 것이니, 공산주의의 시각이란 이다지도 무서운 것이던가? 그러나 매사는 사필귀정이라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모택동 독재 정권 내에서도 굴하지 않고 선량한 인민의 소리를 대변한 용감한 바른 소리꾼이 있었으니 이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물을 보는 데 있어서는 정면에서 바로 보아야 우리의 망막에 정확한 상(象)이 맺어져 그 실체를 볼수 있다. 정면 아닌 옆이나 뒤에서 바라보면 왜곡된 상이 나타나서 실체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앞서의 유명 정당 당수의 딸의 경우, 첫 번째는 먼빛으로만 보았기에 아버지의 유명세가 딸에게 정이되어 도매금으로 그 가치가 돋보였던 것이며, 두 번째는 뒷모습만 보았기에 미장원에서 다금어진 머리 모습만 보고 '야, 근사하다'는 환성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세뻔째는 정착 정면에서 얼굴을 바라보고 그가 '못난이 얼굴'의 소유자라는 실상을 확인하고 놀랐던 것이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앞새우고 사물을 보면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또 긍정적 시각으로 보느냐, 부정적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실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긍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사고방식도 긍정적인데 반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사고방식도 부정적이기 일쑤이다. 이러한 사물을 보는 시각차는 인생의 행. 불행에도 미치게 된다. 긍정적 시각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개방적 인간형으로, 부정적 시각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폐쇄적 인간형으로 형성되기가 쉽다. 그럼 어느 족이 더 행복을 누릴까? 대체로 개방적인 인간형의 소유자가 더 행복된 삶을 누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세계인의 도덕교사인 공자에게 부정적 시가을 들이대었다가 잘못임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긍정적 시각으로 돌아가, 공자에게 내렸던 사형선고를 취소하고, 공자 부활운동을 펴게된 것은 현명한 조치였다. 현재 중국의 경제가 살아나 국력이 신장되고 있는 것은 사물을 보는 시각을 수정한 그 보상으로 획득한 것이라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은 인생에서의 행.불행의 갈림길이 될 수 있음을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