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업자득의 업보
-대구지하철 참사를 보면서
이번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사고는 끔직한 대참사로 우리 사회의 청체적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뼈아픈 체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사고(思考)'가 만영되어 왔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나서야 쇠로된 다리도 불괴될 수 있다는 것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나서야 대형 건물도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대구 사고가 발생하고서야 비로소 지하철에도 불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도었으니, 우리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감각도를 실감케 한다.
사고의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차내에 소화기가 설치돼 있었음에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눈에 잘 띄는 곳에 부착되어 있어야 할 안전수칙은 눈에 잘 뜨이지 않고, 오히려 당장 돈이 되는 상업적 광고는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붙어 있었으니, 이쯤되면 방심의 도가 극에 달해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또 지하철 차체 구성에 소요된 부속물은 잘 타는 내장재 등 인화성 물질로 온통 도배를 하다시피 돼 있었다. 그리고 취약한 대피 안내 체계와 재난 훈련의 전무 등은 사고의 대형화를 더욱 심화시켰었다.
이러고도 지금까지 대형사고를 당하지 않고 20년을 지내온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거기에다 불이 난뒤에 맞은편 차선에 들어온 전동차의 운전기사가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자동차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마스터기를 뽑이들고 혼자 빠져 나와 버렸다는 보도는 우리를 아연실색케 하였다. 승객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갖추지 못한 운전기사, 그 같은 비인간에게 목숨을 담보하였던가 생각을 하니 분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같은 눈에 보이는 원인의 뒤에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 숨어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그 날 나고의 발단은 한 중년 남성이 품은 깊은 마음의 상처에 있었다. 그는 평소에 자기가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세상에서 버림받은 감정으로 살아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와 아무런 관계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마치 장난처럼 자신의 반감을 표출함으로서 2백명이나 되는 고귀한 목숨을 거두어 가게하고 말았다. 우리의 집단사회에서는 이처럼 한 사람의 부정적 사고가 엄청나게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니,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도덕심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의 원인은 먼저 외형적인 데서 찾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내적 원인을 규명 해보면, 우리 교육의 인간성 상실에서 찾을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날 방화를 한 중년 남성은 남몰래 숨어서 불을 지른 것이 아니었다. 여럿이 보는 앞에서 라이터를 켜고 인화물질에 불을 붙이려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그때 만약 주위 사람들이 함십하여 그 행위를 저지했더러면 끔찍한 불사상사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살마들은 오불관언(吾不關言)-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적극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음으로써 엄청난 사고가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만큼 주위 여러 사람들의 공중도덕심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이니, 이는 인간성 교육의 부제에서 온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요즘 세상에는 이상할 정도로 어른의 말을 마이동풍으로 우습게 듣는 풍조가 생겼으니, 이또한 사고 발생에 한몫을 하지 않았던가? 그때 누군가 어른이 나서서 야단을 치고 불을 붙이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평소에 어른들의 기를 죽여 놓았기에 차마 나서는 어른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방화를 한 그 남성이 어찌하여 정신 이상이 될 정도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감싸줌이 베풀어졌더라면 그 같은 '엉뚱한 사고'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그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겨 준 사람이 누구였을까? 어느 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혹시 그의 눈에 비친 오늘날의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 믈질문명에 병들어 사랑이 결핍됨으로 인해 자기만이 푸대접을 받는 것 같은 불평등 사회의 현실이 그로 하여금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한 것이나 아니었는지?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큰 힘을 가진 것이 또 있겠는가? 사람은 본래 애정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런데 타고난 애정을 가꾸고 자라게 하는 작업이 곧 교육이 아닌가? 교육의 근본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더덕적 인간을 기르는데 있다 하겠다. 오늘날 우리 교육이 입시위주의 지식교육에 밀어어 인간성 교육이 소홀함으로서 '애정결핍증환자'가 속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외적인 원인으로서는 분명, 가연성 내장재 사용, 지하철 종사원과 승객에 대한 재난훈령 부족, 허약한 대피안내 체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보다 원천적인 원인은 인간성 부재의 우리교육 현실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간과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제2, 제3의 지하철 사고가 연달아 뒤를 좇아 올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다.
우리가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은 대구 지하철 사고는 결코 하루 아침에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오랜 전부터 우리 교육이 인간성을 잃어 버린 절룸발이 교육으로 전락됨에 따라 그간에 그병폐로 인해 불완전 인간이 누적, 배출됨으로써 발생된 것임을 명백히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본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까지도 전생의 업보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닷; 떠올리기조차 싫은 대구 지하철 참사는 우리가 지난날 교육의 본질인 이간성 교육을 등한히 한 것이 근본 원인이 되어 그 같은 엄청난 불행을 몰고 왔다고 생각할 때, 이는 결국 자업자득의 업보라 해야 할 것이니 이 어찌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우리 모두의 연대책임으로 돌릴 수밖에.